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회혁신발언대] 벌새가 산불을 끌 수 있을까?

기후 위기, 빈곤, 차별과 양극화, 지역 소멸. 우리가 마주한 사회문제는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버겁다. 해마다 심해지는 폭염과 가뭄, 산불과 홍수를 보면 기후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실감하게 된다. 인류가 수백 년 동안 해결하려 애써 온 빈곤 문제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처럼 거대한 문제들을 우리는 과연 해결할 수 있을까. 필자는 영리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취업이나 시험에 실패한 뒤 사회에서 고립된 청년들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 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소셜섹터로 옮겼고, 사회문제 해결에 도전하는 기업가를 육성하고 투자하는 엠와이소셜컴퍼니(MYSC)에 입사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는 보람도 있었지만, 기후 위기나 빈곤 같은 거대한 문제 앞에서는 종종 무력감을 느꼈다. 특히 회계라는 백오피스 업무를 담당하다 보니 내가 하는 일이 사회문제 해결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체감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대표의 제안으로 책 한 권을 번역하게 됐다. 일본의 사회적기업 플랫폼 ‘보더리스 재팬’을 설립한 다구치 가즈나리 대표의 ‘사회문제의 90%는 비즈니스로 해결할 수 있다’였다. 사회문제의 90%를 해결할 수 있다고? 그것도 기부나 원조가 아니라 비즈니스로? 자신감 넘치는 제목에 의문을 품은 채 책장을 펼쳤다. ◇ 사회문제 해결에 수익을 다시 투자하다 ‘사회문제를 비즈니스로 해결한다’는 말은 익숙했다. 우리 회사가 추구하는 비전이기도 하다. 하지만 책에서 만난 보더리스 재팬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를 실현하고 있었다. 2007년 설립된 보더리스 재팬은 사회문제 해결에 도전하는 기업가를 육성하고, 이들이 창업하는 기업에 자본을 출자해 소셜 비즈니스의

[AI 시대, 필란트로피를 묻다] 마케팅 기술자의 종말, 다시 모금가의 본질로

올해 1월, 누구나데이터는 10년간 이어온 모금 교육을 중단했다. 기부자 데이터를 분석하는 법, 클릭을 유도하는 모금 페이지를 만드는 법, 모금 광고의 성과를 측정하는 법 등 비영리 실무자 2500여 명에게 가르쳐 온 내용이었다. 교육을 중단한 이유는 단순했다. 올해 안에 이 업무들을 AI가 사람보다 더 잘하게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필요 없어질 지식과 기술을 배우자고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는 없었다. 실제로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당시의 판단은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과장된 전망만은 아니다. 미국의 AI 연구기관 METR은 AI 모델이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과업의 복잡도를 사람이 해당 업무를 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환산해 분석한다. 2022년 챗GPT가 처음 등장했을 당시에는 사람이 약 30초 만에 끝낼 수 있는 수준의 과업을 수행했다면, 최근에는 14시간이 걸리는 과업까지 수행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러한 추세가 이어진다면 내년에는 하루, 내후년에는 일주일, 2029년에는 한 달이 걸리는 과업까지 처리할 수 있다는 전망도 가능하다. 물론 이는 특정 평가 방식에 따른 추정치이지, AI가 모든 업무를 해당 시간만큼 자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는 2024년 한 인터뷰에서 마케팅 전문가에게 맡겨 온 업무의 95%를 AI가 거의 즉시, 비용 없이 처리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가 예상한 시점은 5년 뒤인 2029년이다. 나는 이 예측이 결코 과장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 팀에서도 지난해까지 일주일이 걸리던 일부 업무를 이제는 하루 만에

