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란트로피
최재호 현대차 정몽구 재단 사무총장, ‘전략적 필란트로피’ 설명

최재호 현대차 정몽구 재단 사무총장이 19일 서울 더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더나은미래 창간 16주년 기념 VIP 조찬포럼 ‘부의 사회적 책임과 더 나은 미래’에서 ‘전략적 필란트로피 시대, 재단의 사회문제 해결법’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엑스프라이즈 재단의 우주항공 기술, 탄소 포집 등을 주제로 스타트업이 참여하는 문제 해결형 공모전을 예시로 들며 한국 재단 및 NGO도 이와 같이 능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지훈 더나은미래 기자

[필란트로피 인사이트] 우리는 왜 ‘어떻게’만 묻는가: 필란트로피 재고

필란트로피(Philanthropy)에 관한 정기 칼럼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였다.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한국에서 필란트로피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의 관심사와 고민을 살펴보았다. 흥미롭게도 대부분의 질문은 한 방향으로 수렴했다. ‘필란트로피란 무엇인가’보다 ‘필란트로피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훨씬 더 큰 관심이 쏠려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필란트로피에 대한 실천적 요구가 커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려도 남는다. 필란트로피를 하나의 사회적·문화적 가치로 성찰하기보다, 공익을 실행하는 수단이나 도구로 접근 하려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개념에 대한 올바른 탐구 없이 방법론부터 묻는 방식은, 한국적 맥락에서 필란트로피 고유의 방향과 문화를 형성하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어떻게’를 묻기 전에, 반드시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 개념에 대한 성찰 없이 이루어지는 실천은 쉽게 방향을 잃는다. 이 칼럼은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하고자 한다. 필란트로피를 설명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어떤 이는 필란트로피라는 영어를 최초로 사용한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의 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고대 그리스어 philanthrōpía—’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그 개념의 뿌리를 찾는다. 또 어떤 이는 18세기 계몽주의 전통에서 등장한 독일의 Philanthropismus를 언급하며 사상적 기반을 설명하기도 한다. 이런 접근은 철학적 기원을 이해하는 데 나름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필란트로피를 이해하려면, 어원보다는 그것이 어떤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형성되고 변화해왔는지를 살피는 일이 더 중요하다. 특히 미국에서 필란트로피는 19세기 후반 ‘과학적 자선운동(Scientific Charity Movement)’을 계기로 기존의 자선(charity)과 명확하게 구별되기 시작했다. 이 운동은 단순한

[김성주 교수의 미국 필란트로피] 한국형 필란트로피, 가능성의 조건은

미국의 필란트로피는 흔히 ‘부유한 개인의 선의’에서 출발한 것으로 설명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복합적인 역사와 제도적 토대 위에서 형성돼 왔습니다. 봉건제와 군주제를 거치지 않은 사회에서 자발적 결사와 자선은 공공의 빈틈을 메우는 방식으로 일찍부터 자리 잡았고, 이는 개인의 기부와 비영리 조직이 정치 권력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전통으로 이어졌습니다. 다트머스 판결은 비영리 조직의 독립성과 연속성을 제도적으로 확정했고, 지라드 유언 판결은 기부자의 의도(donor intent)가 공익의 틀 안에서 어떻게 보호될 수 있는지에 대한 법적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조직이 오래 지속되고, 기부의 의도가 시간 속에서도 유지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면서, 개인 기부와 개인재단 중심의 구조는 하나의 제도적 선택지로 뿌리내릴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조건 위에서 레거시 재단과 수많은 개인·가족 재단은 단발적 자선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공익 장치’로 성장해 왔습니다. 이제 질문은 한국으로 넘어옵니다. 한국 사회에서 개인이 자신의 이름으로 재단을 세우는 일은 어떻게 가능해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그것이 ‘의심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 신뢰의 자산’으로 작동할 수 있을까요. 한국형 필란트로피를 논할 때 핵심은 ‘개인재단 설립을 장려하자’는 구호가 아니라, 개인 필란트로피가 사회로부터 환대받고 지속될 수 있는 제도와 문화의 조건을 동시에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는 개인이 자신의 이름으로 재단을 설립해 자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행위가 비교적 자연스러운 선택지로 받아들여집니다. 제도적 장치가 받쳐 준다는 점도 크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문화적 해석입니다. 이름을 걸고 공공 문제에 개입하는 일이 ‘과시’나

