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대응을 위한 171번 서비스와 어플리케이션들
가족들이 일본으로 이사를 왔다.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 지진을 일상적으로 느끼며 살아야 하다 보니 혼자 살 때와는 달리 가족들을 위한 재난대비책을 처음부터 다시 세워야 했다.
한국에서도 경주지진 이후 가정에서의 방재대책에 대한 관심들이 대폭 늘어났고 인터넷에서도 관련정보들을 많이 찾을 볼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의 여러 정보를 참고하여 실제 우리 가족에 맞는 재난대비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참고할만한 일본의 유용한 도구들을 알게 되어 여기에 소개해본다.
재해음성사서함 서비스 171번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큰 재난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쉴 곳을 찾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길 것 같다. 하지만, 실제 상황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가족과 지인들과 연락을 취하는 것, 현금을 찾는 것 등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통신사정이 안 좋아지는 재난현장에서 가족들과 연락을 취하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애타게 하는 것인데, 일본에서는 ‘171번’ 서비스가 있어 이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대형 재난이 발생하면 통신이 폭주하면서 통신사가 발신규제를 하여 전화가 걸리는 확률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정전이나 통신시설 파괴 등으로 서비스 자체가 중단되기도 한다. 개인들은 배터리가 소모되고 충전할 방법을 찾지 못하여 제때 연락을 취하기가 어려워지곤 한다.
기존에는 서로에게 연락을 취하기 위해서 대피소의 게시판에 벽보를 붙여 사람을 찾거나 안부를 남기는 고전적인 방법이 사용되곤 했는데, 일본 최대의 전기통신사업자인 NTT는 재난이 발생하더라도 가족과 지인들이 서로 안전한지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171번 음성사서함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재난이 발생하면, 가까운 공중전화에서 171번으로 전화를 걸어 1번과 자신의 전화번호를 누르고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해둔다. 그럼 상대방 역시 171번에 전화를 걸어 2번과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누르면 남겨진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는 서비스이다. 동전으로 쓰는 공중전화는 재난발생시 핸드폰과 인터넷이 안 되는 상황에서도 가동하는 최후의 연락수단이 될 수 있어 유용하다.
171번 서비스는 진도 6이상의 상황이 발생하면 기능하게 되며, NTT측에서 무료화 서비스를 진행하게 되는 시점부터는 비상전화버튼을 누르거나 동전을 넣는 것만으로 무료로 전화를 걸 수 있게 된다. 평상시에는 사용할 수 없지만 시민들의 체험을 위해서 매월 1일과 15일에 이용해 볼 수 있다.월초 1일이 되었을때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공중전화기를 찾아 171번 서비스를 체험해보았다. 아내가 일본어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얼마나 잘 이용할 수 있을까 걱정이 있었는데 전화를 이용하는 프로세스만 알면 일본어를 전혀 모르더라도 이용할 수 있었다.
먼저 수화기를 들고 동전을 넣은 후,
녹음을 듣는 순서도 마찬가지여서 수화기를 들고 동전을 넣은 후,
재난대응 인터넷 서비스와 어플리케이션
171번 재난통신서비스는 공중전화에만 국한되지 않고 인터넷이 가능할 때 쓸 수 있는 ‘web171’서비스로도 제공되고 있다. 재난 시 스마트폰의 상단에 통화가능권이라는 안테나 막대기들이 떠있어도 실제로 전화가 잘 걸리지 않을 때 ‘web171’ 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
이 서비스는 www.web171.jp 사이트로 들어가서 사전에 등록한 메일 주소들로 자신의 안부를 전달할 수 있게 하는 서비스로, ‘집에 있습니다’. ‘대피소에 있습니다’ 등과 같은 기본텍스트를 선택해서 보낼 수도 있으며 100자 정도의 메시지를 따로 써서 보낼 수도 있다.
