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다카에서 나이로비, 지속가능경영의 진짜 얼굴을 마주하다

방글라데시 다카의 무더운 오후, 이곳의 스타트업 관계자가 건넨 한 마디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모두가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빠져 있어요. 환경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결국 돈벌이 수단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고요.” 그리고 일주일 후, 케냐 나이로비의 한 현지 기업가는 더욱 직설적이었다. “지속가능성? 좋은 말이죠. 하지만 여기서는 생존이 먼저예요. 당신들이 요구하는 지속가능성과 우리의 지속가능성은 차원이 다릅니다.” 지난 2주간 방글라데시와 케냐를 오가며 현지 공공기관 관계자, 스타트업 기업가, NGO 활동가들과 나눈 30여 차례의 인터뷰는 우리가 알고 있던 지속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추구하는 지속가능경영은 누구를 위한 것이고, 그들만 만족하면 되는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제대로 된 지속가능경영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 현지 맥락 빠진 프로젝트, 지속가능성은 없다 다카에서 만난 글로벌 대형 NGO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들의 딜레마를 이렇게 지적했다. “외국 기업들이 가져오는 의료기기는 최첨단 기술입니다. 하지만 정전이 일상인 농촌에서는 전력이 없으면 작동조차 못하죠. 이것이 과연 지속가능한 솔루션일까요? 기술적 우수성도 현지 환경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무용지물입니다.” 케냐 공공기관 관계자의 비판도 비슷했다. “한국 기업들이 많이 진출하지만 프로젝트 종료 후 지속가능성 확보가 가장 큰 과제입니다. 단기 성과에 집중하여 현지 적응을 위한 구체적 고민이 부족한 경우가 많거든요. 한국 본사의 기준을 무조건 따르라고 하지만, 현지 상황과는 맞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설명조차 부족합니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 문제가 아니다. 우리 기업들의 지속가능경영 접근법 자체에 구조적 한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방글라데시의 한 투자사

[사회혁신가의 두 가지 언어] ‘손맛’은 없어도, 시스템 체인지는 계속된다

누군가는 당사자를 직접 만나 도움을 주고, 누군가는 법과 제도를 바꾸며 구조적 변화를 이끈다. 사회·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혁신가들이 임팩트를 창출하는 방식은 이처럼 다양하다. 아쇼카(Ashoka)는 이를 ‘임팩트의 4단계(4 Levels of Impact)’로 구분해 설명한다. 첫 번째 단계는 개인이나 집단의 필요를 직접 충족시키는 ‘직접 서비스(Direct Service)’다. 결식 아동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일이 대표적이다. 변화가 즉각적이고 눈에 띄지만, 문제를 발생시키는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않는다. 두 번째는 직접 서비스를 체계화·조직화해 더 많은 사람에게 확산하는 ‘스케일업 된 직접 서비스(Scaled Direct Service)’다. 프랜차이즈 모델로 복지 서비스를 전국에 확산하거나, 반복 가능한 운영 체계를 만들어 더 많은 이들에게 혜택을 주는 방식이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가 발생하는 사회 구조는 그대로다. 세 번째는 ‘시스템 체인지(System Change)’다. 법과 제도, 정책, 시장 구조 등 문제의 근원을 바꾸는 접근이다. 결식아동 문제의 경우 단순한 식사 제공을 넘어 무상급식 제도를 도입하는 등 제도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여기에 해당한다. 네 번째는 ‘프레임워크 체인지(Framework Change)’다.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사회적 규범, 인식의 틀을 바꾸는 것이다. 결식아동 문제를 ‘모든 아동이 누려야 할 권리’로 인식하게 하여, 장기적으로 사회 구성원의 선택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방식이다. ◇ 빠르게 체감하는 성과 vs 장기간에 걸친 변화 흥미로운 점은 단계가 높아질수록 변화의 폭은 커지지만, 사업 담당자가 체감하는 ‘손맛’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직접 서비스는 곧바로 피드백을 확인할 수 있다. 수혜자의 반응을 통해 사업 담당자는 즉각적인 보람을 얻는다. 반면 시스템·프레임워크 체인지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안정권 노을 CSO(Chief Sustainability Officer)
[벤처, 건강하게 성장하기] 미션과 가치의 내재화를 위한 최적의 타이밍

