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위기 중 하나는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이다. 이미 120곳이 넘는 지방이 ‘소멸 위기 지역’으로 분류됐고, 전체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절반 이상이 향후 30년 내 인구 소멸 위험군에 속한다. 농촌뿐 아니라 중소도시까지 인구가 급격히 줄며 학교·병원·기업이 사라지고, 지역 경제의 순환 구조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출산 장려, 청년 지원, 정주 여건 개선 등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효과는 제한적이다. 결국 선택지는 둘 중 하나다. 닫힌 공동체로 남아 쇠퇴할 것인가, 아니면 세계의 인재와 기업을 불러들여 새로운 활력을 창출할 것인가.
지금 필요한 것은 ‘열린 인구테크(Open Population-Tech)’ 전략이다. 해외 기업과 인재가 지역으로 들어와 정착하고, 이를 통해 지역이 다시 살아나는 구조적 전환이다.
◇ 한국의 현실, 그리고 기회
일본 후쿠오카시는 2014년, 일본 최초의 글로벌 창업·고용 창출 특구로 지정돼 외국인 창업자들이 몰려드는 생태계를 구축했다. 싱가포르는 월 소득 3만 싱가포르달러(한화 약 3000만원) 이상 고소득자나 예술·과학 분야의 우수 인재를 대상으로 한 장기체류비자(ONE Pass)를 운영한다. 5년간 유효하며 가족 동반 정주도 가능하다.
포르투갈 리스본은 세계 최대 스타트업 행사 ‘웹서밋(Web Summit)’을 통해 도시 브랜드 전략으로 삼았다. 매회 7만 명이 넘는 참관객과 수천 개의 스타트업, 투자자가 모이는 이 행사는 리스본을 글로벌 IT 허브로 끌어올렸다. 이처럼 인재와 기업 유치는 단순한 경제정책이 아니라, 도시와 지역의 생존 전략이 되고 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인프라를 갖췄고, K-컬처의 브랜드 파워와 콘텐츠·바이오·제조 등 경쟁력 있는 산업 기반도 확보하고 있다. 해외에서 한국에 대한 호감도 역시 높다. 그럼에도 외국인 인재나 기업이 지방에 정착하기는 쉽지 않다. 복잡한 비자 절차, 영어 기반 행정·의료 서비스 부족, 외국인 학교와 국제 커뮤니티의 수도권 집중 등은 여전히 높은 장벽이다.
그러나 기회는 분명 존재한다. 에너지 전환, AI, 로봇, 바이오 등 신산업을 지역 특화 산업과 연결하면 글로벌 인재가 머물 이유를 만들 수 있다. 문제는 이를 종합적으로 묶어주는 정책·제도적 플랫폼이 없다는 점이다. 지금은 기업이 모든 정보를 직접 찾아야 하는 구조로, 해외 기업이나 인재가 스스로 적합한 지역을 선택하기엔 현실적 한계가 크다.
◇ 지역이 글로벌 인재를 끌어들이려면
해외 인재와 기업이 한국의 각 지역에 뿌리내리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제도적 기반과 생활 인프라, 네트워크 플랫폼이 동시에 마련돼야 한다. 최근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서울시·함께일하는재단이 추진 중인 ‘청년 로컬 허브’는 주목할 만한 시도다. 전국의 지역 비즈니스 정책, 사례, 네트워킹 정보를 한데 모아 해외 기업과 인재에게 실질적 길잡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둘째, 글로벌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를 동시에 강화해야 한다.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가 출범시킨 ‘Crossover Global Alliance’는 해외 스타트업의 국내 진출과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함께 촉진한다. 매월 열리는 세션에는 투자사, 대기업, 대사관, 대학, 지자체 등 60여 개 기관이 참여해 글로벌 R&D 협력과 스타트업-대기업 매칭 같은 실질적 과제를 논의한다.
셋째, 각 지역은 산업과 문화를 중심으로 글로벌 브랜드를 구축해야 한다. 전북은 재생에너지, 대구는 로봇, 강원은 디지털 헬스처럼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국제 포럼과 스타트업 행사를 꾸준히 열어야 한다.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노력이 뒷받침될 때만 가능하다.
인구 위기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 이탈리아, 동유럽 국가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그러나 닫힌 문화는 결코 해법이 될 수 없다. 지역의 쇠퇴를 막는 유일한 방법은 지역을 세계와 연결시키고, 글로벌 기관과 연대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해외 기업과 인재 유치는 단기 경제 효과를 넘어 지역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생존 전략이다. 규제를 정비하고 국제 협력의 틀을 마련하며, ‘청년 로컬 허브’ 같은 플랫폼을 활성화해 외국인 인재가 각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 전혀 다른 지역의 미래를 만들 수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실행이다. 지역은 더 이상 소멸의 공간이 아니라, 세계와 연결된 열린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인구 위기를 위기 그대로 둘 것인지, 글로벌 연계를 통해 성장의 기회로 바꿀 것인지는 지금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김영준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혁신사업실장
필자 소개 대기업 수석연구원, 교수, 사업가, 투자사 부문대표 등 다채로운 경력을 통해 쌓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지난 10년간 스타트업 스케일업 분야에 집중해 왔습니다. 20여 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으며, ‘3D프린팅 스타트업’, ‘하드웨어 스타트업’ 등의 저서를 통해 스타트업 성장 전략을 제시해 왔습니다. 아이디어 사업화 및 개방형 혁신 생태계 조성에 기여한 공로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상을 2회 수상했으며,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