[박훈의 나눔과 세금] 법정에서 배운 기부의 신뢰, 세법이 할 일

기부하면서 소송을 떠올리는 사람은 드물다. 소송까지 내다봤다면 애초에 지갑을 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판결문에는 기부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기부자가 대학을, 장학재단이 세무서를, 종교단체가 정부를 상대로 다툰 사건들이다. 소송은 신뢰가 깨진 자리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거꾸로 읽으면, 기부의 신뢰를 누가 지키고 누가 흔드는지, 그리고 세법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보인다. 기부에 세제 혜택을 더 주자는 말을 꺼내면 늘 같은 질문이 돌아온다. 공익법인을 어떻게 믿느냐, 결국 조세회피에 쓰이는 것 아니냐. 결론부터 말하면 이렇다. 믿는 일은 기부자에게 맡기고, 법과 정부는 꼭 필요한 안전장치만 두자. 의심을 앞세워 문을 닫아 두면 지켜지는 것은 세금이 아니라 의심이고, 잃는 것은 기부다. ◇ 뜻은 적힌 만큼만 지켜진다 2003년 한 향토기업인이 한 지방 국립대에 305억 원을 기부하기로 약정하고 195억 원을 먼저 냈다. 새 캠퍼스 땅값으로 쓰일 것이라 믿었는데, 대학이 상당 부분을 연구비와 건물에 쓰자 나머지 110억 원은 낼 수 없다며 소송을 냈다. 대학이 뒤늦게 유감을 표했지만, 재판의 결론은 달랐다. 약정서에 적힌 용도는 ‘캠퍼스 건설 및 연구지원기금’으로 넓었고, 용도를 적어 두었다고 해서 받는 쪽이 꼭 그대로 해야 할 의무를 지는 기부(법률 용어로 ‘부담부증여’)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이유였다. 2012년 대법원까지 결론은 같았다. 기부자는 마음을 냈고, 법원은 약정서를 읽었다. 기부자의 신뢰를 법이 지켜 주는 범위는 생각보다 좁다. 받는 쪽이 지켜야 할 의무를 분명히 적어 둔 기부라면 이를 어겼을 때 되돌릴 길이 있지만, 마음은 문서가 아니고

[사회혁신발언대] 경도인지장애, 진단 다음의 자리가 중요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은 분들은 그다음 어디로 가시나요?” 지난 9월 서울 은평구청에서 열린 ‘건강이웃’ 사업 성과공유회에서 한국에자이 관계자가 던진 질문이다. 한국에자이와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서울광역치매센터, 은평구치매안심센터가 처음 사업을 논의할 때부터 반복해서 제기했던 문제이기도 하다. 보건복지부의 2023년 치매역학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치매 유병률은 9.25%다. 여러 조사에서는 국내 경도인지장애(MCI) 추정 인구가 300만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경도인지장애는 정상적인 노화에 따른 인지 변화와 치매의 중간 단계로, 치매로 진행될 위험이 높은 상태다. 은평구치매안심센터 유미숙 부센터장에 따르면 경도인지장애가 있는 사람은 정상 인지기능을 가진 사람보다 치매로 진행될 위험이 4~5배 높다. 치매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정작 치매로 이어질 수 있는 이 중요한 시기에 우리 사회가 제공하는 지원은 충분하지 않다. 진단은 받았지만, 그 이후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찾기 어렵다. 이번 성과공유회에서 만난 한 경도인지장애 당사자도 비슷한 시간을 보냈다. 약속을 자주 잊어버려 주변에서 검사를 권유했지만, 자존심이 상해 검사를 미뤘다고 했다. 사람들과의 만남도 피했다.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발음이 어눌해지고 몸과 마음이 점점 병들어가는 것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렇게 사회와 멀어지던 그에게 변화의 계기가 찾아왔다. 한국에자이와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지원으로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 은평구에서 5개월간 시범 운영한 ‘MCI 노인일자리’ 사업이었다. 이 사업은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은 어르신 10명과 기존 노인일자리 참여자인 ‘건강이웃’ 10명을 짝지어 함께 활동하도록 설계됐다. 참여자들은 매주 가정을 방문하며 서로 관계를 맺고 사회활동을 이어갔다. 사업에 참여한