제대로 수립되어 작동하는 미션과 핵심가치는 조직 성장의 뿌리다. 미션은 조직의 ‘존재 이유’를, 핵심가치는 조직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조직에 깊이 내재된 미션은 비즈니스의 전략 방향을 제시하고, 제품과 사업에 관한 중요한 의사결정의 기준이 된다. 나아가 조직에 영감과 창의성을 불어넣는 원동력이 된다. 살아 있는 핵심가치는 차별화된 정체성을 만들고, 높은 소속감과 몰입을 이끌어내며, 소통과 협업 속도를 극적으로 높인다. 그런데 구성원 관점에서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정작 내가 속한 조직에서는 이런 미션과 가치의 힘을 경험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 왜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들릴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미션과 가치의 효능감을 ‘나’만 못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기업의 규모나 성장 단계와 상관없이 대다수 기업 조직의 일상에서는 이러한 미션과 핵심가치의 위상을 체감하기가 어렵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경험상 가장 큰 원인은 당장 눈앞의 생존과 성장을 위한 과업에 매달리느라 미션과 가치의 내재화까지 챙길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원의 제약과 사업의 불확실성이 큰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의 경우, 미션과 가치 실천 노력이 투자자나 외부 이해관계자에게 사치처럼 보일 수 있다는 부담도 존재한다. 그래서 많은 기업의 리더들이 “우선 비즈니스를 정상 궤도에 올려 놓는 일에 매진하고 사업이 안정화되면 그때 미션과 가치를 제대로 실천하자”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언제쯤이면 사업이 안정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안정화 이후에는 미션과 가치를 실천하기가 더 쉬울까? 오히려 미션과 가치를 챙기지 않고도 사업을 잘 성장시켰다면, 나중에 가서 미션과

[공익이 이끄는 데이터 과학] 공공 AI, ‘도입’과 ‘검증’은 함께 가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내건 핵심 국정 목표 중 하나는 인공지능(AI)이다. 대통령실엔 ‘AI미래기획수석실’이 신설됐고, 100조 원 규모의 투자 계획도 발표됐다. 산업 육성과 더불어 정책과 행정 전반에 AI를 도입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정부는 인공지능을 직접 개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행정 현장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기술은 민간 업체가 만든 것을 ‘조달(procurement)’, 즉 구매해 들여오는 방식이다. 이 구조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도 마찬가지다. 1966년, 미국 백악관 예산관리국(OMB)은 ‘Circular A-76’이라는 가이드라인을 통해 정부와 민간이 기술 개발을 놓고 경쟁하지 않도록 원칙을 세웠다. 정부는 가능한 한 민간 기술을 구매해 사용하고, 이를 위해 연방조달청(GSA)이 책상부터 위성기술까지 전방위적으로 조달 시스템을 운영한다. ◇ 정부 기술 외주화의 장점과 그림자 정부가 기술을 만들지 않고 사는 구조는 장점도 분명하다. 시장에서 검증된 기술을 비용 효율적으로 도입할 수 있고, 동시에 민간 기술 생태계를 키우는 데도 기여한다. 그러나 그 그림자가 짙다. 한때 미국의 국방과학연구계획국(DARPA)에는 최고 수준의 과학자들이 모여 있었다. 오늘날의 인터넷(알파넷), GPS, 드론, 음성인식, 자율주행차 등은 모두 그들의 손에서 시작됐다. 공공을 위한 기술이 없었다면 스마트폰도, 항공권 예매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정부는 기술을 만들지 않다 보니 기술을 볼 줄 아는 인재가 줄고, 그들의 판단력도 약해졌다. 정부 예산은 단위가 다르다. 적으면 억 단위고, 크면 조 단위다. AI에 대한 투자가 급증하는 지금, 정부는 더 강한 기술을 더 많이 사서 더 넓게 쓰려 하지만, 이를 제대로 판단하고

