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스코프3가 온다] 직원 출퇴근 때 탄소발생량까지… 영국발 탄소 추적 프로젝트

기업 활동 全과정 탄소발생량 ‘스코프3’
ISSB·SEC 등 기업에 공시 의무 요구
英 식품유통사, 탄소 추적 협의체 구성

최근 영국 식품유통사들이 공급망을 비롯해 제품 소비 단계에서 발생하는 탄소량을 추적하기 위해 모였다. 테스코(TESCO), 알디(Aldi) 등 영국 대형 식품유통사 8곳은 지난달 28일(현지 시각) 이니셔티브 ‘소매업자 넷제로 공동 행동 계획(Retailer Net Zero Collaboration Action Programme)’을 결성했다. 기후변화 대응 비영리단체인 WRAP(Waste & Resources Action Programme)와 세계자연기금(WWF)이 참여한 이번 협의체는 대형 슈퍼마켓에서 판매되는 식음료 제품을 대상으로 생산 과정부터 유통, 소비, 폐기에 이르기까지의 탄소배출량을 측정하기로 했다. 이들은 올해 17개 주요 협력업체와 협력해 탄소 측정 방식과 범위를 마련해 전체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배출량을 측정할 계획이다.

컨테이너를 실은 대형 화물선에서 온실가스가 포함된 검은 매연이 나오고 있다. /조선DB
컨테이너를 실은 대형 화물선에서 온실가스가 포함된 검은 매연이 나오고 있다. /조선DB

이처럼 특정 산업계에서 협의체를 꾸려 가치사슬(Value Chain) 전반의 탄소발생량인 ‘스코프3(Scope3)’를 측정하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기업들은 제품 생산 단계에서 발생하는 직접배출량인 ‘스코프1(Scope1)’,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전기와 동력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간접배출량 ‘스코프2(Scope2)’를 주로 측정해왔다. 이와 달리 스코프3는 제품 생산 외 물류나 유통, 제품 사용부터 폐기에 이르기까지 전체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모든 탄소배출량을 뜻한다. 기업이 소유하거나 통제하지 않은 시설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까지 측정해야 해서 비교적 소극적으로 대처했던 영역이다.

미국의 비영리 환경정책 연구기관 세계자원연구소(WRI)는 스코프3의 범주를 크게 업스트림과 다운스트림으로 나누고, 총 15개 세부 항목을 제시하고 있다. 업스트림의 경우 제품의 생산 완료 시점까지를 뜻한다. 구체적으로 제품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 구매, 원자재 운송과 유통, 폐기물 처리, 임직원 출퇴근 등에서 발생하는 탄소가 포함된다. 다운스트림은 판매된 제품의 사용과 폐기, 프랜차이즈 사업, 금융투자 등에서 일어나는 탄소발생량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문제는 스코프3 측정 범위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구체화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옥수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파트너는 “스코프1·2의 경우 기업에서 발생하는 영수증, 구매전표, 계산서 등 증빙자료를 통해 비교적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지난 2015년 탄소배출권거래제가 시행되면서 오랜 기간에 걸쳐 측정 오차를 줄여왔다”며 “스코프3의 경우에는 아직까지 업계에 통용되는 기준이나 방식이 없고, 기업 외부의 데이터들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측정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공급 업체를 대상으로 탄소배출량 측정을 요구하거나 제품 자체의 생애주기를 추적해야 한다. 이민 탄소중립연구원 대표는 “온실가스 배출량 측정은 과학적 개념과 각 기업이 처한 상황을 동시에 고려해 매우 복잡한 과정”이라며 “스코프3를 위해 협력사에 데이터를 요청할 때에도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측정값의 오차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제적으로 스코프3 공시 요구는 잇따르고 있다. 국제회계기준(IFRS) 재단 산하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는 지난해 10월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스코프3 공시 의무화를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보다 앞선 지난해 3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2024년부터 스코프3 데이터 수집을 시작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규정 초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영국에서 시도되는 ‘소매업자 넷제로 공동 행동 계획’의 스코프3 측정 결과가 글로벌 기업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민 대표는 “기업의 탄소배출량 측정은 글로벌 선도 기업 사례를 벤치마킹해 따라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좋은 선례가 나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옥수 파트너는 “스코프3 측정 범위를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기업마다 의견이 분분한데, 영국 식품유통사들처럼 동종 업계에서 협의체를 꾸리면 측정 기준을 보다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원규 기자 wonq@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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