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일)

[김동훈의 인사이트 재팬⑧] 평화를 만드는 바다위의 크루즈, 피스보트(PEACE BOAT)

크루즈를 타고 하는 세계일주. 누구나 한번쯤 꿈꾸어 봤을 법한 일이다. 일본에서 이러한 꿈을 가장 먼저 실현한 곳은 일반 여행사나 선박회사가 아닌피스보트라는 NGO였다. 피스보트는 지난 30년 이상 6만명 이상의 승객을 태우고 전세계를 돌며 여행을 해왔다. 일반적인 크루즈 여행과는 다르다. 배 위에선 각기 다른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평화, 인권, 환경 등의 주제를 이야기한다. 기항지에서는 각국의 시민단체와 연대하여 캠페인을 벌이고, 승객이 프로그램 기획자가 되기도 한다. 배 자체가 거대한 국제교류와 상호이해의 장이면서 사회활동의 근거지가 되는 셈. 평화를 만들기 위해 특별한 항해를 지속하고 있는 피스보트의노히라 신사쿠(野平 晋作‧사진)’ 공동대표를 인터뷰했다. 

ⓒ김동훈

ㅡ소개 부탁드립니다.

“노히라 신사쿠 공동대표입니다. 현재 피스보트에서 공동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피스보트는 세계각지를 배로 찾아가서 국제교류를 하는 단체입니다. 일본 국내에서도 여러 단체들과 연대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합니다. 저는 특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야스쿠니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역사인식 문제, 그리고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와 관련해 다른 단체들과 연대하고 있습니다.”

ㅡ피스보트가 만들어지게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1982년 일본 문부성에서 역사교과서를 수정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시아를 침략했다’고 쓰여져 있던 내용을, 문부성에서 ‘진출했다’는 표현으로 바꾼 겁니다. 그때 한국과 중국 등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 일본에 항의를 했습니다. 당시에 대학생이었던 친구들 몇몇이 모였습니다. 우리는 전쟁을 체험한 세대도 아니고, 학교에서 근현대사를 자세히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니 일본에게 항의하고 있는 주변 아시아 국가에 가서 피해자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자고 주변을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제안에 200여명이 모였고, 1983년 대학생들이 배를 빌려 아시아 나라들을 방문한 것이 피스보트의 시작입니다.

피스보트는 일본에서 처음 세계일주를 시작한 단체입니다. 남반구에 진출한 것도 일본에서는 처음이었습니다. 유럽이나 지중해로 가는 크루즈가 아니면 ‘리스크가 너무 크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많았지만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또 기항지마다 들려 새로운 사람을 태우고 내리는 방식도 처음이었습니다. 리스크가 높은 선택들을 골라 해왔으니, 돌이키면 지난 30년을 이어온 게 기적인 셈이죠(웃음).”

피스보트 ⓒPEACEBOAT

ㅡ피스보트를 시작한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요.

“일본에서도 6~70년대 초반까지는 학생 운동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정부 정책을 바꾸지 못했고, 운동 단체 내부에서 분열이 심해지면서 적대적인 상황까지 가기도 했습니다. 이후 80년대 대학생활을 한 세대 중에선 사회 문제에 관심은 있지만 이전 방식의 운동은 하고 싶지 않았던 이들이 많았습니다. 당시 피스보트로 대안적인 운동을 찾는 이들이 많이 왔습니다. 활동 시작 당시에는 예전 식민지였던 나라를 배로 방문한다는 계획에 대해 ‘놀러가는 것 아니냐’며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윗세대도 많았습니다.”

ㅡ목표는 무엇이었고 어떻게 활동해왔나요. 

“당시 슬로건에 내걸었던 활동 목표는 이것입니다. ‘과거의 전쟁을 제대로 보고 미래의 평화를 만들자, 국경을 넘어, 서로 얼굴이 만나고 아는 관계를 만나자’는 것입니다. 

1983년 9월 2일이 첫 출항한 날이었습니다만, 출항 전날인 9월 1일 사할린 근방에서 대한항공 여객기가 소련영공을 침범했다고 미사일 공격을 받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피스보트가 시작된 시기는 이처럼 냉전이 계속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피스보트는 의식적으로 다른 체제를 가진 나라로 가려고 시도했습니다. 동남아시아의 필리핀이나 싱가포르 외에, 체제가 다른 중국이나 베트남도 갔던 이유입니다.

1991년에는 한반도 남과 북을 모두 방문했습니다. 북쪽에는 ‘피스보트’라는 이름으로, 남쪽에는 ‘평화의 여행자’라는 이름으로 서로 다른 배를 이용해 들어갔습니다. 남북한 정부차원에서는 같은 단체인줄 알았겠지만 형식을 달리해 들어갈 수 있었고, 이렇듯 체제가 다른 양쪽과 모두 교류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90년대 들어와서는 지금과 같은 세계일주를 하기 시작했고, 99년부터는 1년에 3차례씩 세계일주 크루즈를 진행했습니다. 체제가 다른 국가를 의식적으로 방문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ㅡ피스보트 활동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시는지요. 

“피스보트는 사회문제에 관심없는 사람들에게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그런 사람들을 늘려나가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처음엔 그리 관심이 없던 역사문제, 지뢰문제 등 사회적 문제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를 들으면서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죠. 

