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성주 교수의 미국 필란트로피] 한국형 필란트로피, 가능성의 조건은

미국의 필란트로피는 흔히 ‘부유한 개인의 선의’에서 출발한 것으로 설명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복합적인 역사와 제도적 토대 위에서 형성돼 왔습니다. 봉건제와 군주제를 거치지 않은 사회에서 자발적 결사와 자선은 공공의 빈틈을 메우는 방식으로 일찍부터 자리 잡았고, 이는 개인의 기부와 비영리 조직이 정치 권력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전통으로 이어졌습니다. 다트머스 판결은 비영리 조직의 독립성과 연속성을 제도적으로 확정했고, 지라드 유언 판결은 기부자의 의도(donor intent)가 공익의 틀 안에서 어떻게 보호될 수 있는지에 대한 법적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조직이 오래 지속되고, 기부의 의도가 시간 속에서도 유지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면서, 개인 기부와 개인재단 중심의 구조는 하나의 제도적 선택지로 뿌리내릴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조건 위에서 레거시 재단과 수많은 개인·가족 재단은 단발적 자선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공익 장치’로 성장해 왔습니다. 이제 질문은 한국으로 넘어옵니다. 한국 사회에서 개인이 자신의 이름으로 재단을 세우는 일은 어떻게 가능해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그것이 ‘의심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 신뢰의 자산’으로 작동할 수 있을까요. 한국형 필란트로피를 논할 때 핵심은 ‘개인재단 설립을 장려하자’는 구호가 아니라, 개인 필란트로피가 사회로부터 환대받고 지속될 수 있는 제도와 문화의 조건을 동시에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는 개인이 자신의 이름으로 재단을 설립해 자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행위가 비교적 자연스러운 선택지로 받아들여집니다. 제도적 장치가 받쳐 준다는 점도 크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문화적 해석입니다. 이름을 걸고 공공 문제에 개입하는 일이 ‘과시’나

[김성주 교수의 미국 필란트로피] 왜 미국은 기업재단이 아니라 ‘개인재단’이 중심인가

미국의 재단 지형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개인재단이 중심이고 기업재단은 주변’입니다. 한국의 상식으로 보면 낯설 수 있습니다. 기업이 커지고 기업의 사회공헌이 일상이 된 사회라면 기업재단이 가장 큰 축일 것이라고 예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사적 재단(private foundation)의 중심은 개인·가족 재단이며, 이 구조를 이해하려면 먼저 미국 재단을 유형으로 정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의 사적 재단은 대체로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됩니다. 개인 또는 가족이 설립한 독립재단(Independent foundation)이 가장 큰 축이며, 개인재단(Individual foundation)·가족재단(Family foundation)으로도 불립니다. 2024년 기준 약 12만 개에 달하는 미국 재단 가운데 약 89%가 이 유형에 해당하며, 게이츠 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 맥아더 재단(MacArthur Foundation), 포드 재단(Ford Foundation) 같은 사례가 여기에 속합니다. 둘째, 직접사업재단(Operating foundation)으로, 보조금 배분(grantmaking)보다는 자체 프로그램 운영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재단입니다. 전체 재단의 약 7%를 차지하며, 대표적인 사례로는 게티 센터(Getty Center)와 게티 빌라 박물관(Getty Villa Museaum)를 운영하는 J. 폴 게티 트러스트(The J. Paul Getty Trust)를 들 수 있습니다. 셋째, 기업이 직접 설립한 기업재단(Corporate foundation)이 있습니다. 이는 전체 재단의 약 3% 수준으로, 월마트 재단(Walmart Foundation), 구글재단(Google.org), 마이크로소프트 필란트로피(Microsoft Philanthropies), 제이피 모건 체이스 재단(JPMorgan Chase Foundation) 등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역재단(Community foundation)은 여러 기부자(개인, 가족, 기업)의 자금을 모아 지역 이슈에 대응하는 공익 활동을 지원하며, 재단의 약 1%를 차지합니다. 1914년 설립된 ‘클리블랜드 커뮤니티 재단(Cleveland Community Foundation)’이 시초며,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펀드를 제공하는

