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임팩트비즈니스 인사이트] 전기만으로는 넷제로가 오지 않는다

국내 최종 에너지 소비량의 48%는 열에너지다. 이 가운데 96.4%는 화석연료를 연소해 생산되며, 태양열·수열·폐열 등을 활용한 재생열은 3.6%에 불과하다. 글로벌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글로벌 기후테크 논의는 여전히 태양광, 풍력 등 전기 부문에 집중돼 있다. 진정한 넷제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화려한 전동화 전환 이면에 가려진 열에너지의 탈탄소화와 효율화 문제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 버려지는 데이터센터 열, 왜 당장 활용하지 못할까? 열에너지 탈탄소화는 크게 무탄소 에너지원을 활용한 열 생산과 폐열 재활용으로 나눌 수 있다. 생산된 열에너지의 절반은 실제 사용처까지 전달되지 못한 채 버려진다(Wasted Energy). 특히 전체 폐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100℃ 미만의 중저온 폐열 가운데, 40℃ 미만의 저온 폐열은 회수가 까다롭고 승온 장치인 히트펌프가 필수적이다. 이러한 저온 폐열 활용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가 데이터센터다.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는 수천 세대에 열을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의 에너지를 24시간 발생시키는 잠재적 열원이며, 북유럽을 중심으로 이미 상용화 사례도 존재한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데이터센터 폐열이 상업적으로 대규모 활용되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 임팩트스퀘어 투자팀은 국내외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배경을 확인했다. 전문가들은 데이터센터가 훌륭한 열원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었다. “데이터센터는 24시간 가동되기 때문에 열 발생의 불확실성이 낮고, 막대한 열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 또한 온도를 높이기 위한 히트펌프 기술도 이미 상용화 단계에 있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마주하는 결정적 장벽은 인프라 비용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핵심은 열을 수송하는 열수송관”이라며 “지하

[기후 유니버스] 이재명 대통령님, 탄소중립 집무실은 어떠세요?

“기후위기가 심각한 건 알겠어. 근데 그럼 이제 뭘 하면 되는 거야?” 1박 2일로 놀러 간 펜션에서 고등학교 친구가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10년 가까이 활동해왔지만, 들을 때마다 답하기 쉽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변했구나 싶어 고무적인 질문이다. 기후위기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가장 먼저 한 실천은 텀블러와 손수건 사용이었다. 가장 손쉬운 실천이면서, 몸이 먼저 움직이면 의식도 따라오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도 사무실엔 항상 텀블러를 두고, 손수건은 매일 아침 주머니에 꼭 챙겨 나간다. 환경을 위한 행동으로 시작했지만 덕분에 쓰레기통 비울 일도 줄었고, 매너 있다는 소리까지 들으니 괜스레 어깨가 올라간다. 몇 번 하다 보니 자신감이 붙어 소비 생활도 달라졌다. 대나무 칫솔로 바꾸고, 저탄소 친환경 브랜드에서 옷을 주로 산다. 처음엔 이것저것 바꿔가며 나에게 맞는 걸 찾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지금은 한 곳에 잘 정착했고, 주변 지인들에게도 적극 추천한다. 추천한 물건이 좋았다는 후기만큼 뿌듯한 것도 없다. 몇 년 전부터는 투자로도 기여할 방법을 찾았다. 바로 태양광 발전소 투자다. 앞서 했던 실천들보다 훨씬 많은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데다, 정기적인 배당수익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의 햇빛발전협동조합을 찾아 가입하는 방법도 있고, 온라인에서 클릭 몇 번으로 가능한 서비스도 생겨 문턱이 많이 낮아졌다. 최근 선거에서는 기후 공약을 꼼꼼히 살펴보고 투표했다. 불필요한 개발 공약은 없는지, 지역 단위 탄소중립을 위한 정책은 충분한지, 기후 피해로부터 주민을 보호할 대책은 있는지를 중심으로 따져봤다. 공보물만으론

