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튀르키예로 간 NGO] “우리가 더 강해질 때까지 함께해주세요” 이재민 아이가 남긴 詩

튀르키예 동남부와 시리아 서북부를 강타한 대지진이 발생한 지 3주가 지났다. 양국의 누적 사망자 수는 5만명을 넘어섰다. 튀르키예 정부에 따르면, 이번 지진으로 건물 17만3000채가 부서졌고 임시 대피소나 호텔, 공공시설 등에 머무르는 이재민은 190만명이 넘는다. 재난 발생 직후 한국 NGO 활동가들도 현장으로 출동했다. 튀르키예로 파견 간 구호 전문가들이 재난 현장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담아 더나은미래로 보내왔다. 월드비전, 굿네이버스, 대한적십자사 활동가들의 글을 차례대로 전한다.
김옥희(오른쪽) 대한적십자사 튀르키예·시리아 지진대응팀장이 튀르키예 남부 카라만마라슈의 발리 사임 초투르 스타디움에 마련된 이재민 텐트촌에서 한 아이와 그림을 그리며 대화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김옥희(오른쪽) 대한적십자사 튀르키예·시리아 지진대응팀장이 튀르키예 남부 카라만마라슈의 발리 사임 초투르 스타디움에 마련된 이재민 텐트촌에서 한 아이와 그림을 그리며 대화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3> 김옥희 대한적십자사 튀르키예·시리아 지진대응팀장

지난달 21일 튀르키예 지진 피해 지역 현장 조사단으로 8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귀국 전날에도 규모 6.4의 여진이 발생할 정도로 재난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여진의 공포로 이재민들이 일상 복귀를 시작할 엄두조차 못내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앞섰다.

튀르키예에 있을 때 지진 피해 상황과 구호 활동 현황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국제적십자사연맹(IFRC) 튀르키예 사무소를 찾았다. 국제적십자사연맹은 대형 재난이 발생했을 때 피해지역 적십자사와 적신월사(Red Crescent·이슬람권의 적십자사)가 재난대응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재난구호긴급기금(DREF)을 지원하고 국제구호요원을 파견해 초동 대응 역량에 힘을 보탠다. 동일본 지진의 경험을 나누고자 튀르키예에 방문한 일본적십자사 현장 조사단과 함께 피해 실태와 구호 현황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적십자운동이 글로벌 운동체라는 것을 다시금 실감했다.

최초 지진 발생 후 10여일이 지나고 루벤 카노 국제적십자사연맹 튀르키예 사무소 대표를 만났다. 그는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한 생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한 구조팀들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지만, 수색·구조작업은 사실상 막바지에 왔다”면서 “잔해 더미를 치우면서 이재민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활동들이 본격적으로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노 대표는 식량·식수, 의약품, 위생키트, 온열용품 등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긴급 물자 지원뿐 아니라 생계를 위한 현금 지원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특히 이번 재난으로 100만명 이상이 집을 잃은 노숙자 신세가 됐기 때문에 이들이 추운 겨울을 이겨낼 수 있도록 긴급쉼터 지원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튀르키예 남부 카라만마라슈의 발리 사임 초투르 스타디움에 마련된 텐트촌 전경. /대한적십자사
튀르키예 남부 카라만마라슈의 발리 사임 초투르 스타디움에 마련된 텐트촌 전경. /대한적십자사

한국에서 두터운 패딩과 슬리핑 백을 준비해 왔지만 텐트안에서 보내는 겨울 밤은 성인인 나에게도 녹록치 않았다. 잔해 속에서 목숨을 겨우 건진 이들이 거리에서 느꼈을 차디 찬 공포가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카노 대표를 만난 후에는 튀르키예적신월사 긴급위기대응센터를 찾았다. 튀르키예적신월사는 재해 발생 첫날부터 구호활동을 시작해 피해를 본 10개 주의 500여개 급식장소에서 매일 300만명분의 식사를 제공하고 있었다. 여기에만 약 5000명의 직원과 자원봉사자가 동원됐다. 튀르키예적신월사 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은 재해 발생 직후부터 지원 활동을 쉼없이 해왔다고 말했다. 튀르키예적신월사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들의 눈가가 금새 촉촉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족이나 친구, 동료가 피해 지역에 살고 있어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을 얘기할 때면 직원과 봉사자도 결국은 이재민이라는 것을 느꼈다.

긴급위기대응센터에서 만난 알퍼 쿠쿠 튀르키예적십자사 국제·이주 국장은 구호활동을 펼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광범위한 지진 피해 지역이라고 했다. 이번 대지진으로 인한 피해 면적은 총 9만9362㎢로, 헝가리나 포루투갈, 오스트리아보다 큰 면적이다. 대한민국의 국토 면적이 10만401㎢인 것을 감안하면, 피해 지역은 하나의 단체가 대응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다양한 영역에서 조정·협력이 필수적이며 지원 중복이나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자체, 로컬 NGO 등과 연계한 활동이 수행돼야 한다.

대한적십자사와 일본적십자사 등 각국의 적십자사 관계자들이 모여 재난 현장의 의료 수요 등을 점검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대한적십자사와 일본적십자사 등 각국의 적십자사 관계자들이 모여 재난 현장의 의료 수요 등을 점검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튀르키예적신월사는 대한적십자사를 포함한 세계 각국 적십자사와 정부기관, 유관단체들과 함께 지원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는 국제적십자사연맹을 통해 한화 약 1억4000만원을 지원했다. 또 튀르키예적신월사와 협의해 국내 비축 물자인 긴급구호품 1000세트와 담요 1만개를 튀리키예 대사관에 전달했다. 현재는 한국에서 파견 간 현장 조사단이 튀르키예적신월사와 함께 구체적인 수요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재민들을 위한 단기적 긴급구호뿐 아니라 중장기적인 지역사회 재건복구 활동까지 조율 중이다. 또 부상자 치료에 필요한 혈액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혈액원 재건 사업도 논의하고 있다.

튀르키예 피해 지역 현장 조사단으로 활동하면서 만난 다양한 이재민 중에서도 기억에 남은 아이가 있다. 튀르키예 남부 카라만마라슈(Kahramanmaraş)의 발리 사임 초투르 스타디움에 마련된 텐트촌에는 200여가구가 살고 있다. 텐트촌에는 이재민이 자발적으로 필요한 물품만 소량 가져가는 식으로 운영되는 소셜마켓과 아동의 심리사회적 활동을 위한 이동 차량, 천막 강의실이 있다. 3살배기 영유아부터 8~9살 어린이까지 10여 명이 텐트 안에 있는 간이 책상에 스케치북을 올려놓고 그림을 그린다. 이동 차량에서는 동요에 맞춰 율동을 하기도 했다. 이번 강진으로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은 아이들의 마음을 돌보는 심리지원 활동이다. 크레파스와 색연필을 쥔 아이들 대부분은 예전에 가족들과 함께 살던 집을 그렸다. 이제 막 8살이 된 엘라는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어요”며 “우리가 더 강해질 때까지 함께해주세요”고 시(詩)를 썼다. 시를 건네주던 고사리같은 손과 맑은 눈망울이 아직도 또렷이 기억난다.

지금도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는 구호활동이 계속되고 있다. 생존자들이 새로운 일상을 찾아갈 수 있도록 긴 호흡의 지원이 필요하다. 이재민들이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 회복력이 생길 때까지 대한적십자사를 비롯한 인도적 단체들은 필요한 지원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국제사회는 구호단체들이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꾸준한 관심과 지원의 손길을 보태길 바란다.

정리=김수연 기자 ye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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