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일)

[김동훈의 인사이트 재팬-⑪] 일본이 재난 대응을 잘하는 이유

최근 재난 대응 이슈가 한국 사회에서도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재난에 대응한다는 것은 정부 정책, 구호단체들의 활동을 넘어서 한 사회의 구조와 인식을 아우르는 큰 틀의 전략 및 시스템을 필요로 한다. 재난 대응의 우수 사례로 손꼽히는 일본의 시스템은 어떨까. 일본 재난대응의 최일선에 있는 이사호 일본중앙학술연구소 수석연구원에게 노하우를 들어봤다.

일본중앙학술연구소 이사호 연구원 ⓒ김동훈

일본중앙학술연구소는 어떤 곳입니까? 재난대응과는 어떤 연관이 있나요?

일본에서는 ‘재난’이란 개념이 익숙한 단어입니다. 오래 전부터 수많은 재난을 겪어왔기에 정부, 기업, 민간단체 등 주체를 불문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재난에 대응하는 계획들이 지속돼왔습니다. 일본중앙학술연구소는 불교재단 부설의 연구소로 국제관계한일문제종교의 사회적인 공헌종교의 공공성을 주요주제로 하는데, 저희 연구소 역시 재난 대응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며 꾸준히 연구해왔습니다. 연구소 특성상 다양한 NPO들과의 교류가 많아, NPO를 지원하고 심사 및 자문을 하는 과정에서 민간단체들의 재난 대응 활동을 직접 접하게 됐습니다.

일본 NPO들은 재난이 발생하면 어떻게 대응하나요?

재난대응은 국가정책 중에서도 우선순위가 높고, 전국 지자체들도 심화된 방재대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재난대응만을 전문으로 하는 NPO가 아니더라도, 민간단체들은 평소 자기 고유의 분야에서 활동하다가 재난이 발생하면 자연스레 대응 활동을 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푸드뱅크를 하며 물류기능을 보유한 NPO는 재난이 발생하면 기업들로부터 물품을 받아 재난지역에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보다 효과적인 재난 대응을 위해 각자 활동하기보단 역할분담을 해서 들어갑니다. 일본은 재난시 행정기관이 구호활동을 주도하기 때문에 허가없이 민간인이 쉽게 참여할 수 없습니다. NPO들도 행정에 보고하고 허가를 받은 뒤 보조를 맞춥니다.

특히 큰 재난이 발생한 경우 해당 지역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소방, 경찰, 자위대 등이 먼저 재난지역에 들어가서 상황을 인지하고 베이스캠프를 만든 뒤 민간의 자원들을 연결하게 됩니다. 각 지자체 단위에서 ‘사회복지협회’가 상시로 구성돼 행정과 민간을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재난 당시뿐 아니라 재난 이후의 대응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일본에선 어떻게 사후관리를 하고 있습니까?

일본에는 재난 전후를 나누어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세계의 진도 5.0 이상 지진의 20%가 매년 일본에서 발생하고 있고, 태풍과 같은 재난도 수시로 있습니다. 한국에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속담이 있지만, 일본에는 ‘항상 준비를 하면 슬픔이 없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다시 올 재난을 이번엔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가 이슈가 되는 것입니다. 피해를 최소화하고 슬픔을 그치게 하는 것이 일본 국민들이 재난을 대하는 태도인 것이죠.

1995년 고베 대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전쟁 이후 수많은 재난들을 견뎌왔음에도, 일본의 경제 동맥인 한신 고속도로가 무너질 정도의 지진은 모두에게 충격적이었죠. 그동안 재난 대응 시스템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일본에 다시금 경고등을 켜준 사건이었습니다. 이후 일본은 도로, 철도, 항만, 전력 등 많은 부분에서 또 한 번의 고베 대지진을 예상하며 상당한 비용을 투자해 대비해왔습니다. 그 후에도 동일본 대지진 발생으로 10미터 이상의 쓰나미, 해수 원전사고 등 재난이 나타났습니다. 중앙정부뿐 아니라 각 지자체에서도 재난시 행동요령을 재검토하게 됐고, 민간단체들도 각자 재난대응을 준비하기보다는 협의체를 만들어 시너지를 높이는 방안을 고민하게 된 것입니다.