[사회혁신발언대] 창업자 눈으로 본 투자심사, 임팩트 투자에서의 AI

크런치베이스와 휴먼X가 공동 발표한 ‘2025 AI 투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AI 관련 기업이 유치한 투자액은 2110억 달러(약 306조 원)로, 전년 대비 85% 급증했다. AI는 이제 투자의 대상을 넘어, 투자 현장 안으로 빠르게 들어오고 있다. 그런데 임팩트 투자는 조금 다른 질문을 마주한다. 일반 벤처 투자가 재무적 수익성을 중심에 놓는다면, 임팩트 투자는 사회적 가치와 재무적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판단해야 한다. 창업자가 어떤 문제를 왜 풀려 하는지, 그 팀이 지역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 수치로 표현되지 않는 정성적 맥락을 읽는 것이 심사의 핵심이다. AI를 단순한 자동화 도구나 효율화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논의가 임팩트 투자 현장에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임팩트 투자에서 AI는 어떻게 쓰여야 할까. MYSC 투자기획팀 인턴으로 3개월을 보내며, 나는 그 질문의 답이 기술이 아니라 데이터와 맥락에 있다는 것을 현장에서 직접 확인했다. 이 글은 창업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 투자자 시선을 처음으로 얹어보며 깨달은 것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AI와 임팩트 투자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된 기록이다. ◇ 창업자에서 투자자 시선으로 나는 한 번 투자를 받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다. 1인 여행자 플랫폼 ‘모잉’을 창업해 시드 투자 유치와 법인 설립까지 경험했다. 그리고 1년도 채 되지 않아 법인을 해체했다. 팀원들과 비전이 갈렸고, ‘무엇을 팔 것인가(What)’에 매몰된 나머지 ‘왜 이 일을 하는가(Why)’를 잃어버린 탓이었다. 실패 이후에는 세대 간 교류 플랫폼 ‘연슐랭 가이드’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탄소와 사회를 잇는 방식] 탄소감축량보다 중요한 질문

우간다, 탄자니아, 말라위, 케냐 등 여러 아프리카 국가에서 국제감축사업 타당성조사를 수행하며 종종 흥미로운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정부는 탄소사업을 새로운 투자 유치 기회로 바라보고, 기업과 투자자는 탄소감축량과 사업성을 검토한다. 국제사회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더 많은 민간자본과 혼합금융(Blended Finance)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정작 지역주민들이 바라보는 탄소사업은 조금 다르다. 주민들에게 바이오가스나 청정조리기기 사업은 탄소배출 감축보다도 매일 반복되는 땔감 수집 노동을 줄이고, 숯과 연료 구매 비용을 아껴 가처분 소득을 늘릴 수 있는 현실적인 생계 문제에 더 가깝다. 특히 농촌 지역 여성들과 아이들에게 연료를 구하기 위해 이동하는 시간과 노동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교육과 생계, 건강 문제와도 연결된다. 흥미로운 점은 많은 지역 주민이 이미 ‘카본(Carbon)’이라는 단어를 익숙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몇 해 전만 하더라도 탄소시장은 국제회의와 보고서 속 이야기처럼 느껴졌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이미 여러 해외기관과 기업, 개발기관들이 경제성 분석과 타당성조사를 위해 반복적으로 지역사회와 마을을 방문해 왔다. 어떤 주민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예전에도 비슷한 조사를 하러 왔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업은 결국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탄소시장은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수많은 ‘가능성’과 ‘검토’만 반복된 채 설명회와 인터뷰, 그리고 끝내 실행되지 못한 프로젝트들에 대한 기억이 쌓여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물론 이러한 반복된 조사와 검토 과정 자체를 단순히 비효율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국제감축사업은 감축량 산정뿐 아니라 기술적 타당성, 관련 법과 정책

