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ODA, 스타트업을 만나다] 스타트업 ‘데스밸리’, 개발협력으로 넘는다

[인터뷰] 이상백 코이카 기업협력사업실장

“개발도상국 지원은 글로벌 경기침체에도 멈추면 안됩니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죠. 동시에 불황으로 투자 혹한기를 맞은 스타트업의 좋은 아이디어와 기술을 지원할 필요도 습니다. 이렇게 공적개발원조(ODA)와 스타트업 지원을 동시에 하는 게 바로 ‘CTS(혁신적 기술 프로그램)’입니다.”

지난 12일 경기 성남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 사무실에서 만난 이상백 코이카 기업협력사업실장은 “기존 방식으로 해결하지 못했던 개도국의 사회문제를 국내 스타트업의 비즈니스 솔루션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로 8년째를 맞은 CTS는 예비창업가 교육(Seed 0)부터 기술 개발 단계(Seed 1), 사업화 단계(Seed 2) 등 스타트업의 성장 단계별로 지원하고 개도국에서 개발협력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돕는코이카 사업이다.

12일 만난 이상백 코이카 기업협력사업실장은 "CTS 선발 경쟁률은 평균 5대1 수준이고, 사업 분야도 보건·교육·수자원·에너지·농촌개발·교통·공공정책 등 다양하다"고 말했다. /성남=이신영 C영상미디어 기자
12일 만난 이상백 코이카 기업협력사업실장은 “CTS 선발 경쟁률은 평균 5대1 수준이고, 사업 분야도 보건·교육·수자원·에너지·농촌개발·교통·공공정책 등 다양하다”고 말했다. /성남=이신영 C영상미디어 기자

그간 CTS를 통해 에누마, 닷, 트리플래닛 등 여러 소셜벤처들이 해외 진출에 성공했다. 질병진단 키트를 개발하는 ‘뷰노’와 ‘노을’은 코이카 지원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완성하고 코스닥에도 상장했다. 코이카는 올해부터 스타트업이 데스밸리를 극복하고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도록 현지 사업 안착을 지원하는 Seed 3를 신설할 계획이다.

스타트업 지원 약정 100건 돌파

-벌써 8년째다. 지금까지 성과에 만족하나.

“지난해 말 기준으로 7년간 지원 약정 103건을 체결했고, 사업에 돌입한 건수를 따지면 93건이다. 지금까지 CTS 출신 기업들의 외부 투자 유치액은 500억원을 넘고, 일자리 창출 성과는 1000명 정도된다. 지원을 받아 등록한 특허만 200건이 넘는다. 성과가 쌓이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아직 CTS를 모르는 기업들이 많다는 판단이다. 올해 사업 규모를 확장해 더 많은 기업들이 개발협력에 뛰어들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CTS 출신 기업 중에 이름이 알려진 곳이 많다.

“에듀 테크 기업 ‘에누마’가 대표적이다. 교육 과정을 밟지 못하는 저소득 국가의 아이들이 도움 없이 스스로 초등학교 2학년 수준의 기초 학습을 돕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다. 기술 개발에 최대 3억원을 지원하는 Seed 1에 선정된 걸 시작으로, 시범 사업 단계에 최대 5억원을 지원하는 Seed 2도 거쳤다. 지난 2019년에는 세계 대회인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에서 우승하면서 상금 500만 달러를 받기도 했다. 당시 일론 머스크가 대회의 상금 전액을 후원해 화제가 됐다. 최근에는 IBS(포용적 비즈니스 프로그램) 사업으로 넘어가 인도네시아에서 교육 서비스를 보급하고 있다.”

-IBS는 CTS와 별개의 사업인가.

“CTS가 시작된 2015년 이전부터 해외에 진출한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이 현지에서 개발협력사업을 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당시엔 PPP(Public Private Partnership)라는 이름으로 운영됐고, 지금은 IBS로 이름이 바뀌었다. 코이카에서 전체 사업비의 50% 혹은 70% 정도를 지원하고, 나머지는 기업에서 부담하는 구조다.”

-해외 국제협력기구에서도 CTS 같은 사업을 벌이나.

“CTS는 미국 국제개발처(US AID)의 혁신 프로그램 DIV(Development Innovation Ventures)에서 벤치마킹했다. 아이디어나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이 개도국에서 개발협력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당시 국내에서도 ‘창업국가’라는 키워드로 스타트업 지원에 대한 바람이 불 때였다. 시기가 맞아떨어졌다.”

코이카의 민관협력사업은 1995년 시작됐다. 당시에는 NGO 지원 사업만 운영했고, 민간기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은 없었다. 이상백 실장은 "2010년부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해외에서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협력사업을 벌일 수 있도록 도왔고, 2015년에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CTS가 출범했다"고 설명했다. /성남=이신영 C영상미디어 기자
코이카의 민관협력사업은 1995년 시작됐다. 당시에는 NGO 지원 사업만 운영했고, 민간기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은 없었다. 이상백 실장은 “2010년부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해외에서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협력사업을 벌일 수 있도록 도왔고, 2015년에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CTS가 출범했다”고 설명했다. /성남=이신영 C영상미디어 기자

“사업 현지화에 최대 10억원 지원한다”

-스타트업 지원 사업은 민간에서도 활발한 편인데.

“자금 지원만 하는 게 아니고 개발협력 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육성하는 부분이 크다. 예비창업가를 지원하는 Seed 0는 액셀러레이팅이 목적이다. 개도국 사업을 기획하는 방법부터 제안서는 어떻게 만드는지, 또 성과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까지 구체적으로 교육한다. 특히 개발협력사업은 기업들의 능력만큼이나 현지 사정을 파악하는 정보력도 중요한데 그 부분도 코이카 현지 사무소를 통해 지원한다.”

-예를 들자면?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질병진단 기술을 보유한 ‘뷰노’라는 기업이 해외 진출할 때다. 성매개 질환을 진단하는 키트로 몽골에서 사업을 했었는데, 코이카에서 필리핀에도 필요한 기술이라고 판단해 국가를 확대하도록 도왔다. 기업 입장에서는 현지 보건 시스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연락 창구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코이카 필리핀 사무소에서 지원하던 까비떼주립병원의 담당자와 연결해줬다. 이렇게 한번 연결되고 나니까 현지 보건 사업에서 역할을 맡게 되고 자연스럽게 네트워크도 확장되더라.”

-스타트업 사업엔 리스크가 뒤따르기 마련인데.

“물론 정부 예산으로 지원하다보니 조심스러운 점이 있다. 그래도 판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오는데, 외부의 투자 전문가들과 위원회를 꾸려서 심사 요소를 꼼꼼하게 살핀다. 가끔 사업성은 불확실하지만 정말 혁신적인 아이디어에 과감하게 지원해보자고 할 때도 있다. 이럴 때는 보증 증권 같은 안전 장치를 마련한다.”

-올해 지원 규모를 확대한다고 들었다.

“기술이 완성되고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어느 순간 투자금이 마르고 사업이 안착되기를 견뎌야 하는 이른바 ‘데스밸리’가 찾아온다. 성장 가능성이 충분한데 Seed 2 지원으로는 부족한 곳들이 많았다. 그래서 올해 지원 규모를 확대한 Seed 3를 신설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계획이 나왔나.

“아직 확정은 아닌데, 규모는 최대 10억원으로 생각하고 있다. 사업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외부 기관과 협업할 수 있도록 하고, 해외 현지 기업과 협력하는 구조도 마련하려고 한다.”

성남=문일요 기자 ilyo@chosun.com

[코이카x더나은미래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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