서명지 CSR Impact 대표 섬네일
[People&Planet] 친환경 굿즈를 팔아 기부하면, 좋은 사회공헌일까

“쓰임이 다한 자원을 수거해 고품질의 새 제품으로 만들고, 판매 수익금은 소외된 이웃에게 기부합니다.” 이 설명에는 여러 좋은 뜻이 담겨 있다. 자원을 아끼고, 소비에 의미를 더하며, 누군가를 돕겠다는 약속이다. 그러나 약속이 많을수록 확인해야 할 것도 많아진다. 재료를 재활용했다는 사실이 제품의 품질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제품이 팔렸다고 해서 불필요한 소비가 줄어든 것도 아니며, 수익금을 기부했다고 해서 수거와 재생 과정의 환경성이 저절로 입증되는 것도 아니다. 캠페인에 투입된 예산과 실제 판매량, 재고, 기부금 산출 방식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기부금이 매출의 일부인지, 비용을 제외한 순이익인지에 따라 그 규모와 성격은 달라진다. 기업이 제작비와 구매비를 지원해 임직원에게 배포한 물량이라면 일반 소비자의 실질적인 수요로 보기도 어렵다. 기부금이 전달된 이후 어떤 변화를 만들어냈는지도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환경적 성과와 제품의 쓰임, 기부의 실질적인 효과를 각각 검증해야 비로소 캠페인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 우유팩 수거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모았나’가 아니다 카페에서 라떼 몇 잔을 만들고 나면 빈 우유팩 하나가 남는다. 손님이 떠난 뒤에도 매장의 일은 이어진다. 우유팩을 씻어 말리고, 접어서 모아 누군가에게 건네는 일이다. 자원순환을 기획할 때는 이 작은 행위의 ‘다음 순서’를 물어야 한다. 누가 처리하는가. 어떤 경로로 이동하는가. 그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가. CSR impact가 코레일유통과 우유팩 회수 체계를 구축한 것도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했다. 전국 철도역사의 직영 카페와 임대 매장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이전과 일상 회복 단계의 우유 주문량을 분석했다. 이를

노재권 코즈웍스 썸네일
[People&Planet] 지구톡톡과 지톡이가 보여준 CSR의 다음 장면

사람들의 마음에 이름으로 남아야 오래간다. 다시 찾고 이야기하며 자기 방식으로 참여하게 될 때, CSR은 기업의 브랜드 자산이 된다.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 2000여 개의 자리가 열렸다. 그리고 1~2분이면 신청이 끝났다. 콘서트 예매 이야기가 아니다. 다회용 빨대와 텀블러를 더 자주 들고 다니자는 기업의 친환경 CSR 캠페인 이야기다. 1~2분이라는 숫자만 보면 인기 많은 물건을 나눠준 호객용 이벤트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물건을 받은 뒤 실제로 사용했고, 자신의 일상 속 장면을 인증사진으로 남겼다. 다음 해에도 다시 참여했고, 자신을 ‘지톡이’라 부르며 자신들만의 환경 자아를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좋은 취지에는 쉽게 공감하지만, 조금만 번거로워도 행동을 미룬다. 그렇기에 실천을 권하기 전에 무엇이 불편한지부터 살펴야 한다. 지난 20년 가까이 CSR 현장에서 내가 늘 ‘참여자 친화형 캠페인’을 제안해 온 이유다. GS칼텍스의 지구톡톡은 그 불편에서 시작했다. 2023년에는 다회용 빨대를 완전히 펼쳐 안쪽까지 씻을 수 있게 만들고, 가방에 걸 수 있는 키링형 케이스를 더했다. 이듬해에는 “큰 가방에 텀블러를 넣으면 샐까 걱정되고, 전용 가방을 따로 들기는 번거롭다”는 시민 의견을 반영했다. 그 결과 텀블러백과 장바구니를 합친 투인원 제품이 나왔다. 사람을 바꾸려 애쓰기 전에 행동하기 쉬운 환경을 먼저 만들었다. 행동 도구는 지구톡톡을 설명하는 물건이면서, 캠페인의 이름을 일상에서 떠올리게 하는 역할을 했다. 첫해 시민 1만 명에게 빨대가 전달됐고 인스타그램 행동 인증 3939건이 확인됐다. 다음 해에는 참여자가 2만 명으로 늘었고 인증은 8434건을 기록했다. 물론 무료