[세상은 여전히 따뜻한 法] 법의 사각지대에 선 사람들을 위하여

우연한 기회로 공익위원회 소속이 되어 활동을 시작한 지 어느덧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혼 및 가사사건을 수행하며 자연스럽게 가정폭력 피해자, 위기 아동·청소년 등 법의 보호가 절실한 이들을 접하게 되었다. 사건들을 경험할수록 반복해서 마주하게 되는 사실이 있다.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일수록 법의 도움이 더욱 절실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은 법에 가장 늦게 도달한다는 점이다. 가정폭력 피해자 상담 과정에서 한 피해자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남편이 몸만 나가라고 하는데, 정말 그래야 하나요?” 짧은 질문이었지만, 그 안에는 단순한 법률 문제를 넘어선, 오랜 시간 누적된 두려움과 무력감이 담겨 있었다. 현행법상 재산분할을 통한 보호장치가 마련되어 있음에도, 피해자는 자신이 그러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낯설어하고 있었다. 결국 법률 지원은 단순히 법률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지킬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 다른 사건에서는 미성년 남매가 어머니의 카드 빚으로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면서, 아이들의 주거 안정과 재산 보호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아이들은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주택에서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으나, 어머니의 채무로 인해 지분이 경매에 넘어갔고, 이후 경락인이 공유물분할소송을 제기하면서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소송 과정에서 현물분할 원칙이라는 법리를 강조하는 한편, 미성년자의 생활 기반과 주거 안정이라는 가치 역시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을 함께 주장했다. 다행히 아이들의 지분 상당액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사건을 마무리할 수 있었지만,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임팩트의 행방불명] AI 시대, 임팩트 측정의 과제

많은 분야에서 인공지능(AI) 도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영역, 예를 들어 사회복지 현장에서도 AI를 활용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사회복지사가 직접 가정을 방문해 위급 상황과 지원의 우선순위를 판단했다면, 이제는 AI를 활용해 원격으로 독거노인의 위험 신호를 포착하고 우선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러한 AI 활용의 임팩트를 측정한다면, 취약계층 관점에서는 위기 가정을 발견하는 시간을 단축한 성과, 같은 시간과 자원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 성과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사회복지사 관점에서는 업무 부담 경감, 종사자의 소진을 줄여 근속연수 증가에 기여한 것 등이 중요한 변화일 것이다. 그런데 시간과 비용 절감 같은 ‘효율성’의 관점만으로 AI의 임팩트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까? 기업의 재무책임자라면 이러한 지표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적 가치와 임팩트를 측정하는 사람이라면, 조금 더 넓은 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임팩트 측정이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사회복지사가 가정을 방문했지만 특별한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 방문이 전체 효율성을 저하시킨 것은 아니다. 독거노인과 같은 취약계층에게는 누군가 정기적으로 안부를 묻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 자체가 소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팩트를 측정하는 사람이라면, AI 도입 이후 이러한 관계 구조가 약화되지는 않았는지, 정서적 고립감 수준에 변화는 없었는지 등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존 현장의 업무들이 AI를 통해 효율화되는 과정에서 단지 업무량이 얼마나 줄었는가만이 아니라, 어떤 사회적 변화가 동반되었는지를 포착하는 시야가 중요한 것이다. 상담 기록 자동화도 마찬가지다. AI를

