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 투 하트 콘서트
발달장애 청소년 ‘하트하트 오케스트라’ 9번째 정기 연주회 예술의전당서 개최
서울애화학교 수화합창단 등 협연 이뤄
“무대 거듭될 때마다 아이들 사회성 커져 오케스트라 활동, 장애 치료 효과 실감”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당신이 나를 일으켜 세워주었습니다)~.’
노랫말에 맞춰 무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하트하트 오케스트라 60명, 어린이합창단(아가페·염광지역아동센터) 80명, 수화합창단(서울애화학교) 18명, 성악가(보컬 앙상블 ‘로티니’) 4명이 만들어낸 울림은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 2500여명의 마음도 움직였다. 연주가 끝난 지 한참이 지나도록 관객 전원의 기립 박수가 이어졌다. 감동과 사랑의 연주를 지켜본 사람들은 한동안 객석을 떠나지 못했다. 이날 공연을 관람한 황진숙(47·경기도 부천)씨는 “나도 누군가의 엄마로서, 힘든 상황을 이겨낸 아이들을 보면서 저들의 어머니가 떠올라 많이 울었다”면서 “오늘 느낀 감동이 이들을 더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세상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소리를 합쳐 벽을 허물다’… 하트 투 하트(Heart to Heart) 콘서트
지난 7일 오후, 서울 양재동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하트하트재단과 예술의전당이 공동 주최한 공연’장애 인식 개선을 위한 하트 투 하트 콘서트’가 열렸다. 2006년 하트하트재단이 창단한 국내 최초 발달장애 청소년 심포니 오케스트라 ‘하트하트 오케스트라’의 9번째 정기 연주회다. 지난 2007년부터 임직원들의 성금을 모아 하트하트 오케스트라를 후원하고 있는 삼성SDI의 김현숙 총무그룹 과장은 “8년여 동안 성장한 발달장애 단원들을 볼 때마다 임직원들 모두 보람과 의미를 크게 느낀다”며 “이번 공연을 통해 장애인들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널리 확산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김동건 아나운서의 사회로 막을 올린 이날 무대에선, 주페(F. Suppe)의 ‘시인과 농부 서곡’을 시작으로 클래식 총 6곡의 연주가 2시간가량 이어졌다. 이번 공연은 ‘장애·비장애를 뛰어넘는 소통’을 위해 마련되어 의미를 더했다. 김희은 하트하트재단 오케스트라 사업부 부장은 “작년 공연이 세계적인 음악가들과 하모니를 이루는 데 주력했다면, 올해는 장애 유무나 유형을 넘어, 모든 아이가 음악으로 하나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2년 전부터 하트하트재단에서 합창 활동을 지원받고 있는 경기 안산시의 아가페지역아동센터, 서울 동대문구의 염광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함께했고, 청각장애 특수학교인 서울애화학교의 수화 합창단도 힘을 보탰다. 김현민 서울애화학교 교사는 “9월부터 매주 두 시간씩 할애해 준비했는데, 일방적으로 도움만 받던 아이들이 다른 사람과 도움을 주고받으며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낀 기회”라고 했다. 특히 이번 무대에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임동혁씨가 작년에 이어 함께했으며, 하트하트 단원이기도 한 트럼페스트 이한결(19)군과 보컬 앙상블 ‘로티니’도 협연자로 나섰다. 객석에는 소외 아동 1000여명이 특별 초청됐다.
◇갇힌 세상 박차고 나와 만든 ‘기적의 무대’
“무대를 보는 내내 조바심과 두려움이 가득했어요.” 이날 공연의 협연자로 나선 이한결(한국예술종합학교1·발달장애3급)군의 어머니 장은실(47)씨는 “한 달 전까지도 한결이는 무대에 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트럼펫 재능을 인정받아 올해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지만 적응이 수월치 않았던 이군이었다. “학교에서 전에는 들어보지 못했던 수준의 연주를 들으면서, 내내 자책하더라고요. ‘맘에 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수시로 자기 입을 때렸어요. 입안이 다 터져서 피가 날 정도로요. 악기 부는 건 꿈도 못 꿀 지경이었어요. 정상적인 소통을 못하니까 그런 식으로 울분을 달랜 거죠.” 한 달 전 우여곡절 끝에 연주회 참여를 결정하고, 치료와 연습에 매진한 이군의 무대가 더 감동적으로 들렸던 이유다.
‘정상급 연주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공연장’이라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발달장애인들이 이 무대까지 오는 길은 생각보다 훨씬 험난하다. 증상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5~6세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가진 것으로 판단되는 만큼,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어울리는 데 큰 무리가 따른다. 이날 무대에 오르기로 한 중학교 3학년 플루트 단원은 무대 대신 병원으로 가야 했다. 공연을 불과 일주일 남기고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되어 전치 4주 부상을 당했기 때문. 김희은 부장은 “표현이 서툴다 보니 그에 대한 이해가 없는 친구들로부터 폭행과 따돌림을 당하는 일이 종종 있다”면서 “1년 내내 어렵게 연습했는데, 사회의 편견과 무관심에 꽃을 피우지도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좋은 무대를 위해선 일반 연주자들에 비해 몇 배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것도 당연하다. 하트하트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김근도(41)씨는 “장애 증상에 따라 연주 실력도, 소통 능력도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면서 “조화가 생명인 오케스트라의 특성상, 이들이 서로 배려하도록 끌고 가는 것은 비장애인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끈기와 인내가 요구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기립 박수를 이끌어냈던 이들의 무대가 ‘기적의 무대’라고 불리는 것도 그래서다.
◇긴장하고, 감격하고, 각오하고… 무럭무럭 커지는 사회성
이날 공연에서 첼로 솔로 연주를 들려줬던 김다빈(21·삼육대3·자폐성 장애3급)씨는 올해 새로운 모습을 보였다. “무대에 올라서려는 다빈이 손을 잡았는데 땀이 흥건하더라고요. 긴장했다는 거죠. 예전엔 무대를 앞두고도 떨리는 감정은 전혀 모르고, 그저 싱글벙글하기만 했어요. 아이가 떨고 긴장한다는 것, 사회성이 발달했다는 증거죠.” 어머니 유한숙(51)씨는 “이번 무대에 유난히 울컥울컥했던 순간이 많았던 이유”라고 덧붙였다. 올해로 아홉 번째를 맞은 공연의 힘은 막이 내린 후 더 빛을 발한다. 해를 거듭할 때마다 무대는 아이들의 사회성을 훌쩍 키우고 있었다. 김근도 지휘자는 “1년 넘게 아이들과 크고 작은 무대를 함께하면서, 오케스트라가 발달장애 치료에 큰 효과가 있는 걸 실감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효과는 비단 발달장애에만 그치지 않는다. 청각장애인 아이들의 수화 무대를 보여줬던 서울애화학교 김현민 교사 역시 “매사에 소극적이었던 아이들이 리허설을 마치고 ‘내 공연을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다’며 티켓을 더 구해달라고 하더라”며 “무대를 마친 후엔 자신감이 확연히 늘었고,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이 생긴 친구도 많았다”고 했다. 김희은 부장은 “무대 뒤에서 감격해서 우는 아이도 있고, 실수했다며 아쉬워하는 아이도 있으며, 내년에는 더 잘하겠다고 각오하는 아이도 있는데, 예전에는 이런 모습들을 전혀 볼 수 없었다”며 “무대에 서면 설수록 이들이 사회로 한 발 한 발 나오는 것이 느껴지는 만큼, 더 다양한 무대를 통해 소통의 기회를 넓히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