[AI 시대, 필란트로피를 묻다] 선의에도 킬 스위치가 필요하다

공짜로 인공지능(AI)을 쓸 수 있다면 일손이 부족한 비영리기관에는 반가운 제안이다. 상담 기록을 정리하고 신청서를 분류하는 일을 덜 수 있으니, 그만큼 주민을 만날 여유도 생길 것이다. 나 역시 이런 기술 기부가 현장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다만 받는 입장이라면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가 멈출 수 있는가. 설명을 위해 가상의 지역 복지기관을 떠올려보자. 한 기업이 상담 기록을 요약하고 지원 신청서를 분류하는 시스템을 무료로 제공한다. 직원들은 반복 업무를 줄이고 주민을 만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한 주민이 지원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직원은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고, 주민에게는 사람의 재판단을 요청할 통로도 없다. 이후 이용료가 올라 다른 시스템으로 옮기려 하지만, 필요한 기록을 가져가기도 어렵다. 무료로 받았던 도구가 오히려 기관의 발목을 잡는 상황이다. 공익을 위한 자발적 나눔과 실천인 필란트로피를 나는 이 지점에서도 평가하고 싶다. 현장에 필요한 도구를 건넸는지뿐 아니라, 현장이 그 도구의 판단을 거부하고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지도 살펴보자는 것이다. 선의로 시작한 지원도 받는 쪽의 선택권을 좁힐 수 있기 때문이다. ◇ 무료 이용권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런 문제는 도입을 결정한 뒤에야 눈에 띄기 쉽다. 미국 존슨센터는 2024년 발표한 분석에서 저가·무료 인공지능 도구가 늘면서 기술 도입의 문턱은 낮아졌지만, 이를 책임 있게 활용하기 위한 시간과 조직 역량이 중요해졌다고 진단했다. 내 관심은 그다음에 드는 비용에 있다. 결과를 검토할 사람과

신지현 서스틴브릿지 대표 썸네일
[People&Planet] AI 시대,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

올해만큼 기업의 거버넌스가 뜨거운 화두였던 적이 있었나 싶다. 2020년대 초 기업들이 앞다퉈 ESG 사업을 기획하던 무렵, 한 오너 기업 실무자는 “우리는 지배구조는 건드릴 수도 없다”고 말했다. 소유와 경영, 의사결정의 체계를 아우르는 거버넌스는 그만큼 대중은 물론 임직원조차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영역이었다. 분위기를 바꾼 것은 반도체 호황이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에서 성과보상 논쟁이 불붙으면서 “초과이익은 리스크를 감수하고 투자한 주주의 몫인가, 아니면 이익을 만들어낸 임직원의 몫인가”라는 질문이 공론장에 올랐다. 여기에 SK하이닉스가 7월 10일 미국 나스닥에 ADR로 상장하면서 글로벌 투자자들의 시선까지 SK의 지배구조로 쏠렸다. SK 주식 한 주로 SK하이닉스와 앤트로픽에 함께 투자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 모든 논의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 ◇ 왜 지금, 기업의 주인을 묻는가?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용어부터 정리해 둔다. 이 글에서 ‘거버넌스’는 기업 운영과 비즈니스의 모든 구조, 체계, 프로세스, 이해관계 속에서 지속가능성을 고려해 의사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을 뜻한다. 반면 ‘지배구조’는 ESG 투자에서 주주 권리와 이사회의 통제 기능을 중시하며, 기업의 소유와 통제 방식을 가리키는 더 좁은 개념이다.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 질문이 지금 특히 중요한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주주의 관점에서 거버넌스가 기업가치와 직결되기 시작했다. 자본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배구조와 이익 배분, 보상체계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한층 첨예해졌다. 자본시장연구원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 분석》에 따르면, 지배구조에 대한 정성적 평가가 높은 국가일수록 주가순자산비율이 높게 나타나며, 한국 기업의 저평가 역시

