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3일(화)

[튀르키예로 간 NGO] 여진 공포에 야외서 쪽잠 자는 사람들

튀르키예 동남부와 시리아 서북부를 강타한 대지진이 발생한 지 3주가 지났다. 양국의 누적 사망자 수는 5만명을 넘어섰다. 튀르키예 정부에 따르면, 이번 지진으로 건물 17만3000채가 부서졌고 임시 대피소나 호텔, 공공시설 등에 머무르는 이재민은 190만명이 넘는다. 재난 발생 직후 한국 NGO 활동가들도 현장으로 출동했다. 튀르키예로 파견 간 구호 전문가들이 재난 현장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담아 더나은미래로 보내왔다. 월드비전, 굿네이버스, 대한적십자사 활동가들의 글을 차례대로 전한다.
박해성 굿네이버스 긴급구호대응단원은 지난 10일(현지 시각) 튀르키예 아다나(Adana) 공항에 도착해 구호활동을 시작했다. /굿네이버스
박해성 굿네이버스 긴급구호대응단원은 지난 10일(현지 시각) 튀르키예 아다나(Adana) 공항에 도착해 구호활동을 시작했다. /굿네이버스

<2> 박해성 굿네이버스 긴급구호대응단원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피해 소식을 듣자마자 짐을 꾸렸다. 피해 현장으로 신속히 출동하기 위해서였다. 굿네이버스는 지진 발생 직후 긴급 재난 대응 프로토콜을 가동하고,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위해 100만달러(약 13억1650만원) 규모의 초기 대응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굿네이버스 요르단 대표가 가장 먼저 지진 피해 현장에 도착했고, 곧이어 한국의 긴급구호대응단도 현장 지원에 동참했다.

긴급구호대응단원들은 14시간의 비행 끝에 10일(이하 현지 시각) 튀르키예 아다나(Adana)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대지진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모여든 언론과 전 세계 각국에서 도착한 구조대, 그리고 지진 피해 지역을 떠나려는 주민들까지 얽히고설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선발대로 출발한 긴급구호대응단에 합류에 현지 상황을 살펴보니 지진 피해 현장은 생각보다 더 참혹했다. 도시 곳곳에서 울부짖는 탄식이 들려왔다. 지진 생존자들은 영하의 추위, 배고픔과 싸우고 있었다. 현지 밤 기온은 영하 2~3도까지 떨어지는데, 습도가 높아 체감 온도는 영하 10도에 달한다. 임시방편으로 모닥불을 지피고 그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 한기를 달래보지만, 아이들이 잠든 텐트 안까지 온기가 스며들기엔 역부족이었다. 하루아침에 혹독한 추위에 내던져진 이재민들에게는 텐트, 방한 의류, 긴급 식량 등의 구호물품이 절실했다.

튀르키예 남동부 아다나 지역에서 이번 지진의 진앙지인 가지안테프(Gaziantep)와 카라만마라슈(Kahramanmaraş) 쪽으로 가다 보면 집 앞에 텐트를 치고 생활하거나 차량에서 쪽잠을 자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아직은 집이 완전히 붕괴하지 않았지만,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위태로움에 밖에서 지내는 것이다. 텐트 천막 바로 앞에 콘크리트 잔해가 떨어질 정도로 위험한 환경이지만, 세간살이를 하나라도 더 챙기기 위해 집 근처 텐트 안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튀르키예 이재민들이 굿네이버스 구호물품을 받기 위해 트럭으로 몰려들고 있다. /굿네이버스
튀르키예 이재민들이 굿네이버스 구호물품을 받기 위해 트럭으로 몰려들고 있다. /굿네이버스

지난 12일 긴급구호대응단은 아다나에 머무는 시리아 난민을 대상으로 위생키트, 속옷, 의류 등을 배분했다. 피해가 가장 극심한 카라만마라슈 4개 지역에 조성된 임시 텐트촌에서는 이재민 1000가구에 이유식·위생키트·물티슈 등이 포함된 긴급구호 키트를 제공했다. 또 18일에는 대한민국 정부와 함께 텐트 280개, 침낭 1200개 등 총 2억원 상당의 긴급구호 물품을 튀르키예 재난위기관리청(AFAD)에 전달했다.

