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예술이 주는 치유의 힘을 믿습니다”

“282북스의 ‘282’는 나뭇잎을 가리키는 ‘이파리’에서 따왔어요. 저는 사람들이 숲에서 많은 치유와 쉼을 얻는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숲을 이루기 위해선 나뭇잎 하나하나가 모여야 하잖아요. 282북스가 나무의 큰 줄기를 세워두면, 사람들이 가진 이야기는 나뭇잎이 돼요. 282북스의 역할은 숲을 조성하고 공간을 제공해주면서 사람들끼리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는 거죠.” 282북스는 조금 특별한 출판사다. 단순히 글을 모아 책을 내는 게 아니라, 예술활동을 통해 사회에서 목소리가 작은 소수자를 사회 안으로 끄집어내고, 이 내용을 책에 담기 때문이다. 지난 3일 서울 선유동 소셜캠퍼스온 영등포점에서 만난 강미선 대표는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달하고, 그 과정에서 출판에 참여한 사람들이 치유를 경험하길 바란다”고 했다. 출판으로 사람들의 마음 치유한다 282북스는 출판사이지만 출판만 하지는 않는다. 치유 활동 당사자와 함께 연기·그림 등 치유 활동을 진행하고 나서야 이 내용을 담은 책이 출판된다. 출판은 활동의 결과 보고서가 되는 셈이다. 한 프로젝트에 쏟는 시간만 평균 6개월. 강 대표가 가장 주목하는 주제는 ‘혐오와 차별’이다. 그는 “예술 활동을 통해 당사자의 마음을 녹여내고, 이를 드러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혐오를 없애는 게 목표”라고 했다. 대표 프로젝트로는 지난해 서울시 후원으로 진행한 ‘도시의 문장들; 귀천’ 등 프로젝트가 있다. 도시의문장들은 ‘직업엔 귀천이 없다’는 내용을 알리기 위해 감정노동자가 직접 참여하는 낭독 공연을 진행했다. 직업 특성상 스트레스가 많은 감정노동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강 대표는 “자신의 속마음을 담은 연극을 통해 많은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는 이야기… 공동체 라디오가 담는다

“공동체 라디오는 한 마디로 ‘원래 시민 것이던 전파를 시민에게 돌려주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원래 전파의 주인은 시민이고 그걸 국가가 방송 사업자들에게 임대해 주는데, 이 과정에서 시민의 작은 목소리가 묻히게 되잖아요. 그래서 주류 방송에서 다루지 못하는 작은 목소리를 전하는 저희 같은 방송이 태어난 겁니다.” 서울 성산동에 자리 잡은 마포 FM은 서울 마포구와 서대문구 일부에 프로그램을 내보내는 ‘공동체 라디오’다. 지난 2005년 전국에서 네 번째로 세워졌다. 공동체 라디오는 지역 공동체가 운영하는 라디오 방송국으로, 인종·계층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방송국을 말한다. 마포 FM 역시 홍대 인근 예술가나 지역 활동가들과 함께 기성 언론이 다루지 않는 이주민, 한부모, 비혼 가정 등의 이야기를 다룬다. 지난달 20일 마포FM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난 장지웅 마포FM PD는 “공동체 라디오는 ‘라디오’ 자체보다 ‘공동체’를 중시하는 방송”이라고 했다. “지역 사회 소수자를 포함한 주민들의 목소리를 키우는 활동을 하는데 그 플랫폼이 라디오인 거죠. 원래 시민이 가졌어야 할 ‘마이크’를 시민과 지역 공동체에 돌려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 소수자, 비혼, 한부모…이 사회에 우리도 살고 있다’ 알리는 방송국 공동체 라디오의 장점은 ‘지역에 사는 누구의 목소리도 소외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류 미디어에서 주로 다루는 기업이나 거대 정치인 소식보다는 ‘지역에 예전부터 지금까지 발언권을 갖지 못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주로 다룬다. 성소수자, 청소년, 장애인, 지역사회 활동가 등의 목소리를 전면에 내세우는 프로그램이 많다. 대표 프로그램은 레즈비언 프로그램 ‘L 양장점’, 60대 이상 주민을 위한

“영상 콘텐츠 전성시대… 비영리단체도 소외되는 일 없어야죠”