[김성주 교수의 미국 필란트로피] 왜 미국은 기업재단이 아니라 ‘개인재단’이 중심인가

미국의 재단 지형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개인재단이 중심이고 기업재단은 주변’입니다. 한국의 상식으로 보면 낯설 수 있습니다. 기업이 커지고 기업의 사회공헌이 일상이 된 사회라면 기업재단이 가장 큰 축일 것이라고 예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사적 재단(private foundation)의 중심은 개인·가족 재단이며, 이 구조를 이해하려면 먼저 미국 재단을 유형으로 정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의 사적 재단은 대체로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됩니다. 개인 또는 가족이 설립한 독립재단(Independent foundation)이 가장 큰 축이며, 개인재단(Individual foundation)·가족재단(Family foundation)으로도 불립니다. 2024년 기준 약 12만 개에 달하는 미국 재단 가운데 약 89%가 이 유형에 해당하며, 게이츠 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 맥아더 재단(MacArthur Foundation), 포드 재단(Ford Foundation) 같은 사례가 여기에 속합니다. 둘째, 직접사업재단(Operating foundation)으로, 보조금 배분(grantmaking)보다는 자체 프로그램 운영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재단입니다. 전체 재단의 약 7%를 차지하며, 대표적인 사례로는 게티 센터(Getty Center)와 게티 빌라 박물관(Getty Villa Museaum)를 운영하는 J. 폴 게티 트러스트(The J. Paul Getty Trust)를 들 수 있습니다. 셋째, 기업이 직접 설립한 기업재단(Corporate foundation)이 있습니다. 이는 전체 재단의 약 3% 수준으로, 월마트 재단(Walmart Foundation), 구글재단(Google.org), 마이크로소프트 필란트로피(Microsoft Philanthropies), 제이피 모건 체이스 재단(JPMorgan Chase Foundation) 등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역재단(Community foundation)은 여러 기부자(개인, 가족, 기업)의 자금을 모아 지역 이슈에 대응하는 공익 활동을 지원하며, 재단의 약 1%를 차지합니다. 1914년 설립된 ‘클리블랜드 커뮤니티 재단(Cleveland Community Foundation)’이 시초며,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펀드를 제공하는

[김성주 교수의 미국 필란트로피] 과학적 자선 운동이 바꾼 ‘돈의 쓰임’

필란트로피는 대개 거액 기부나 거대 재단의 이름으로 기억됩니다. 하지만 필란트로피의 핵심은 ‘얼마나 냈는가’보다 ‘어떻게 썼는가’에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전개된 ‘과학적 자선 운동(scientific charity movement)’은, 자선이 필란트로피로 전환되는 중요한 고리였습니다. 자선이 더 이상 선의의 감정에만 의존해서는 빈곤과 실업,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 확산되면서, 자선을 체계적으로 운영하려는 흐름이 사회 전반으로 번졌습니다. 과학적 자선 운동의 사상적 배경은 합리주의적 복지 사상(rational and structured approach to social welfare), 즉 사회 문제에 대해 감정적 구호가 아니라 자료와 원리에 기초해 접근하려는 흐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토머스 맬서스(Thomas Malthus),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 등 영국 사회개혁가들의 영향이 이 운동의 한 뿌리로 거론됩니다. 미국에서는 1877년 뉴욕주 버펄로에서 설립된 ‘자선조직협회(Charity Organization Societies, COS)’를 중심으로 확산되었고, 메리 리치먼드(Mary Richmond) 같은 사회개혁가들이 이를 주도했습니다. 이 운동의 핵심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됩니다. 첫째, 구호 대상에 대한 ‘개별 사례 중심 평가(case-by-case assessment)’입니다. 당시 자선은 종종 무차별적이거나 산발적으로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중복 지원과 비효율이 발생했습니다. 과학적 자선운동은 구호받을 자격이 있는 빈곤층과 그렇지 않은 빈곤층을 구분하고, 자립 가능성이 있는 개인에게 선택과 집중을 하려는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둘째, 자선기관 간의 협력과 조정입니다.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려면 기관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역할을 나누어야 한다는 논리가 확산되었습니다. “어느 기관이 누구를 돕는지”를 모른 채 각자 움직이는 방식으로는 공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경험적 깨달음이 제도적 실천으로 번져간