튀르키예 이재민들은 구호물품을 전달하는 한국 긴급구호대응단을 보면 “한국에서 왔나요? 한국에서 도와주고, 관심을 가져줘서 고마워요”라고 말한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태양의 후예’와 같은 K-드라마, K-팝 얘기를 하며 간간이 미소를 내비치기도 한다. 한국의 후원자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기도 했다. 굿네이버스의 구호물품을 전달받은 한 이재민은 “아빠로서 아이들 생각을 가장 많이 하는데 지금 튀르키예는 아이들이 지내기에 너무 어려운 환경”이라며 “딸아이가 추워서 그런지 품에 계속 안겨 있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지진 피해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은 처음 본 외국인에게 해맑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지만, 심각한 재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었다. 붕괴한 건물을 지나치거나, 특정 건물 안으로 들어서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아이들의 표정은 심각하게 굳었다. 특히 지난 20일 규모 6.4의 여진이 추가로 발생한 직후 튀르키예 정부는 이재민들이 피해 지역을 떠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있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아 피해 지역에 머물 수밖에 없는 아동과 가족은 언제든 또다시 재난 상황이 닥칠지 모른다는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굿네이버스는 지진 피해를 당한 아이들이 하루빨리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도록 심리사회적지원 프로그램(PSS, Psychosocial Support)을 운영하고 있다. 아이들이 심리적‧신체적으로 안전한 공간에서 지낼 수 있도록 이재민 정착촌에 텐트 혹은 컨테이너를 이용한 아동친화공간(CFS, Child Friendly Space)을 조성하는 방안도 튀르키예 정부, 현지 NGO와 함께 검토 중이다. 아동의 경우 재난을 겪은 후의 불안감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를 낮추기 위한 심리사회적인 지원을 지속해 나갈 예정이다.

굿네이버스 긴급구호대응단원이 튀르키예 지진 피해 현장을 살피고 있다. /굿네이버스
굿네이버스 긴급구호대응단원이 튀르키예 지진 피해 현장을 살피고 있다. /굿네이버스

튀르키예에서는 시리아 이재민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낯선 땅에서 천막 하나에 모여 서로의 체온을 의지하며 견디고 있는 시리아 난민들 역시 국경 너머 가족들의 소식이 궁금하지만,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어 더욱 답답할 뿐이다. 시리아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사상자는 총 5914명. 이재민은 최소 10만 명으로 추정된다. 굿네이버스 현지 협력단체 직원은 “시리아 북부 지역에서 피해를 당한 많은 이재민이 모두 튀르키예로 향하고 있다”며 “그들을 위한 안전한 보금자리와 쉼터, 식량·식수 등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23일 긴급구호대응단은 현지 협력 단체의 도움을 받아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접경 지역인 킬리스(Kilis)에서 이재민 캠프에 사용될 대형텐트와 방수천을 시리아 북부로 보낼 수 있었다. 시리아 국경을 넘는 구호물품 트럭을 보면서 누군가에겐 따뜻한 보금자리이자 아이들이 모여 함께 떠들고 놀 수 있는 셸 터가 되는 모습을 상상했다. 앞으로도 이러한 인도주의 통로가 많이 개방돼 시리아 지진 피해 지역에도 국제사회의 도움이 닿을 수 있길 바란다.

모두가 잠들어 있던 새벽,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덮친 비극은 이미 시작됐다. 손쓸 새도 없이 벌어진 상황을 넋 놓고 지켜볼 수만은 없다.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이재민들의 삶을 재건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재난을 잊지 않고 계속해서 마음을 모아야 하는 이유다.

정리=김수연 기자 ye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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