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벤처의 확장 뒤에 남은 커리어의 균열
시대가 요구하는 연결의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임팩트얼라이언스는 대한민국 임팩트 생태계의 다양한 조직이 모인 협의체 네트워크다. 소셜벤처, 임팩트 투자사, 중간지원조직, 비영리 스타트업까지. 서로 다른 미션과 방식을 가졌지만 ‘임팩트’라는 공통의 지향 아래 연결되어 있다.
이곳에서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관찰자가 된다. 누가 성장하고, 누가 어려움을 겪고, 누가 떠나는지 가까이에서 보게 된다. 그리고 질문이 남는다. “임팩트 커리어를 내가 아끼는 사람에게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가?”이다.
보람과 의미는 분명하지만, 많은 이들이 불안정한 환경 위에서 버티고 있는 현실 또한 분명하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지속하지 못하는 구조. 이제 우리는 임팩트 커리어의 ‘지속가능성’을 정면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 임팩트 생태계는 어떻게 성장해 왔는가
사회문제 해결은 오랫동안 정부와 비영리의 영역이었다. 정책은 정부가 만들고, 현장은 비영리가 담당하며, 시민은 기부와 자원봉사로 참여하는 구조였다. 사회문제는 ‘해결해야 할 과제’였지, ‘사업의 기회’로 인식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임팩트투자와 B-Corp 같은 개념이 등장하며 변화가 시작됐다. 이윤을 추구하면서도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이 확산되었고, 문제 해결은 점차 비즈니스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이는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이자, 시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새로운 제안이었다. 비영리 활동을 통해 공론화된 사회문제가 충분한 수요를 형성하면, 자연스럽게 시장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 흐름은 하나의 연속선상에 있었다.
한국에서는 이 변화가 비교적 압축적으로 전개되었다.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 제정으로 정부 주도의 생태계가 먼저 형성되었지만, 동시에 제도적 한계를 느낀 청년 혁신가들이 글로벌 흐름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벤처투자 방식, 스타트업 성장 전략, 임팩트 측정 체계를 결합해 ‘소셜벤처’라는 범주를 만들어낸 것이다. 성수동은 이러한 흐름이 응집된 상징적 공간이 되었다.
초기 임팩트 생태계의 과제는 ‘사람’을 모으는 일이었다. 소셜벤처는 낯선 개념이었고, 커리어로서의 전망도 불분명했다. 이에 생태계는 교육과 채용 플랫폼을 구축하고, 임팩트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의 정체성을 정의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임팩트 커리어’는 사회문제 해결을 미션으로 하는 조직에서 일하는 것이라는 비교적 명확한 의미를 가졌다.
새로운 가치를 중심으로 한 생태계였기에 핵심 자원은 ‘새로운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를 모으기 위해 경계를 선명히 하고, 차별화된 언어와 정체성을 구축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난 지금, 생태계의 지형과 사람들의 위치는 초기와는 분명히 달라져 있다.
◇ 달라진 지형, 넓어진 경계
초창기의 임팩트 생태계는 일종의 실험기였다. 사회혁신과 벤처투자가 만났지만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한계인지 아무도 확신하지 못했다. 다만 ‘임팩트를 지향한다’는 정체성 하나로 다양한 조직이 모였고, 그 느슨한 연대가 생태계를 이루었다.
10여 년이 지나며 윤곽이 드러났다. 벤처투자와 결합했을 때 성장 가능한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이 구분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생태계는 자연스럽게 분화되었다. 산업적으로 성숙해지면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사회문제 중에서도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영역들이 있다. 특히 기후위기 대응, 친환경 소재, 재생에너지 같은 분야는 ESG 확산과 맞물려 산업적 수요로 이어졌고, 주류 자본의 투자가 본격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소셜벤처의 경계는 점점 흐려졌다. 초기 임팩트 조직이 산업 내 기업으로 자리 잡거나, 일반 스타트업이 사회적 영역으로 넘어오면서 과거의 구분은 의미를 잃어갔다. 기업이 성장할수록 ‘임팩트 조직’이라는 정체성은 약해지고, ‘해당 산업의 기업’이라는 정체성이 강화되었으며, 자연스럽게 기존 임팩트 네트워크에서는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한편 시장의 방식으로 성장이 어려운 미션이 있다는 것도 명확해졌다.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거나 운동의 성격이 강한 영역은 시장 논리와 맞지 않았다. 이들은 비영리스타트업이라는 형태로 전략을 고도화했고, 동시에 벤처 중심의 임팩트 투자에 대한 반성이 제기되며 벤처 필란트로피 조성이 새로운 생태계 과제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 영역은 아직 제도적 기반이 약하다. 비영리스타트업은 구조적으로 소규모에 머무는 경우가 많고, 미션과 무관한 외부 용역이나 지원사업에 의존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종사자의 커리어 지속가능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결국 임팩트 생태계는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뉘고 있다. 산업화된 조직은 네트워크에서 멀어지고, 비영리성을 지키는 조직은 성장의 한계에 부딪힌다. 우리가 느끼는 ‘성장 체감의 둔화’는 정체가 아니라 동질성의 해체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분화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성숙한 생태계라면 경계는 재편되기 마련이다. 이제는 얼마나 성장했는가가 아니라, 어떤 성장을 지향할 것인가를 다시 정의해야 할 때다.