[김성주 교수의 미국 필란트로피] ‘기부자 의도’를 제도화한 지라드 유언

미국의 사적 재단(private foundation)이 가능했던 조건은 ‘돈’이 아니라 ‘규칙’이었습니다. 앞선 편에서 다트머스 판결을 통해 비영리 조직이 정치의 손길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확보했고, 그 위에서 장기 설계가 가능해졌음을 살펴봤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필란트로피가 굴러가지 않습니다. 필란트로피는 조직과 자본, 그리고 ‘의도’가 함께 작동하는 장치입니다. 조직이 아무리 튼튼해도 기부자의 목적이 쉽게 흐려지거나 뒤집힌다면, 기부는 장기적 공익 설계가 아니라 일회성 이벤트로 남기 쉽습니다. 미국 필란트로피가 ‘기부자의 의도(donor intent)’를 제도적으로 다뤄 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 사건이 1844년 연방대법원 판결, 이른바 ‘스티븐 지라드 유언 소송(Stephen Girard Will Case)’입니다. 스티븐 지라드는 프랑스 출신 이민자이자 당대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상인으로 꼽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사망 전 유언을 통해 막대한 재산을 필라델피아시에 기부하고, 가난한 고아를 위한 교육기관인 ‘지라드 칼리지(Girard College)’를 설립하도록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흔한 자선 기부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논쟁은 ‘조건’에서 시작됐습니다. 지라드의 유언에는 “성직자는 학교 운영에 관여할 수 없고, 수혜 아동에게 특정 종교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담겨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 종교와 교육의 관계가 촘촘히 얽혀 있던 점을 감안하면, 이 조항은 단순한 운영 원칙이 아니라 정치적·사회적 파장을 부르는 선언에 가까웠습니다. 유언이 공개되자 지역사회와 종교 단체는 즉각 반발했습니다. 그들은 해당 조항이 종교의 의무를 침해하고 공공정책에 위배된다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다시 말해 쟁점은 ‘기부를 했느냐’가 아니라 ‘기부자가 공익 목적 아래 어디까지 설계할 권리를 갖느냐’였습니다. 기부자가 공익을 위해 자산을 출연할 때, 그 목적과 운영 방식을

[김성주 교수의 미국 필란트로피] ‘비영리의 독립’을 만든 다트머스 판결

미국의 필란트로피를 떠받친 바닥은 ‘자발성’만이 아니었습니다. 자발성이 사회의 시스템으로 굳어지려면, 그 시스템을 흔들지 못하게 붙잡아 주는 법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미국 비영리 섹터가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를 묻는다면, 결국 “민간이 공공의 빈틈을 메워 왔다”는 역사만큼이나 ‘민간이 스스로 설 수 있게 만든 제도’가 함께 답이 됩니다. 그 제도 전환의 상징적 출발점으로 가장 자주 호명되는 사건이 1819년 연방대법원 판결, ‘다트머스 대학 대 우드워드(Dartmouth College vs. Woodward)’입니다. 당시 미국의 자선·교육기관이 처음부터 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돼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일부 주에서는 자선단체나 교육기관을 설립할 때 주 정부가 임명한 인사를 이사회에 포함하도록 요구하기도 했고, 이를 통해 비영리 조직 운영에 직·간접 영향을 행사했습니다. 공익을 수행한다는 이유로, 민간 조직이 곧장 행정의 보완물처럼 다뤄질 여지가 있었던 셈입니다. 오늘 한국의 공익법인과 비영리 조직이 자주 부딪히는 ‘행정의 그림자’가, 미국 초기에도 전혀 낯선 문제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다트머스 사건은 뉴햄프셔 주 정부가 다트머스 대학의 설립 헌장을 변경해 사립대학을 공립대학으로 전환하려 하면서 시작됐습니다. 대학 측은 주 정부의 조치가 미국 헌법의 계약조항(Contract Clause)을 위반한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쟁점은 단순했습니다. “대학 설립 헌장은 공공 목적의 허가장인가, 아니면 사적 계약인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연방대법원은 다트머스 대학의 설립 헌장이 사적 계약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고, 주 정부가 이를 일방적으로 변경할 수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이 판결의 의미는 한 대학의 지위를 지켜준 수준을 넘어섭니다. ‘사적 법인’이 정치권력의 변덕으로부터 보호받는 헌법적 지위를 확보했다는 데에 방점이

