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배우며 취향도 삶도 넓어졌다…장애인 바리스타가 성장하는 카페

히즈빈스 서울숲점, 매니저·복지사·의료진이 함께 지원
업무 동선부터 매장 구조까지 바꿔 ‘스스로 일하는 환경’ 설계
“커피 취향 알게 되고 독립도 준비”…일터가 넓힌 일상의 반경

“일하다 보니 제가 산미가 있는 커피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히즈빈스 서울숲점에서 일하는 정신장애인 바리스타 이광우(33) 씨는 바리스타가 되기 전까지 커피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일을 시작한 뒤에는 자신도 몰랐던 취향을 하나씩 발견하기 시작했다.

지난 20일 서울 성동구 헤이그라운드 서울숲점 10층 커뮤니티 공간은 정오가 가까워지자 사람들로 채워졌다. 도시락과 배달 음식을 펼쳐놓고 대화를 나누는 사이로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라는 목소리가 울렸다. 한쪽에 자리한 히즈빈스 서울숲점에서 이 씨가 손님을 부르는 소리였다.

서울숲점은 정신장애인 고용을 기반으로 카페 사업을 운영해온 히즈빈스의 직영 매장이다. 히즈빈스는 정신장애인이 바리스타로 일할 수 있도록 직무 교육과 현장 관리, 복지·의료 지원을 연계해 일자리를 만드는 사회적기업이다. 서울숲점에서는 정신장애인 바리스타 3명과 현장 운영을 맡은 매니저 1명이 함께 일한다.

◇ ‘시키는 일’에서 ‘판단하는 일’로

대학 시절 스스로 이상 증세를 느껴 병원을 찾은 이 씨는 이후 강박장애 진단을 받았다.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을 통해 알게 된 복지사의 소개로 히즈빈스 채용 공고를 접했고, 지난해 3월 바리스타 일을 시작했다. 명동점 등에서 경험을 쌓은 뒤 같은 해 11월 서울숲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왼쪽부터) 정신장애인 바리스타가 일하는 히즈빈스 서울숲점에서 강혜진 매니저와 바리스타 이광우 씨를 만났다. / 채예빈 기자

처음에는 카페 일을 걱정했다. 이 씨는 “카페라고 하면 손님이 계속 몰리고 쉴 새 없이 일하면서, 매뉴얼을 못 외우면 혼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며 “막상 일해보니 주변에서 잘 챙겨주시고 실수해도 차분하게 알려줘 생각했던 것보다 편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같은 건물에 있는 히즈빈스 본사 직원들에게 ‘목소리가 좋다’는 말을 자주 들으면서 주문받는 포스 업무에도 자신감이 붙었다.

히즈빈스의 고용 방식은 장애인에게 정해진 업무만 맡기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며 일할 수 있도록 업무 환경과 지원 체계를 함께 만드는 데 초점을 둔다.

직원들이 업무에 익숙해지면 매니저는 한발 물러선다. 강혜진 매니저는 주문이 들어와도 곧바로 역할을 정해주지 않고 직원들에게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묻는다. 강 매니저는 “제가 ‘이거 하세요, 저거 하세요’라고 시키는 것만 하고 끝나면 본인의 성장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주문을 보고 먼저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할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알려달라”며 기다리던 직원들도 이제는 “저는 스무디를 만들겠습니다”, “샷을 뽑겠습니다”라며 먼저 역할을 정한다.

이런 자율성의 바탕에는 ‘안정감’이 있다. 강 매니저는 자신의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 직원들을 대하는 기준이 달라지지 않도록 신경 쓴다. 그는 “제 기분이 좋을 때는 괜찮다고 하고, 기분이 나쁠 때는 왜 그랬냐고 하면 직원들이 불안해진다”며 “항상 같은 기준으로 함께 일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실수가 생겨도 질책하거나 무조건 괜찮다고 넘어가지 않는다. 실수 때문에 생긴 자책이 다음 업무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다시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돕는다.

매장 공간도 바리스타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서울숲점은 정신장애인이 여러 업무를 갑자기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부담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작업 동선을 조정했다. 기존 일자형 공간을 두 줄로 나눠 주문과 음료 제조 등 역할별 움직임이 겹치지 않도록 했다. 손님이 몰려도 여러 업무를 오가기보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개인이 일터에 적응하기만을 요구하는 대신 일터의 구조도 함께 바꾼 셈이다.

매니저 혼자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담당 복지사와 의료진의 도움을 받는다. 복지사는 정기적으로 매장을 찾아 직원들과 면담하고, 매니저가 직원의 변화가 증상 때문인지 일시적인 기분이나 컨디션 문제인지 구분해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히즈빈스는 매니저와 복지사, 의료진 등이 함께 바리스타의 근무를 지원하는 구조를 ‘다각적 지지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히즈빈스 서울숲점은 서울 성동구 헤이그라운드 서울숲점 10층 커뮤니티 공간 안에 자리한 직영 매장이다. /채예빈 기자

◇ 일터가 바뀌자, 일상의 반경도 넓어졌다

이 씨의 변화는 일터 밖 일상으로도 이어졌다. 이전에는 자주 외출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쉬는 날 다른 카페를 찾아다니는 취미가 생겼다. 에스프레소 전문점에도 가보면서 자신이 어떤 커피를 좋아하는지 알게 됐다. 기자에게는 딸기케이크가 맛있는 서울대입구역 인근 카페를 추천하기도 했다.

커피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더 깊이 알고 싶어졌다. 올해 4월에는 동료 바리스타와 커피 박람회를 찾았고, 앞으로는 국내 바리스타 자격증에도 도전할 생각이다. 이 씨는 “지금은 원두를 몇 그램 넣는지처럼 매뉴얼대로 하고 있지만, 나중에는 분쇄도나 추출 시간이 왜 달라지는지도 이해하고 싶다”며 “커피에 대한 이해도와 전문성을 갖추려면 따로 공부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직업이 생기면서 앞으로의 삶도 조금씩 구체화했다. 이 씨는 “슬슬 독립할 시기가 됐다”며 “청년임대주택에 지원해 서류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지금의 근무 환경에는 만족하지만, 지금까지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커피 관련 일을 계속 이어가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

이 씨가 이런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서울숲점은 일반 고객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만큼, 히즈빈스는 ‘정신장애인이 일하는 카페’라는 점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커피와 공간 자체로 먼저 손님을 만나려 한다.

유병윤 히즈빈스 본부장은 “장애인이 일하니까 한 잔을 사줘야 한다기보다, 브랜드가 매력 있어서 알게 됐는데 장애인이 근무하는 곳이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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