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튀르키예로 간 NGO] 긴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면

튀르키예 동남부와 시리아 서북부를 강타한 대지진이 발생한 지 3주가 지났다. 양국의 누적 사망자 수는 5만명을 넘어섰다. 튀르키예 정부에 따르면, 이번 지진으로 건물 17만3000채가 부서졌고 임시 대피소나 호텔, 공공시설 등에 머무르는 이재민은 190만명이 넘는다. 재난 발생 직후 한국 NGO 활동가들도 현장으로 출동했다. 튀르키예로 파견 간 구호 전문가들이 재난 현장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담아 더나은미래로 보내왔다. 월드비전, 굿네이버스, 대한적십자사 활동가들의 글을 차례대로 전한다.
박한영 한국월드비전 국제구호·취약지역사업팀 대리는 지난 15일부터 22일까지 튀르키예 지진 피해 지역 중 하나인 안타키아(Antakya)에서 구호활동을 펼쳤다. /본인 제공
박한영 한국월드비전 국제구호·취약지역사업팀 대리는 지난 15일부터 22일까지 튀르키예 지진 피해 지역 중 하나인 안타키아(Antakya)에서 구호활동을 펼쳤다. /본인 제공

<1> 박한영 한국월드비전 국제구호·취약지역사업팀 대리

눈앞에 보이는 장면을 믿을 수 없었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로 뒤덮인 도시는 이미 뉴스 영상을 통해 접한 상태였고, 튀르키예행 비행기에서도 내내 머릿속으로 피해 상황을 그렸다. 하지만 멀쩡한 건물 하나 찾기 어려울 정도로 도시 전체가 무너져버린 튀르키예 안타키아(Antakya)의 상황을 직접 보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동료 활동가는 안타키아에서 멀지 않은 시리아도 비슷한 처지라고 전해왔다. 국제월드비전 동료들은 시리아에서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인 활동가들은 시리아에 입국할 수 없다. 한국 외교부가 10년 넘게 내전 중인 시리아를 여행금지국으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구호활동가로서 다양한 재난 상황을 가정하고 대응하는 훈련을 여러 차례 받았지만, 실제로 접한 대지진의 참혹한 현장 속에선 무력감을 느꼈다. ‘Save lives, alleviate suffering, and maintain human dignity(생명을 살리고, 고통을 경감시키고, 존엄성을 지킨다).’ 사무실 모니터에 붙여 뒀던 문구를 머릿속으로 되뇌며 최대한 감정을 추스르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려 애썼다. 긴급구호 상황에서는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해 분석하고 빠르게 의사결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월드비전 긴급구호대응단은 지진이 발생한 당일 아침 국제월드비전 동료가 긴급 조사한 자료를 검토하고 타 구호 단체들과 정보 교류, 피해 주민들의 목소리를 수집하며 현장 대응 계획을 세웠다. 종합해보니 영하의 추위를 이겨낼 텐트와 침낭, 기본적이면서도 필수적인 식량과 위생용품이 가장 긴급하게 필요했다.

한국월드비전 긴급구호대응단은 대한민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수송기로 텐트와 침낭, 매트를 긴급히 공수하고, 식량과 위생용품은 현지에서 조달하기로 했다. 동시에 두바이와 말레이시아에 있는 긴급구호 물자창고에서 물자를 대량으로 조달하기 위해 국제월드비전 동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박한영 한국월드비전 국제구호·취약지역사업팀 대리가 차로 이동 중에 찍은 튀르키예 지진 피해 사진. 강진으로 무너진 건물의 잔해가 길 옆에 깔려 있다. /본인 제공
튀르키예 동남부 안타키아(Antakya) 도심에 무너진 건물 잔해가 쌓여 있다. 박한영 한국월드비전 국제구호·취약지역사업팀 대리가 자동차로 도심을 지나면서 촬영한 사진. /본인 제공

안타키아의 이재민들은 도시 내 여러 장소에 설치된 임시캠프에서 생활하거나 인근 지역으로 이주한 상태였다. 임시캠프는 튀르키예 정부와 여러 구호단체의 지원이 닿기 쉬운 곳이지만 이주한 피해자들은 인도적지원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한국월드비전 긴급구호대응단은 가장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최우선으로 지원한다는 원칙에 따라 접근성이 떨어지는 작은 마을들에 흩어져 생활하는 이재민들을 긴급구호활동 주요 수혜자로 선정하고, 물자 조달과 배분 계획을 세웠다.