[공익이 이끄는 데이터 과학] 서로를 이해하기 위하여

늦은 밤,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노스캐롤라이나대 채플힐 캠퍼스가 자리한 채플힐은 조그만 대학 도시다. 이곳 주민들 대부분은 교수나 직원, 학생 등 어떤 식으로든 노스캐롤라이나대(UNC) 채플힐과 연결돼 있다. 듀크대와도 차로 15분 남짓 떨어져 있고, 치안과 학군이 좋아 듀크대 교수들이 거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이 동네에서는 길을 걸으며 주변 사람을 특별히 의식할 일이 많지 않다. 그런데 그날 밤, 옆에서 함께 걷던 사람이 갑자기 말을 걸었다. 대화를 나누던 중 그는 불현듯 내게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몇 주 전 캘리포니아에서 이사 왔다고 답하자, 그는 다시 물었다. 캘리포니아 말고, 정말 어디에서 왔느냐고. 흔히 듣는 질문이다. “Where are you really from?” 1세대 이민자인 나는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마음이 복잡해진다. 캘리포니아에 살기 전 다른 곳에서 지낸 경험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홍콩과 대만, 캐나다, 미국 등 다섯 나라에서 살았다. 도시로만 따지면 열 곳이 넘는다. 한 지역에서 가장 오래 산 곳을 기준으로 하면, 올해로 12년째인 캘리포니아보다 오래 머문 곳은 없다. 지금도 캘리포니아에는 가족이 있고, 수많은 친구와 동료들이 있다. 노스캐롤라이나에는 ‘캐롤라이나 인 마이 마인드(Carolina in My Mind)’라는 유명한 노래가 있다. 1960년대 후반 이 노래를 부른 제임스 테일러는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가 노스캐롤라이나대 의대 교수였던 덕분에 채플힐에서 성장했다. 이후 가수로 데뷔해 여섯 차례 그래미상을 수상한 그는, 어디를 가든 캐롤라이나의 풍경이 마음속에 떠오른다고 노래했다. 이 곡은 지금도 노스캐롤라이나를

[김성주 교수의 미국 필란트로피] 과학적 자선 운동이 바꾼 ‘돈의 쓰임’

필란트로피는 대개 거액 기부나 거대 재단의 이름으로 기억됩니다. 하지만 필란트로피의 핵심은 ‘얼마나 냈는가’보다 ‘어떻게 썼는가’에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전개된 ‘과학적 자선 운동(scientific charity movement)’은, 자선이 필란트로피로 전환되는 중요한 고리였습니다. 자선이 더 이상 선의의 감정에만 의존해서는 빈곤과 실업,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 확산되면서, 자선을 체계적으로 운영하려는 흐름이 사회 전반으로 번졌습니다. 과학적 자선 운동의 사상적 배경은 합리주의적 복지 사상(rational and structured approach to social welfare), 즉 사회 문제에 대해 감정적 구호가 아니라 자료와 원리에 기초해 접근하려는 흐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토머스 맬서스(Thomas Malthus),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 등 영국 사회개혁가들의 영향이 이 운동의 한 뿌리로 거론됩니다. 미국에서는 1877년 뉴욕주 버펄로에서 설립된 ‘자선조직협회(Charity Organization Societies, COS)’를 중심으로 확산되었고, 메리 리치먼드(Mary Richmond) 같은 사회개혁가들이 이를 주도했습니다. 이 운동의 핵심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됩니다. 첫째, 구호 대상에 대한 ‘개별 사례 중심 평가(case-by-case assessment)’입니다. 당시 자선은 종종 무차별적이거나 산발적으로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중복 지원과 비효율이 발생했습니다. 과학적 자선운동은 구호받을 자격이 있는 빈곤층과 그렇지 않은 빈곤층을 구분하고, 자립 가능성이 있는 개인에게 선택과 집중을 하려는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둘째, 자선기관 간의 협력과 조정입니다.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려면 기관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역할을 나누어야 한다는 논리가 확산되었습니다. “어느 기관이 누구를 돕는지”를 모른 채 각자 움직이는 방식으로는 공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경험적 깨달음이 제도적 실천으로 번져간