[박훈의 나눔과 세금] 기부에도 국경이 있다

국경을 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검역을 통과하지 못한 과일, 비자를 받지 못한 사람, 그리고 놀랍게도 세제 혜택을 받지 못한 기부가 그렇다. 좋은 마음은 국경이 없다고들 한다. 그런데 세금은 다르다. 세 혜택에는 꽤 뚜렷한 국경이 있다.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의 차남인 김신 전 공군참모총장은 생전에 해외 대학들에 거액을 기부했다. 한미 우호와 독립운동의 역사를 알리겠다는, 누가 봐도 뜻깊은 기부였다. 그런데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이 해외 기부를 둘러싸고 후손들에게 세금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유는 단순했다. 해외 대학은 우리 세법상 ‘공익법인등’으로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부의 진정성이 아니라, 기부처의 세법상 지위가 과세 여부를 갈랐다. 애국적 기부가 사후적으로 상속세 부담 문제로 되돌아온 셈이다. 무언가 꺼림칙하지 않은가. 우리 세법은 기부금 혜택을 ‘공익성이 확인된 단체’를 중심으로 설계한다. 법인세법과 소득세법은 기부금을 특례기부금·일반기부금 등으로 나누고, 세제 혜택이 인정되는 기부처와 요건을 정하고 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도 공익법인등에 대한 출연재산의 과세상 취급을 별도로 규정한다. 탈세와 우회 증여, 자금 유출을 막기 위해서다. 나쁜 의도를 걸러내는 장치인 건 맞다. 그런데 선의로 이루어진 해외 기부까지 그 테두리 밖으로 밀려난다면 기부자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착한 일을 했는데 나쁜 일을 한 것처럼 취급받는 느낌이랄까. 다만 여기서 오해를 하나 풀고 가야 한다. 해외 단체에 대한 기부라고 해서 무조건 세제 혜택 밖에 있는 건 아니다. 예컨대 우리나라가 가입했거나 법령상 공익성이 인정되는 일정한 국제기구에 대한 기부는 세법상 혜택의

[임팩트 비즈니스 리뷰] IFRS 18가 임팩트 비즈니스에 거는 대화

회계는 단순히 숫자를 기록하는 기술이 아니다. 당대 사회가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는지를 비추는 거울이고 언어다. 2027년부터 본격적으로 적용될 국제회계기준(IFRS) 18을 단순한 장부 작성 방식의 변경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개편은 기업의 손익계산서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며, 그간 ‘벌고 남은 돈의 일부’를 나누는 것으로 여겨졌던 기부금을 경영의 핵심 영역인 ‘영업손익’의 범주 안으로 편입시킨다. 이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방식은 물론, 임팩트 비즈니스 생태계 전반의 문법까지 바꾸는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의 시작을 예고하고 있다. IFRS 18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영업이익의 정의를 명확히 함으로써 기업이 비용을 분류하던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이다. 과거 많은 기업이 기부금이나 ESG 관련 지출의 일부까지도 영업외 비용으로 처리하며 본업의 수익성과 분리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기준 아래서는 이러한 비용이 기업 운영과 밀접한 ‘운영 비용(Operating Expense)’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이제 최고재무책임자(CFO)와 투자자는 장부상의 숫자를 바라보며 이전보다 훨씬 날 선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이 비용이 왜 발생하는지,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증명하라는 요구다. 사실 이러한 흐름은 지속가능성 담론이 성숙해 가는 과정과 시너지를 낸다. 지속가능성 분야의 전략가로 활동 중인 살바토레 피니초토는 최근의 변화를 두고 기업 경영의 어휘(vocabulary)가 가치(values)에서 인프라(infrastructure)로, 책임(responsibility)에서 회복탄력성(resilience)으로, 기후(climate)에서 경쟁력(competitiveness)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과거의 사회공헌이 기업 외부의 문제를 해결하는 나눔 활동이었다면 이제 기후 대응과 공급망 관리, 지역사회 투자는 기업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필수적인 인프라가 되고 있다는 뜻이다. IFRS

