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과 가치, 두 마리 토끼 잡은 사회적기업
장애인이 꿈꾸는 직장, ‘웹와치’의 비결
“로.그.인.입.니.다.”
이경욱(시각장애 3급)씨가 왼손으로 키보드 탭(Tab)키를 3번 누르자, ‘스크린 리더(컴퓨터 화면을 음성으로 읽어주는 프로그램)’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떤 홈페이지는 로그인 메뉴가 이미지로만 만들어진 경우가 있어요. 시각장애인은 이미지 자체를 인식하지 못해요. 웹사이트 코딩 과정에서 이미지 파일을 대체하는 텍스트가 포함되어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 홈페이지처럼요.”
B사 홈페이지 ‘회원가입’ 메뉴에 탭키를 두드리자, 또박또박 글씨를 읽는 소리가 들렸다. “회.원.가.입.입.니.다.” 다음 페이지로 이동해 첫번째 항목 탭 키를 누르자, ‘이름’이란 음성이 나왔다. 하지만 성별을 표시하는 항목에서는 ‘성별, 성별’이라는 소리만 들렸다. “여긴 잘못 됐어요.” 이씨가 말문을 열었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해선 시각 정보를 청각 정보로 바꿔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홈페이지에서는 남성도, 여성도 ‘성별’이라고 소리가 나죠. 웹접근성이 떨어지는 웹페이지입니다.”
이씨의 일과는 웹페이지 화면을 분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웹 접근성은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게 아니에요. 상지장애인(어깨에서 손에 이르는 부분의 장애)일 경우 마우스 사용이 힘들고, 비장애인도 환경에 따라서 키보드만 사용할 경우도 있지요. 청각장애인을 위해서는 영상에 자막을 달아야 하는 것이 의무이고요. 장애 유형과 경증에 관계없이 누구나 동등하게 홈페이지를 사용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우리의 업무입니다.”
◇ 평등한 인터넷 세상을 꿈꾸며…“우리도 네티즌이고 싶다”
이씨의 일터는 웹접근성(모니터링) 전문 사회적기업 ‘웹와치’다. 누구나 장벽 없이 웹페이지와 모바일을 이용할 수 있는지 각 ‘웹사이트’를 평가하고 인증 마크를 부여하는 회사다. 이곳은 대표를 포함한 직원 25명 중 장애인이 14명이다. 이 중에서 11명은 중증장애인이다. 2015년 매출은 18억원. 국내 IT 분야 사회적기업 1호로 2010년 첫 발을 내디딘 이후 쭉 성장세다.
“처음에는 장애인 운동 차원에서 접근했어요. 도스 운영 체제에서 윈도우로 바뀌면서, 정보화 사회에서 장애인이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거든요.” (이범재 웹와치 대표ㆍ지체장애 2급)
2006년, 웹와치의 모법인인 (사)한국장애인인권포럼이 시민단체 최초로 국내 주요 사이트 1000곳의 웹접근성 실태를 조사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중 웹접근성이 우수한 10곳에 시상을 했고, 2007년부터는 접근성이 잘 갖춰진 우수 기업이나 단체 홈페이지에 대해서 자체 제작한 ‘WA인증마크(Web accessibility)’를 부여하고 수상했다. 장애인의 웹접근성에 대한 인식을 환기시키는 ‘활동’이 비즈니스의 토대가 된 것. 게다가 2008년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까지 시행됐다. 기업이나 단체가 홈페이지를 제작할 때 웹접근성을 지켜야 할 것을 의무화하는 내용이 법안에 포함됐다. 대상자 역시 방송 사업자를 시작으로 공공기관, 특수학교, 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2009년) 등 해마다 법안의 적용 범위도 늘어났다. 웹서비스가 일상으로 자리잡으면서, 웹접근성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커졌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반영, (사)장애인인권포럼은 2009년, 웹접근성 진단 및 인증 업무를 전담할 ‘웹와치사업단’을 출범시켰다. 이듬해에는 주식회사 형태로 ‘웹와치’를 설립, 2010년 12월에는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회사를 설립하자마자, 특히 공공기관에서 문의가 빗발쳤다. 이 대표는 “홈페이지가 웹접근성을 갖춰야 하는데 개발자들이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자문을 구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사업 초기부터 2011년까진 적자였지만, 전문성을 살려 컨설팅 업무를 시작하면서 2012년부터는 영업 이익도 냈다. 2014년 1월에는 미래창조과학부 지정 국가공인 인증기관 중 한 곳으로 선정됐다. 현재, 국가가 공인한 웹접근성 품질인증 기관은 웹와치를 비롯해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 사단법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등 3곳이다.
