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세계시민교육, 해외에선 ‘필수’ 한국에선 ‘선택’

필리핀 교육부는 세계시민교육 프로그램 ‘프로젝트 글레이스(GLACE·Global Learning through Active Citizenship Education)’를 2020년부터 2021년까지 시범 운영했다. 10주간 진행한 프로그램은 학생들의 자율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참여 학생들은 인권, 평등, 다양성 등 주제를 골라 토론을 벌이거나 봉사 활동을 했다. 활동비는 필리핀 교육부가 전액 부담했다. 프로젝트 글레이스를 통해 아홉 중학교 학생 354명이 세계시민교육을 이수했다. 학생들의 수업 만족도는 85.6%나 됐다. 이 프로젝트는 지난해 10월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APCEIU)이 우수 사례로 소개하기도 했다.

필리핀 세계시민교육 프로그램 '프로젝트 글레이스'에 참여한 나보타스 지역 학생들.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
필리핀 세계시민교육 프로그램 ‘프로젝트 글레이스’에 참여한 나보타스 지역 학생들.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

필리핀을 비롯해 영국, 캐나다 등에서는 정부 주도로 세계시민교육을 정규 교과로 편성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세계시민교육이란 인류 보편적 가치를 달성하기 위한 지식, 기능, 태도를 길러주는 교육을 의미한다. 평화, 인권, 빈곤, 다양성, 포용, 공동체 등이 모두 세계시민교육의 키워드다.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세부 목표에도 포함돼 있다.

다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생소한 개념으로 여긴다. 세계시민교육이 국내에서 구체화된 건 2015년 열린 인천 세계교육포럼 때였다. 당시 교육과정에 ‘세계시민성’ 관련 내용이 처음으로 추가됐다. 하지만 현재까지 세계시민교육과 관련된 구체적 제도는 없다. 국제 개발 협력과 인도적 지원 사업을 수행하는 NGO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식이다. 대표적으로 2009년 굿네이버스의 ‘희망편지쓰기대회’를 시작으로 월드비전, 기아대책 등이 잇달아 청소년 대상 세계시민교육 프로그램을 내놨다. 굿네이버스는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에 국내외 청소년들이 온라인으로 실시간 소통하는 ‘글로벌 유스 네트워크’를 개발하기도 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 따르면,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 회원 단체 135곳 중 22곳이 세계시민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유형별로 살펴보면 ▲학교 파견 교육(13단체) ▲세계시민 캠프(8단체) ▲교원 연수(7단체) ▲청소년 서포터스 조직(6단체) 등이다.

해외 주요국은 세계시민교육을 정부 당국에서 주도한다. 영국은 세계시민교육을 개발 교육 관점에서 접근한다. 지난 2000년부터 국제개발부(DFID) 주도로 교사 지원 프로그램인 ‘GLP(Globlal Learning Programme)’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영국 정부는 GLP 개발에 2012년부터 2017년까지 6년간 재정을 1800만파운드(약 327억원) 투입했다. 당국은 GLP를 통해 학내에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파악하고, 프로그램과 학습 자료 등을 배포하고, GLP 포럼을 열어 성과를 공유한다.

캐나다 공립교육청은 13주(州)에 세계시민 교육 예산을 편성해 재정을 지원한다. 주 교육청이 각급 학교에 프로그램 운영을 지원하는 형식이다. 온타리오주 교육청은 온타리오초등교사연맹(ETFO)을 만들어 세계시민교육 아카이빙 플랫폼 ‘웹북(Web book)’을 개발했다. 교사가 플랫폼에 프로그램을 올리면 대학교수나 동료 교사에게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도 세계시민교육을 정착시키려면 공교육과 NGO의 협업 차원을 넘어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창의적 체험 활동’에 머문 교육을 정규 교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설규주 경인교육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는 “세계시민교육이 정착된 해외에서는 대부분 정규 교과로 편성하고 대학과 국제 개발 등을 수행하는 NGO들이 필요에 따라 협업하는 형식”이라며 “우리나라에서도 대학 입시를 위한 교과 지식 위주 교육 방식에서 벗어나 세계시민교육을 핵심 교과로 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원규 기자 wonq@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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