[김성주 교수의 미국 필란트로피] 미국 재단의 뿌리는 ‘자발성’에 있다

드디어 한국에서도 기부자의 이름을 전면에 내건 ‘사적 재단(Private Foundation)’이 제도와 담론의 언어로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한국에 개인 명의의 재단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자수성가한 독지가나 기업가가 자신의 자산을 출연해 장학재단 등을 세운 전통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다만 ‘개인의 이름’을 재단 명칭으로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은 한국 사회에서 좀처럼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지 못했습니다. ‘선행은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는 유교적 정서, 개인의 이름을 공공선과 직접 연결할 때 생기는 거리감이 한데 얽혀 왔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말 현대차정몽구재단과 더나은미래가 주최한 ‘K-필란트로피 이니셔티브 포럼’과 미국 레거시 재단(legacy foundation) 사례 연구가 의미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의 기업재단과 개인재단, 특히 기업가가 설립한 재단의 정체성과 역할을 두고 “무엇을 닮고 무엇을 달리할 것인가”를 공개적으로 묻기 시작했다는 점에서입니다. 다만 맹목적인 벤치마킹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미국 재단의 ‘규모’나 ‘성공 사례’를 먼저 가져오면, 정작 그 재단이 성립한 토대를 놓치기 쉽습니다. 미국식 사적 재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미국 시민사회와 비영리 섹터가 어떤 역사적·제도적 조건 속에서 형성되었는지를 정확히 짚는 일이 선행돼야 합니다. 이 작업 없이 미국 모델을 가져오면, 한국에서 ‘재단’이라는 단어가 다시 혼란의 출발점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필자가 과거 한국 비영리 섹터의 규모와 범위를 미국과 비교하는 연구를 수행했을 때, 개념적·제도적 비교가 가장 어려웠던 조직 유형이 ‘재단(財團)’이었습니다. 한국에는 ‘재단’이라는 이름을 단 비영리 조직이 많지만, 이들은 서로 다른 개별 법률에 근거해 설립·운영되고, 지배구조와 규율 체계도 제각각입니다. 미국에서

신현상 교수
미국 레거시 재단으로 본 ‘시스템 체인지 필란트로피’ [K-필란트로피 이니셔티브] 

미국 레거시 재단의 역사는 거대한 부를 어떻게 사회적 자본으로 전환할 것인가에 대한 실험의 역사다. 동시에 “어떤 사회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오랫동안 붙들고 고민해 온 조직들의 기록이기도 하다. 특히 록펠러와 포드는 산업 자본의 상징이면서, 그 자본을 활용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자 했던 대표적인 레거시 재단 설립자들이다. 이들이 택한 ‘돈 쓰는 방식’은 오늘날 한국의 재단들이 참고할 만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 록펠러 재단: 악명 높은 자본에서 ‘과학적 기부’로 록펠러 재단은 카네기, 포드와 함께 미국의 ‘빅3 레거시 재단’으로 꼽힌다. 석유 재벌 존 D. 록펠러는 독점과 노조 탄압으로 ‘악덕 자본가’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동시에 막대한 부를 사회에 환원한 인물이기도 하다. 1909년 재단 설립을 신청했다가 “악행을 자선으로 덮으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 속에 1913년에야 인가를 받았다는 사실은, 재단이 이후 공공성과 자기 성찰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보여준다. 록펠러 재단은 출범 초기부터 ‘과학적 필란트로피(Scientific Philanthropy)’를 내세웠다. 감정에 의존한 구호가 아니라, 문제의 근본 원인을 큰 스케일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고 지식 기반 해법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접근이었다. 시카고대 설립(노벨상 수상자 101명 배출), 록펠러 연구소 설립, 소아마비·광견병·황열병 퇴치 기여, 전후 농업과학 투자와 ‘녹색혁명’ 이니셔티브 등이 대표 사례다. “좋은 지식을 만들고 인재를 기르면 구조적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철학이 일관되게 반영돼 있다. 현재 록펠러 재단은 이러한 철학을 ‘시스템 체인지’라는 언어로 재해석하고 있다. 2024년 임팩트 리포트에 따르면 농업과학, 의학,

최정호 가로
더 큰 임팩트를 위하여 : 믿고, 나누고, 함께하라 [K-필란트로피 이니셔티브]

한국의 필란트로피는 이제 막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정부와 시장이 쉽게 나서지 못하는 지점을 겨냥할 수 있는 필란트로피의 가능성은 앞으로 더 많은 주목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필란트로피의 규모가 커진다고 해서 그 임팩트까지 자동으로 커질 것이라는 기대는 착각에 가깝다. 수많은 난제가 사회 전반을 가로막고 있는 지금, 중요한 것은 필란트로피를 통해 흘러 들어가는 재원이 ‘얼마나’ 되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필자는 연구를 통해 필란트로피의 임팩트는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고 주장해 왔다. 실제로 미국의 필란트로피는 지난 세기부터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실험을 끊임없이 이어왔다. 각양각색의 재단들이 축적해 온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시행착오의 경험은, 앞으로 한국 필란트로피의 방향을 가늠할 중요한 참고점이 될 수 있다. K-필란트로피 이니셔티브가 미국의 새로운 필란트로피 흐름에 주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 믿다 – 신뢰를 설계하다 ‘신뢰’는 최근 미국 필란트로피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다. 미국의 다수 재단은 비영리 조직을 비롯한 파트너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사회문제 해결을 도모해 왔다. 전통적으로 재단은 파트너가 제출한 계획을 심사하고, 계획대로 자금이 집행되는지를 관리·감독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임팩트의 현장에 발을 딛고 있는 파트너는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가장 잘 아는 반면, 이를 지원하는 재단은 그 정보를 온전히 공유받기 어렵다. 이 같은 정보 비대칭은 재단으로 하여금 각종 서류와 절차를 요구하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력·시간의 낭비, 즉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은 한정된 필란트로피