[임팩트비즈니스 인사이트] 1만 개의 위성은 누구의 문제를 해결하는가

최근 뉴욕 기후주간(Climate Week NYC) 등 글로벌 무대에서는 우주 기술과 AI를 결합한 ‘우주발 기후 인텔리전스(Climate Intelligence from Space)’가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 솔루션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북극과 같은 극한 환경에서의 기후 적응부터 공공 조달과 민관협력(Policy & Market Uptake)에 이르기까지, 위성 데이터는 이제 공공과 시장의 실질적인 의사결정을 바꾸는 도구로 논의되고 있다. 바야흐로 1만 위성의 시대다. 이번 IBR에서는 이러한 글로벌 흐름에 발맞춰 지구관측(EO) 분야 중 시장 잠재력이 큰 ‘농업’을 중심으로 위성 데이터가 실제 비즈니스와 임팩트로 전환되기 위한 조건을 살펴보고자 한다. 가뭄 피해 농경지, 산림 훼손 지역, 홍수 및 산불 피해 지역에는 공통점이 있다. 문제가 넓은 공간에 흩어져 있어 현장 조사만으로는 전체 상황을 제때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러나 정부 주도의 우주개발에서 민간의 역할이 커진 뉴스페이스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러한 비용 구조도 달라지고 있다. 위성 수가 늘고 관측 주기와 해상도가 개선되는 동시에 Sentinel, Landsat과 같은 무료 공개 데이터와 클라우드 분석 환경, 오픈소스 도구도 확대됐다. 올해 6월 SpaceX의 상장은 이러한 민간 우주산업 시대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임팩트 투자자에게 더 중요한 변화는 산업의 성장 자체보다, 과거에는 높은 비용 때문에 자주 관측하기 어려웠던 지상의 문제를 얼마나 넓고 빈번하게 살펴볼 수 있게 됐느냐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영역이 지구관측(Earth Observation, EO)이다. EO는 작물의 생육과 가뭄, 수자원, 산림 훼손, 재난, 대기 중 온실가스의 변화 등을 넓은 지역에 걸쳐 반복적으로

박지현 JHSUSTAIN 대표 썸네일
[People&Planet] 재해는 겹쳐서 온다

2026년 8월 26일 오전 8시 40분, 네팔–중국 국경 인근 렌데강 상류에서 약 1㎢에 이르는 빙하와 암반이 떨어져 나갔다. 폭우도 없던 아침이었다. 뜨거워진 지구는 히말라야의 빙하를 빠르게 녹이고 있고, 얼음으로 이루어졌던 비탈은 녹아내리고 있다. 기후변화는 재해를 더 자주, 더 크게 만들 뿐 아니라,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방식으로 겹쳐서 오게 만든다. 2023년 타지키스탄을 대상으로 녹색기후기금(GCF) 사업을 발굴하기 위해 사전 조사를 하면서 두 줄기의 물이 만나는 곳을 본 적이 있다. 한쪽에서는 빙하가 녹아서 내려온 물이 흘렀다. 산을 깎으며 실어 온 고운 돌가루 때문에 우윳빛이 도는 잿빛이었다. 다른 쪽에서는 빗물과 샘물이 모인 여느 하천이 흘렀다. 두 물은 섞이지 않은 채 제 빛깔대로 나란히 흘러갔다.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필자에게는 경고처럼 보였다. 중앙아시아 사람들이 마시고 농사짓는 물의 상당 부분이 파미르와 톈산의 빙하에서 시작된다. 빙하가 빠르게 녹으면 당장은 물이 넘치지만, 그 끝에는 홍수와 가뭄이 번갈아 찾아온다. 녹은 물이 고인 빙하호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물주머니가 된다. 2025년을 ‘세계 빙하 보존의 해’로 만들자고 유엔에 제안한 나라가 바로 타지키스탄이었다. 두 빛깔의 물은 기후가 산을 바꾸는 속도를 가장 먼저 보여 주는 지표이다. 네팔의 협곡에서 일어난 일은 결코 히말라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번 네팔 대홍수로 사망자는 1400명을 넘었고, 5000명이 넘는 이들이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협곡을 따라 늘어선 14곳의 발전 사업장이 한꺼번에 멈췄고, 터널 안팎에서는 900명이 넘는 노동자와 연락이 끊겼다. 강둑에는 2015년 대지진으로 삶터를 잃고