이재현 NPO스쿨 대표
[사회혁신발언대] 관리에서 관계로 갈 수 있을까? 자원봉사법이 유예한 3년의 과제

2026년 4월 23일, 자원봉사활동기본법이 ‘자원봉사기본법’으로 개정됐다. 이번 개정의 핵심은 분명하다. 관 주도의 자원봉사를 민간 중심으로 옮기겠다는 선언이다. 국가 정책을 위한 동원에서 벗어나, 시민의 자발적 선택으로서 자원봉사를 정의하려는 시도다. 정부 직영 체계를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민간 위탁을 확대하겠다는 방향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 변화는 오랫동안 현장이 요구해 온 것이기도 하다. 이제부터 고민되는 부분이 있다면 법의 취지가 아니라 결과다. 이 법은 자원봉사를 확대하는 법이기보다, 자원봉사 시스템을 다시 설계하는 법에 가깝다. 법이 허용한 3년의 유예기간은 그 재편을 위한 골든타임이다. 앞으로 3년, 자원봉사조직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새로 만들어야 할까? 무엇보다 달라지는 것은 증명 방식이다. 그동안 자원봉사는 활동의 양으로 평가됐다. 많은 프로그램과 많은 인원을 내세우지 않고선 성과를 증명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제는 왜 자원봉사가 시민의 삶에 필요한지, 그 존재 이유를 설득해야 한다. 참신한 ‘봉사 아이템’을 찾는 방법론에서 자원봉사가 왜 필요한지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존재론이 중요해졌다. 조직의 사명과 전략을 세우는 일에 더 경주해야 할 이유가 추가된 것이다. 이렇게 거대한 담론의 변화를 일선에서 만들어갈 책무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른바 자원봉사 관리자라고 불리는 자원봉사센터의 담당자들이다. 관리자라는 말은 일본어 ‘칸리샤(管理者)’에서 유래했다. 칸리샤란 질서를 유지하고 사고를 방지하는 역할의 사람을 뜻한다. 이 번역어가 한국 사회에 들어오며 자원봉사의 운영방식과 조직문화를 규정해 버렸다. 실험보다 안정, 변화보다 계획, 관계보다 통제가 우선하는 구조로 굳어진 것이다. 우려되는 부분은 이번 개정이 이 관행을 뒤집기보다 오히려 더 정교하게 만들 가능성이

[기후와 자본의 최전선] 자본의 新생존법, ‘그린 디펜스’

지난 수개월간, 우리 경제가 수천 킬로미터 밖 호르무즈 해협의 물리적 안전이라는 변수에 매여 있는 것을 보며 경제 주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특정 지역의 파이프라인이 봉쇄되거나 독재자의 변덕 한 번에 세계 경제가 휘청이는 광경은 우리가 누려온 성장이 얼마나 취약한 토대 위에 있었는지를 증명한다. 2026년의 호르무즈발 에너지 위기는 냉혹한 경고다. 화석 연료를 고집하는 한, 그 어떤 선진국이나 거대 기업도 진정한 의미의 경제 주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글로벌 자본주의를 지탱해온 화석 연료 시스템은 그 자체로 거대한 지정학적 인질과 다름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지정학적 충돌과 에너지 전환이라는 거대한 두 개의 파도가 정면으로 부딪히는 역사적 소용돌이 한가운데 서 있다. 이 시점에서 기후테크 투자의 관점은 단순한 환경 보호를 훌쩍 넘어서야 한다. 국가와 자산의 안위를 지키는 ‘그린 디펜스(Green Defense)’라는, 더 차갑고 단단한 논리로 확장되어야 할 때다. 그린 디펜스라는 개념의 뿌리는 2000년대 초반 미 국방부(DoD)의 전략 보고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군사 전략가들은 기후 변화를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닌, 기존 갈등을 증폭시키고 예측 불가능한 분쟁을 야기하는 ‘위협 승수(Threat Multiplier)’로 규정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미군 사망자의 상당수가 전투가 아닌 연료 수송 행렬을 보호하다 발생했다는 통계는 군 수뇌부에 깊은 충격을 안겼다. 화석 연료에 의존하는 군대는 보급로가 끊기는 순간 무력해진다는 뼈저린 교훈이었다. 이때부터 군은 전장에서 직접 태양광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화석 연료 없이도 장기 작전이 가능한