또한 피스보트를 통해 젊은 세대가 활동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정권을 바꾸는 건 쉽지 않아도, 작고 구체적인 변화를 만드는 것은 가능합니다. 예를들어 피스보트에서는 ‘캄보디아 지뢰없애기 100엔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피스보트 자원봉사자들이 가두모금 활동을 했고, 모금액에 따라 일정한 면적의 지뢰를 제거한 뒤, 그 자리에 학교를 건설하고 축구장을 만들었습니다. 배를 타기 전에 모금봉사 활동을 했던 이 친구들이 이번에는 피스보트를 타고 그 학교에 직접 가서 어린이들과 교류활동을 진행한 것입니다. 자기가 움직인 것 만큼 어떤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지 직접 눈으로 보게 되는 것이죠. 직접 정권을 바꾸고 변화를 만들어 온 한국과 달리 정권을 교체해 본 경험이 없는 일본시민사회로서는, 젊은 세대들이 자기들의 작은 힘으로나마 변화를 이루어내는 경험을 하도록 돕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피스보트 지뢰제거프로젝트 ⓒPEACEBOAT

ㅡ지금까지 효과는 있었습니까. 

“현재 아베 정부 하에서 후퇴한 것들이 정말 많습니다. 피스보트 활동이 오래됐지만, 일본 안에서 바뀐 부분이 크지 않다는 것이죠. 그러나 한편으로는 피스보트를 탔거나, 피스보트와 인연이 있는 이들 중 일본 NGO에서 활동을 이어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피스보트를 계기로 지방에서 사회활동을 했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ㅡ피스보트는 크루즈를 운영한다는 면에서 사업적인 측면은 어떻습니까. 

“참가자 모집은 여행사가 하고, 참가비도 모두 여행사로 들어갑니다. 우리는 여행사와 계약이 되어 있고 크루즈에서의 각종 프로그램과 관련한 기획 위탁비를 받는 방식입니다. 또한 선박운용사도 따로 있어 크루즈의 운영에 관한 전문적인 부분을 맡게 됩니다. NGO인 피스보트, 여행사, 선박운용사의 3자간의 협력체제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승선객은 참가자 모집 포스터를 보고 신청하신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자원봉사자들은 포스터를 붙이는 만큼 포인트가 적립돼, 크루즈 가격을 면제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젊은 친구들이 자원봉사자로 많이 참여합니다. 젊은 자원봉사자들이 많이 참여할수록 포스터는 널리 공유되고 일반 시민들의 참여도 느는 구조입니다.”

ㅡ크루즈 사업 외에 재난대응사업도 진행하는 것으로 압니다. 어떤 맥락인지 궁금합니다. 

“피스보트가 재난대응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94년 한신-아와지 대지진(고베대지진)이 났을 때였습니다. 그 당시 피스보트의 직원 및 자원봉사자들은 당시 피해가 가장 큰 곳인 나가타 지역으로 갔습니다. 현지에서 피스보트는 ‘데일리 니즈(Daily Needs)’라는 신문을 발행했습니다. 당시 대중매체에서 보여주는 재난에 관한 정보들은 너무 큰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기 힘들었고, 정작 재난피해자들에게 당장 필요한 실제적인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평소 피스보트를 운항할 때에 배안에서 승객들을 위한 정보를 담은 신문을 매일 제작해 배포했기 때문에 그 경험들을 현지에서 잘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2011년에는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피스보트는 미야기현 이시노마키라는 지역에서 구호활동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전국에서 많은 수의 자원봉사자들이 피해 지역으로 모였는데, 이들을 총괄할 수 있는 곳이 없어 현지인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피스보트는 평소에도 다수의 자원봉사자를 조직해 활동해왔기 때문에, 그간의 경험을 살려 재해현장에 적용했습니다. 2011년부터 3년간 8만7504명이 피스보트를 통하여 자원봉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재난대응활동은 ‘피스보트 재해볼런티어센터(ピースボート災害ボランティアセンター)’라는 이름의 별도 법인으로 독립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ㅡ피스보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자격을 갖춰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특별한 자격조건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학력도 상관없습니다. 피스보트에선 별도의 모집공고를 내진 않습니다. 피스보트를 탄 적이 있는 사람, 자원봉사를 했던 사람들 중에 활동하고 싶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함께 일하게 되는 방식입니다. 

일반적인 취업 면접을 통해선 그 사람에 대해서 잘 알기가 힘듭니다. 피스보트는 한 배를 타기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해 잘 알 수 있습니다. 참가자들 또한 한 배를 타고 활동하며 피스보트가 본인이 생각했던 것과 같은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어학이 필요한 업무의경우 배 안에서 통역 자원봉사 한 사람에게 권유하는 편이며, 앞으로는 더 많은 국적의 사람들이 타게 되므로 다양한 어학 가능자의 수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평화, 환경, 인권문제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하고, 보통은 반년 정도 같이 일한 뒤 계속 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합니다.”

ㅡ피스보트가 그리는 미래는 어떤 모습입니까.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승선객이 일본인이었고 도착하는 나라에서 외국인과 교류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제는 한국, 중국, 타이완, 말레이시아, 싱가폴 등 매해 100명 이상의 외국인이 승선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승객의 반이상이 여러나라 사람들로 채워지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한국의 환경재단과 같이 하는 ‘피스앤그린보트(Peace&Green Boat)’같은 공동프로젝트도 있습니다. 그리고 화석연료가 아닌 친환경 배를 준비중 입니다. 몇년 내로 세계최초의 친환경 크루즈인 ‘에코쉽’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한일관계’에 대해서도 말했다. “현재 한국이 갖고 있는 반일감정은 ‘현재의 일본’이 아닌, 과거 아시아 국가들을 침략하고도 제대로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그림자를 반대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다른 일본인들에게 이야기한다”고 했다. 피스보트는 평화의 메시지를 담는 하나의 커다란 그릇이지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었다. 평화를 향한 새로운 관계에 대한 강한 의지가 묻어나는 얘기였다.

※ 통역: 허미선(피스보트 스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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