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토)

[ODA, 스타트업을 만나다] 우간다 마을을 살린 ‘중력식 정수기’

[인터뷰] 류안나 워터앤라이프 대표

아프리카 우간다 무코노주의 한 마을에서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장티푸스 같은 수인성 질병을 달고 살았다. 배탈이 나도 더러워진 호숫물을 생활용수로 사용하고, 오염된 지하수를 마셨다. 주민들은 자주 열이 나고 배가 아팠다. 어느 날 질병이 자취를 감췄다. 우리나라 스타트업 워터앤라이프가 개발한 정수기가 40가정에 보급되면서 였다. 정수기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컵을 들고 옆집으로 물을 얻으러 다녔다. 각 가정에선 이 정수기를 집 안 가장 안전한 곳에 보관했다.

아프리카 식수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수십년 째 국제기구, NGO가 깨끗한 물을 공급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11억명은 아직도 오염된 물을 마시며 살아간다. 매년 수인성 질병으로 사망하는 인구는 83만명에 달한다.

류안나 워터앤라이프 대표는 "깨끗하고 안전한 식수, ‘생명의 물’을 전한다는 게 회사 미션"이라며 "그래서 이름도 '워터', 물과 '라이프', 생명이라고 지었다"고 말했다. /광주=한준호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류안나 워터앤라이프 대표는 “깨끗하고 안전한 식수, ‘생명의 물’을 전한다는 게 회사 미션”이라며 “그래서 이름도 ‘워터’, 물과 ‘라이프’, 생명이라고 지었다”고 말했다. /광주=한준호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워터앤라이프는 중력식 정수기를 개발했다. 이전에도 중력식 정수기는 있었지만 속도가 느리거나 필터를 너무 자주 갈아야 해서 상용화되지 못했다. 류안나 워터앤라이프 대표는 지난 2017~2019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 CTS 프로그램에 선정, SEED1단계에 참여해 이 문제를 개선한 필터를 개발했다. 무코노주 마을을 대상으로 시범 사업까지 마치며 성과를 확인했다. 올해 말까지 진행되는 SEED2 단계에서는 본격적인 보급에 나선다. 우간다로 출국을 2주 앞둔 류 대표를 지난 3일 광주 북구 워터앤라이프 사무실에서 만났다.

아껴 둔 레이스 천을 꺼낸 아기 엄마

-출국 준비로 바쁘겠다.

“그래도 현지에 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년 동안은 현지 직원과 전화로만 소통했다. 현지 인터넷 연결 상태가 좋지 않아서 통화의 반은 ‘캔유 히얼 미(Can you hear me·들리세요)?’만 외쳤다(웃음).”

-아프리카도 빈부격차가 크다고 들었다. 식수 문제를 겪는 사람은 대부분 빈곤층인가.

“우간다에 방문하면 나름 부촌이라는 지역에 숙소를 잡는다. 그런 동네에서도 각 가정에서 지하수를 파서 물을 얻는다. 난 그 물로 설거지한 그릇만 써도 꼭 배탈이 난다. 우간다에서 제일 좋은 대학을 나와서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현지인 엘리트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도 물 위생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다. 하루는 수인성 질병에 대해 설명했더니 그제야 ‘우리 엄마가 장티푸스에 자주 걸리는 게 양칫물이 더러워서였구나’라고 했다. 전반적으로 위생도 안 좋고 교육도 부족하다.”

-이번 SEED2에서는 학교에 보급하는 건가.

“그렇다. 우간다 캄팔라 지역 학교 학생 500명한테 전달한다. 물론 가정에도 보급한다. 100가정에 전달할 계획이다. 아이들이 깨끗한 물을 먹어야 한다는 걸 어릴 때부터 알았으면 한다.”

-아프리카 식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수도 없이 있었다.

“국제기구나 NGO가 우물도 파고, 학교에 정수 설비도 설치해줬다. 그래도 한계가 있었다. 비라도 오면 우물에는 동물 분뇨가 섞여 들어갔다. 우물이든 정수 설비든 관리도 되지 않아서 고장 난 채로 방치되는 경우도 많았다. 지속적으로 유지 관리하기에는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제일 좋은 방법은 각 가정에 관리가 쉬운 정수기를 보급하는 거다. 세계보건기구도 2019년 보고서에서 ‘가정용 정수시스템’이 설사 발생을 61% 감소시킬 수 있다면서 수인성 질병 문제 해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했다. 문제는 정수기는 필터를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거다. 아프리카 물은 워낙 탁도가 높으니까 필터가 너무 자주 막힌다. 개도국 사람들은 필터 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다. 정수 속도가 느리다는 한계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 제품 필터를 개발할 때 속도와 지속가능성에 중점을 뒀다.”

