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으로 세상을 보는 시각장애 아이들에게는 장난감이랄 게 거의 없다. 시각장애 아동용 교구재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 박귀선(47) 담심포 대표는 시각장애 아동을 위한 놀이교구재와 점자촉각책을 만들고 있다. 점자촉각책은 원단이나 구슬, 단추 등 다양한 재료로 그림을 입체적으로 표현해 손끝 촉각으로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한 도서를 말한다. 지난 13일 경기 양주의 담심포 사무실에서 만난 박귀선 대표는 “지난 2005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점자촉각동화책 ‘아기새’를 개발했지만 한 개인이 책을 만들어 보급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면서 “지난해 법인을 설립하고 최근 사회적기업 인증도 받으면서 시각장애 아이들을 위한 놀이교구재 만들기에도 속도를 올리게 됐다”고 했다.
담심포에서 제작하는 점자놀이교구재는 총 7가지다. 대표적인 점자놀이교구재는 ‘숫자놀이책’. A4용지보다 약간 작은 크기의 부직포에 천을 덧붙여 숫자와 점자를 입체적으로 만든 교구재다. 구슬을 실에 꿰어 숫자를 손으로 만져 세볼 수도 있다. 박귀선 대표는 “아이들 손을 다치지 않게 모든 제품을 원단으로 제작했고, 놀이처럼 자연스럽게 숫자를 익힐 수 있도록 구성했다”면서 “선천적으로 시각장애가 있는 아동들은 어릴 때부터 손의 작은 근육들을 발달시켜줘야 나중에 점자를 배울 때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점자놀이교구재 제작은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시간과 비용도 많이 드는 작업이다. “일일이 손바느질로 만들기 때문에 교구재 하나 만드는데 2시간 정도 걸려요. 또 제품 하나를 설계하고 아이들에게 적합한 교구재인지 전문가 감수까지 거치려면 1년 가까이 걸립니다. 그래서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이 필요해요.”
담심포 설립 전 박귀선 대표는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놀이교구재를 만들었다. 그렇게 2013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제작된 물건이 700개 정도됐다. 지난해 담심포 설립 이후에는 민간기업의 사회공헌 활동과 연계하면서 1년 만에 약 2000개를 제작해 보급할 수 있었다. 담심포에서 제작한 점자놀이교구재는 전국 13곳의 맹학교에 우선적으로 보내진다. 시각장애아동이 있는 가정도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면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담심포는 15년 전 박귀선 대표가 우연히 전해 들은 말에서 출발했다. 그는 2005년 시각장애 아이들이 볼 수 있는 동화책이 국내에 단 한 권도 없다는 이야기를 접했고, 두 아이를 키우던 입장에서 이 말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시 유아용품 제작 키트를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시각장애아동용 동화책은 국내에 없다는 거예요. 일부 사람들이 의기투합해서 동화책을 만들기로 했는데, 개발에 참고할만한 책이나 자료가 없었어요. 맹학교에 물어보니까 선생님들도 장난감이나 교구재를 직접 만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시각장애 아동들이 학교에서 접하는 교구재를 보면서 연구했죠.”
국내 첫 점자촉각책인 ‘아기새’가 나오는 데는 1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점자촉각책’이라는 말도 당시 개발에 함께했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지었다. 박 대표는 아기새를 만든 후, 육아에 전념하면서 한동안 잊고 살았다고 했다. 그러다 2013년 무렵 점자촉각책 보급이 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일에 뛰어들었다. “대단한 결심은 아니었고, 저 아니면 할 사람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5년 정도는 사비를 털어서 점자촉각책과 점자놀이교구재를 만들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한계가 왔고, 사회적기업을 만들어서 일을 이어가야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담심포는 지난해 4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에서 주최한 사회적기업 육성사업에서 우수창업팀으로 선정됐고, 같은 해 11월 사회적경제 소셜브릿지에서 교육편차해소부문 베스트소셜파트너상을 받았다. 지난 9월 한국사회복지협의회가 주최하고 사회공헌센터와 조선일보 더나은미래가 주관한 ‘사회공헌 파트너 매칭데이’에서는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박 대표는 “현재 목표는 자립”이라며 “기업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시각장애아동에게 교구재를 보급하고 있지만, 탄탄한 수익 구조를 만들어서 새로운 교구재 개발에도 힘쓰고 싶다”고 했다.
김지강 더나은미래 인턴기자 river@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