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이맘때만 해도 필자에게 ‘AI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말은 막연한 배움의 열정으로만 남아 있었다. 관련 공부를 하고 여러 자료를 찾아보긴 했지만, 정작 그 열정을 실제 프로젝트로 옮겨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유일한 아카데미 2기 활동을 통해 수도권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한 참여형 AI 팟캐스트 ‘소리상회’를 기획하고 발표하기까지의 시간을 지나오면서, 그 막연함은 구체적인 확신으로 바뀌었다.
처음 팀을 꾸리고 주제를 정할 때, 우리는 “누구의 목소리가 가장 듣기 어려운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은 이미 여러 갈래로 존재했다. 그런데 자료를 조사할수록 눈에 띈 것은, 노인복지 정책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매우 높은데도 실제로는 지속적으로 이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75세 이상 노인의 생활편의 서비스 이용률은 16.4%로, 청년층(171.8%)의 약 10분의 1 수준에 그쳤다. 많은 정책과 서비스가 앱이나 비대면 방식으로 설계되면서, 정작 그것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고령층에게는 문턱이 오히려 더 높아진 셈이었다. 정책이 없어서가 아니라, 노인 개개인의 삶의 방식에 맞춰지지 않아 이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여러 사회적 약자 중에서도 노인을, 그중에서도 수도권 독거노인을 선택한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청년이나 장애인 등 다른 취약계층에게는 또래 커뮤니티나 온라인 네트워크가 그나마 존재하지만, 고령층은 배우자와 사별하고 자녀가 독립하고 친구들마저 하나둘 세상을 떠나면서 관계망 자체가 줄어드는 특성이 있었다. 게다가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려, 기존의 디지털 기반 해법이 잘 닿지 않는 사각지대이기도 했다.
반면 ‘말로 건네고 말로 듣는’ 방식은 라디오 세대인 어르신들에게 오히려 익숙한 접근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AI가 어려운 기술이 아니라 가장 자연스러운 말동무가 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수도권은 사회적 인프라가 뛰어나지만, 정작 그 안에서 살아가는 독거노인들은 그 혜택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 채 오히려 단절감을 느끼는 사회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실제로 2025년 5월 기준 65세 이상 인구 중 1인 가구 비율은 23.6%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서울연구원이 발표한 조사에서는 서울시 1인 가구의 62.1%가 외로움을 경험하고 있으며 13.6%는 사회적으로 고립된 상태라고 답했다. 병원도 복지관도 지하철역도 가까이 있는 도시인데, 오히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익명성이 짙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수치를 마주하고서야 새삼 실감했다.
이 지점에서 ‘소리상회’라는 이름이 나왔다. 예전 동네 어귀에 있던 상회처럼, 오가며 들르고 안부를 묻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이를 AI 팟캐스트라는 형태로 다시 만들어보고자 했다.
소리상회는 한마디로 말하면 음성 기반의 AI 팟캐스트다. 우선 가장 가까운 복지관을 기준으로 저마다의 ‘주파수’를 만들었다. 청년들이 봉사활동을 통해 복지관과 맞닿을 수 있고, 그 인연이 훗날 오프라인 만남으로 이어지거나 우리 동네 지도를 만드는 정보가 되어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어르신의 휴대폰에서는 짧은 질문 하나가 흘러나온다. 어르신이 그 질문에 음성으로 대답하면 소리상회는 그 말을 텍스트로 옮기고, 어르신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정리한다. 라디오처럼 일방적으로 들려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상회는 끊임없이 어르신에게 말을 건네고 대답을 기다린다. 그렇게 매일 말하는 습관이 조금씩 쌓여간다.