[비영리 회계의 선] 비영리 ‘소진’의 경제학

매출을 만들어내는 기업의 영업사원은 고액의 연봉을 받는다. 돈을 벌어다 주는 노동은 곧바로 ‘가격’으로 환산되기 때문이다. 반면 사회의 무너진 구석을 메우고 생태계와 사람을 지키는 비영리 활동가들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처우는 대개 최저임금 수준에 머문다. 왜 사회를 지키는 이들의 노동은 늘 헐값으로 평가될까. 이 불균형의 뿌리는 깊다. 자본주의의 출발점에서 아담 스미스 이후 형성된 고전경제학의 전통은 노동을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으로 구분해 왔다. 이후 경제는 오직 가격표가 붙은 물질적 성과에만 높은 점수를 매겨왔다. 시장은 “얼마나 사회에 필요한가”보다 “얼마나 많은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가”를 기준으로 가치를 판단한다. 그 결과 가치(Value)는 가격(Price)에 종속됐고, 예방·돌봄·회복처럼 ‘발생하지 않은 손실’은 숫자가 되지 못했다. 여기에 비영리 활동가를 바라보는 이중적인 시선이 더해진다. 공익활동은 의미 있는 일이기에 낮은 보수를 감수해야 한다는 암묵적 기대가 작동한다. 사명감은 존중의 대상이 되기보다 가격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국가의 재정으로 부담해야 할 사회적 가치는 개인의 희생으로 전가된다. 기부금은 오직 수혜자에게만 쓰여야 하며, 그 전달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에게 사용되면 부도덕하다는 인식 역시 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 문제는 활동가만이 아니다. 비영리 세제와 회계는 영리법인보다 훨씬 복잡하고 까다로워 전문가들조차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그럼에도 영리 부문과 비교하면 시장가에 한참 못 미치는 보수가 당연시된다. 결국 유능한 전문가들은 비영리를 떠나고, 현장은 갈수록 낙후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2017년과 2018년, 공익법인회계기준을 만들고 비영리 세제 개편을 심의하며 필자가 꿈꿨던 것은 ‘투명한 시스템’이었다.

[김성주 교수의 미국 필란트로피] ‘기부자 의도’를 제도화한 지라드 유언

미국의 사적 재단(private foundation)이 가능했던 조건은 ‘돈’이 아니라 ‘규칙’이었습니다. 앞선 편에서 다트머스 판결을 통해 비영리 조직이 정치의 손길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확보했고, 그 위에서 장기 설계가 가능해졌음을 살펴봤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필란트로피가 굴러가지 않습니다. 필란트로피는 조직과 자본, 그리고 ‘의도’가 함께 작동하는 장치입니다. 조직이 아무리 튼튼해도 기부자의 목적이 쉽게 흐려지거나 뒤집힌다면, 기부는 장기적 공익 설계가 아니라 일회성 이벤트로 남기 쉽습니다. 미국 필란트로피가 ‘기부자의 의도(donor intent)’를 제도적으로 다뤄 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 사건이 1844년 연방대법원 판결, 이른바 ‘스티븐 지라드 유언 소송(Stephen Girard Will Case)’입니다. 스티븐 지라드는 프랑스 출신 이민자이자 당대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상인으로 꼽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사망 전 유언을 통해 막대한 재산을 필라델피아시에 기부하고, 가난한 고아를 위한 교육기관인 ‘지라드 칼리지(Girard College)’를 설립하도록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흔한 자선 기부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논쟁은 ‘조건’에서 시작됐습니다. 지라드의 유언에는 “성직자는 학교 운영에 관여할 수 없고, 수혜 아동에게 특정 종교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담겨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 종교와 교육의 관계가 촘촘히 얽혀 있던 점을 감안하면, 이 조항은 단순한 운영 원칙이 아니라 정치적·사회적 파장을 부르는 선언에 가까웠습니다. 유언이 공개되자 지역사회와 종교 단체는 즉각 반발했습니다. 그들은 해당 조항이 종교의 의무를 침해하고 공공정책에 위배된다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다시 말해 쟁점은 ‘기부를 했느냐’가 아니라 ‘기부자가 공익 목적 아래 어디까지 설계할 권리를 갖느냐’였습니다. 기부자가 공익을 위해 자산을 출연할 때, 그 목적과 운영 방식을