‘아는 기업재단 없다’ 38%, 1207명이 바라본 한국 재단 현주소 [K-필란트로피 이니셔티브 포럼]

변화의 시대, 한국 기업재단의 가능성과 역할을 모색하다 <3> 대중 인식으로 본 기업재단의 역할 확대의 조건은 한국 기업재단은 아직 대중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단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응답이 적지 않았고, 역할 역시 사회문제 해결보다는 기업 이미지 개선이나 홍보 전략의 연장선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뚜렷했다. <더나은미래>가 공익 싱크탱크 그룹 ‘더미래솔루션랩’과 함께 설문조사 플랫폼 틸리언프로에 의뢰해 지난 12월 8일부터 10일까지 전국 성인 12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업재단 인식 조사’ 결과다. 이 조사 결과는 지난 16일 서울 명동 온드림소사이어티에서 현대차 정몽구 재단과 더나은미래가 공동 주최한 ‘K-필란트로피 이니셔티브 포럼’에서 공개됐다. ◇ “아는 재단이 없다”…낮은 인지도, 회의적인 이미지 조사 결과, 자산 규모 기준 상위 10개 기업(가)재단(아산사회복지재단·삼성생명공익재단·삼성문화재단·현대차정몽구재단·아산나눔재단·농협재단·삼성복지재단·롯데장학재단·호반문화재단·DB김준기문화재단)의 인지도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38%는 “아는 재단이 없다”고 답했다. 단순한 인지도 부족을 넘어, 기업재단이 어떤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 자체가 낮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 기업재단이 주요 사회문제 해결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100점 만점으로 물은 결과, 평균 점수는 49.5점에 그쳤다. 기업재단의 활동에 대한 인지도 역시 높지 않았다. “한국 주요 기업재단의 활동 가운데 들어본 것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학생 장학 지원(44.2%) ▲미술관·예술 지원(36.0%) ▲연구·학술 인프라 및 도서관 운영(35.7%) 순으로 응답이 나왔지만, 응답자의 29.1%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기업재단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연상되는 이미지를 묻는 질문에서는 회의적인 인식이 과반을 차지했다. ‘기업 이미지 개선이나 홍보를 위한 전략의 일부’라는

확장되는 기업재단의 역할, 변화와 협력의 방식을 묻다 [K-필란트로피 이니셔티브 포럼]

변화의 시대, 한국 기업재단의 가능성과 역할을 모색하다 <2> 게이츠·포드 등 글로벌 재단에서 찾은 전환의 단서 “우리 재단은 어떤 변화를 왜, 그리고 어떻게 만들고자 하는가. 그 변화 속에서 우리의 역할과 한계는 무엇인가.” 이는 한국 기업재단이 이제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자, 사회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글로벌 재단들이 공통으로 공유하는 사고방식이다. 재단은 자신들이 만들고자 하는 변화와 그 경로를 설명할 수 있는 ‘변화이론(Theory of Change)’을 갖춰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이 같은 논의는 지난 16일 서울 명동 온드림소사이어티에서 열린 ‘Reimagine Philanthropy: 변화의 시대, 새롭게 그리는 기업재단’ 포럼에서 공유됐다. 현대차 정몽구재단과 더나은미래가 공동 주최한 이번 포럼은 기업재단이 단순한 기부를 넘어, 전략적으로 사회문제 해결에 나서기 위한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현장에서는 기업재단이 어떤 변화를 목표로 삼고 있으며, 이를 위해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협력할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는 전환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 변화의 출발점은 ‘협력 방식’ 서현선 SSIR 코리아 편집장은 글로벌 필란트로피의 흐름 속에서 재단의 역할이 자금 제공자를 넘어 문제를 정의하고 관계를 설계하는 주체로 확장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단기 성과를 만드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시간을 벌어주고 비전과 자원의 흐름, 학습 구조를 조율하는 ‘시스템 오케스트레이터’로 진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핵심 개념으로 제시된 것이 변화이론이다. 서 편집장은 “변화이론은 곧 협력이론”이라며 “재단이 어떤 변화를 상정하느냐에 따라 협력의 깊이와 방식도 달라진다”고 말했다. 개별 사업의 성과를 넘어 구조적

더나은미래 특별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