[사회혁신발언대] 도심 유휴지 실험, 주차장이 사회적 가치를 만든다

밤마다 갓길에 불법주차된 화물차, 누구의 책임인가. 이 문제를 ‘운전자 개인의 태도’로 치부하는 시선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정작 이들이 마음 놓고 차를 댈 곳은 거의 없다. 전국에 등록된 차량은 약 2600만 대, 그중 트럭과 버스, 중장비 등 상용차만 450만 대다. 차량 6대 중 1대가 상용차라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지자체가 조성한 공영 화물차 차고지는 턱없이 부족하다. 상용차 비중이 가장 높은 경기도의 경우, 수원·의왕·화성에 단 4곳의 공영 차고지만 운영되고 있으며 이마저도 포화 상태다. 2020년에 대기 신청한 운전자가 아직도 공간을 배정받지 못할 정도다. 결국 많은 화물차들이 골목과 갓길로 밀려난다. 밤샘 불법주차는 운전자 본인과 시민 모두의 안전을 위협하며, 교통사고와 인명 피해로 이어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주차공간을 찾아 헤매는 동안 발생하는 공회전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연료도 낭비된다. 시간이 지체되면 근로시간은 늘어나고, 단속을 위한 행정비용도 발생한다. 빅모빌리티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트럭헬퍼’라는 도시 유휴 공간(Dead Space)을 활용한 민간 화물차 주차장을 개발해왔다. 상용차 운전자는 안정적인 주차공간을 얻고, 토지주는 새로운 수익 모델을 확보하며, 지자체는 불법주차 민원을 줄일 수 있다. 지역 주민에게도 보다 안전한 도로환경이라는 이익이 돌아간다. 화물차 주차장 1개소 기준으로 보면, 고령 토지주는 연평균 약 2400만 원의 수익을 얻고, 화물차 운전자는 연간 4750시간의 주차 탐색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이로 인해 연간 약 39톤의 이산화탄소가 감축되며, 교통사고 및 행정비용 등 연 1억 원 규모의 사회적 비용도 절감된다 빅모빌리티는 이러한 정량지표를

[돌봄의 재발견] 돌봄을 지탱하는 이름 없는 도움들

“1시간 단위로 아이를 맡아주는 키즈카페 선생님이 있었는데, 1~2주에 한 번 아이를 맡겨두고 혼자 커피 한잔 마시는 게 그렇게 큰 힘이 되더라고요.” 사단법인 루트임팩트의 DEI 이니셔티브 팀은 2025년 상반기, 결혼 후 10년 이상 가족 돌봄을 전담해 온 여성들을 대상으로 약 3개월간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돌봄의 여정을 되짚으며, 각 시기에 절실했던 ‘버팀목’이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 보이지 않던 기여들이 드러날 때 “아버님이 서울에 올라오셔서 병원에 함께 다녀오던 길이었어요. 아이가 잠깐만 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아버님과 함께 놀이터에 서 있었죠. 그런데 아버님이 시장하실까 봐 속이 너무 타더라고요. 그때 배달앱만 있었어도…” “심리 상담을 받았어요. 몸이 약한 아이와 시부모님 간병을 중심으로 생기는 가족 갈등을 겪으며, 제 마음 상태를 스스로 설명할 수 없는 게 괴로웠거든요.”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돌보는 사람들이 만나는 의외의 지원과 기여들을 발견했다. 어떤 도움은 직접 손을 보태주는 방식으로, 어떤 도움은 돌보는 이를 돌봐주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놀아주는 일, 치료해 주는 일, 알려주는 일, 치워주는 일, 위로해 주는 일, 들어주는 일 등 형식도 다양했다. 돌봄 경제의 경쟁력은 누가 어떻게 돌봄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얼마나 세심하게 파악하느냐에 달려 있다. 유엔여성기구를 중심으로 국제사회가 강조하고 있는 돌봄 경제의 핵심 키워드가 ‘아무도 배제되지 않도록(Leaving no one behind)’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단순히 돌봄의 대상에서 누락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를 넘어, 돌봄의 주체와 노동의 다양성까지 포용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 돌봄도 커리어가 되는

