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혁신발언대] 흩어진 희귀질환 정보, ‘Alook(얼룩)’으로 잇다

“환자들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이민지 전 궤양성대장염 환우회 회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듣게 된 이 한 문장이 우리 팀의 방향을 바꿨다.

유한양행 유일한 아카데미 2026에 지원할 당시 나는 보건통계를 전공하는 대학원생이었다. 데이터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방법은 배웠지만, 정작 그 데이터 뒤에 있는 사람을 직접 만나본 적은 없었다. 우리 조가 세운 첫 가설은 명확했다. 희귀질환 환자의 가장 큰 어려움은 산정특례와 같은 복잡한 행정절차일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가설은 첫 인터뷰에서 곧바로 뒤집혔다. 궤양성대장염이나 크론병 같은 IBD 계열 질환은 환자 수가 비교적 많고, 확진 시 병원에서 산정특례를 안내받을 수 있어 예상만큼 행정적 어려움이 크지 않았다.

오히려 환자들이 겪는 문제는 필요한 정보가 여러 곳에 흩어져 있어 찾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특히 환자 수가 극히 적은 희귀질환에서는 이 문제가 더욱 두드러졌다. 정보 자체가 부족한 데다, 같은 질환을 겪은 환자를 만나 경험과 정보를 나누기도 어려워 정보 비대칭성이 한층 심각했다.

이에 우리 조는 프로젝트 대상을 고셔병으로 좁혔다. 고셔병은 정보 사각지대가 큰 희귀질환인 만큼, 가장 정보 접근이 어려운 질환에서도 작동하는 해결책을 만든다면 다른 희귀질환으로도 확장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후 우리 조는 총 9차례의 인터뷰와 자문을 거쳤다. 궤양성대장염 환우회 전 회장을 시작으로, 유한양행 임상전략기획팀, 국내 고셔병 권위자인 유한욱 분당차여성병원 소아청소년과·임상유전체의학센터 교수, 국제고셔병협회(IGA),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에 이르기까지, 환자와 의료진, 기업, 환자단체의 목소리를 두루 들었다.

희귀질환 확진까지 걸리는 시간이 평균 9.2년이라는 숫자는 리서치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9.2년이 한 사람의 일상을 어떻게 바꿔놓는지는 인터뷰를 통해서야 비로소 알게 됐다. 그렇게 얻은 결론을 바탕으로 두 가지 해결책을 만들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진단 전 의심 단계부터 치료와 일상 관리까지를 한 흐름으로 정리하고 의료진 검토를 거친 환자 가이드북이고, 두 번째는 가이드북과 연결되는 익명 커뮤니티 웹앱 ‘Alook(얼룩)’이다.

희귀질환은 질환명과 지역, 연령만으로도 개인이 특정될 수 있다. 첫 인터뷰에서 들었던 “환자들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문제를 서비스 설계에도 반영했다. 본인 인증과 익명 활동을 분리하는 구조를 기본으로 설계하고, 비슷한 상황의 환우끼리 경험을 나눌 수 있도록 1대1 멘토링 기능을 더했다. 아이디어에 그치지 않기 위해 실제 접속 가능한 웹앱 프로토타입까지 구현했고, 발표 현장에서는 QR코드로 누구나 직접 접속해볼 수 있도록 했다.

다음 단계는 동일한 가이드북 구성과 커뮤니티 구조를 파브리병, 혈우병, 뮤코다당증 등 다른 희귀질환으로 확장하고, 환우회와 연계해 초기 이용자와 멘토를 확보하는 것이다. 특히 희귀질환 분야는 서비스의 규모보다 환자의 신뢰를 얻는 것이 먼저라고 판단해, 비영리 운영을 전제로 방향을 설정했다.

프로그램을 마치며 남은 것은 결과물보다 문제를 바라보는 방법이었다. 데이터는 문제의 크기와 방향을 보여줄 수 있지만, 그 숫자 뒤에 있는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까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직접 만나 묻고, 예상과 다른 답을 받아들이며 다시 문제를 정의하는 과정에서 상대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돌이켜보면 그 과정 속에서 타인을 먼저 생각했던 유일한 박사님의 정신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희귀질환 환자의 여정은 길고 낯설다. 그 길을 혼자 걷지 않도록 사람과 정보 사이의 빈틈을 연결하는 일을 앞으로도 이어 나가고 싶다.

이혜민 건국대 생명과학특성학 석사과정(2026 유일한 아카데미 수료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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