[비영리 회계의 선] 반쪽짜리 투명성, 미완성된 비영리 회계기준

우리나라 비영리 세제는 70년의 역사를 거치며 단계적으로 변화해 왔다. 그렇다면 비영리 회계기준의 역사는 얼마나 되었을까. 이 질문에 대해 하나의 연표로 답하기는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가 비영리법인의 법적 형태와 설립 근거에 따라 서로 다른 회계규칙을 개별적으로 마련해 운용해 왔기 때문이다. 사학기관 재무·회계 규칙(1966년 제정), 사학기관 재무회계 규칙에 대한 특례규칙(대학 적용, 1981년 제정), 사회복지법인 및 사회복지시설 재무·회계 규칙(1988년 제정), 의료기관 회계기준 규칙(병원급 적용, 2003년 제정), 공기업·준정부기관 회계규칙(2007년 제정), 장기요양기관 재무·회계 규칙(2018년 제정) 등이 그 예다. 즉 학교법인, 사회복지법인, 의료법인 등 특정 유형의 비영리법인에는 각자의 회계규칙이 존재했지만, 민법상 재단법인과 사단법인 형태의 공익법인 전반을 포괄하는 통합 회계기준은 오랫동안 마련되지 않았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한국회계기준원은 2003년 ‘비영리조직의 재무제표 작성과 표시 지침서’를 발표했고, 2017년에는 ‘비영리조직회계기준’을 제정했다. 다만 이 기준은 법적 강제력이 없는 자발적 기준에 머물렀고, 국내 실무와 괴리가 있다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공익법인회계기준의 제정은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2017년 봄쯤 기획재정부로부터 공익법인회계기준 제정을 위한 태스크포스 참여 요청을 받았을 때, 비영리법인 업무를 수행해 온 회계사로서 반가움이 앞섰다. 돌이켜보면 비영리법인 업무 초기에 가장 어려웠던 점은 그들의 재무제표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공인회계사가 조직의 재무상태와 운영 성과를 설명하는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표준화된 회계기준이 부재했던 구조적 문제였다. 각 법인이 관행과 담당자의 판단에 따라 작성한 재무제표가 서로 비교 가능할 리 없었고, 회계 정보의

[김성주 교수의 미국 필란트로피] ‘비영리의 독립’을 만든 다트머스 판결

미국의 필란트로피를 떠받친 바닥은 ‘자발성’만이 아니었습니다. 자발성이 사회의 시스템으로 굳어지려면, 그 시스템을 흔들지 못하게 붙잡아 주는 법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미국 비영리 섹터가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를 묻는다면, 결국 “민간이 공공의 빈틈을 메워 왔다”는 역사만큼이나 ‘민간이 스스로 설 수 있게 만든 제도’가 함께 답이 됩니다. 그 제도 전환의 상징적 출발점으로 가장 자주 호명되는 사건이 1819년 연방대법원 판결, ‘다트머스 대학 대 우드워드(Dartmouth College vs. Woodward)’입니다. 당시 미국의 자선·교육기관이 처음부터 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돼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일부 주에서는 자선단체나 교육기관을 설립할 때 주 정부가 임명한 인사를 이사회에 포함하도록 요구하기도 했고, 이를 통해 비영리 조직 운영에 직·간접 영향을 행사했습니다. 공익을 수행한다는 이유로, 민간 조직이 곧장 행정의 보완물처럼 다뤄질 여지가 있었던 셈입니다. 오늘 한국의 공익법인과 비영리 조직이 자주 부딪히는 ‘행정의 그림자’가, 미국 초기에도 전혀 낯선 문제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다트머스 사건은 뉴햄프셔 주 정부가 다트머스 대학의 설립 헌장을 변경해 사립대학을 공립대학으로 전환하려 하면서 시작됐습니다. 대학 측은 주 정부의 조치가 미국 헌법의 계약조항(Contract Clause)을 위반한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쟁점은 단순했습니다. “대학 설립 헌장은 공공 목적의 허가장인가, 아니면 사적 계약인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연방대법원은 다트머스 대학의 설립 헌장이 사적 계약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고, 주 정부가 이를 일방적으로 변경할 수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이 판결의 의미는 한 대학의 지위를 지켜준 수준을 넘어섭니다. ‘사적 법인’이 정치권력의 변덕으로부터 보호받는 헌법적 지위를 확보했다는 데에 방점이

