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하면 아찔하죠. 수출해야 할 물량은 밀려 있는데 핵심 소재를 납품해주던 포항제철소가 물에 잠겨버렸으니까요.” 지난 22일 경기 안산의 시화공단에서 만난 박동석 산일전기 대표는 두 달 전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포항을 덮친 당시를 떠올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산일전기는 태양광·풍력발전소 건설에 필요한 특수변압기를 만드는 기업이다. 지난 10년간 매출 600억원을 유지하다가 올해 두 배 가까이 매출이 늘 정도로 수주 물량이 많았다. 생산 라인을 멈출 수 없는 상황에서 핵심 소재인 ‘전기강판’을 공급해주던 포항제철소가 수해를 입은 것이다. 납품이 지연될 경우 수십년간 쌓아왔던 고객사와의 신뢰 관계가 깨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자연재해로 발생한 일이라 포스코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하며 여러 시나리오를 그려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포스코도 큰 피해를 입은 상황이라 정신이 없을 것 같아서 차마 바로 연락을 해볼 수가 없었어요. 일주일 만에 포항에 연락을 했더니 담당자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때 정말 감동했습니다.” 산일전기가 생산하는 변압기의 주소재는 전기강판이다. 전기강판은 규소(Si) 1~5%가 들어간 특수 소재다. 전력 손실이 작고 자기장을 발생시키는 특성을 지니고 있어 전동기, 발전기, 변압기 등에 쓰인다. 최근 몇 년 새 전기차와 신재생에너지 산업이 크게 성장하면서 전기강판도 세계적으로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국내에서 전기강판을 생산하는 곳은 포스코가 유일하다. 박 대표는 “전기강판을 생산할 수 있는 국가는 한국, 일본, 독일, 중국 정도라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다”라며 “소재를 구하지 못하면 수주 물량을 포기하거나 유럽 시장에서 높은 가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