비슷한 사연과 유독 특별한 사연은 모아져 다음 날의 라디오 방송이 되고, 방송이 끝나면 또 다른 질문이 흘러나와 다시 대답을 기다린다. 이 단순한 순환이 반복되면서 어르신의 하루는 조금씩 소리로 채워진다. 이렇게 매일 말하고 듣는 시간이 쌓이면 어르신의 건강과 마음도 조금씩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옆 동네 할아버지가 궁금해지고, 만나보고 싶어지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럴 때를 대비해 우리는 ‘우리 동네 지도’를 만들어 달력처럼 나누어 드리기로 했다. 예전의 전화번호부처럼 이웃의 위치를 알 수 있게 하고, 설령 몸이 불편해 직접 움직이지 못하더라도 ‘내 곁에 이웃이 있다’는 마음의 안심을 드리고 싶었다.
기획 단계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기술이 아니라 어르신 한 분 한 분의 개성을 놓치지 않는 일이었다. 부천시에서 만난 스물여덟 분의 어르신은 저마다 성격도, 말투도, 살아온 이야기도 모두 달랐다. 한 번 말문이 트이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이야기를 이어가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몇 마디를 건네도 짧은 대답만 돌아오는 분도 있었다. 그렇게 각기 다른 스물여덟 개의 하루를 한 분씩 들여다보면서, 우리는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나이가 들수록 고독감은 오히려 더 깊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순간은 독거노인 가정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건강 리더 선생님을 만났을 때였다. 오랫동안 말할 상대가 없어 실어증에 가까운 상태가 되거나, 성대를 거의 쓰지 않아 목소리 자체를 잃어가는 어르신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소리상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해졌다. 그럴듯한 대화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어르신이 오늘 하루도 소리 내어 말할 이유와 책임을 만들어 드리는 일이었다.
이 질문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화려하게 답하기보다, 어르신이 오늘도 목소리를 낼 이유를 만들어 주는 사람이 되자’라는 나만의 원칙을 세웠다. 대본을 고칠 때마다 정보를 많이 담기보다 한 문장씩 덜어내고, 질문을 던진 다음에는 반드시 대답을 기다리는 여백을 넣어 어르신이 직접 입을 열 틈을 만든 것도 이 원칙 때문이었다. 실제 질문은 노인분들의 수요에 관한 설문조사를 통해 가족 이야기, 어린 시절의 경험 등을 중심으로 큰 틀을 나눠 구성했다. ‘높은 응답률’을 기반으로 한다는 원칙은 기획 회의에서도, 실제 어르신들을 만나 파일럿 테스트를 진행할 때도 흔들리지 않는 판단 기준이 됐다.
유일한 아카데미 활동이 끝난 후 되돌아보았을 때, 그 시간은 단순히 프로젝트 결과물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단체 안에서 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낯선 사람을 막연하게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어려움을 발견하고 분류하는 과정, 팀원들과 의견이 충돌할 때 조율하는 법, 그리고 완벽하지 않아도 일단 시도해 보는 용기까지, 소리상회는 나에게 결과물 이상의 것을 남겼다.
유일한 아카데미 활동은 끝났지만, 소리상회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활동 중 진행했던 현장 검증은 어르신 한 분이 앱을 한 번 사용해 보고 반응을 살피는, 사실상 1회성 체험에 가까웠다. 실제 소리상회가 정말 어르신의 하루하루에 스며들 수 있는지, 대화를 반복할수록 관계가 깊어지는지를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앞으로는 활동 중 연락이 닿았던 부천시 사회협동조합 산하 복지관과 협력해 한 달간 시범 서비스를 운영하고 싶다. 하루이틀이 아니라 한 달이라는 기간을 두고 어르신들이 소리상회를 실제 일상 속에서 반복해서 사용하시게 한다면, 어떤 대화 주제에 더 오래 머무르시는지, 어떤 질문에 유독 말수가 늘어나는지를 데이터와 목소리를 통해 함께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쌓인 피드백을 바탕으로 콘텐츠를 한 분 한 분의 삶에 더 가깝게 고도화해 나가고 싶다.
박지원 아주대 생명과학과 재학생(2026 유일한 아카데미 수료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