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혁신에 관한 한·중·일 세 나라의 생각
– ‘시민에 의한 사회혁신’을 주제로 열린 제7회 동아시아시민사회포럼 –
‘사회혁신’, 최근 많이 들려오는 이 단어는 좀처럼 설명하기도,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현란한 단어의 향연 속에 ‘사회혁신’ 역시 한 때의 유행어로 그칠지, 아니면 실제 변화를 만들 흐름이 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마침, 이 쉽지 않은 주제를 가지고 한·중·일 세 나라의 생각을 들어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고 해서 참가해보았다. 지난 11월 17일, 신주쿠 ‘JICA 글로벌플라자 국제회의실’에서 ‘제7회 동아시아 시민사회 포럼(EACSF. East Asia Civil Society Forum)’이다.
‘동아시아 시민사회포럼’은 2009년, 한·중·일 자원봉사분야 시민사회단체가 중심이 되어 결성된 정기교류회로, 3개국을 순회하며 선정된 이슈에 대해 각국의 경험과 과제를 나누는 행사다. ‘시민사회와 사회혁신’을 주제로 진행된 이날 포럼에는 한·중·일 3개국 80여명의 시민사회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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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조연설에 나선 나카무라 요이치(사진) 릿쿄대 교수는 “긍·부정 양면이 있겠지만 일본에서도 시민사회활동과 비즈니스의 결합, 기업의 사회적 과제에 대한 반응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의 상태를 수긍할 수 없는 사람,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사회 전반에 ‘우리가 정말 행복한 사회를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물질적 풍요로움’과 ‘마음의 풍요로움’을 넘어, 새로운 멘탈리티(mentality)에 대한 추구가 시작된 것이다.
나카무라 교수는 “‘빵’만으로도 살 수 없고 ‘정의’만으로도 살 수 없는 지금, (영리와 비영리의 결합은) ‘새로운 행복’을 이루고자 하는 노력의 한 면”이라면서 “이럴 때일수록 ‘사회혁신’을 목표로 한 ‘소셜디자인’이 유용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날 발표된 일본의 사례들은 자기 분야에 대한 깊은 고민과 실천을 담고 있어 참가자들에게 자극이 됐다. ‘소셜파이낸스 연구회’의 고바야시 다쓰아키 대표는 사회혁신 프로세스인 ‘계기’→‘제안’→‘표준화’→‘지속화’→‘규모확장’→‘시스템변화’의 각 발전단계에 특화된 금융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표준화 단계에선 ‘크라우드 펀딩’, 지속화 단계에서는 ‘성장자본’, 규모확장 단계에선 ‘자선채권’, 시스템변화 단계에선 ‘임팩트투자 시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창업지원과 인재양성의 기능을 모두 가진 ‘ETIC(대표 미야기 하루오)’은 일반벤처, 소셜벤처, 시민사회단체 모두에게 인큐베이션 및 인력지원 서비스를 하고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피해지역에 청년인재를 파견하고 창업을 지원하는 등 새로운 ‘경제재생’ 접근법을 보여주기도 했다.
중국 측에서는 오랜 기간 ‘지역사회’에 뿌리를 두고 활동 중인 젊은 리더들의 사례발표가 이어졌다. 저장성 항저우 지역의 ‘자오텐송(Zhao Tiansong)’은 지역사회 영리기업과 사회복지기관을 거쳐, 재난구조 및 노인보호에 특화된 NGO를 설립했다. 스스로 시민사회를 만들어가는 중국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사례였다.
광동성 봉캉진 지역의 ‘린란(Lin-Lan)’은 봉캉진 당위원회의 부서기로, ‘학부모 자원봉사팀’을 만들었다. 37명으로 시작했던 학부모 자원봉사팀은 10여년 후 6000명 규모로 성장했으며, 중앙정부의 관심도 받게 됐다. 이 단체는 현재 지역사회의 작가협회, 서예협회, 미술가협회, 음악가협회 등 다양한 사회조직들을 지역하회 교육에 활용하는 플랫폼으로 도약 중이다. ‘중국에 시민사회가 있는가?’라는 의문을 가진 사람이 많은 가운데, 중국의 변화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사례들이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사회혁신기관으로는 ‘희망제작소’의 사례가 공유됐다. 개별사례로는 교육 불평등 해소를 위해 뛰는 청년 소셜벤처 ‘점프(JUMP)’가 소개됐다. 점프는 사회인들이 대학생 자원활동가를 멘토링하고, 멘토링 교육을 받은 대학생이 취약계층 자녀들의 공부를 돕는 시스템을 통해 교육기회 격차 해소에 기여하고 있다.
점프는 기존 교육봉사 단체들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공급자 위주’, ‘일회성’, ‘하드웨어 중심’, ‘참여자의 의존’하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나름의 방법을 고안했고, 그 결과 대기업·지자체·공공재단 등과 협업하는 주요 교육복지 단체로 성장했다. 한·중·일이 모두 ‘교육불평등’의 문제를 갖고 있는 가운데, 점프가 발표자 중 가장 깊은 내용을 발제함으로서 참가자들로부터 호응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사례 공유 후, 무라카미 테츠야 실행위원장은 사회혁신 비전공자의 입장에서 본 행사를 통해 ‘사회혁신’에 대해 느끼게 된 바를 다음과 같이 나눴다. 대단한 학술적 정의는 아니지만, 사회혁신에 대한 직관적인 이해로 우리도 한번 생각해볼만한 이야기이기에 공유한다. 명확히 합의된 정의가 없다 하더라도, 사회혁신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공통적으로 갖게 되는 생각이 아닐까 싶다.
“난처한 사람을 돕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난처한 사람들이 생기지 않게 구조를 바꾸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사회혁신이다.”
“우리 주변에 더 이상 ‘남의 일’이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다. 사회문제를 자기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참여할 수 있어야한다.”
“사회혁신은 사람과 사회의 가치관을 전환시키는 일인 것 같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고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한다.”
나카무라 요이치 릿쿄대 교수는 “사회혁신이란 ‘과제를 안고 있는 선진국’이 ‘과제를 해결한 선진국’으로 변모하기 위해 사회구조와 시민 참여방법을 바꾸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해 나가는 것”이라면서 혁신가들에게 “번잡한 논의에 빠지지 말고 실천에 집중해달라”는 말을 남겼다.
혁신가들은 이미 서로 공감대가 있다. ‘혁신을 해석하려하지 말고, 혁신을 행하는데 더 집중해야 할 것’. 이것이 사회혁신을 꿈꾸는 사람들이 이번 행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결론이 아닐까 싶다.
※ 내년 ‘제8회 동아시아 시민사회포럼’은 ‘(사)한국자원봉사포럼’의 주최로 한국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동아시아 시민사회포럼 각국 주최단체>
-한국: (사)한국자원봉사포럼 http://www.kvf.or.kr/
-중국: 中国国际民间组织合作促进会 http://www.cango.org
-일본: 公益財団法人 公益法人協会 http://www.kohokyo.or.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