안타키아에서 약 200km 떨어진 아다나(Adana)에서 필요한 물자를 급히 구매했고, 대형 트럭을 이용해 현장 캠프가 꾸려진 안타키아로 운송했다. 이후 미니밴에 구호물자를 실어 각 마을로 향했다. 활동가들은 작은 마을을 누비며 이재민들에 구호물자를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지역사회 리더들과 현지 봉사자들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보수적인 무슬림 문화를 고려해 생리대와 속옷은 현지인 여성들이 직접 전달할 수 있도록 했다. 혹여나 남성 혹은 외국인이 배분하는 경우 받지 못하는 사람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구호물자 배분에 앞서 지역사회 리더들에게 구호활동의 목적과 대상을 분명히 설명해 최대한 많은 이재민이 공정하게 배분받을 수 있도록 힘썼다. 그러자 어떤 작은 마을의 주민 대표는 주민들을 이렇게 독려했다.

“우리 모두가 어려운 상황에 있다는 걸 아실 겁니다. 서로 위하는 마음으로 꼭 한 가정에 한 세트씩만 받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함께 이겨내야 합니다. 본을 보이는 의미로 저는 받지 않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몇몇 주민들은 자신들이 아직 버틸 수 있다며 빈손으로 돌아갔다. 아픔을 함께 견디며 이겨내는 주민들의 모습은 잔잔한 감동으로 가슴에 깊이 남았다. 같은 마을에서 만난 한 주민은 한국에서 왔다는 우리 대응단을 크게 반겼다. 그는 “비극적인 일이 한국에서는 일어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며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우리도 꼭 한국을 돕겠다”고 말했다. 눈물이 고인 그 주민의 눈에서 어렴풋이 깊은 진심을 보기도 했다.

박한영 한국월드비전 국제구호·취약지역사업팀 대리가 튀르키예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이재민 가정에 구호물자를 전달하고 있다. /본인 제공
박한영 한국월드비전 국제구호·취약지역사업팀 대리가 튀르키예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이재민 가정에 구호물자를 전달하고 있다. /본인 제공

한국월드비전 긴급구호대응단이 지내던 현장캠프에는 다양한 이들이 자원봉사자로 함께했다. 생업을 내려놓고 한걸음에 현장으로 달려와 캠프를 꾸리고 생존자들과 봉사자들을 먹이고 재우는 이스탄불 가족, 일은 잠시 그만두고 구조팀에 합류해서 온종일 건물 잔해를 뒤지며 생존자를 찾는 변호사, 집이 완전히 무너져 내려 모든 것을 잃었음에도 자신의 생명은 구했다며 빚진 마음으로 묵묵히 봉사하던 지진 피해자. 이 외에도 튀르키예 곳곳에서 모인 이들이 우리 대응단과 함께 해주었다. 우리는 이들과 함께 먹고 자며 일했고, 모닥불 주위에 모여 추운 밤을 이겨냈다. 수백개, 수천개의 구호물자 상자를 옮기기도 했다. 계속되는 여진에 주변 건물이 쓰러지면서 자욱한 먼지가 꼈지만, 두려움에 떨고 울면서도 서로의 안전을 확인하며 버텨냈다.

구호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사연은 전하기 어려울 만큼 참혹하다. 길에서 잠시 불을 쬐다 만난 한 여성은 이번 지진으로 모든 가족이 목숨을 잃고 혼자 살아남았다고 했다. 우리는 침묵했다. 누구도 감히 그녀에게 전할 위로의 말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월드비전 긴급구호대응단 현장캠프 건너편에 있던 무너진 아파트 잔해 위에서는 포크레인 한 대가 며칠째 계속 수색을 하고 있었다. 한 가족이 그 앞을 계속해서 서성였다. 그들의 세 아들이 건물 잔해에 묻혀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처럼 정신없이 구호물자를 옮기던 어느 날 ‘삐-익’하는 긴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실종자의 시신을 찾았다는 신호였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주변에서 작업하던 사람들 모두가 하던 일을 멈췄다. 지나가던 차들도 일제히 멈추고 시동을 껐다. 사람들은 두 손을 모으고 조용히 잔해 근처로 모여 섰다. 짧은 정적이 흘렀다. 이어 한 사람이 크게 소리를 쳤다. “우리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들리시면 움직여 보세요!” 그리고 주변에 멈춰선 사람들 모두가 한목소리로 약속된 구호를 외쳤다. “여기, 우리가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재난이 발생하면 구호활동은 시급한 필요를 채우는 긴급구호 단계에서 생존자를 회복시키고, 나아가 이들이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재건복구 단계로 이어진다. 월드비전은 튀르키예와 시리아 대지진 피해자 중 25만 명을 마지막까지 지원할 계획이다. 가장 도움이 필요한 곳에 있는 수많은 사람에게 “우리는 마지막까지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라고 세상 가장 큰 목소리로 들려주고 싶다. 그리고 그 외침에 가능한 많은 사람이 함께 하기를 소망해 본다.

정리=김수연 기자 ye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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