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8일(목)

[공변이 사는 法] “예비법조인과 함께 지역사회 공익사건 해결합니다”

오진숙 서울대 공익법률센터 변호사

지난달 22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공익법률센터 사무실에서 만난 오진숙 변호사는 “어느 지역을 가도 도움이 필요한 노동사건을 쉽게 만날 수 있다”면서 “전국 곳곳에 공익변호사가 활동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 이유”라고 했다. /장은주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때론 사소한 순간 하나가 인생의 궤적을 바꾼다. 오진숙(39) 변호사가 그랬다. 공군사관학교 출신인 그는 2009년 대위로 전역했다. 육아에 전념하려 군복을 벗었지만, 우연히 읽은 신문기사가 계속 마음에 남았다. 당시 국내에서 싹 틔우기 시작한 공익변호사들의 이야기였다. “이거다 싶었죠. 국가와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군인의 길을 택했던 건데, 공익변호사도 마찬가지라고 봤어요. 공익변호사의 손길이 필요한 사건은 전국 어느 지역에나 차고 넘칩니다. 그만큼 쓰임이 많은 직업이죠.”

공군 대위에서 공익변호사로

오진숙 변호사는 서울대 공익법률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 서울대는 지난해 8월 국내 최초로 공익 활동을 전담하는 법률센터를 학내에 개설했다. 오 변호사는 그보다 앞선 5월에 합류해 예비법률가들을 위한 공익법무실습과 지역사회 법률구조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다. 프로보노 프로그램 운영도 맡았다.

직함은 지도변호사다. 전임교수는 변호사 활동 금지 규정 탓에 사건을 수행할 수 없지만, 지도변호사에게는 그 길이 열려 있다. 그는 실제 사건을 맡아 로스쿨 재학생들과 함께 수행한다. “대학병원에서 의과생들이 교수들과 함께 환자들을 가까이서 보고 배우는 것처럼 로스쿨 학생들과 공익사건을 다뤄요. 학기 중에는 임상법학(clinical law)이라는 수업을 개설해서 진행하고, 방학 때는 프로보노 프로그램으로 돌려요. 학기가 끝나도 사건은 이어지니까요. 학생들이 직접 서면도 써보고, 소송으로 이어질 때는 사건을 대리해서 함께 해결해나가는 식이에요. 당사자를 돕는 일이 학생들에겐 공부가 되는 구조입니다.”

사건은 외부 조직과 공동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공익법센터 어필을 비롯해 공익사건을 많이 다루는 원곡법률사무소, 지역자활센터 등과 협업한다. 관악구청에 접수된 사례를 넘겨받아 법률지원이 이뤄지기도 한다. 이 밖에 학생과 교직원을 포함한 학내 구성원들이 마주하는 일반 민·형사 사건도 법률구조 차원에서 돕는다. 모든 과정은 무료로 진행되며, 지난해 5월부터 지금까지 150건을 처리했다.

“산업재해를 당한 이주노동자를 도와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했고, 난민심사 허위조서 사건의 당사자 피해구제에도 손을 보탰습니다. 학생들이 이주노동자나 난민을 언제 만나보겠어요? 이런 경험들이 공익 마인드를 갖춘 법조인으로 성장하는데 큰 보탬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지역 로스쿨 거점으로 공익법률 저변 넓혀야”

오진숙 변호사가 말하는 공익변호사의 길은 크게 세 가지다. 공익변호사로 꾸려진 단체에 들어가거나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활동할 수 있다. 일반 시민단체에서 상근으로 활동하는 방법도 있다. 오 변호사의 경우 시민단체 활동가로 첫 공익변호사 활동을 시작한 케이스다. 그는 지난 2016년 청주노동인권센터에 들어갈 당시 ‘충북 지역 1호 공익변호사’로 불렸다.

“로스쿨 재학 시절부터 지역시민단체들과 인연을 맺어왔어요. 학내에 인권법학회를 만들고 지역의 풀뿌리 시민단체와 교류하면서 이주노동자, 여성 장애인 대상으로 법률지원을 했거든요. 청소년 대상 노동인권교육도 하고요.”

공익사건은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이주노동자 임금체불부터 이주여성 가정폭력, 장애인 성폭력 사건까지 접수됐다. 사건마다 사연이 절박했다. “작업 중에 손가락이 잘린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주가 100만원 줄 테니 나가라고 한 사건도 있었고, 친족 성폭력 사건을 맡아 밤을 새워가며 의견서를 쓴 적도 있어요. 한 번은 일상대화까지 강박적으로 녹음하는 이주민을 만난 적이 있어요.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 사실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래요. 결과가 항상 좋을 수는 없지만 그런 분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에 보람을 느낍니다.”

오 변호사는 공익변호사 저변을 확대할 방안을 항상 고민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로스쿨 기반의 지방 공익변호사 확대다. 지역 거점마다 설립된 로스쿨을 활용하면 공익법률 지원의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전국 25개 로스쿨 가운데 13개가 각 지역에 흩어져 있어요. 로스쿨마다 공익법률센터를 설립해 변호사를 두고 지역에서 발생하는 공익사건을 학생들과 해결하는 거예요. 이미 지역 내에서 연대하고 있는 단체들과 다양한 분야에서 공익활동을 펼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서울에서만 시도되고 있는데 하루빨리 전국으로 확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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