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급구호 현장에서는 재난 이후 회복의 목표를 설명할 때 ‘Back to Normal’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무너진 삶을 가능한 한 이전의 일상으로 되돌리는 것을 뜻한다.
지난 8월, 베네수엘라에서 발생한 지진은 주택과 기반시설을 무너뜨리고 많은 주민들의 일상을 한순간에 바꿔 놓았다. 재난 직후 긴급구호가 이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현장의 상황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었다.
지난 8월 13일부터 8월 27일까지 희망친구 기아대책 긴급구호 3차팀의 일원으로 베네수엘라 현장을 찾았다. 재난 직후와 비교해 피해 지역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주민들은 지금 무엇을 가장 필요로 하는지 직접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베네수엘라에 도착해 피해 지역을 둘러보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의외로 빠르게 정리되고 있는 현장이었다. 무너진 집은 철거돼 흔적을 찾기 어려운 곳도 있었고, 도로와 마을 곳곳에서도 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재난 직후의 혼란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정리되고 있다’는 것과 주민들의 삶이 ‘회복되고 있다’는 것은 다른 의미다.
재난 현장에 남아 있는 이재민들은 쉽게 말해 경제적으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경제적 여유가 있거 의지할 가족과 친척이 있는 사람들은 피해 지역을 떠났다. 남겨진 이들은 무너진 집과 불안정한 생활환경 속에서 다시 일상을 만들어야 하는 이들이다.
특히 베네수엘라는 이번 재난 이전부터 오랜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온 곳이다. 현장에서 직접 체감한 식비와 이동비, 구호물품 가격은 예상보다 훨씬 높았다. 주민들이 가장 많이 요청했던 것이 임시로 머물 수 있는 공간이었지만 쉘터를 마련하는 데 필요한 비용도 다른 긴급구호 현장보다 훨씬 컸고, 구호키트 역시 많은 비용이 필요했다.
물가가 높은 베네수엘라에서는 같은 금액으로 지원할 수 있는 주민의 수가 다른 재난 현장에 비해 줄어들 수밖에 없다보니 제한된 재원 안에서 얼마나 많은 주민에게 필요한 지원을 전달할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계산해야 했다.

지난 1차 조사 당시 파악했던 이재민 캠프의 위치와 인원은 상당 부분 달라져 있었다. 정부의 조치로 캠프가 해산되거나 옮겨진 곳도 있었고, 주민들이 스스로 흩어진 경우도 있었다. 여전히 골목 곳곳에서는 갈 곳을 찾지 못한 이재민들이 소규모로 모여 생활하고 있었다.
때문에 앞선 1·2차 구호팀이 파악했던 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현장에서 이재민 캠프의 위치와 규모를 다시 확인해야 했다. 재난 현장은 빠르게 변하는 만큼 기존 자료에만 의존하기보다 현장에서 직접 상황을 확인해야 필요한 지원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기아대책은 현지에서 MHPSS, 즉 정신건강 및 심리사회적 지원을 중심으로 사업을 준비했다. 큰 재난을 경험한 뒤에는 식량이나 생필품, 거처를 지원하는 것과 함께 심리 지원이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집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거나 가족과 이웃의 피해를 경험한 아동과 주민에게는 보이지 않는 불안과 충격이 남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아동들이 안전하게 머물며 놀고 활동할 수 있는 아동친화공간 두 곳을 조성했다. 공간에는 테이블과 그림 도구, 보드게임, 장난감 등을 마련해 아이들이 재난의 긴장 속에서 잠시라도 안전하게 놀고 일상적인 활동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아이들이 재난의 충격에서 벗어나 일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학교 두 곳에서 심리정서 프로그램도 지원한다. 심리 전문가들이 현지 학교 선생님과 아이들을 만나 재난 이후의 심리적 어려움을 살피고 필요한 지원을 제공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이번 방문에서는 현지 관계자들과 이러한 사업을 실제로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논의했다.

아직 사업 초기인 만큼 지금 당장 큰 변화를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다만 현장에서 주민들의 필요를 직접 확인하고, 그 필요에 맞는 지원을 빠르게 준비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회복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당장 필요한 생필품을 지원하고, 재난을 겪은 주민들의 마음을 살피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동시에 또 다른 재난이 닥쳤을 때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평소에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도 함께 고민해 보려 한다.
이번 현장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물품을 배분하던 중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피할 겨를도 없이 지원을 기다리던 이재민들과 우리 모두 그대로 비를 맞았다. 그런데 누군가 웃기 시작했고, 곧 여러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함께 웃었다. 그 짧은 순간만큼은 지원하는 사람과 지원받는 사람 모두 다를 바 없이 일상의 한 장면처럼 웃음을 나눴다.
지원 물품을 받기 위해 몇 시간 전부터 기다리는 주민들의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오후에 배분이 예정돼 있는데도 아침 일찍부터 현장에 나와 기다리는 분들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지금 이곳에서 필요한 지원이 얼마나 절실한지 다시 느꼈다.
아이들이 다시 학교에 가고, 주민들이 안정적인 공간에서 생활하고, 재난에 대한 두려움에서 조금씩 벗어나 평범한 하루를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가 기대하는 회복이다.
부디 베네수엘라의 재난이 지나간 뉴스로만 남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도 피해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무너진 삶을 다시 세우며 평범한 하루로 돌아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들의 회복 과정에 지속적인 관심이 이어지길 바란다.
박한나 희망친구 기아대책 인도적지원팀 과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