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적을 위한 과제가 아니라,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사회문제를 깊이 파고드는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프로젝트 기반 학습(PBL·Project Based Learning)을 경험할 수 있는 수업을 찾기 어려웠고, 기회가 생기더라도 내가 진정으로 관심 있는 주제를 정해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갈 수 있는 자리는 흔치 않았다.
그러던 중 유일한 아카데미를 만났다. 생명공학 전공생으로서 제약·바이오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지원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우리 3조는 ‘희귀난치성 질환과 신약 접근성’을 주제로 선택했다. 희귀난치성 질환 환자를 위한 신약 개발에 기여하는 것은 나의 오랜 꿈이었다. 그렇기에 이 주제만큼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반드시 깊이 탐구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활동을 시작하자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이 드러났다. 우리 조를 제외하면 제약·바이오 분야를 정면으로 다루는 팀이 없었고, 이 분야에 대해 깊이 있는 조언을 구할 전문가와의 접점도 충분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아쉬움이 컸지만, 돌아보면 그 공백이 오히려 우리를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었다.
조장을 따로 정하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프로젝트 전체를 기획하고 이끄는 역할을 맡았다. 우리가 처음 세운 가설은 ‘희귀난치성 질환 환자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복잡한 행정 절차일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이민지 전 궤양성대장염 환우회 UC사랑회 회장을 인터뷰했다.
인터뷰 결과, 우리의 가설이 궤양성대장염과 같은 염증성 장질환(IBD) 환자의 현실과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공들여 세운 가설이 틀렸다는 점이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이를 인정하고 방향을 수정하면서 오히려 더 중요한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정해놓은 답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질문 자체를 바꾸는 것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라는 사실도 배웠다.
주제를 다시 고민하던 중 유한양행이 고셔병 신약 후보물질 ‘YH35995’를 개발하고 있으며,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의약품청(EMA)으로부터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았다는 기사를 접했다. 이를 계기로 유일한 아카데미를 통해 유한양행 박민영 부장과의 인터뷰를 성사시켰다.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정보 사각지대가 큰 질환 가운데 하나인 고셔병을 대표 질환으로 선정했다. 정보가 특히 부족한 질환에서도 작동하는 해결책을 만든다면 다른 희귀질환에도 확장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후 국내 고셔병 권위자인 유한욱 교수에게 자문을 구하고, 그의 저서 ‘고셔병은 치료제가 있는 희귀질환입니다’를 정독했다. 국제고셔병협회(IGA)와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에도 직접 연락해 자문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전문가와 환자단체를 찾아 연락하고, 흩어진 정보를 모아 프로젝트의 방향을 구체화하는 모든 과정이 우리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물론 순탄한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예상과 달리 팀 안에서 역할을 다시 나눠야 하는 때도 있었다. 환자 수가 적은 희귀질환을 주제로 삼은 만큼 도움을 줄 전문가와 환자를 찾고 연락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완성도 높은 결과물, 실제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해결책을 만들고 싶었다. 필요한 일이 생기면 비어 있는 역할까지 맡으며 프로젝트에 몰두했다.
덕분에 프로젝트의 일부만 수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체 흐름을 이해하며 기획하고 조율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조원들과 밤낮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의견을 나누고 자료를 정리한 시간은 나를 한 뼘 더 성장시켰다. 프로젝트의 큰 그림을 그리고 끝까지 끌고 간 경험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오래 남을 자산이 될 것이다.
우리 조는 고셔병 환자를 위한 가이드북과 팸플릿, 익명 커뮤니티 웹앱 ‘얼룩(Alook)’의 프로토타입과 목업을 완성해 최종 발표를 마쳤다. 그러나 조원 모두 프로젝트를 여기에서 멈추고 싶지 않다는 데 뜻을 모았다.
앞으로 다양한 의견을 반영해 결과물을 계속 보완하고, 실제 배포할 수 있는 단계까지 발전시킬 계획이다. 처음 문제를 탐색하며 살펴본 염증성 장질환을 비롯해 고셔병 이외의 희귀질환으로도 솔루션을 차츰 확장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의 끝에 실제 환자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결과물이 남기를 바란다.
활동 내내 마음에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 박사의 정신이었다. 기업이 얻은 이익은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는 그의 신념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우리 팀이 프로젝트를 설계하는 방식에도 스며들었다.
우리는 커뮤니티 ‘얼룩’을 비영리로 운영하면서 유한양행의 신약 개발 사업과 연계해 기업에는 사회적 가치를, 환자에게는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구조를 제안했다. 이번 활동을 통해 나 역시 나만의 이익을 좇기보다 주변과 사회를 한 번 더 돌아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김수아 성균관대 융합생명공학과 재학생(2026 유일한 아카데미 수료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