리듬오브호프는 지난 2014년 설립된 미디어봉사단체다. 미디어 분야 기술을 갖춘 대학생들이 모여 도움이 필요한 사례자를 알리는 영상이나 카드뉴스 등 모금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한 게, 지금은 80명의 봉사단이 훨동하는 단체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활동 방식은 단순하다. 기관이 리듬오브호프에 영상 제작을 의뢰하면 단원들이 사례를 검토하고 글·후원 영상·포스터 등을 제작해 모금 플랫폼에 게시한다. 활동 구조는 단순하지만 이들이 베푼 도움은 작지 않다. 이들이 만든 미디어콘텐츠를 통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용인 세브란스 병원 등과 협력해 지금까지 약 280여 가정에 총 20여억원의 후원이 진행됐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리듬오브호프는 정식 비영리 사단법인 등록을 준비 중이다. 지난달 20일 만난 리듬오브호프 이진혁 대표는 “정식 법인 등록을 마친 후 전국 대학에 지부를 설립해 보다 폭넓은 미디어 봉사활동 플랫폼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했다. ─비영리 사단법인 등록을 결정했다고 들었습니다. “예산 때문입니다. 저희는 봉사단체로 지금껏 기업 후원이나 공모전 참가 상금으로 활동비를 충당해 왔는데, 활동 규모가 커지면서 보다 안정적인 재정 운영이 필요해졌어요. 또, 기업이나 지자체 지원에 의존하는 관행을 바꾸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개인 후원자들을 모집해야 하는데, 정식 민간단체가 아니라 단순 모임이다 보니 기부금영수증을 발급할 수 없어 후원자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9월 초쯤 단체 설립 관련한 서류 정리를 마치면, 후원자도 확대하고 기업이나 지자체로부터의 지원도 더 적극적으로 받을 수 있게 될 거라고 기대합니다.” ─대학생 봉사단체에서 정식 비영리법인으로 거듭나게 되는 셈인데, 그간 대학생 모임이라는 점에서 오는 어려움은 없었나요. “대학생 봉사활동 단체라는 점은 참여자들의

“‘백수’는 사회문제라고요? 그렇게 보는 시선이 문제입니다”

직장에 다니지도 않고 교육이나 훈련을 받는 상태도 아닌 청년을 ‘니트(NEET)’족 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청년실업률 증가와 함께 사회에 참여할 의지까지 잃어버린 상태가 되기 쉽다. 니트족은 ‘히키코모리(집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사람)’ 증가가 커다란 사회 문제로 드러난 일본에 많다고 알려졌지만, 통계를 보면 국내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 지난 2019년 OECD 발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 청년 니트족 비율은 18.4%로 9.4%를 기록한 일본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상황이다. 기존 시민사회에서도 하자센터 등을 중심으로 니트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을 해 왔지만, 새로이 뛰어드는 시민단체는 많지 않았다. 취업을 원하는 구직 상태의 청년과 달리 니트 청년은 사회 활동 자체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아, 이들을 지원하는 활동 성과를 증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성과를 입증해 추가 지원을 받아야 사업을 이어갈 수 있는 비영리단체로선 니트 문제 해결은 쉽게 선택할 수 있는 활동 분야는 아니었다. 그런 가운데 호기롭게 니트 문제 해결에 뛰어든 신생 단체가 있다. 지난 2019년 설립된 비영리단체 ‘니트생활자’다. 지난달 11일 용산구 서계동 니트컴퍼니 서울역점에서 박은미(37) 니트생활자 공동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하루에 푸시업 30번이 ‘업무’…청년이 모인 가짜 회사 니트컴퍼니는 말 그대로 니트들이 다니는 회사다. 정식으로 직원을 고용해 임금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다. 박 대표는 “니트컴퍼니가 입사자들에게 주는 건 소속감”이라고 설명했다. 입사자들은 100일간 가짜 회사의 직원이 돼서 평일 9시~6시 사이에 출퇴근 인증을 하고, 스스로 입사지원서에 하기로 써낸 일을 진행한다. “니트

“휠체어 탑승 아동, 이동성 좋아지면 마음도 건강해집니다”