[김윤곤의 더나은미래] 보이는 삼성 상속세 12조 vs 보이지 않는 ‘승계의 기술’

삼성그룹 고(故) 이건희 회장 유족이 납부한 약 12조 원의 상속세는 글로벌 자본시장에서도 이례적인 규모다. 여기에 약 10조 원 규모의 문화예술품 기증,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까지 더해지면서 삼성의 승계는 상속의 사회적 환원이라는 이정표를 남겼다. 넥슨 고(故) 김정주 회장 유족이 지주사 NXC 지분으로 약 4조7000억 원의 세금을 물납한 사례 역시 마찬가지다. 이 두 사례는 총수의 사전 승계 준비가 미비한  상황에서, 상장사 중심의 지배구조가 ‘사후 상속’이라는 정면돌파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삼성의 3남매 초기 승계과정 역시 결과 이면에는 정교한 기술이 작동했다. 과거 삼성SDS 상장과 에버랜드를 통한 삼성물산 중심의 지배구조 확립은 그 정당성을 두고 오랜 논란을 낳기도 했다. 최근 시장이 주목하는 방식은 더 정교하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자녀들 승계 과정에서 김동관 부회장 등 3형제가 100% 지분을 가진 비상장 계열사 한화에너지는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비상장사가 지주사의 지분을 확보하며 지배력을 키우는 방식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교하게 기획된 ‘설계된 승계’의 전형이다. 호반, 중흥, 부영 등 건설 기반 그룹들은 제조 대기업과는 다른 방식으로 지배구조를 형성해 왔다. 호반그룹 김상열 회장은 장남 김대헌 사장에게 건설·시행 중심의 계열 구조 속에서 지분 이전과 사업 확대를 병행하게 했으며, 중흥건설 고(故) 정찬선 회장과 장남 정원주 부회장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반면 부영그룹 이중근 회장은 아직도 여전히 견고한 1인지배 구조를 유지하고 있어, 향후 어떤 ‘기술’이 작동할지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모두 현행

[하지원의 에코 NOW] 지구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힘, ‘시민’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차 안의 안전띠는 그저 ‘답답한 끈’에 불과했고, 식당이나 버스 안에서 담배 연기를 뿜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상이었다. “내 차에서 내가 안 매겠다는데 무슨 상관이냐?”, “밥 먹고 담배 한 대 피우는 게 낙이다”라는 말이 지금보다 훨씬 크게 들리던 시절이다. 하지만 나와 이웃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 우선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그 ‘말도 안 되던 소리’는 어느덧 당연한 상식이 되었다. 작은 인식의 변화가 여론이 되고, 그 여론이 정책을 움직여 우리의 안전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약속인 ‘안보’를 만들어낸 것이다. 오늘 우리는 또 하나의 새로운 상식을 만들어야 할 변화 앞에 서 있다. 바로 ‘환경 안보’라는 과제다. 요즘 뉴스를 보면 마음이 무겁다. 세계 곳곳의 갈등이 우리의 일상까지 파고드는 ‘안보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멀리 있는 분쟁보다 더 가까이에서 우리의 평온한 하루를 위협하는 것이 있다. 바로 기후위기다. 당장 지난달만 해도 그렇다. 한낮 기온이 여름을 방불케 하는 4월, 어느 때보다 이르게 찾아온 더위에 우리는 벌써 에어컨 리모컨에 손이 간다. 작년 여름 서울의 열대야가 46일이라는 전례 없는 기록을 세웠던 것처럼, 지구가 보내는 경고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미사일이 날아오지 않아도 폭염으로 도시 기능이 멈추고 누군가의 생존이 위태로워지는 것, 이것이 우리가 직면한 새로운 안보의 얼굴이다. 바로 ‘환경 안보’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위협 앞에서 지구를 지키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올해 지구의 날 테마인 ‘Our Power, Our Planet(우리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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