[사회혁신발언대] 창업가의 다음 시작, 생태계의 이어달리기

지난 10월 8일, KT&G 상상스타트업캠프 10기 파이널 데모데이와 청년 창업 활성화 비전 선포식이 열렸다. ‘THE NEXT START’를 주제로 10개 소셜벤처가 그동안의 성과와 향후 계획을 공유했고, KT&G는 창업가의 성장에 필요한 자본과 기회를 연결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사업 운영을 함께한 입장에서 이번 비전에는 데모데이 이후에도 창업가의 성장을 지원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느꼈다. 이러한 의지가 실질적인 성장으로 이어지려면, 이제는 생태계의 여러 주체가 각자의 자원과 기회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도 함께하는 성장 데모데이의 마지막 발표는 창업가에게 또 다른 시작이다. 무대에서 발표한 성장 계획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고객을 만나고 매출을 쌓으며, 사업을 키워갈 자금과 동료를 찾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창업가가 축적한 경험과 성과가 다음 기회로 이어지려면, 저마다 다른 일정과 요건에 따라 운영되는 지원사업 간에도 연결이 필요하다. 각 기관이 기업의 성장 과정을 함께 이해하고 필요한 자원을 이어줄 수 있다면, 창업가는 자신의 사업을 거듭 설명해야 하는 부담을 덜고 성장에 더욱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KT&G 상상스타트업캠프 10기 파이널 데모데이와 청년 창업 활성화 비전 선포식에서 축사를 맡은 서종식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창업성장본부장은 사회적기업 창업지원사업의 변화와 정부의 지원 방향을 소개했다. 초기창업형에 더해 인증전환형과 재도전형으로 지원 대상을 확대하고, 사회연대경제기본법 시행을 계기로 부처 간 ‘이어달리기’ 방식의 지원 연계를 강화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흐름은 정부의 ‘2026년도 사회적기업 정책 방향’에도 담겨 있다. 기업의 생애주기에 맞춰 창업부터 판로·융자까지 지원하고, 분절적으로 제공하던

[사회혁신발언대] 그림자 속의 아이들, 영케어러가 마주한 현실

우리가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 흔히 생각하는 모습은 친구들과 함께 배우고 성장하며, 가정의 보호 속에서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성장과 배움의 시기에 오히려 가족을 돌보는 책임을 짊어진 아동·청소년과 청년들이 있다. 이른바 ‘영케어러(Young Carer)’, 가족돌봄청년이다. 질병, 장애, 고령, 정신건강 문제나 중독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족을 돌보는 이들은 가사와 병원 동행, 일상생활 지원은 물론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까지 병행하기도 한다. 이러한 돌봄 부담은 학업과 진로에 영향을 미치고, 사회적 관계의 단절과 심리·정서적 어려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나아가 청년기의 자립 기반을 약화시키고, 빈곤과 돌봄 부담이 반복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가족돌봄청년을 발굴하고 지원하기 위한 정책을 확대해 왔다. 보건복지부는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가족돌봄청년 맞춤형 지원과 일상돌봄 서비스 등을 추진하고 있다. 학교와 병원 등 지역사회 일선 기관을 통한 조기 발굴과 지원 연계의 필요성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영케어러가 자신의 어려움을 드러내지 못한 채 가족 안에서 돌봄을 감당하고 있다. 스스로를 지원이 필요한 대상으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도움을 요청할 곳을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돌봄을 개인과 가족의 책임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지역사회와 사회 전체가 함께 책임지는 체계로 전환해야 하는 이유다. ◇ 현장에서 체감하는 영케어러 지원의 필요성 지역사회 복지 현장에서 영케어러를 만나면 이들이 감당하는 돌봄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영케어러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영케어러는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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