◇ 장애가 아니라 ‘경쟁력’입니다
이 회사를 견인하는 힘은 ‘장애’다. 현재 25명 직원 중 14명(약 60%)이 시각·지체·청각장애인이다. 이들은 장애인, 노약자, 저시력자 등 인터넷에서 소외됐던 사람들 모두 편리하게 웹·모바일에 접근할 수 있도록 웹 접근성 품질인증 심사 항목(22개)에 맞춰 검사한다. 웹사이트의 오류를 수정하도록 여러 차례 모니터링을 통해 요구하고, 불편함이 없다고 판단되면 우수 사이트 인증을 준다. 박종혁(뇌병변장애 2급)씨는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면접에서 낙방하곤 했는데, 내 능력을 값지게 써주는 회사에 와서 큰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웹와치에서 모바일 접근성 관련 진단 업무를 맡고 있는 명승현(시각장애3급)씨도 “장애 당사자가 아니고선 불편함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사용자 입장에서 여러 가지 고려를 하고, 진단과 컨설팅을 진행한다는 것이 우리가 갖고 있는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임원을 뺀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3000만원 선. 직급에 따른 차이만 있을 뿐 장애 여부가 급여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매달 전직원에게 출퇴근 비용 6만원을 지원하고, 체력단련비와 악기 등을 배울 수 있도록 문화지원비도 준다. 1인당 연간 복리후생비는 410만원 정도. 웹와치의 평균 근속년수는 4년 이상이다. 일반 기업에서 일하는 장애인 직원의 평균 근속년수가 1년 남짓인 것에 비해, 놀랄만한 수치다. 특히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간 이직한 장애인 직원은 단 한명도 없다. 그만큼 장애인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은 것. 법인 정관에는 장애인 전문 사회적기업임을 명확하게 밝혔다. 장애인만 대표를 할 수 있으며, 이사회의 50% 이상이 장애인으로 구성돼야한다. 의사 결정에서 장애인이 주도성을 가져야한다는 의미다.
2016년부터는 모바일 사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아 제2의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2015년 모바일 분야에서 전체 매출의 10%가 발생했기 때문. 이범재 대표는 “모바일 분야 매출을 기존 웹 수준과 비슷하게 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건강한 사람은 건널목에 턱이 있건 없건 상관없어요. 하지만 유모차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 노약자는 작은 턱 하나에도 예민하죠. 접근성은 바로 그런거에요. 눈이 잘 보이지 않거나, 손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거나, 귀가 잘 안 들리게 된다면, 갑자기 넘지 못할 장벽이 나타납니다.”
◇전문성 바탕으로 한 제2, 제3의 웹와치 만들고파
시대 흐름에 맞춰 보이지 않는 정보 접근성의 장벽을 제거하는 것이 웹와치의 또 하나의 미션이다. 아직 장애인 기업의 형태는 제조ㆍ판매에 국한된다. 1000여개의 인증 사회적기업 중에서 공공구매 종합정보시스템을 통해 확인한 장애인기업은 41곳(2015년 6월 기준). 이들의 사업 내용을 보면 25곳(60%)이 제조ㆍ판매로 과반 이상을 차지했고, 청소 7곳(17%), 집수리ㆍ인테리어 5곳(12%) 등이 뒤를 이었다. 이에 웹와치는 사회적기업이자 장애인 기업으로서, 장애인들의 ‘경쟁력 있는 일자리’를 만드는 것을 새로운 과제로 삼았다.
“장애인 관련 예산 중에 중증장애인 활동보조 서비스가 가장 비중이 커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합치면 7000억~8000억 정도 됩니다. 서비스 받는 장애인은 6만명 정도, 활동보조 노동자는 5만명 정도로 추산해요. 장애와 관련된 큰 사회서비스인 셈이죠. 그런데 이 활동보조인을 교육하고 매칭하고, 평가하는 부분에서 장애인들의 역할이 있어요. 일종의 사회서비스 중개기관입니다.”
한국은 사회서비스 산업의 고용 비율이 5.4%로, OECD 평균 10.2%의 절반에 그친다. 이범재 대표는 “높은 실업률과 고용 문제를 사회서비스 산업의 일자리 확대로 풀 수 있다”면서 “사회복지서비스는 전산업이나 제조업, 보건의료 등과 비교해 취업유발계수(10억원어치 재화나 서비스가 만들어질 때 직간접적으로 생기는 일자리 수)도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장애인과 관련된 사회서비스 문제를 사회적기업 방식으로 풀 수 있다”는 것.
웹와치는 이미 2015년부터 장애인 관련 사회적기업을 6곳을 인큐베이팅하고 있다.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초ㆍ중ㆍ고등학생은 1년에 한 번씩 장애인 인권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야해요. 이를 활용해 저희가 잘 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죠.”
2015년에 웹와치는 그동안 보유했던 10억원과 사회투자기금 및 시중은행 대출을 통해 지하 1층, 지상 6층짜리 건물(시가 41억원)을 매입했다. 사옥 5층에서 장애인서비스 전문형 사회적기업을 전문적으로 인큐베이팅하고 있다. 장애인 인권 관련 교육 과정을 개발해 초·중·고교나 대학에서 교육을 진행하는 ‘장애인아카데미’, 재직장애인을 전문적으로 상담하는 ‘한국장애인심리지원센터’, 장애인의 자기 주도 건강 관리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장애인건강지원센터’, 루게릭장애인과 가족을 지원하는 ‘ALS사회적협동조합’, 장애인ㆍ노인ㆍ여성 등 누구나 편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보편적 디자인을 확산하는 ‘유니버설디자인협회’, 장애인도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 주택을 공급하는 ‘유니버설하우징협동조합’ 등이 만들어졌다. 이 대표는 향후 장애인의 체육 활동, 식단 등 장애인 건강 관련 산업 등 전문화된 서비스 케어 분야의 사회적 기업을 더욱 적극적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지금까지는 장애인 일자리는 단순 생산직이었습니다. 하지만 웹 접근성처럼 장애와 관련된 서비스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장애인들도 전문성을 살린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으로 봅니다.” (이범재 웹와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