[임팩트의 좌표] AI는 임팩트를 설계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AI)은 더 이상 기술 산업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이제 AI는 사회문제 해결의 동반자로서, 그 역할의 무게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기존 시스템이 외면했던 사회·환경 문제에 AI가 정교하게 진입하면서, 우리는 기술의 진보가 아닌 ‘문제 해결력의 진보’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AI의 등장은 문제를 정의하고 접근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일입니다. 기후 위기, 건강 불평등, 돌봄 격차, 정보 소외 등 복합적인 문제는 단순한 인과관계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다양한 변수와 다층적 맥락을 함께 고려해야 하며, AI는 대규모 비정형 데이터를 학습하고 분석함으로써 보다 정밀한 예측과 개입을 가능하게 합니다. AI는 인간의 언어, 이미지, 영상, 센서 등 다양한 비정형 데이터를 기반으로 패턴을 도출하고, 이를 토대로 판단과 예측을 수행합니다. 특히 머신러닝(ML)과 딥러닝 기술은 변수 간의 복잡한 관계를 빠르고 깊이 있게 학습할 수 있어, 다층적 원인과 구조가 얽힌 사회문제 해결에 강점을 발휘합니다. 의료 영상 속 이상을 자동 탐지하거나, 위성 영상을 통해 농업 기후 패턴을 분석하는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예컨대, 오랜 기간 고비용 인력 투입에 의존해온 탄소배출 MRV(측정·보고·검증) 시스템은, 최근 국내 스타트업이 AI 기반 위성 분석 기술을 적용하면서 벼농사에서의 메탄 배출량을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 기술은 농가의 탄소배출권 시장 진입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단순한 분석 효율 향상을 넘어 저탄소 농업 전환의 핵심 수단이자, 새로운 시장 참여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결국 AI는 그 자체로 임팩트를 만들어내기보다는, 임팩트를 정밀하게 구현하는 도구입니다. 하지만

[사회혁신발언대] 지역에서 발견한 미래, 소멸을 넘어 전환으로

“듣기 어려운 젊은이들 목소리가 들려 반가운 마음에 나왔지요.” 경상북도 영주의 한 골목에서 만난 어르신의 말씀이었다. 무더운 날씨에도 집 밖으로 나와 길을 안내해 주시며 건네신 말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듣기 어려운 것’이 되어버린 현실, 그리고 그런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반가워하시는 어르신의 마음은 지역이 직면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대기업에서 정년 퇴직 후, 사회 혁신을 추구하는 회사에서 새로운 출발을 한 나에게 이번 원주-풍기-영주로 이어진 현장 탐방은 특별한 의미였다.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지방소멸’이라는 무거운 단어로 표현되는 현실이 아니라, 오히려 창조와 혁신이 살아 숨 쉬는 현장이었다. 영주도시재생센터 센터장의 말씀이 울림을 줬다. “지방소멸이라는 표현은 외부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가능하면 ‘소멸’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얼마나 서울 중심의 시각으로 지역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재래시장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오랜만에 젊은 사람들이 왔다며 반가워하는 상인들의 모습에서 지역 경제의 현실을 목격했다. 그들의 반가움 뒤에는 점점 줄어드는 젊은 고객들에 대한 아쉬움과 걱정이 숨어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달랐다. 원주의 ‘온세까세로’에서는 시니어와 청년이 함께 반죽을 빚으며 세대 간 협력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 있었다. 풍기의 ‘디에스푸즈’ 젊은 대표는 아버지의 안정적인 농장을 물려받는 대신, 지속가능한 농업이라는 더 큰 비전을 택했다. 영주 기반 ‘남산선비마을’의 20대 대표는 청년들이 떠나는 마을에서 오히려 청년들이 찾아오는 마을을 만들고 있었다. 봉화의 ‘봉화새댁수리단’ 경력보유여성들은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했다. 이들 모두는 지역의 제약을 오히려 새로운 기회로 전환하고 있었다.