사회공헌 전문 재단인 행복나눔재단에는 ‘세상파일’이라는 팀이 있다. 세상파일 팀은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솔루션을 개발하고 확산하는 일을 한다. 지난 2019년, 세상파일 팀은 휠체어 사용 아동을 위해 맞춤형 수동 휠체어와 전동키트 제공을 중심으로 한 이동성 향상 프로그램을 내놨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차혜인 세상파일팀 매니저는 “장애가 있는 아동이 자신의 몸에 안 맞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2차 장애까지 생길 수 있다”며 “스스로 이동하는 게 어려운 아동들이 부모에게 의지하면서 부모들의 부담이 높고, 장애 당사자의 우울감도 심하다는 말을 듣고 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고 했다. 지난달 11일 서울 용산구 행복나눔재단 사옥에서 만난 차혜인 매니저는 “아동들이 스스로 움직이면서 즐거워하는 것을 볼 때 가장 기쁘다”면서 “이 프로그램이 아동들이 스스로 세상에 나아가도록 돕는 디딤돌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프로젝트를 소개해 주세요. “장애 아동들이 휠체어 사용 중 겪는 어려움을 없애고, 좀 더 자유롭게 세상을 누빌 수 있도록 돕는 프로젝트입니다. 구체적으로는 6~13세 아동 몸에 맞는 맞춤형 수동 휠체어와 이를 원할 때 전동 방식으로 바꿔주는 키트를 제공합니다. 또, 신체나 정서 발달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몸에 안 맞는 휠체어를 타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요. “잘못된 보조기기 사용으로 나타나거나 심화하는 신체·정신적 문제를 ‘2차 장애’라고 합니다. 자신의 몸에 안맞는 휠체어를 쓰면 이런 2차 장애가 나타날 확률이 높습니다. 신체적 불편감도 큰 문제였지만, 전문가들이 가장 문제시한 건 오히려 정신적 문제였어요. 우울감을 호소하거나 사회성 발달이

나무를 화분에 담다…‘이동식 나무’ 아이디어로 도심에 숲을 만든다

도심에 공원을 조성하는 일은 쉽지 않다. 건물이 구획에 따라 들어서 있고, 도로도 정비된 상태라 나무를 심을 공간이 없다. 가로수라도 몇 그루 심으려면 도로를 파내야 한다. 사회적기업 헤니는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는 ‘이동식 나무’를 만들어 보급한다. 대형 화분에 나무를 심어놓은 형태라 설치가 간단하고 여기저기 옮길 수도 있다. 서울 광화문광장과 시청광장, 여의도 한강공원 등에서 볼 수 있다. 김대환 헤니 이사는 “도심에 녹지를 만들려면 토지를 확보하고 나무를 심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이동식 나무를 활용하면 간단하게 ‘설치’만 하면 된다”고 했다. 화분에 담긴 나무, 도시 숲 조성도 쉽게 “우리나라에서 조경산업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88올림픽입니다. 올림픽을 기점으로 2000년대 초반부터 건설 시장의 급속한 성장과 함께 조경 공간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죠. 다양한 수목들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지만, 조경수를 거래하는 중간 상인의 정보 독점으로 불공정한 거래가 만연했어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온라인 사이트를 구축해 농장주와 구매자에게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김대환 이사는 조경수 거래 플랫폼 ‘트리디비’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트리디비는 2001년 국내에 처음으로 도입된 온라인 나무 직거래 사이트로 조경수 생산, 관리, 유통에 필요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주목받았다. 최근 이동식 나무를 개발하고 보급하는 사회적기업 헤니는 트리디비의 성공을 기반으로 설립된 기업이다. 헤니는 현재 SK임업과 손을 잡고 ‘이동식 나무’ 사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 2018년 SK가 사회공헌의 일환으로 도시 숲을 만들기 위한 파트너를 찾았고, 헤니와 의기투합해 ‘모바일플랜터’라는 이름의 ‘이동식 나무’를 개발하게 됐다. 현재 모바일플랜터의 생산과 판매는 헤니가 도맡아

“장애인 근로자는 생산성 낮다고?…중증장애인 직원들이 매출 14배 끌어올렸습니다”