-중력식 정수기로 한 시간에 몇 L 정도 얻을 수 있나.

“1시간에 최대 60L를 얻을 수 있다. 수인성 질병을 유발하는 질병균을 콕 집어 제거한다. 사용기한도 반영구적이다. 10년, 20년씩 사용할 수 있다. 중력식 정수기니, 전기도 필요 없다. 그러니 우간다 주민들에게는 이 정수기가 너무 소중한 거다. SEED1 사업 때, 원래 보급품은 도난이나 분실이 많게 마련인데 정수기 분실이 거의 없었다. 집을 비울 땐 옆집에 맡겨놓고 간 거다. 그만큼 소중하니까. 한 집에 방문했는데 아기 엄마가 제일 아끼는 레이스를 꺼내 정수기를 덮어둔 걸 봤다.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사진으로 찍어서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워터앤라이프 직원들이 정수기 필터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광주=한준호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워터앤라이프 직원들이 정수기 필터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광주=한준호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식수 문제, 탄소금융으로 해결

-스타트업은 수익을 내야 한다. 필터 교체 필요없는 정수기로 비즈니스가 가능한가.

“탄소배출권 사업으로 수익을 얻는다. 탄소배출권을 의무적 시장과 자발적 시장에 공급한다. 우간다 기준 학교 2000개에 정수기를 공급하면 연간 20만 톤 정도의 배출권을 발행받을 수 있다. 우리가 발행하는 배출권은 퀄리티가 높은 편이다. 우간다 정부와 관계가 우호적이기 때문이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서 탄소배출권으로 인증을 받으려면 해당 국가 정부의 승인부터 받아야 한다. 정부와 관계가 좋아야 승인을 수월하게,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다. 한국 기업이 현지에 들어가서 직접 사업장을 관리하고, 탄소량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도 배출권 퀄리티에서 플러스 점수를 받는다. 코로나19로 락다운된 상황에서도 우리는 국가 승인서도 받고, 현장 사업을 원활하게 운영했다.”

-아프리카에서 어떻게 네트워크를 구축한 건가.

“처음에는 한국인 지인을 통해 현지인을 한 명 소개받았다. 그 친구를 통해서 또 소개받으면서 네트워크를 확장해 나갔다. 계속 만나면서 신뢰를 쌓았다. 아프리카에도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나 가부장적 문화가 있어서 동양인 여자가 네트워크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 만남을 시도했다. 아프리카가 유럽 국가 지배를 받아서인지 서양식 합리주의 문화가 있다. 반드시 정(情)으로 친해지는 것보다는 이성적인 설득이 더 잘 먹힌다. 그래서 무조건 설득하러 다녔다. 우리한테 왜 이런 혜택을 줘야 하는지, 그럼 정부와 국민에게 각각 어떤 점이 좋은지. 그러다 보니 네트워크가 넓어졌다. 자존심을 버려야 할 때도 많았지만 나중엔 결국 좋은 네트워크가 됐다.”

-ODA 분야 스타트업의 이점은 무엇인가.

“스타트업을 운영하면서 스타트업이 ODA 분야에서 낼 수 있는 임팩트가 상당히 크다는 걸 실감했다. NGO나 국제기구가 한계를 갖는 부분이 있다. 상황에 따라 자원 보급이 끊기기도 하고, 단체 이미지도 중요하다. 기업은 이들이 닿지 못하는 영역에 접근할 수 있다. 처음에 매출을 내는 게 어렵기는 하다. 하지만 그 단계를 넘어서면 자생할 수 있고 임팩트도 크게 낼 수 있다. 제품을 계속 고도화해서 현장에 맞는 제품을 만들어 낸다는 것도 기업의 장점이다. NGO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는 영역이다.”

-앞으로 목표는.

“목표는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적인 탄소배출권 기업, 아프리카에서는 대표적인 정수기 공급 기업이 되는 것이다. 코로나19 전에 2000개 학교에 정수기 3만대를 공급하기로 했는데 중단됐다. 3년이 지연됐다. 올해는 목표 달성을 위해 더 열심히 뛸 계획이다.”

광주=최지은 기자 bloomy@chosun.com

[코이카x더나은미래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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