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하트재단과 함께하는 문화 복지의 꿈
“할 수 없다” 편견을 깼다… 감동이 됐다
오는 25일 예술의전당에서는 베네수엘라 ‘엘 시스테마’의 ‘카라카스 유스 오케스트라’와 우리나라 ‘하트하트 오케스트라’가 한 무대에 설 예정이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사이먼 래틀이 “세계 음악의 미래”라며 극찬했던 ‘엘 시스테마’가 이틀간의 내한 공연 중 첫째 날 무대의 일부를 할애해 하트하트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게 된 데에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엘 시스테마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으로, 세계적인 문화 복지의 선진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이런 공로를 인정해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10월 엘 시스테마를 이끌어온 호세 아브레우(72) 박사에게 제10회 서울평화상을 수여했고, 그날 이 수상식장에서 아무도 예상치 못한 장면이 연출됐다.
당시 하트하트 오케스트라는 리셉션 연주를 담당했다. 국내 최초의 발달장애 청소년 오케스트라로서 음악적 성취를 이뤄냈고 오케스트라 소속 구성원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낸 모습이 ‘한국판 엘 시스테마’라는 이유로 선정되기는 했지만, 행사장의 분위기를 북돋우는 정도의 역할을 맡았었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과 달리 아브레우 박사는 하트하트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뜻밖의 관심을 보였다. 자신을 첩첩이 둘러싼 하객들을 가르고 음악에 이끌리듯 한쪽 편에 있던 무대로 걸어간 아브레우 박사는 “가까이서 음악을 들을 수 있게끔 무대 위에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별도로 요청했다. 아브레우 박사는 그렇게 마련된 곡이 모두 끝날 때까지 하트하트 오케스트라의 음악에 몰입했고 공연이 끝난 후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그러더니 지휘자는 물론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며 “너 참 멋있다”고 격려했다.
이번 공연을 기획한 크레디아 정재옥(49) 대표는 “그때 아브레우 박사를 깜짝 놀라게 했기 때문에 엘 시스테마 쪽에서도 이번 협연을 흔쾌히 승낙했다”고 말했다.
1988년 재단을 설립한 후 하트하트재단은 줄곧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일을 찾아다녔다. 2006년 3월 하트하트 오케스트라를 창단할 때도, 하트하트재단은 18년 동안 해 오던 복지관 운영 사업을 과감히 접었다. 타 기관들에서 유사한 기능들이 생겨남에 따라, 그 간의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복지 서비스에서 한 단계 나아간 문화 복지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하트하트 오케스트라와 같이 발달장애인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는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발달장애는 타인과의 상호작용에 어려움이 있는 사회성 장애다. 그래서 내 소리만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완성되는 오케스트라에 발달장애인이 연주자로 참여한다는 것은 발상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2008년에 미국 ‘레이 그레이엄 협회(Ray Graham Association)’ 관계자가 발달장애에 관해 50년 동안 집중해 왔지만 오케스트라는 생각지도 못했다며 신 이사장에게 미국으로 하트하트 오케스트라가 꼭 와 줬으면 한다고 요청을 했을 정도다.
“절대로 안 될 일이라고 했어요. 주변 사람 모두가 말이죠.”
신인숙(62) 하트하트재단 이사장이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를 처음 만들 때의 상황을 회고했다.
많은 사람의 반대와 의구심을 꺾고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데 대해 신인숙 이사장은 “우리에게는 비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양해받을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을 넘어 음악 자체로 감동을 줄 수 있도록 역량을 키우기 위해 전문 지도자와 함께 교육을 하는 것, 스스로 인정받고 동시에 남을 존중하는 사회성을 오케스트라를 통해 체득하는 것, 도움을 받는 장애인을 넘어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가족 치유를 이뤄내는 것이 하트하트 오케스트라의 비전이다. 또한 오케스트라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통해 발달장애인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을 넘어서고, 장애를 딛고 음악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모습을 통해 모든 소외당한 이에게 삶의 희망과 의미를 되새기는 것도 하트하트 오케스트라의 중요한 비전이다.
이런 비전과 장기적인 안목으로 5년을 운영해 온 지금, 오케스트라 단원의 변화는 놀랍다.
처음에 5분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2시간이 넘는 연습 시간과 공연에서도 자리를 지키며 열중하게 됐다. 감정을 예술적으로 표현해 내지 못하리라 예상했던 아이들이 지휘자의 지시에 맞춰 각각의 역할을 해냄으로써 음악적 감수성을 연주에 실어 낸다. 자기 멜로디만 고집했던 아이들이 규칙에 맞춰 맡은 파트를 소화해 냄으로써 동료와 화음을 이뤄내게 됐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따돌림당하고 혼자이던 아이들이, 음악에서 즐거움을 찾고 연주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면서 학교 또래 집단에서도 받아들여지고 친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머니들 또한 놀라운 변화를 보여줬다. 학교 선생님 앞에서나 이웃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만 했던 어머니들은 아이가 무대에서 박수를 받고 음악으로 대학을 가게 되면서 꾸지 않던 꿈을 꾸게 됐다. 아이가 어엿한 사회인으로 존중받으며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일을 희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어머니의 표현을 빌리면 “전에는 아예 생각지도 않고 미리 포기했던 일”이었다. 기대치 않았던 아이의 성장에서 어머니는 “오래전 잊고 있던 ‘행복’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됐다”고 했다.
하트하트 오케스트라 아이들의 연주는 다른 사람들의 인식마저 바꿔 놓기도 한다. 하트하트 오케스트라는 1년에 20건 정도의 초청 연주가 있는데 지방에 갈 일도 수시로 있다. 이때 아이들이 타고 가는 버스 운전기사의 태도는 때마다 다른 사람인데도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특이 행동을 접하고는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다가, 공연장에 도착해서 아이들이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는 180도 변한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빛이 존중을 담은 그것으로 바뀐다. 얼마 전 어떤 운전사는 본인이 살면서 이렇게 훌륭한 음악은 들어본 적이 없다며 사인을 해 달라고 부탁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트하트 오케스트라는 음악을 통해 개인의 삶을 바꾸고 나아가 주변 사회의 모습을 변화시키는 결과를 하나둘 거두면서, 문화 복지에 대한 큰 가능성을 다시 꿈꾸고 있다. 하트하트 오케스트라 관계자들은 특히 베네수엘라 엘 시스테마의 철학이 자신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방향과 많이 닮았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하트하트 오케스트라 관계자들은 이번 엘 시스테마 카라카스 유스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데 기대가 더욱 남다르기도 하다. 공연은 오는 2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문화예술 교육자, 행정가, 단체 관계자 등 음악 교육 중간 매개자 2000여명을 대상으로 해 교육적 차원에서 이뤄진다. 일반인 초대는 향후 크레디아 클럽발코니 사이트(www.clubbalcony.com) 이벤트를 통해 이뤄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