“산업계에는 중증장애인 고용에 대한 편견이 아직 만연합니다. 장애인 직원의 생산성이 낮다거나 기업 성장에 큰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요. 저는 이러한 편견들을 깨부숴 나가면서 직접 증명해 보이고 싶어요. 중증장애인 직원도 회사를 급성장시킬 역량이 있다는 걸요.” 노영주(34) 해오름장애인협회 대표는 창업 초기부터 6년간 중증장애인 고용비율 90%를 유지해왔다. 현재 직원 수는 45명. 이 가운데 중증장애인이 36명, 경증장애인과 취약계층 9명이다. 지난달 24일 만난 노영주 대표는 “장애인이 만드는 제품이라는 편견도 있지만, 그런 사회적 시선을 견디며 운영해온 결과, 회사는 꾸준히 성장 중”이라고 자랑했다. 매년 2배 성장기업의 비법은 ‘디테일’ 해오름장애인협회의 매출 그래프는 가파른 우상향을 그리고 있다. 지난 2017년 3억원에 머물던 매출은 2018년 14억원, 2019년 23억원으로 매우 증가했다. 올해는 코로나 여파에도 이미 40억원을 달성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주력 사업은 CCTV와 구내방송시스템 보급이다. 중증장애인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기업을 해마다 성장하는 기업으로 키워내기까지 노영주 대표는 많은 고비를 넘어서야 했다. 그가 맞닥뜨린 가장 큰 고비는 제조업 특성상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근로자의 안전 문제였다. “장애인 근로자들에게 제일 중요한 건 안전입니다. 기계를 만질 때 필요한 안전 장비에 대한 투자는 절대 아끼지 않아요. 이를테면 새로운 기계가 들어오면 작업 동선을 최대한 안전하게 설계한 후, 안전바 등 장비들을 설치하는 식이죠. 또 숙련된 관리자가 있어야만 기계 작동이 허락돼요.” 중증장애인 근로자가 겪는 불편에 따라 업무를 분담하는 일에도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 “전기배선제품의 경우 드라이버도 사용하고 납땜도 해야

“누구나 ‘고아’가 된다”…보호종료아동 위한 일자리·정서회복 동시에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은 만18세가 되면 사회로 나와야 합니다. 보호종료아동이죠. 이런 친구들이 기업에 연계돼 취업해도 보통 1~2주, 길어봤자 3개월 안에 그만둬요. 답답한 마음에 기업 대표님들과 아이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어요. 그때 알게 됐어요. 아이들에게는 일자리보다 ‘정서적 자립’이 필요하다는 걸요.” 김성민(36) 브라더스키퍼 대표는 보육원에서 자랐다. 그가 자랐던 보육원의 일상은 폭력과 굶주림이었고, 마음은 항상 외로웠다. 사회로 나온 그는 비영리단체에서 7년간 일하면서 보호종료아동을 도울 수 있는 기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교육 사업을 준비했지만, 일자리 창출에는 한계가 있었다. 우연히 실내조경 사업가의 도움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고, 2018년 브라더스키퍼를 설립했다. 브라더스키퍼는 건물 외벽이나 실내 벽면에 수직(垂直) 정원을 조성하는 사업을 중심으로 보호종료아동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 제공하고 정서적 자립을 돕기 위해 교육프로그램, 금융적 지원, 법률서비스 지원 등을 제공하는 예비사회적기업이다. 지난달 21일 서울 종로 청춘작업실에서 만난 김 대표는 “보육원 아이들을 도우려는 작은 바람으로 시작된 일이 이젠 그 친구들과 함께 이루고 싶은 꿈이 됐다”고 했다. 식물 가꾸는 조경사업, 마음의 상처 치유한다 1985년. 그가 보육원에 입소한 해다. 만 18세로 보육원을 퇴소하기까지 17년을 지냈지만, 시설에서의 기억은 아름답지 않다. “예전과 지금의 보육원 환경은 많은 변화가 있어요. 폭력 문화도 많이 사라졌고 입고 먹는 데에도 큰 어려움이 없어요. 20년 전만 해도 10명 중 9명이 부모가 없었다면, 지금은 2명 정도밖에 안 됩니다. 부모가 있지만 시설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친구들이 그만큼 늘어난 거죠. 그래도 변하지 않은 게 있어요. 아이들의