[임팩트비즈니스 인사이트] 성공하는 실패의 딜레마,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푼다

임팩트 생태계에는 수많은 좋은 조직과 모델이 존재한다. 혁신적인 실험이 이어지고 있고, 의미 있는 성과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은 좀처럼 사회 시스템의 변화로 연결되지 않는다. 마치 ‘성공하는 실패’가 반복되는 듯한 양상이다. 이 같은 간극은 여러 요인에서 비롯된다. 대표적인 것이 단기 성과 증명의 함정이다. 대부분의 투자나 보조금은 3년 이내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요구한다. 이에 따라 임팩트 조직들은 장기적 변화보다는 측정 가능한 단기 지표에 집중하게 된다. 확장성의 딜레마도 문제다. 뛰어난 모델조차 규모를 키우는 과정에서 효과가 희석되거나 비용이 급증하며, 결국 ‘복제’는 되지만 ‘시스템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 결과, 개별 조직이 고군분투해도 그 노력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는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금까지 우리는 주로 “어떤 조직이 가장 혁신적인가?”, “누가 더 좋은 모델을 갖고 있는가?”에 집중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이 문제를 구조적으로 어떻게 끝낼 것인가?” 그 대답 중 하나가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 이하 PF)이다. ◇ 전환의 키워드, PF PF의 핵심은 개별 조직의 수익성이나 신뢰도가 아니라, ‘프로젝트 자체의 목적과 수행 방식, 그리고 미래 수익 가능성’을 기반으로 자금을 조달한다는 점이다. 세계은행은 PF의 세 가지 특징을 제시한다. 첫째, ‘비소구 구조(Limited or No Recourse)’다. 프로젝트가 실패하더라도 대출기관은 프로젝트 자체의 자산과 현금흐름에만 상환 청구권을 갖는다. 이는 조직의 부담을 줄이고, 프로젝트의 타당성에 집중하게 만든다. 둘째, ‘계약 기반 구조(Contractual Arrangements)’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각 주체의 역할과 책임, 리스크 분담을 사전 계약을

이재현 NPO스쿨 대표
[사회혁신발언대] 비영리는 ‘스테이블 코인’을 준비하고 있나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미국은 스테이블코인 법제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표 법안인 ‘GENIUS 법’이 지난 18일(현지 시각) 상하원을 통과해 공식 법제화 됐다. 국채와 암호화폐를 연계해 달러 패권을 지키겠다는 의도가 깔렸다. 민간 금융기관들도 이에 동참하겠다는 입장이다. JP모건, 시티그룹 등 주요 금융사들이 앞다퉈 참여를 선언하며 디지털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처럼 담보가 없는 ‘무담보 코인’이 아니라, 1코인을 1달러에 연동한 ‘담보 코인’이다. 변동성이 크고 가치 보장이 어려운 무담보 코인이 투자자산으로만 소비돼온 데 반해, 스테이블(stable)코인은 담보 기반의 안정성 덕분에 공식 통화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통화 가치를 우선시한 암호화폐를 만든다면, 가장 적절한 형태는 국가가 보증하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이하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일 것이다. CBDC는 국가의 공식 화폐를 디지털화한 형태로, 중앙은행이 발행하고 관리한다. 때문에 정부의 통제가 필연적이며, 이 때문에 ‘감시 수단’이라는 비판도 뒤따른다. ◇ 스테이블코인 띄우는 美… 달러 패권의 새 무기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비트코인·이더리움 같은 변동성 높은 무담보 코인과 달리, 달러나 국채 등 실물 자산을 담보로 삼아 가격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이런 구조 덕분에 정부 개입 없이도 안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어, ‘중앙통제 없는 대안 화폐’로 주목받아 왔다. 이미 미국을 위주로 사용되어 오다가 이번 법안을 통해 본격 궤도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디지털 자산 시장의 선두를 자처한 다양한 암호화폐가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이 자리하고 있다 수년간 CBDC는 암호화폐 시장의 안정적 대안으로 거론돼왔다.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CSR 피라미드에 대한 심각한 오해

