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제개발협력 예산 1.6조 급감
정부 “분절 사업 정비”, 현장 “지원 범위 축소 불가피”
정부가 올해부터 한국의 외교·경제 역량을 연계한 공적개발원조(ODA) 모델인 ‘상생형 K-ODA’ 종합기본계획을 시행하며 중장기적 원조 체계 마련에 돌입했다. 파편화된 원조 사업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올해 관련 예산은 전년 대비 약 16% 줄어든 가운데, 신규 사업 축소를 체감하는 현장의 고충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원조의 본질인 취약계층 지원과 장기적 시너지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것이 향후 K-ODA의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국내 ODA 예산 축소는 전 세계적인 국제 원조 재정 감소 흐름과도 맞물려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4월 발표한 2025년 잠정 집계에 따르면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의 ODA는 1743억 달러(약 269조3800억 원), 전년보다 실질 기준 23.1% 감소했다. 이는 ODA 통계 역사상 최대 연간 감소폭이다.
국제사회 전반이 원조 재정을 줄이는 상황이지만, 한국의 기여 수준은 DAC 평균에도 미치지 못했다. OECD 잠정 집계에서 한국의 2025년 ODA는 국민총소득(GNI) 대비 0.2%로, DAC 평균 0.26%를 밑돌았다.
국제개발협력기본법에 따라 5년마다 수립되는 최상위 국가 전략인 제4차 기본계획은 ‘혁신과 성과를 기반으로 보편적 가치와 상생을 실현하는 K-ODA’를 비전으로 내걸었다. 정부는 ▲포용적 가치 실현 ▲호혜적 상생 확대 ▲혁신적 개발 이행 ▲통합적 체계 구축을 4대 전략 목표로 제시했다. 여기에 AI·문화 등 한국이 비교우위를 가진 분야를 ODA에 접목하고, 무상원조 기관 간의 분절 현상을 줄이며 성과관리 및 평가 체계를 강화하겠다는 구체적 구상도 담겼다.
◇ 예산 16% 삭감…신규 사업 줄탈락에 “취약계층 직격”
다만 새 기본계획이 시행된 첫해, 국제개발협력 예산은 크게 줄었다. 정부가 확정한 올해 관련 예산은 5조4372억 원으로, 지난해 6조5010억 원보다 1조638억 원(16.4%) 감소했다. 정부는 소규모·행사성 사업과 저성과 사업을 정비하고, 사업 간 연계성 및 성과관리 체계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예산을 조정했다고 밝혔다.
현장의 타격은 구체적인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에 따르면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민관협력사업 예산은 지난해 623억 원에서 올해 495억 원으로 20.5%(128억 원) 줄었다. 특히 495억 원 가운데 408억 원이 기존 계속사업에 배정되면서 신규 사업 예산은 87억 원에 그쳤다. 올해 신규 사업은 8개만 선정됐다.
KCOC 관계자는 “신규 사업은 보통 연간 20~30개를 선정하는데, 올해는 약 20개가 예산 부족으로 최종 지원에서 제외됐다”고 말했다. 제외된 후보 사업에는 여성·아동·장애인·소수민족·난민·이주민·빈곤 농민 등을 대상으로 한 사업이 포함됐다. 결국 가장 취약한 계층이 더 큰 위기에 놓이게 된다는 우려다.

조대식 KCOC 이사장은 재원 감소가 현장 지원의 범위를 좁힐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재원이 줄면 사업이 축소될 수밖에 없고, NGO들이 현장에서 지원하는 대상의 범주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지난 20여 년간 증가해 온 한국 ODA가 올해 감소세로 돌아선 만큼,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한 경험을 가진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어떤 책임을 맡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재성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예산이 줄어든 만큼 사업의 우선순위를 더 분명히 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제한된 예산으로 너무 많은 지역과 분야를 다루면 사업이 파편화될 수 있다”며 “분야든 지역이든 무엇에 집중하고 무엇을 포기할지 더 숙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지리적으로 가깝고 협력 기반이 있는 아시아 주변국에 역량을 모으는 방안을 제시했다. 분야 측면에서는 인도적 지원을 최우선 과제로 꼽으면서, 민간의 해외 진출이나 공급망과 연계해 협력국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사업도 발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상생과 본질 사이…K-ODA가 가야 할 길
제4차 기본계획은 상생과 성과, 통합을 내세웠지만, 현장에서는 새 방향이 사업 기준과 우선순위로 어떻게 이어질지를 두고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오의석 공적인사적모임 대표는 “예산 문제도 맞물려 있지만, 현장에서 더 크게 느끼는 것은 새 기본계획에 맞춰 앞으로 어떤 사업을 해야 하는지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짚었다.
오 대표는 최근 ODA가 수원국의 개발 수요보다는 공여국인 한국의 정치·경제·외교·안보적 필요에 맞춰 설계되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기후 ODA가 대세였다가 갑자기 AI로 바뀌면서 기존에 해오던 일반 보건 사업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며 “현지 수요가 있어 계속해 온 사업도 새 의제와 맞지 않으면 수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성과관리 중심 전환의 구체적 방식도 충분히 안내되지 않아, 일부 수행기관에서는 신규 사업 발주가 늦어지거나 기획·예비조사까지 마친 사업이 최종 단계에서 취소·보류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재광 발전대안 피다 대표는 무상원조 체계 통합과 성과관리 강화라는 방향성에는 동의하면서도, 제4차 기본계획 무상 분야의 세부 목표 수립 과정에서 소통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부처, 학계, 시민사회, 민간 전문가와의 충분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결과적으로 한국 ODA의 주요 분야였던 기초교육과 공공행정 등이 16대 중간목표에서 빠졌다는 것이다.
한 대표는 “’상생형 K-ODA’가 한국의 단기적 이익만을 앞세우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파트너 국가의 발전이 결과적으로 한국의 발전이라는 논리가 정부와 사회 전반에 뿌리내려야 한다”며 “ODA를 제공한 뒤 곧바로 이익이 나기를 조급해하지 말고, 진심을 갖고 파트너 국가의 발전을 기다려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부는 제4차 기본계획이 기존 ODA를 줄이기보다, 분절된 사업 구조를 장기·통합형으로 전환하기 위한 청사진이라고 설명한다. 김진남 국무조정실 국제개발협력본부장은 식량·기후위기 대응 등 보편적 가치를 위한 사업은 유지하되,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만큼 일부 사업은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에도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 본부장은 이러한 전환이 단발성 사업을 줄이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봤다. 그는 “3~5년짜리 사업을 하고 끝내는 방식으로는 지속가능한 변화를 만들기 어렵다”며 재생에너지나 보건 등 특정 분야에서 10~15년 로드맵을 세우고, 단계별 사업과 중간평가를 연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