자아 찾으려는 엄마들의 ‘참고서’가 되고 싶어요

[레벨up로컬] 정유미 소셜벤처 ‘포포포’ 대표 잘나가던 8년 차 잡지 에디터에게 경력 단절은 갑자기 찾아왔다. 정유미(35)씨는 지난 2016년 되던 해 임신을 하면서 일을 그만두게 됐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그와 경북 포항에 사는 남편은 줄곧 주말 부부로 지냈지만 아이가 생긴 뒤 포항으로 내려갔다. 아이의 탄생은 축복이었지만 ‘정유미 에디터’라는 이름의 종말이기도 했다. 4년이 지난 지금, 그는 다시 이름 석 자로 자신을 소개하는 일이 많아졌다. ‘소셜벤처 포포포 대표 정유미’라는 명함이 생겼기 때문이다. 지난 9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그는 “포포포에는 지난 시간 경력 단절 여성으로 살면서 고민한 것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했다. 포포포는 엄마이면서 자신의 일과 자아를 가진 사람으로 살기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잡지와 그림책에 담아내는 소셜벤처다. “서울 토박이였던 제게는 다소 보수적인 포항의 문화가 낯설었어요. 아는 사람도 없었고 종일 아이만 들여다보면서 지내다 보니 문득 내가 결혼 이주 여성과 다를 바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포항에 결혼 이주 여성이 많거든요. 내가 이 정도인데 그들은 얼마나 외로울까 싶어서 직접 찾아나섰어요. 동네 책방에 결혼 이주 여성들을 모아 잡지 만들기, 그림책 만들기 프로그램을 시작했죠.” 지난해 4월 ‘포포포’를 설립한 그는 지난 1월부터는 계간지 ‘포포포매거진’을 발행하고 있다. 포포포는 ‘잠재력이 있는 사람들을 연결한다(Connecting people with possible possibilities)’는 뜻이다. 정 대표는 “엄마라는 이유로 희생하며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엄마라는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끌어안고 자신의 삶을 일궈가는 모든 사람을 이어내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매거진에는 일과

[공변이 사는 法] “난민 향한 부정적 여론이 ‘난민 인정’ 문턱만 높인다”

이일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 법원에서 다투는 난민 소송만 35건 작년 난민 인정자 수 전년比 절반 ‘뚝’ 난민 구제 활동은 선례를 만들어가는 작업이다. 우리나라에 난민법이 시행된 지 7년 됐지만,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다. “난민 구제 소송은 대부분 첫 사례입니다. 지금 인천국제공항 환승 구역에 6개월째 머무는 난민이 있어요. 비자 없이 환승객으로 들어왔다는 이유로 법무부에서 난민 인정 신청을 거절했거든요. 소송을 통해 최근 ‘환승객에 대한 난민 신청도 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처음으로 받아냈어요. 법무부가 항소해 공항 노숙 생활은 이어지고 있지만요.” 이일(39) 변호사는 난민 구제 활동의 선봉에 있다. 법원에 올라가 있는 담당 사건만 35건이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재난지원금에서 난민 인정자들을 배제한 것에 대한 소송을 맡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전학 온 친구도 낯선 것처럼 난민을 낯설게 여길 수는 있지만, 계속 선 긋고 위험한 존재로 내모는 건 혐오”라고 했다. “지난해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42명입니다. 법무부가 난민을 직접 데려오는 재정착 난민을 포함하면 79명이에요. 난민 심사관은 전국에 90명 수준인데, 심사관 한 명이 1년에 한 건도 인정하지 않은 거죠. 난민 인정률로 따지면 0.4% 수준인데, 난민법이 시행된 2013년만 해도 9.7%였습니다.” 법무부에 따르면 한국의 난민 인정자 수는 2016년 98명, 2017년 121명, 2018년 144명으로 해마다 조금씩 상승해오다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이일 변호사는 “과거에는 세계적 추세를 따르는 분위기가 있어서 연말쯤 난민 인정자 수가 적으면 전년 수준을 웃돌 수 있게 숫자를 관리하기도 했다”면서

“나도 어엿한 이주민 선배… 우리가 나서 후배들 자립 도와야죠”

