“사회적 가치, 숫자로 증명하라” 확산의 조건은 리더십

ESG·임팩트 투자 성장 속 ‘사회적 가치 측정’ 기업 생존 전략 부상
전문가들 “경영진·주주 등 리더십 공감 중요해”

“21세기 기업은 재무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함께 보여줘야 한다.”

2006년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을 세워 빈곤층을 돕는 소액대출 모델을 확산시킨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무함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 그는 ‘소셜 비즈니스’ 개념을 통해 기업이 사회적 목적과 재무적 지속가능성을 함께 추구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201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MIT 에스테르 뒤플로(Esther Duflo) 교수는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임팩트 측정으로 입증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같은 해 애플·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 CEO들은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성명에서 주주만이 아닌 이해관계자 전체에 가치를 제공하겠다고 선언했다.

신현상 한양대학교 경영학과 교수가 지난 25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사회적가치 페스타’ 메인 세션 ‘리더스 서밋’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지난 25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사회적가치 페스타’ 메인 세션 ‘리더스 서밋’에서 신현상 한양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이 같은 흐름을 짚으며 “ESG와 임팩트 투자 규모가 성장하면서, 기업이 사회적 가치를 선제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더 나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려면 임팩트 측정에 기반한 전략 수립이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 소프트뱅크가 임팩트 측정을 시작한 이유

이날 행사 현장에는 일본 소프트뱅크, 중국 텐센트, SK·LG 등 글로벌 기업과 등 국내 기업, 민간 재단, 사회적 기업, 정부 관계자 등 사회혁신 리더 350여 명이 참석해 ‘사회적 가치를 왜, 어떻게 측정해야 하는가’를 놓고 머리를 맞댔다.

이케다 마사토 소프트뱅크 CSR 본부장은 2022년, 임팩트 측정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 “우리 사업이 세상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눈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초기에는 지주사 CSR 부서 차원에서 출발했으나, 2024년에는 SK텔레콤과 협약을 맺고 ‘사회적 가치 측정 워크숍’을 열며 본격화했다. 올해부터는 그룹 전체 사회공헌 활동은 물론, 저탄소 제품·서비스까지 측정 범위를 확장했다.

지난 25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제2회 대한민국 사회적가치 페스타’의 메인 세션 ‘리더스 서밋’에서 이케다 마사토 소프트뱅크 CSR 본부장이 발언하고 있다. /김규리 기자

그는 “ESG 공시 요구에 대응하는 동시에, 앞으로 어떤 변화를 추진할지 판단하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측정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2022~2023년 검토한 250개 사업 중 실제 수치화가 가능했던 것은 14개에 불과했다”며, 신뢰할 만한 비교 데이터 부족과 부문별 이해 부족, 다른 공시 대응으로 인한 자원 제약을 가장 큰 걸림돌로 꼽았다.

소프트뱅크의 CSR 철학은 ‘정보 혁신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는 경영 이념에서 출발한다. 이를 바탕으로 휴대전화 재활용, 청소년·노인 대상 ‘스마트폰 교실’ 등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특히 스마트폰 교실은 전국 매장과 지자체 공간에서 열리는 무료 강좌로, 매장 어드바이저와 인증 강사가 온라인 진료·재난대응 앱 활용부터 보안·사기 예방, 생성형 AI 기초까지 실습 중심으로 가르친다. 지난해만 100만 회 넘는 수업이 열렸고, 올해는 120만 명 참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장용석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가 ‘리더스 서밋’을 진행하는 모습. /김규리 기자

◇ 경영진의 의지와 함께 정책·시장 공감대 필요해

전문가들은 사회적 가치 측정이 확산되려면 ‘의사결정 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장용석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사회문제가 복잡해진 만큼, 해결 방식도 지속가능해야 한다”며 “사회문제 해결을 정확히 측정하고, 이에 따라 정책과 시장에서 보상을 줘 결국 이사회를 움직이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VBA(Value Balancing Alliance·기업 활동의 사회·환경적 영향을 화폐 가치로 환산하는 글로벌 표준화 연합체)의 크리스티안 헬러 CEO도 “임원과 이사회가 사회적 가치 측정의 가치를 이해해야 전담팀을 꾸리고 데이터 체계를 마련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리더스 서밋’ 현장에서 참가자들이 패널 토론을 하고 있다. /김규리 기자

남보현 HGI 대표는 “본질적으로는 주주가 사회적 가치 측정의 의미를 인정하고 지지해야 경영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임팩트 측정은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기업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며 경영진·주주·구성원이 함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낼 때 측정을 확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장에서는 사회적 가치 측정의 표준화 필요성이 가장 큰 쟁점으로 떠올랐다. 기업 관계자들은 “측정 프레임워크가 너무 많아 혼란스럽고, 실행까지 시간과 비용이 과도하게 든다”며 “표준화가 이뤄져야 확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표준화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현상 한양대 교수는 “숫자로 성과를 표현하는 동시에, 각 사업의 특성과 맥락을 반영한 지표와 방법을 개발해 실제 사업 개선에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행사는 대한상공회의소와 사회적가치 연결 플랫폼 소박(SOVAC·Social Value Connect), SK텔레콤, 현대해상, 카카오임팩트, 코이카, SM C&C, 루트임팩트, 임팩트스퀘어, 코엑스, 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가 공동 주최하고 국무조정실, 행정안전부, 고용노동부, 한국경영학회가 후원했다.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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