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점자를 ‘화면’으로…50년 난제 풀고 세계시장 두드린 ‘닷’ 

[임팩트를 짓다] 김주윤 닷 대표
그림·그래프 읽는 촉각 디스플레이 개발
美 교육시장·글로벌 빅테크 진출…코스닥 상장 도전

“창업을 위한 창업을 하다 보니 오래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의미가 있고, 우리가 돕는 사람들이 실제로 기뻐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시각장애인을 위한 접근성 기술(Accessibility Tech) 기업 닷(Dot Inc.)의 김주윤 대표는 창업 계기를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닷은 시각장애인을 비롯해 디지털 정보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위한 촉각 디스플레이와 접근성 기술을 개발하는 소셜벤처다. 2015년 설립 후 2024년 중소벤처기업부 ‘예비유니콘’에 선정됐고, 올해 신설된 ‘유니콘브릿지’ 50개 기업에도 이름을 올리며 코스닥 상장에 도전하고 있다. 

◇ “박물관 유물 같던 점자책”…편견 깬 스마트워치 

김 대표가 처음부터 장애 분야 창업을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20대 초반 유학생 연결 플랫폼 등 여러 사업에 도전했지만 큰 의미를 찾지 못했다. 전환점은 대학 시절 찾아왔다. 지체장애가 있는 친구들과 약 2년간 셰어하우스에서 함께 살며 장애를 ‘자연스러운 다름’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그러다 우연히 시각장애인이 읽는 점자 성경책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마치 박물관에 있는 고대 유물 같았습니다. 부피가 엄청나게 컸죠. 종이책이 전자책으로 바뀌는 시대인데, 왜 시각장애인의 기술 발전은 이렇게 느릴까 의문이었습니다.” 

당시 시각장애인들이 쓰던 전자 점자기기는 수백만 원에 달했고, 수십 년간 기술적 진보도 거의 멈춰 있었다. 김 대표는 이 문제를 직접 풀기로 했다. 

닷이 2017년 내놓은 첫 제품은 점자 스마트워치 ‘닷 워치(Dot Watch)’다. 스마트폰과 연결해 시간, 문자메시지, 알림 등을 움직이는 점자 핀으로 확인할 수 있다. 맹학교와 복지관을 찾아다니며 파악한 시각장애인들의 가장 큰 니즈는 뜻밖에도 ‘예쁜 디자인’이었다. 장애인용 기기는 투박하다는 편견을 깨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닷 워치는 칸 라이언즈, iF 디자인 어워드 등 글로벌 디자인 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닷의 이름을 알렸다.  

◇ 50년 난제 푼 촉각 디스플레이 ‘닷 패드’

현장 인터뷰는 동시에 닷이 다음 문제를 발견하는 계기가 됐다. 기존 점자기기는 텍스트를 한 줄로만 읽을 수 있어 수학 분수식이나 그래프, 지도 등 시각 정보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김 대표는 “가로로 글을 읽다 세로로 배열된 수학 공식을 만나면 벽에 부딪힌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기술과 도구가 부족해서 하고 싶은 걸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이패드처럼 화면 전체를 손끝으로 읽을 수 있는 ‘점자 패드’를 만들자는 구상은 여기에서 출발했다. 핵심은 수많은 핀을 위아래로 움직여 글자뿐 아니라 그림과 그래프까지 표현하는 촉각 디스플레이다. 다중 행 촉각 디스플레이는 1970년대 후반부터 연구됐으나 상용화가 어려웠다. 기존 ‘압전소자’ 방식은 부품 크기와 가격 탓에 수천 개의 핀을 화면처럼 촘촘히 배치하면 기기가 무거워지고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닷은 카이스트 연구진 등과 협력해 ‘전자석’을 이용한 독자 방식을 택했다. 구동 장치를 작고 가볍게 만들어 점자 표준 간격 안에 많은 핀을 집적했고, 수천 개의 핀을 개별 제어하는 회로와 내구성, 대량생산 기술을 더했다. 이로써 기존 압전 방식 대비 크기와 무게, 소비전력, 가격을 10분의 1 이하로 낮출 수 있었다.