필자도 이를 이용하기 위해 체험일에 web171 화면으로 들어가 아내와 직장동료, 한국에 살고 계신 어머니의 이메일 주소를 등록해보았다. 새로 등록된 메일주소에는 재난 시 필자의 긴급 통지처로 등록되었음을 알리는 공지메일이 도착했다. web171의 초기화면을 스마트폰의 홈 화면 즐겨찾기 해두면, 이후에는 클릭하여 화면을 띄우고 메시지만 선택하면 세 사람에게는 자동적으로 내 소식을 알릴 수 있게 되었다.
web171 서비스는 일본어뿐만 아니라 한국어, 영어, 중국어로도 사용할 수 있어 일본어가 되지 않는 외국인들에게도 편리하고, 오프라인의 171 서비스와 달리 동시에 복수의 사람에게 소식을 알리는 한편, 해외에 있는 사람에게도 바로 연락이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더불어 web171은 오프라인 171번 서비스와 연동도 되어 있어서, 171번의 녹음을 음성파일로 web171번에서 들을 수 있고, web171번의 문자텍스트를 171번에서 음성전환하여 들을 수 있다고도 한다.
이밖에도 일본에서는 ‘NTT도코모’, ‘au’, ‘SoftBank’ 같은 주요이동통신사들이 각자의 재해통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사용자들은 각자의 이동통신사들이 만든 ‘재해전언판(災害伝言板)’이라는 어플리케이션을 무료로 설치하여 긴급문자와 음성을 보낼 수 있게 되어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시민들이 여러 재난통신서비스 가운데 어느 한 가지만을 쓰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방법들을 모두 사용함으로써 그 중 하나라도 상대방에게 소식이 전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재난 시에는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재난통신’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재난상황을 전달받고 어디로 가면 좋을지 등에 대한 ‘재난정보’와 관련된 서비스들도 필요하다. 그래서 재난을 대비한 비상배낭을 꾸릴 때 ‘라디오’는 항상 권장되는 고전적인 필수 품목이기도 하다.
스마트폰이 일반화된 지금은 다양한 방재어플리케이션들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야후재팬’이 만든 ‘Y!방재속보(Y!防災速報)’는 사전에 자신이 지정한 세 지역에 대한 재해정보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뉴스 등을 통해 일반적으로 얻는 재해정보들은 너무 광범위한 지역을 다뤄, 정작 자신이 있는 동네나 가족이 있는 동네의 상황이 어떤지는 알기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지정지역에 포커스를 맞춘 이러한 재해정보들은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Y!방재속보’는 일본기준으로 ‘진도5약’ 이상의 지진정보는 자동으로 알람으로 알려주며, 지진뿐만 아니라 호우, 산사태, 홍수 등 다양한 재난들에 대한 알람기능도 가지고 있고, 자신이 알게 된 재해정보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다.
‘일본 피난처 가이드(全国避難所ガイド)’ 는 자기 주변의 피난처들의 위치를 지도상에 표시해주는 어플리케이션으로, 자신이 잘 모르는 타지에 있을 때도 피난처 정보들을 볼 수 있고, 본인이 가고 싶은 대피소까지의 경로정보도 알려줄 수 있다. 피난처들에 대한 정보도 세분화 되어 ‘대피장소’, ‘대피소’, ‘급수거점’, ‘의료기관’, ‘귀가 곤란자 지원시설’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일본 피난처 가이드’는 피난처의 위치정보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재난정보들도 실시간으로 알려주고 있는데, 앞서 언급했던 ‘web171’과도 바로 연결되어 있어서 web171에 따로 들어가지 않고도 이 어플리케이션에서 바로 연락문자를 보낼 수 있게 되어 있다.
또한 재난 시 사람 찾기 기능을 가진 ‘Google Person Finder’와도 연결되어 있어 자신의 피난정보를 구글파인더를 통해 올리면 다른 사람들이 구글파인더상에서 검색할 수 있게 하고 있으며, 가족들 같은 경우는 사전에 등록하여 피난정보가 올라와 있다면 한꺼번에 검색해서 볼 수 있게도 하고 있다.
일본생활을 하며 느낀 점 중 하나는, 재난대응에 있어 선진적인 경험을 가진 국가가 바로 옆 나라라는 것은 우리가 활용하기에 따라 행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험과 대응책들에서 구체적이면서도 실천적인 적용을 해볼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