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몇 달 동안 홍콩, 싱가포르, 중국, 일본을 차례로 방문하며 아시아 임팩트 투자 생태계의 흐름을 직접 확인했다. 각국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회적 자본을 키우고 있었고, 그 속도와 방향은 뚜렷하게 달랐다.
홍콩에서는 가족 자산을 기반으로 한 ‘패밀리 오피스형’ 임팩트 투자 생태계가 눈에 띄었다. 세대교체와 함께 사회적 가치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자산가들이 직접 임팩트 펀드를 조성하거나 벤처 투자에 참여하는 사례가 늘고 있었다.
싱가포르는 국부펀드 테마섹(Temasek)을 중심으로 임팩트 투자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었다. 테마섹은 단순한 정부 자본이 아니라, 사모펀드처럼 적극적으로 투자하면서도 장기적인 관점으로 ESG·임팩트 투자를 주도한다. 이런 흐름 속에서 민간 투자자와 패밀리 오피스가 잇달아 등장하며, 싱가포르는 아시아 임팩트 자본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중국은 제조업 기반과 기술 집적도를 바탕으로 기후테크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재생에너지, 배터리, 전기차를 중심으로 한 탈탄소 산업 육성이 국가 성장 전략의 핵심으로 자리 잡으면서 관련 투자와 기술 개발이 급증하고 있었다.
이처럼 아시아 각국은 서로 다른 모델로 임팩트 투자 생태계를 키워가고 있다. 어떤 곳은 민간 자본의 역동성이, 또 다른 곳은 제도적 자본의 장기성과 안정성이, 또 다른 곳은 산업·기술 혁신의 힘이 생태계의 성장 동력이 되고 있었다. 이러한 다양한 강점이 맞물릴 때, 아시아는 새로운 자본의 연대와 성장의 축을 만들어낼 수 있다.
◇ 한국과 일본, 같은 사회문제 앞에서 마주한 가능성
특히 한국과 일본의 협력에 주목할 만하다. 두 나라는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이지만, 산업과 투자 생태계 차원의 교류는 의외로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사회 구조적 과제는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 급속한 인구감소와 고령화, 지역 불균형, 제조업 탈탄소화는 두 나라가 동시에 직면한 공통의 도전이다.
한국은 지난 10여 년간 임팩트 투자 제도와 인프라를 일찍부터 구축해 왔다. 반면 일본은 최근 정부·금융기관·대기업이 잇따라 참여하면서 시장의 다양성과 자본의 참여 폭이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한국은 생태계의 경험과 노하우를, 일본은 자본의 규모와 참여의 폭을 강점으로 가진다.
서로 다른 자원이 맞닿고 연결될 때, 두 나라의 강점은 서로를 보완하며 공통의 사회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새로운 자본의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러한 시도가 이어질수록 한·일 협력은 동아시아 임팩트 투자 리더십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품고 있다.

◇ 협력의 플랫폼에서 찾은 공통의 언어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는 2016년부터 ‘아시아 임팩트 나이츠(Asia Impact Nights)’를 열며 아시아 임팩트 투자 활성화를 이끌어왔다. 한국, 일본, 중국, 홍콩, 싱가포르 등 주요 지역은 물론 미국과 유럽의 임팩트 투자 리더 100여 명이 제주에 모여 2박 3일 동안 포럼과 리트릿을 진행하는 행사다. 단순한 네트워킹을 넘어, 자본과 철학, 리더십이 교류하는 협력의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부터는 일본의 주요 임팩트 투자자들을 초청해 한·일 협력의 첫 논의의 장을 열었다. 그 자리에서 양국 리더들은 “서로 배우고 함께 성장하자”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후 일본의 대표 임팩트 투자 기관인 SIIF(Social Innovation and Investment Foundation)와 아시아 임팩트 나이츠의 공동 주최를 논의했고, 내년 본 행사를 앞두고 지난 9월 일본 도쿄에서 ‘프리 아시아 임팩트 나이츠(pre Asia Impact Nights)’를 함께 개최했다.

이번 모임에는 한국 임팩트 투자 생태계를 대표하는 15명의 투자자와 일본의 주요 투자자 20명이 참여했다. 행사는 양국 생태계와 참가자들을 소개하는 시간으로 시작해, ‘아시아의 탈탄소화를 가속화하기 위한 자본의 역할’과 ‘동북아 지역 기반 시스템 변화(Place-Based System Change)를 위한 리더십’을 주제로 세션이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경험과 관점을 공유하며, 기후 위기 대응과 지역 재생을 위한 자본의 방향, 그리고 한·일이 함께 만들어갈 협력의 가능성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했다. 마지막 세션에서는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그룹별로 제시하고, 그 결과를 함께 나누는 시간도 마련됐다.
이날의 논의는 단순한 행사를 넘어, 임팩트 투자라는 공통의 언어를 통해 양국의 자본과 철학, 리더십이 진정성 있게 맞닿은 순간이었다. 참가자들은 “한·일 협력을 통해 동아시아 임팩트 투자 생태계를 더욱 단단히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내년 아시아 임팩트 나이츠는 일본에서 열린다. 한국과 일본의 주요 임팩트 투자자는 물론, 금융기관·대기업·싱가포르·홍콩 등 아시아 전역의 투자자와 글로벌 리더들이 한자리에 모일 예정이다.
아직 한국과 일본은 글로벌 임팩트 투자 생태계에서 뚜렷한 리더십을 보이진 못했다. 그러나 이번 협력은 ‘함께라면 가능하다’는 확신을 남겼다. 두 나라의 자본과 의지가 맞물릴 때, 그 움직임은 아시아를 넘어 글로벌 임팩트 투자 시장의 새로운 흐름으로 이어질 것이다.
정원식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 심사역
| 필자 소개 글로벌 기후위기와 한국의 인구위기 해결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임팩트 투자사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에서 심사역으로 일하며 기후테크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고,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의 Global Shapers Community에서 활동하며 지방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지방특별시 포럼’을 주최하고 있습니다. KAIST 물리학 학사, KAIST K-School에서 기술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대학원 과정 중 프랑스 그랑제꼴 Polytechnique와 HEC의 기업가정신 공동 석사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학부생 시절, 도서산간 지역의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비영리단체 ‘여행하는 선생님들’을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