약 7년의 연구 끝에 탄생한 ‘닷 패드(Dot Pad)’는 2400개의 핀이 점자, 그림, 지도 등을 촉각으로 표현한다. 5000개가 넘는 제어선을 통해 시각 정보를 0.1초 만에 촉각으로 변환한다. 기존 단말기가 글을 ‘읽는’ 장치라면 닷 패드는 시각 정보를 손끝으로 ‘보는’ 디스플레이에 가깝다고 김 대표는 설명한다. 이 기술력으로 CES 2023 접근성 부문 최고혁신상을 수상했으며, 2026년 ‘에디슨 어워드(Edison Awards)’ 금상과 ‘헬렌 켈러 어치브먼트 어워드(Helen Keller Achievement Awards)’를 수상했다.

닷은 닷 패드 외에도 촉각 디스플레이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제품과 솔루션을 선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시각장애 학생용 다중 행 점자 학습기기 ‘모나크(Monarch)’에 닷의 핵심 촉각 셀 기술이 적용됐다. 미국시각장애인인쇄소(APH)와 휴먼웨어(HumanWare) 등이 개발한 모나크는 여러 줄의 점자와 촉각 그래픽을 한 화면에 표시해 수학식과 그래프, 지도 등을 손끝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기다. 2025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올해의 발명품’에 선정됐다.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도 주요 제품 가운데 하나다. 촉각 디스플레이와 음성 안내, 높낮이 조절 등의 기능을 적용해 시각장애인과 휠체어 이용자 등이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강남구청, 부산 지하철 등 전국 120개 이상 공공시설을 비롯해 민간 기업에도 공급되고 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접근성 소프트웨어도 개발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선보인 ‘닷 비스타(Dot Vista)’는 파워포인트에 담긴 차트와 그림, 텍스트를 AI로 분석해 닷 패드에서 만질 수 있는 촉각 정보로 변환하는 프로그램이다. 

◇ 글로벌 교육시장 뚫고 10배 성장…다음은 코스닥

닷의 기술력은 글로벌 B2G·B2B 시장에서도 사업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40여 개국에 제품을 공급하며 해외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미국 교육부와는 5년간 약 300억 원 규모의 닷 패드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최근 계약 연장도 이뤄냈다. 글로벌 빅테크와의 협력도 활발하다. 닷 패드는 애플의 보이스오버(VoiceOver)와 연동돼 아이폰·아이패드·맥 등 애플 기기의 정보를 촉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닷은 2024년 애플 보조공학기기 분야 촉각 그래픽 디스플레이 공식 서드파티 파트너에도 이름을 올렸다. 최근에는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해 AI 접근성 솔루션 ‘닷 비스타(Dot Vista)’를 발표했다. 이는 파워포인트에 담긴 차트와 그림, 텍스트를 AI가 분석해 닷 패드에서 만질 수 있는 정보로 바꿔준다. 현재 윈도용 애플리케이션으로 출시돼 있다.  

2021년 14억 원이던 매출은 글로벌 시장 성과에 힘입어 2024년 131억 원으로 약 10배 급증했다. 2023년 134억 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 유치를 포함해, 최근까지 약 1860억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김 대표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면 당사자가 반드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며 “정부나 교육기관처럼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가진 다른 주체가 구매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사업을 통해 배웠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장애인 시장은 작아서 돈이 안 된다’는 편견에 대해 선을 그었다. “전 세계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3억 명에 달합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기술을 합리적인 가격에 보급한다면 수십조 원의 가치를 지닌 거대한 시장이 열리는 셈입니다.” 

최근 기술특례상장을 위한 기술평가를 통과한 닷은 코스닥 입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올 하반기부터는 인도, 아프리카 등 신흥국 시장 진출도 본격화한다. 김 대표는 “상장 이후 지금까지 쌓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국내 소셜벤처의 해외 진출을 돕는 데 활용하고 싶다”며 “상장을 통해 생태계를 키우고, 더 큰 글로벌 비전을 향해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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