[김성주 교수의 미국 필란트로피] 미국 재단의 뿌리는 ‘자발성’에 있다

드디어 한국에서도 기부자의 이름을 전면에 내건 ‘사적 재단(Private Foundation)’이 제도와 담론의 언어로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한국에 개인 명의의 재단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자수성가한 독지가나 기업가가 자신의 자산을 출연해 장학재단 등을 세운 전통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다만 ‘개인의 이름’을 재단 명칭으로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은 한국 사회에서 좀처럼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지 못했습니다. ‘선행은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는 유교적 정서, 개인의 이름을 공공선과 직접 연결할 때 생기는 거리감이 한데 얽혀 왔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말 현대차정몽구재단과 더나은미래가 주최한 ‘K-필란트로피 이니셔티브 포럼’과 미국 레거시 재단(legacy foundation) 사례 연구가 의미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의 기업재단과 개인재단, 특히 기업가가 설립한 재단의 정체성과 역할을 두고 “무엇을 닮고 무엇을 달리할 것인가”를 공개적으로 묻기 시작했다는 점에서입니다. 다만 맹목적인 벤치마킹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미국 재단의 ‘규모’나 ‘성공 사례’를 먼저 가져오면, 정작 그 재단이 성립한 토대를 놓치기 쉽습니다. 미국식 사적 재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미국 시민사회와 비영리 섹터가 어떤 역사적·제도적 조건 속에서 형성되었는지를 정확히 짚는 일이 선행돼야 합니다. 이 작업 없이 미국 모델을 가져오면, 한국에서 ‘재단’이라는 단어가 다시 혼란의 출발점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필자가 과거 한국 비영리 섹터의 규모와 범위를 미국과 비교하는 연구를 수행했을 때, 개념적·제도적 비교가 가장 어려웠던 조직 유형이 ‘재단(財團)’이었습니다. 한국에는 ‘재단’이라는 이름을 단 비영리 조직이 많지만, 이들은 서로 다른 개별 법률에 근거해 설립·운영되고, 지배구조와 규율 체계도 제각각입니다. 미국에서

[비영리 회계의 선] 70년 공익법인 세제, ‘의심’에서 ‘신뢰’로 나아갈 때

30년간 공인회계사로 일해 왔다. 그중 20년은 비영리법인과 공익법인 회계와 세무에만 매달렸다. 시민사회단체와 재단법인의 이사회 감사 역할도 오랜 기간 맡아 오면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회계사가 좋은 일하는 공익법인에서 할 일이 뭐가 있나요?” 1999년 사회복지사의 꿈을 품고 잠시 내려놓았던 회계사 자격증을 다시 꺼내 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공익법인 세제와 회계기준의 부재가, 오히려 가장 시급한 문제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공익법인 세제의 역사는 ‘지원’에서 출발해 ‘관리’를 거쳐 ‘규제’로 무게중심이 이동해 온 과정이라 할 수 있다. 1950년대 전쟁 직후, 민간의 자발적 구호 활동을 독려하기 위해 공익사업을 비과세 대상으로 두고 출연재산에 대한 상속세를 면제하는 세제의 틀이 마련됐다. 이후 1974년에는 출연재산의 사용계획과 진도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최소한의 관리 장치가 도입됐다. 전환점은 1980년대 이후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기업들이 공익법인을 상속·증여세 회피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지적이 이어졌고, 이에 따라 1990년 주식 출연에 대해 20% 제한이 처음 도입됐다. 1993년에는 이를 다시 5%로 낮췄고, 1996년에는 세무확인 제도를 마련하며 관리의 강도를 높였다. 2000년대 들어 기부금 유용과 부실 운영 사례가 잇따라 드러나면서 회계 투명성 확보와 사후관리 강화가 본격화됐다. 2007년 전용계좌 사용, 외부감사, 결산공시 의무가 신설됐고,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드러난 공익법인 관리의 문제점은 2017년 지정기부금단체 요건 강화, 외부감사 대상 확대, 출연재산 사후관리 강화, 결산공시 대상 확대 등 촘촘한 세제 개편으로 이어졌다. 이는 국세청의 본격적인 관리·감독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2023년부터는 종교법인을