얼마 전 ESG 경영 포럼에서 한 교수가 캐롤(A. B. Carroll) 박사의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이론을 소개하며 ‘CSR 피라미드’ 모형을 설명했다. 그는 피라미드의 맨 아래에 위치한 ‘경제적 책임’을 가장 중요한 기업의 책임으로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CSR 피라미드’를 오해한 대표적 사례다. 캐롤의 CSR 피라미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경제적 책임, 법적 책임, 윤리적 책임, 자선적 책임의 네 범주로 나눈 개념이다. 1991년 발표된 논문 ‘CSR 피라미드: 조직 이해관계자들의 도덕적 관리를 향해’에서 제시된 이 모형은, 이후 경영학과 사회책임 논의에서 교과서처럼 인용됐다. CSR 또는 ESG 경영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캐롤의 이름을 피해 가기 어렵다. 그는 1979년에 CSR의 네 가지 범주를 처음 제시했고, 1991년 ‘CSR 피라미드: 조직 이해관계자들의 도덕적 관리를 향해’라는 논문을 통해 해당 모형을 대중화시켰다. 이 논문은 CSR을 ▲경제적 책임(이익 창출) ▲법적 책임(법규 준수) ▲윤리적 책임(사회적 기대) ▲자선적 책임(좋은 기업 시민)으로 구분하며, 이후 수많은 교과서와 기업 전략 문서에서 활용됐다. 그러나 문제는 이 구조가 ‘피라미드’라는 이름과 형태 때문에 오독을 불러왔다는 점이다. 경제적 책임이 피라미드 아래에 있으니 ‘가장 중요하다’는 해석이 일반화된 것이다. 특히 “기업은 무엇보다 이익을 내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주장이 피라미드 구조에 기대며 널리 퍼졌다. 하지만 캐롤 자신은 이런 해석을 경계했다. 그는 2016년 ‘캐롤의 CSR 피라미드: 다시 보기(CSR Pyramid: Revisited)’라는 논문을 통해 오해를 직접 정정했다. 캐롤은 명확히 밝혔다. “CSR 피라미드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아래에서부터 위로 순차적, 위계적으로 이행하라는 뜻이

[사회혁신발언대] 임팩트 투자사 인턴십이 내게 남긴 것

대학 졸업을 앞두고 나는 흔들리고 있었다. 막연한 불안감 속에 ‘나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만 되풀이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미래내일 일경험 인턴’ 공고를 보게 됐다. ‘재무적 이익과 사회적 가치를 함께 추구한다’는 MYSC의 소개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선행의 선순환에 기여하는 일을 찾고 싶었던 나는 자연스레 MYSC의 투자밸류업팀 인턴에 지원했다. MYSC에서의 인턴 생활은 낯선 여행과 비슷했다. 3개월 동안 매일 새로운 경험을 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점심이나 커피를 함께하며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수평적인 문화 덕분이었다. 내부 워크숍, 사내기업가 인터뷰, 워크숍, 잦은 미팅은 마치 새로운 도시의 골목골목을 탐험하는 느낌이었다. 특히 사내기업가 인터뷰는 인생의 시점마다 고민이 계속된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사회 초년생인 나는 지금이 가장 중대한 선택의 순간이라 생각했지만, 나보다 앞선 선배들은 여전히 다음 선택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직 내게는 수많은 길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내가 맡은 첫 과제는 투자밸류업팀의 업무 데이터를 정리해 모두가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었다. MYSC 내부에서는 투자밸류업팀의 정보가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각 팀이 필요한 정보를 따로 요청하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에어테이블을 선택했고, 나는 데이터를 정리하고 사용자 친화적인 인터페이스를 구현했다. 이를 통해 각 부서가 투자 절차별로 어떤 정보가 필요한지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업무 자동화와 디지털 전환의 현실을 몸소 체감했다. 데이터를 입력하고 가공하는 시간과 노력이 만만치 않았다. 반면, 자동화를 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