[우리사회 利주민] 소모뚜 주한미얀마노동자복지센터 운영위원장 소모뚜(45) 주한미얀마노동자복지센터 운영위원장이 한국 땅을 밟은 건 1995년이다. 한글 자모를 겨우 읽던 스무 살 청년은 “한국에서 강산이 두 번 넘게 변할 만큼 시간을 보냈다”며 너스레를 떨 만큼 한국어에 유창한 중년이 됐다. 그에게 일어난 변화는 한국어 실력만이 아니다. 고향 미얀마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던 그는 이주노동자 인권 운동의 상징으로 거듭났다. 2003년 한국 정부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과 대대적인 강제 출국 조치에 맞선 장기 농성장 한가운데 그가 있었다. 또 ‘이주노동자의 방송(MWTV)’ 설립, 이주민들로 구성된 다국적 밴드 ‘스톱 크랙다운(Stop Crackdown)’ 활동 등 이주노동자 인권운동사(史)의 기념비적인 현장마다 빠지지 않았다. 이와 동시에 주한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군부 독재에 저항하는 시위를 10년간 이어갔고,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한국에 있는 미얀마인들을 모아내는 구심점 역할도 하고 있다. 지난 18일 인천 부평동에 있는 미얀마 식당 ‘브더욱 글로리’에서 만난 그는 “인권의 소중함을 한국에서 배웠다”고 했다. “한국은 시민의 힘으로 민주화를 이뤄낸 나라잖아요.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껴요. 미얀마 군부에 억눌려 주눅 들어 살던 미얀마 사람들도 자유로운 한국에서 살면서 자신감을 되찾곤 해요.” 한국인에게 의존해선 안 돼… 자립이 원칙 소모뚜 위원장은 난민이다. 지금이야 한국을 ‘참 살기 좋은 나라’로 표현하지만 한국 정착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생활하던 소모뚜 위원장은 2004년 난민 신청을 했다. 당시 법무부는 “본국에서 민주화 활동을 소극적으로 했고 귀국해도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로 난민 신청을 기각했다. 이후 소송을

″지역 공동체가 살아야 장애인도 산다”

[레벨up로컬] 사회적협동조합 ‘파파스윌’의 엄선덕 이사장 ‘파파스윌’은 2015년 경기 김포 양촌읍에 설립된 사회적협동조합이다. 발달장애인 직업훈련과 일자리 제공을 목표로 설립된 단체지만, 장애인을 위한 일만 하는 건 아니다. 지역사회 소외계층,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소상공인들과 협력하고 나누며 지역 공동체를 살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25일 파파스윌이 운영하는 카페 ‘달꿈’에서 만난 엄선덕(57) 이사장은 “지역 공동체가 살아야 장애인도 산다”고 했다. “‘조금은 다르고 약한 사람들‘을 포용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게 중요해요. 그래야 장애인도 그 안에서 어울려 살아갈 수 있어요. 우리가 지역사회 이주민, 협동조합, 사회적기업들과 연대하는 이유입니다.” 장애인이 존중받는 공동체를 꿈꾸다 파파스윌은 발달장애인 자조 모임에서 시작됐다. 중증 지체·지적장애인 아들이 있는 엄선덕 이사장은 특수학교 하나 없는 김포의 현실을 고민하다 답답한 마음에 다른 장애인 당사자, 부모들과 모임을 시작했다. “자조 모임에서 가장 먼저 기획한 건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조력자 아카데미’였어요. ‘조력자’는 장애인의 가족과 주민을 뜻합니다. 장애인도 주체적인 의지와 욕구가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그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아카데미였는데 지역 사회에서 반응이 뜨거웠어요.” 자조 모임 부모들은 차근차근 성장하는 자녀들을 보며 다른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2016년 사회적협동조합으로 법인 등록을 한 뒤 발달장애 청년들의 직업훈련을 시작했다. ‘민들레와 달팽이’라는 이름의 카페를 열어 바리스타 교육, 디저트 만들기, 손님 응대하기 등 장애 정도에 따른 직업훈련을 진행했다. 이어 ‘빼무락’이라는 공방을 열어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참여하는 목공예, 비누 공예, 도예 강좌를 운영했다. 지난해 12월에는 김포시청에 직영 카페를 하나 더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