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일)

무모했던 이들의 도전이 무한 감동으로 돌아왔습니다

예술의전당서 공연한 하트하트 오케스트라

한 곡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1000번 넘게 연습해야 했던 발달장애 오케스트라 단원들

창단 후 첫 유료 공연 성공 음악 활동 지원받는발달장애 아동도 초청해’너희도 공연할 수 있어’희망과 동기의식 부여

힘차게 내리꽂는 지휘봉에 맞춰 현악기의 창창한 선율에 묵직한 관악기가 얹혔다. 지휘자의 양손이 허공을 크게 휘젓자, 심벌즈 소리가 홀을 가득 채웠다. 객석에선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한 곡이 끝나자, ‘정제된’ 클래식 연주자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없었다. 박수갈채에 맞춰 손을 흔들기도 하고, 엄지손가락을 쳐들고 ‘최고’를 만들어 보였다. 시선은 제각기 다른 곳을 향하고, 인사하는 자세는 엉거주춤했다. 이들은 발달장애 아이들로 구성된 ‘하트하트 오케스트라’. 지난 15일 오후 2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하트투하트 콘서트’의 현장이다.

◇또 하나의 벽을 넘다

‘넘을 수 없을 것만 같던 벽’이었다. 창단한 지 올해로 8년. 하트하트 오케스트라가 꿈의 무대에 올랐다. 발달장애 아이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에 쉬이 문을 열어준 클래식 공연장은 없었다. 공연의 질을 이야기하기 전에,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온전하게’ 공연을 마칠 수 있겠느냐는 우려 섞인 반문이 돌아오곤 했다. 국내외 내로라하는 최정상 클래식 연주자만이 선다는 ‘예술의전당’ 벽이 높은 건 당연했다. 몇 차례나 대관을 요청했지만, 단독 무대는 허락되지 않았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지난해 10월,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평창 동계스페셜올림픽 개최 기원 연주회’에서 다른 연주자들과 협연으로 공연했던 것이 ‘접점’을 만들어준 것. 김희은 하트하트재단 문화복지사업부 부장은 “당시 공연을 본 관계자 분께서 감동을 하였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공동 주최’까지 할 수 있게 돼 감사하다”며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의 가능성을 인정해준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예술의전당’ 무대에 발달장애인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오롯이 90분을 이끌어가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이번 공연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도전이었다. 창단 후 최초로 ‘유료’ 공연을 한 것. 콘서트홀 2500석 중, 초대석 1000석을 제외한 나머지 좌석은 유료로 판매했다. 김희은 부장은 “유료 공연으로 결정하고 나서도 ‘과연 팔릴까’ 걱정이 많았는데 11월 첫째 주에 오픈한 뒤로 한 달 만에 매진돼 내부적으로도 놀랐다”고 했다. 이날 공연을 본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천안에서 온 이단비(29)씨는 “공연 자체를 듣는 것 이상으로, 곡 하나하나가 무대에 올라가기까지 연주자들이 얼마나 노력했을지를 곱씹다 보니 더 큰 감동이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난 5월 음악회에서의 협동 공연을 인연으로, 이번 공연에도 기꺼이 참여한 바리톤 김동규씨는 “1년에 총 130회 정도 공연을 하는데, 그중에서도 손꼽히게 감동적인 공연이라 생각해서 가족들을 초대했다”며 “직업 음악가들은 음악을 일로 하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질 때도 있는데 아이들이 내뿜는 순수한 에너지가 큰 감동을 준다”고 했다.

“오케스트라는 불가능하다”는 편견을 넘어 발달장애 아동들로 구성된 하트하트 오케스트라가 창단된 지 8년 만에 ‘예술의전당’ 무대에 섰다. /주선영 기자
“오케스트라는 불가능하다”는 편견을 넘어 발달장애 아동들로 구성된 하트하트 오케스트라가 창단된 지 8년 만에 ‘예술의전당’ 무대에 섰다. /주선영 기자

◇한 곡을 무대 위에 올리기까지…

꿈의 무대에 오르기까지 지난 8년. 8명으로 시작한 멤버가 하나둘 늘어나고 악기 파트가 더해지며, 지금의 ‘오케스트라’ 모양새를 갖추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힘들고 어린아이의 지적 수준을 가진 발달장애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친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라 여겨졌다. ‘나 혼자 잘 불면 그만’인 독주가 아닌 다른 사람과 호흡을 맞춰야 하는 오케스트라는 “불가능하다”고들 했다. 한 곡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1000번, 그 이상’의 연습으로 채워야 했다. 아이들의 성장 뒤에는 발달장애인의 ‘느린 호흡’을 참고 지켜봐온 지도자·지휘자 선생님이 있었다. 이번 하트하트 오케스트라 공연을 지휘한 지휘자 김근도씨는 “오케스트라를 준비하면서 말로 설명하면 전달이 어려워, 음이나 박자를 노래로 들려주고 손으로 일일이 모양을 잡아주면서 합주를 맞춰왔다”고 했다. 그는 “일반인들은 같은 것 100번, 1000번 연습하라고 하면 싫증 나고 지루해서 못 하는데, 발달장애 아이들은 똑같은 것을 아무리 반복해도 지치지 않고 ,’백 번 연습하라’고 하면 별표를 그려가며 정직하게 횟수를 채운다”고 덧붙였다. 만 5년간 하트하트 오케스트라와 함께 호흡해 온 트럼펫 지도자 조현우(33)씨는 “5년 전, 아이들에게 트럼펫을 불어 소리를 들려주고 음표를 짚어 ‘도’가 뭔지를 보여주는 걸 최소 100번씩은 반복해가며, 악보 보는 법이나 음계를 가르치는 것부터 시작해왔다”며 “‘예술의전당’ 무대에서 공연하니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새로운 희망을 전하다

이번 하트투하트 콘서트에는 특별한 손님들이 초대됐다. 전국 장애인복지관 17곳, 350여명의 발달장애 아동과 부모님, 선생님이 그 주인공. 이들은 하트하트재단으로부터 발달장애 아동 음악 활동 지원사업인 ‘하트포르테’를 지원받는 이들이다. 임미라 하트하트재단 아동개발팀 팀장은 “‘발달장애인 음악 복지의 길을 앞서 걸어가는 ‘하트하트 오케스트라’의 모습이 지역의 발달장애인 친구들과 부모님들에게 새로운 희망이자 동기부여를 해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했다”고 초청 이유를 밝혔다. 공연을 관람한 김수진 금천장애인종합복지관 팀장은 “하트포르테 프로그램을 통해 오케스트라 수업을 지원받고 있는데, 아이들이 평소 자신이 배우고 연주하는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등의 악기가 무대 위에서 어떻게 연주되는지를 보고 느낄 수 있던 기회였던 것 같다”고 했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가 있는 아들을 둔 김영희(41)씨는 “오케스트라를 지켜보면서 ‘모두에겐 저마다 달란트가 있고 우리 아들도 마찬가지겠구나’ 하는 생각에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민들레 씨앗처럼, 하트하트 오케스트라의 감동은 곳곳에서 새로운 희망을 피워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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