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유일한 아카데미] 노연홍 회장 “한국, 신약 파이프라인 세계 3위… 이제 AI가 승부 가른다”

신약개발 생산성 저하 속 의료데이터·IT 경쟁력 주목…렉라자 사례로 협업 강조

“인공지능(AI)과 결합된 디지털 기술을 적극 활용하면 제약·바이오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 수 있습니다.”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이 한국 제약바이오산업의 다음 도약을 이끌 핵심 동력으로 ‘AI와 데이터’를 꼽았다. 글로벌 제약사와 비교하면 자본과 연구개발(R&D) 투자 규모에서 여전히 격차가 크지만, 한국이 보유한 신약 후보물질과 의료 데이터, 정보기술(IT) 경쟁력을 결합하면 신약개발 생산성을 높이고 글로벌 시장과의 격차를 좁힐 수 있다는 설명이다.

노 회장은 11일 서울 동작구 유한양행 윌로우하우스에서 열린 ‘2026 유일한 아카데미 수료식’에서 ‘제약·바이오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특강했다. 노 회장은 보건의료 정책과 산업 현장을 두루 경험한 전문가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본부장과 대통령실 보건복지비서관, 식품의약품안전청장 등을 거쳐 현재 한국제약바이오협회를 이끌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300여 개 제약·바이오 기업이 회원사로 참여하는 산업 대표 단체로, 업계의 의견을 모아 정부에 전달하고 정책·제도 개선과 신약개발, 산업 경쟁력 강화를 지원한다.

◇ 3조원·15년 드는 신약개발…갈수록 낮아지는 성공 확률

이날 노 회장이 가장 강조한 것은 갈수록 떨어지는 신약개발의 생산성이었다. 그는 글로벌 빅파마(거대 제약사)조차 자체 연구만으로 허가받는 신약의 비중이 높지 않다며, 신약개발에 필요한 비용과 기간은 갈수록 늘어나는 반면 성공 가능성은 낮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과거 통상 1조 원, 10년가량이 필요하다고 여겨졌던 신약개발에는 최근 약 3조 원 규모로 15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투자 대비 신약개발 성과가 떨어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 이른바 ‘이룸의 법칙(Eroom’s Law)’이다. 자본력이 글로벌 빅파마에 미치지 못하는 국내 기업으로서는 기존 방식만으로 경쟁하기 어려워진 만큼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게 노 회장의 진단이다.

노 회장은 그 해답으로 AI와 데이터를 제시했다. 그는 “한국은 전 국민 건강보험 체계에서 축적된 양질의 보건의료 데이터와 높은 수준의 IT 기술을 갖추고 있어, 이를 신약개발에 활용하면 선진국과의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도 AI를 실제 신약개발 과정에 적용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여러 제약사와 병원, 연구기관이 참여하는 연합학습 기반 ‘K-MELLODDY’ 프로젝트다. 기업들이 보유한 데이터를 외부로 직접 반출하지 않고도 공동 알고리즘을 통해 신약개발에 필요한 흡수·분포·대사·배설·독성(ADMET)을 예측하는 방식이다.

연구자가 개발 목표를 입력하면 로봇과 자동화 장비가 스스로 화합물을 만들고 분석하는 ‘자율주행 실험실(Self-Driving Lab·SDL)’도 협회 내에 구축했다. 기존 임상시험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새로운 임상시험 설계에 활용하고 실패 가능성을 낮추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 기업 넘어 생태계로…바이오벤처·제약사·글로벌 기업 ‘연결’

노 회장은 오픈이노베이션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막대한 자본과 기술을 한 기업이 모두 보유하기 어려운 만큼 바이오벤처와 국내 제약사, 글로벌 기업이 각자의 강점을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 회장은 유한양행의 폐암 신약 ‘렉라자’를 대표 사례로 들었다. 국내 바이오벤처가 발굴한 후보물질을 유한양행이 도입해 개발하고 글로벌 기업과 협력해 세계 시장으로 확장한 사례로, 노 회장은 이를 바이오벤처와 제약사, 글로벌 기업이 역할을 나눠 신약을 개발한 대표적인 오픈이노베이션 사례로 평가했다. SK바이오팜의 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 역시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과 허가, 미국 시장 진출까지 이어진 국내 신약개발 역량을 보여주는 사례로 언급했다.

한국 제약바이오산업의 성장 가능성은 높게 평가했다. 피치솔루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의약품 시장 규모는 세계 11위 수준이지만, 신약개발 역량을 보여주는 파이프라인 수는 2026년 3259개로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다. 노 회장은 “우리나라에서 주목할 것은 파이프라인 숫자”라며 “신약 창출과 기술수출 흐름까지 고려하면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갖춰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약개발에는 막대한 자본뿐 아니라 규제, 임상시험, 인재, 연구개발 지원 등 여러 영역이 맞물리는 만큼 산업 전반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 회장은 “정부 역시 바이오헬스혁신위원회와 국가바이오위원회 등을 통해 관련 정책을 조율하고 있으며, 규제 개선과 R&D 지원, 인재 양성, 글로벌 진출 기반 확대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편, 유일한 아카데미는 유한양행과 더나은미래가 공동 주최한 문제기반학습 프로그램이다. 제약·바이오를 비롯한 헬스케어 분야에 관심 있는 청년들이 현장의 문제를 직접 발굴하고, 이해관계자 인터뷰와 아이디어 구체화 과정을 거쳐 해결책을 제안하도록 구성됐다. 올해는 총 36명의 학생이 6개 조로 나뉘어 청년층 건강관리·의약품 오남용, 정신건강 접근성, 희귀난치질환·신약 접근성, 고령층 의료정보·복약관리, 취약계층·장애인 의료접근성, 고령층 돌봄·건강 사각지대 등을 주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날 열린 최종 성과공유회에서는 고령층을 위한 복약 정보 기록 및 전달 플랫폼 ‘약손’을 개발한 6조가 대상을 받았다. 비만치료제 허위·과장 광고 판별 솔루션 ‘위고업’을 제안한 2조가 최우수상, NFC 기반 음성 복약 안내 플랫폼 ‘약톡’을 개발한 4조가 우수상을 수상했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댓글 작성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더나은미래 특별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