◇ 임팩트 커리어를 다시 정의해야 할 때

생태계의 문제가 단순히 성장동력의 부족이라면 투자와 지원을 확대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분화가 원인이라면 전제부터 달라진다. 다시 경계를 선명히 그을 것인가, 아니면 갈라진 채로 둘 것인가. 중요한 것은 경계를 고정하는 일이 아니라, 그 경계를 넘어 사람과 자원이 이동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출발점은 생태계가 아니라 사람이다. 임팩트 생태계는 특정 산업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을 지향한 사람들이 모여 형성한 공간이었다. 그렇다면 변화 역시, 왜 연결되어야 하는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사람의 관점에서 다시 묻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물론 사회적 의미를 고민하며 일하는 삶은 임팩트 생태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어떤 직업이든 진정성을 갖고 임하면 사회적 가치를 만들 수 있다. 의사로서, 교사로서, 공무원으로서, 식당을 운영하면서도 그런 삶은 가능하다. 그러나 임팩트 커리어는 단순한 ‘직업적 진정성’을 넘어선다. 실질적인 변화를 지향한다면 보다 분명한 관점과 태도가 필요하다. 그 핵심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생태계적 관점이다. 사회문제는 복합적이며 구조적이다. 개인이나 조직의 노력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를 생태계 차원에서 바라보고, 서로 다른 주체의 역할과 연결을 고민할 때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둘째, 가치를 기반으로 한 협력이다. 이해관계에 따른 협업이 아니라, 신뢰와 미션을 중심에 둔 연대다. 작은 연결이 쌓여 생태계를 형성하고, 그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과 감각이 공동의 기반이 된다.
셋째, 개인의 지속가능성이다. 대의를 위해 자신을 소진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만들면서도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것. 커리어라 부르기 위해서는 개인이 소모되는 존재가 아니라 확장될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
결국 임팩트 커리어는 특정 조직 형태에 갇힌 개념이 아니다. 소셜벤처나 비영리스타트업은 하나의 방식일 뿐, 본질은 서로 다른 역할이 연결되어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데 있다. 이제는 그 형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관점과 태도를 다시 확인해야 할 때다.
◇ 새로운 시대, 새로운 이니셔티브

임팩트라는 개념조차 낯설던 시절, 다양한 영역이 하나로 모여 생태계를 이룰 수 있으리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작은 공동체처럼 뭉쳐 전문성을 쌓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던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ESG가 확산되고 소셜벤처가 제도화되었다. 마을 같던 공간에 도로와 건물이 들어선 셈이다. 성장했지만 구역은 나뉘었고, 이전과는 다른 거리감도 생겼다.
우리는 산업 논리에 완전히 흡수되고 싶지도, 의미만으로 버티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면 해법은 다시 고립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흐르며 연결되는 도시형 생태계로 전환하는 것이다. 조직 중심의 연결을 넘어, 개인과 커리어 단위에서 만나는 새로운 생태계를 고민해야 한다. 변화의 본질로 돌아가, 가치와 관점, 태도를 기반으로 한 연결을 다시 설계할 때다.
이 고민 위에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이라는 변수가 더해졌다. 지식과 기술 중심의 전문성은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많은 전문가가 공통으로 말하듯, 앞으로 중요한 것은 관점과 태도다. 무엇을 위해 분석할지, 어떤 방향을 선택할지,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책임질지는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생태계적 관점과 협력의 태도는 초자동화 시대에 더욱 요구되는 역량이다. 임팩트 커리어는 더 이상 특정 섹터의 선택지가 아니라,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간 역할의 한 형태가 되고 있다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사회변화는 임팩트 비즈니스만 잘 된다고 가능하지 않다. 공공과 기업, 다양한 영역에서 생태계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연결될 때 가능하다. 우리가 처음부터 하려 했던 일도 다르지 않았다. 사회문제를 함께 해결할 동료를 모으는 것이었다.
임팩트 커리어가 특정 조직 경험이 아니라 삶의 태도이자 시대적 이니셔티브로 인식될 때,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여정에 합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비로소 더 많은 동료를 만나게 될 것이다.
전일주 임팩트얼라이언스 팀장
※ 이 기사는 SSIR 코리아에 게재된 ‘임팩트 생태계의 분화와 커리어의 지속가능성ㅡ임팩트 커리어를 성립시키는 조건’ 아티클을 바탕으로, 독자를 위해 분량과 구성을 조정해 재편집한 기사입니다. 원문 전문은 SSIR 코리아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필자 소개 임팩트얼라이언스에서 임팩트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만든다는 미션으로 일하고 있다. 생태계 안팎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개인적 고민에서 정책 아젠다까지 여러 맥락을 오고가며 소통하고 일을 만든다. 수많은 관찰 속에 깨달은 것들을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