[기후 유니버스] 평균의 함정에 빠진 기후정책

설날이 다가오면 어떻게 친척 어른들의 잔소리를 방어할까 고민이다. 결혼 적령기의 30대 멀쩡한 사내가 아직도 미혼이니까 말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겪어 온 나의 부모 세대가 갖고 있는 삶의 법칙으로는 잔소리를 안 하는 것도 쉽지 않다. 대학을 가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등등 때에 맞춰 인생의 중요한 미션들을 해결하길 자식에게 기대한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길 원하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려 애써본다. 그러나 지금 내 직업과 자산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수도권에 자가를 보유하고 아이를 2명 기르고 있는 과거의 평균적인 삶이 청년세대에게 꿈 같은 이야기다. 결혼 시장에서 ‘육각형의 남자’라는 말이 있다. 결혼에 있어서 중요한 6가지 조건(외모, 성격, 학력, 자산, 직업, 집안)을 모두 갖춘 남자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배우자의 모습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평균보다 좀 더 나았으면 하는 소망이 투영되어 있다. 그러나 평균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을 따져보면 실제로는 상위 1%다. 모두 충족하는 사람을 찾기 때문에 결국 여러 조건을 고려하다 보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평균은 전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대로 많은 사실을 감춘다. 기후위기 대응에서도 그렇다. 파리협정에서 합의한 1.5도 목표에서 1.5도는 전 지구적인 평균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지구 온난화 속도는 평균 보다 2배나 빠르다. 작년 9월 기상청에서 발표한 ‘한국 기후위기 평가보고서 2025’에 따르면 1912년부터 2024년까지 113년 간 우리나라의 연평균 기온은 2.8도 상승했다. 전 세계 평균보다 2배나 빠르다. 이러한 사실은 외면하고 누군가는 기후위기 대응이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미국과

[세상은 여전히 따뜻한 法] 아동·청소년과 ‘함께 가는’ 법

법무법인(유한) 지평은 ‘나눔, 배려, 참여’의 정신을 바탕으로 2014년 공익법단체 두루를 설립했다. 두루는 평등한 접근, 구금으로부터의 자유, 공익법 생태계 조성을 주요 목표로 삼아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법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평은 단순한 설립자를 넘어, 분야별 법률 전문성과 프로보노(pro bono) 역량을 지속적으로 보태 온 협력자로 함께해 왔다. 필자가 2018년 두루에서 아동·청소년 권리옹호 활동을 시작했을 당시 맡았던 업무 중 하나는, 2014년부터 두루와 지평이 함께 이어온 위기임산부·여성 청소년 지원 시설에서의 법률교육 프로그램 운영이었다. 해당 시설의 생활인 다수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청소년으로, 일상에서 마주하는 문제와 직결된 법률 정보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었다. 두루와 지평의 변호사들은 생활인들이 거주하는 공간을 직접 찾아가 출생등록, 양육비, 노동인권, 채무와 신용 문제, 디지털 성착취·성폭력, 아동학대, 가정폭력 등 주요 주제를 중심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강의 이후에는 개별 상담이 이어졌고, 필요할 경우 지평의 프로보노 활동을 통해 추가 자문이나 소송 지원으로 연계되기도 했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축적된 법률교육과 법률지원 경험은, 아동·청소년이 스스로 권리를 이해하고 필요한 순간에 적절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자료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으로 이어졌다. 이에 두루와 지평은 그간의 교육·상담 자료를 토대로 ‘2025 아동·청소년 법률 매뉴얼’을 공동 기획·제작했다. 매뉴얼에는 아동학대, 가정폭력, 노동, 금융, 성착취·성폭력, 온라인 폭력, 출생등록·입양·양육비, 친권·미성년후견 등 아동·청소년이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주요 법적 쟁점을 문답 형식과 쉬운 언어로 정리했다. 당사자가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고 필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