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동주 K.O.A 대표
몽골 남서부에 있는 바잉헝거르주 신진스트마을 주민들의 생계 수단은 목축업이다. 유목민 292가구(약 1100명)는 10만㎡ 규모의 목초지에서 산양 수백 마리를 키우며 캐시미어의 원료가 되는 털을 채집한다. 털을 밀거나 뽑는 방식이 아니다. 산양이 털갈이를 하는 3~5월 사이 저절로 빠지는 털을 빗으로 긁어모은다. 산양 한 마리에서 1년간 얻을 수 있는 털은 500g에 불과하지만, 털이 가늘고 길어 최상급 원료로 분류된다. 문제는 주민들이 제값을 못 받는다는 점이다.
국내 패션 스타트업 K.O.A(이하 ‘케이오에이’)는 신진스트마을을 포함한 몽골 25개 마을에서 공수한 캐시미어 원료로 친환경 의류를 제작한다. 지속가능한 패션 산업을 일군다는 목표로 주민 소득을 높이고, 과잉방목으로 인한 초지 황폐화를 막기 위해 순환방목 방식을 제안하기도 했다. 지역을 A, B, C 등으로 나누고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방목 지역을 옮기는 식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지역의 사막화를 방지할 수 있었다.
지난 4일 서울 성동구 ‘스페이스 르(SPACE LE)’에서 유동주 케이오에이 대표를 만났다. 스페이스 르에는 몽골산 캐시미어 원단으로 만든 니트·코트·머플러 등의 제품들이 가득했다. 형형색색의 니트와 코트, 귀여운 아동의류까지 눈길을 사로잡았다.
의류산업서 폐기물 제로에 도전… 몽골 주민들 삶도 바꿔
-의류 디자인이 깔끔하고 트렌디하다.
“하하. 젊은 세대들한테도 인기가 좋다. 값이 꽤 나가지만, 최상급 캐시미어라는 걸 알아봐 주시는 것 같다. 캐시미어가 많이 팔리는 시즌에는 몇천장씩 팔리기도 한다.”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궁금하다.
“몽골 바잉헝거르주 현지 협동조합들이 산양들로부터 털을 채집한다. 저절로 빠지는 털만 모아서 옷을 만든다. 최대한 동물들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이다. 채집한 털은 울란바토르주에 있는 생산 공장에 가져간다. 의류는 홀가먼트(한 벌을 통째로 편직해 만든 의류) 기술을 활용해 만든다. 공장에 있는 캐시미어 생산기술자 약 300명이 3D 프린터로 의류를 제작한다.”
-3D 프린터로 의류를 제작한다?
“공장에서 옷을 생산할 때 자투리 천들이 너무 많이 나온다. 소재에 따라 다르지만, 원단의 30~40%가 자투리로 버려진다. 3D 프린터로 의류 사이즈, 디자인을 설정하면 남는 원단 없이 옷을 만들 수 있다. 일본이나 독일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다. 케이오에이는 실크나 면, 솜이 아닌 캐시미어 원료를 3D 프린터에 최적화하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독자적인 기술인가?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의 CTS(혁신적 기술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도움을 받았다. 시범사업 확장(SEED 2) 지원을 받으면서 기술 수준을 높였고, 개도국으로 확산했다. 이 밖에도 옷을 판매할 때 재고를 남기지 않는 ‘온디맨드’ 방식을 고안해내기도 했다. 온디맨드 방식은 선주문 후 생산하는 시스템으로 재고를 남기지 않아 의류폐기물을 최소화할 수 있다. 현재 문제가 되는 패스트 패션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주목받는다.”
-온디맨드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쉽게 크라우드 펀딩을 생각하면 된다. 일정 금액이 모여야지 주문이 가능한 구조다. 이때 ‘수요자 반응 기술’이라고 해서 인공지능(AI)이 기존의 데이터를 활용해 수요를 예측해 준다. 이를 기반으로 옷을 제작하는 것이다. 물론 아예 선주문 후 옷을 생산하는 방식도 있다. 재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패션업계의 ‘패러다임 시프트’, 이제부터 시작
-이렇게까지 패션의 지속가능성에 몰입하는 이유가 있을까?
“대학 졸업 후 글로벌 NGO, 코이카, UN 산하기구 등에서 7년가량 활동하면서 중국·몽골·태국과 같은 다양한 개도국을 방문했다. 코이카 개발협력 요원으로 일할 때, 수도에서 20시간 정도 떨어진 외곽 지역에서 유목민들과 함께 생활한 적이 있다. 이때 만난 아이가 뇌리에 박혔다. 그 친구랑 같이 축구도 하고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꽤 즐거운 생활을 했다. 그런데 몽골의 사막화가 심화하면서 아이가 생계유지 수단인 방목을 더는 하지 못하게 됐고, 등 떠밀려 도시로 이주했다. 그런데 도시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갈 곳을 잃어 맨홀 밑에 들어가서 살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 몽골 기온이 영하 40도였다. 정말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환경적, 사회적 문제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뭔가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뭐가 바뀌었나?
“몽골의 저소득 여성 90%가 목축업에 관여하고 있는데, 이들의 소득이 많이 증대됐다. 케이오에이는 몽골에서 기업가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풍부한 자원을 활용해 창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를 통해 실제로 여성 10명이 창업해 현지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유목민들의 순환방목을 유도하면서 토지의 황폐화도 막았다. 산양이 풀을 뜯어먹다 보니 과잉방목을 하면 순식간에 초지가 사막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입이 증가하고, 환경이 점차 개선되는 걸 보면서 현지 유목민들도 굉장히 기뻐하는 분위기다.”
-케이오에이 내부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고 들었다. 지난해 7월 M&A 방식으로 코오롱FnC에 인수합병됐다고.
“맞다. 지금은 케이오에이 대표이자 코오롱FnC ESG임팩트실장을 맡고 있다. 좋은 파트너를 만나게 돼 사업을 크게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코오롱FnC가 가진 자체 브랜드는 30개가 넘는다. 이 브랜드 내에서 케이오에이의 경험을 접목해 새로운 도전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인 목표도 궁금하다.
“이제는 케이오에이의 단일 브랜드를 넘어서 전반적인 패션 산업 부문에서 어떤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점을 맞이했다. ‘제로웨이스트’ ‘지속가능성’에 방점을 찍고 재생 소재 전문 기업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비전이 있다. 지금은 케이오에이가 사용하는 주 원료가 캐시미어지만, 앞으로는 코튼, 울, 면 등 다양한 소재의 의류 폐기물을 활용해 재생 의류를 만드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우리가 패션업계에서 패러다임 시프트를 만드는 한 축이 되길 바란다(웃음).”
김수연 기자 yeon@chosun.com
[코이카x더나은미래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