재난 이후의 물질적 복구 외에도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문제도 나타났습니다. 이에 라디오 방송, 지역 방송, 케이블 방송들이 상담코너를 만들고 재난에 대한 상처 치유를 위한 음악프로그램들을 만드는 등 새로운 시도가 나타났습니다. 재난지역을 위문하고 그들을 돕기 위한 바자회를 꾸준히 개최하는 전문 NPO들도 생겨났습니다.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재난 대응 시스템은 한 단계 더욱 성숙하게 된 것입니다.

일본중앙학술연구소도 대도시에 위치한 큰 건물이라 행정기관의 재해대책 범위 안에 있지만, 동일본 대지진 이후에는 스스로 재해대책 기본계획을 세우고 직원들에게 한 달에 한 번씩 훈련하고, 일 년에 두 번씩 외부기관과 협력 훈련을 하는 등 다음 번 재난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일본중앙학술연구소 직원 모두 가지고 있는 개인방재카드와 연구소가 마련한 독자적인 재난대응계획 서류 ⓒ김동훈

재난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 및 활동은 무엇인가요?

재난 자체는 예방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재난은 예방을 통해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재난 발생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준비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습니다. 일본 정부는 재난 후 3일간을 ‘골든타임’으로 봅니다. 모든 전기, 수도 등 인프라가 끊어졌어도 3일만 버티면 일본의 재난대응시스템에 의해서 전국 어디로든 구호의 손길이 미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3일간 대비하는 방법, 해당 기간동안 필요한 식량, 물, 연료 등을 비축하는 방안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고베 대지진 당시, 지진 자체보다는 노후건물의 붕괴나 건물 외장재 및 유리파편 등의 낙하물에 의한 부상, 화재로 인한 연기 질식 등 2차 피해가 70% 이상이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넘어지거나 떨어질 만한 가구 및 책상들을 벽에 미리 고정시키고, 안전모를 준비하고, 재난시 가스를 잠그게하는 등 다양한 상황을 대비해 반복적으로 교육하고 있습니다. 피난소로 가는 길도 알아둬야합니다. 일본의 이동통신회사들은 재난이 일어났을 때 모든 자원을 방재를 위한 긴급 알림에 동원합니다. 일본의 TV 리모콘에는 ‘D’ 버튼이 있어서, 이를 누르면 정부의 긴급재해방송을 볼 수 있게 돼있습니다.

일본의 방재시스템을 한국에 적용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막대한 투자와 준비가 필요할 텐데요.

방재시스템은 비용이 충분하다고 구축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32명 직원들의 방재책임자인데, 재난 관련 예산을 확보하는 것보다 항상 준비하는 습관을 들이고 정보 교환을 끊임없이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산간지방에 재난이 발생하면 물자가 아무리 많아도 제대로 전달하기 어렵습니다. 자위대가 헬기로 구급품을 떨어뜨려도 각 피난소에 물자를 운반하고 전달하고 소통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물자와 시스템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건 발생 직후 대처 방법에 대한 훈련이 더욱 중요하죠. 이는 돈만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철저한 시뮬레이션과 준비태세가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최근 재난 대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한국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발생이 잦아지고 있는 한국에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동일본 대지진때 일본에서 5번째 큰 도시인 센다이에서는 쓰나미의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지만, 일주일 동안 먹을 것을 구하기가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상점에서 1시간 동안 줄을 서서 겨우 마지막 빵을 구입한 한 중학생 여자아이가 뒤에 줄서있던 걸음이 불편한 할머니에게 양보했다는 미담이 신문에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저 역시 동일본 대지진때 한국에서 구호봉사단이 와서 함께 빵과 물을 가지고 인프라가 끊어진 곳을 헤집고 들어가 피난소를 찾았습니다. 당시 피난소 책임자가 ‘우리는 당장 버틸 물품이 있으니 더 필요한 다른 피난소에 제공하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재난 대응 시스템 구축과 교육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재난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공동체 속에서 서로 어떻게 도와야할지, 재난을 함께 이겨나가야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자세들을 배우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재난대응 관련 참고 자료

①도쿄도 방재책자 ‘도쿄방재’(한국어): http://www.metro.tokyo.jp/KOREAN/GUIDE/BOSAI/index.htm

②NHK WORLD 라디오방송 프로그램 ‘일본 방재 최전선’(한국어): https://www3.nhk.or.jp/nhkworld/ko/radio/bosai/

③일본 내각부 방재포털사이트 ‘TEAM 방재 재팬’(일본어): https://bosaijapan.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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