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공익법인 관련 법령, 한국과 비교해보니
우리나라의 공익법인 관련 제도를 검토하려면, 먼저 일본의 법제도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내 많은 법이 일본의 법령을 참고해서 제정됐기 때문이다. 이를 전문용어로 ‘법의 계수(繼受)’라고 하는데, 일본의 민법과 상법은 프랑스 및 독일 민법을 계수했고, 우리 민법은 일본 민법 및 상법을 계수했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국내 비영리 공익법인 제도의 근간이 되는 법령은 민법(제31조~제97조 민법총칙 제3장 법인)과 1975년 제정된 공익법인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다. 일본과 한국은 비영리공익법인의 정의를 어떻게 하고 있었을까. 2008년 민법 개정안이 시행되기 이전의 조문을 비교해보자.
법령 본문의 내용에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일본 구 민법 제34조의 제목은 ‘공익법인’이라고 돼있지만, 우리 민법은 ‘비영리법인’이라고 명시돼있다. 일본의 구 민법 제34조상의 법인은 ‘공익법인’만을 의미하고, 공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기타 비영리법인을 대상으로 하지 않아 법령상의 미비점이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반대로 우리나라는 비영리법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 인한 문제점도 있었는데 이는 시리즈 뒤편에서 소개하도록 한다). 1990년대 중반,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간법인법’이란 법률을 제정해 시행하기도 했다. 중간법인이란 공인법인과 영리법인의 중간 성격을 가진 법인을 말한다. 이 외에도 당시 일본의 구 민법 제34조에 대한 문제점을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 비영리법인을 ‘공익’에 한정하는 것은 곤란하며 이 규정 때문에, 권리능력이 없는 사단, 재단의 문제가 발생하며 이는 민법규정의 결함이다. • 공익여부의 판단이 불명확하며, 또한 그 공익여부의 판단이 주무관청의 재량에 위임되어 있는 것은 곤란하다. 준칙주의(법률이 정하는 일정한 조직을 갖추는 것에 대하여, 법인 성립을 인정하는 주의)를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감독이나 면세 또는 감세 등의 조치는, 법인의 실체, 구체적인 상황에 비추어 판단할 문제로서, 법인격을 부여할 것인지 여부에 결부하여 판단할 사안은 아니며, 준칙주의와 감독제도를 결부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 주무관청에 의한 허가제도에서 주무관청의 통제가 심해서 공익 국가독점주의로 되었고, 그 결과 민간의 자유로운 공익활동이 제약되었고, 특히 주무관청과의 유착에 따른 폐해가 많았다. • 법인측면에서도 조직의 지배구조(Governance)나 정보 공개가 충분하지 못했고, 세제에 의한 지원이 불충분했다.
위와 같은 문제점 및 비판을 수용해 일본 정부는 1996년 당시 3개의 여당이 공익법인제도를 개혁하겠다는 방침을 발의했고, 이후 2000년부터 2006년까지의 6년 간의 연구 및 논의, 2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08년 12월 1일부터 개정안이 시행됐다. 이를 공익법인제도 개혁 3법이라고 한다. 일본의 2008년 공익법인 개혁의 핵심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일반 비영리법인과 공익법인을 구분하며, 일정한 요건을 갖춘 공익법인은 내각총리대신(또는 지방자치단체)으로부터 공익법인의 인정을 받도록 함. • 주무관청제를 폐지하며, 공익사단법인 및 공익재단법인을 인정할때 2개도 이상에 걸쳐 활동하는 경우는 내각총리대신, 그 이외에는 지방자치단체장이 담당함. • 전문가로 구성되는 합의제위원회(중앙정부의 공익인정등 위원회 및 각 지방자치단체의 공익인정등 심의회)가 행정청의 공익인정, 이행 인정, 이행 인가에 대해 자문기관으로서 공익법인 및 공익목적 지출 계획 등에 관한 실질적인 감독권한을 가지도록 함. • 공익인정 요건은 공익목적사업지출이 총지출의 50%이상일 것 등 17항목과 ‘불특정 다수의 이익의 증진에 기여하는 요건을 충족해야 함. • 1896년부터 2008년 11월 30일까지 설립된 기존 공익법인은 특례민법법인(약 2만4500여개 법인)으로서 2008년12월1일부터 5년 이내에서 새로운 법령에 의한 등기와 공익인정절차를 취하여야 함. • 2001년 도입된 중간법인제도는 폐지하고, 이 법에 의하여 설립된 중간법인은 일반사단법인으로 전환하도록 함.
위와 같은 일본의 2008년 공익법인 제도 개혁 중 우리가 참고할 만한 점은 무엇일까. 먼저 과거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아야만 공익법인을 설립할 수 있었던 사항을, 법에서 정한 요건만 충족하면 자유롭게 비영리법인을 설립하도록 하는 준칙주의로 변경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영리법인 설립의 ‘허가주의’는 폐지해야한다는 주장이 오래 전부터 제기돼왔다.
또다른 특징은, ‘공익인정 등 위원회’라는 민간위원회를 중앙정부 및 각 지자체별로 만들고, 이 위원회가 공익법인 심사 및 관리에 관한 실질적인 업무를 담당한다는 점이다. 이는 영국의 채러티 커미션(Charity Commission·자선사업 감독위원회) 제도를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런 위원회제도는 몇 년 전 호주에서도 도입됐고, 우리나라 비영리 영역에서도 NPO청, 제3섹터청 또는 자선단체위원회를 만들어 각 부서에서 담당하고 있는 비영리법인관련업무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다.
다만 일본의 2008년 공익법인제도의 개혁은 종전 민법상의 ‘공익법인’에 한정됐을 뿐, 특정 NPO단체·학교법인·사회복지법인·의료법인·종교법인 관련법은 그대로 남아있는 점에서 ‘절반의 개혁’이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영리 및 공익법인 제도를 새롭게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데, 과연 민법 및 공익법인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명시된 공익법인 외에 학교법인·사회복지법인·의료법인 등을 포괄하는 개혁이 가능할지 의문이 든다. 일부 대형 NPO단체들이 자선단체위원회를 만들어야한다는 주장 및 청원을 하고 있는데 상당수가 사회복지법인에 의해 설립된 단체들이 많다. 사회복지법을 민법 등과 동시에 개정하기는 어려워보이는 상황. 국내 공익법인, 비영리법인의 더 나은 방향을 위한 심도깊은 논의와 연구가 지속돼야할 것으로 보인다.
배원기 교수는 1978년부터 2010년까지 32년간 회계사 삼일회계법인, 삼정KPMG 등에서 32년간 회계사로 일했고, 2010년부터 홍익대 경영대학원에서 세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약 15여년 전부터 비영리단체 4~5곳의 비상근 감사직을 맡으면서 공익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이후 비영리 공익법인 회계기준의 제정과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11년 1월 '비영리법인(NPO)의 회계와 세무'라는 책을 펴냈고, 홍대 경영대학원에서 “비영리법인의 회계와 세무” 등을 가르치고 있다. 현재 신한회계법인 비영리 회계 세무그룹의 고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