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파타고니아의 목적

“기업은 누구를 위해 사업을 해야 할까요? 기업에게 자원을 제공하는 지구를 위해 이뤄져야 합니다. 자연 환경 없이는 주주도, 직원도, 고객도 그리고 기업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의 유일한 주주는 지구입니다.” 얼마 전 미국 아웃도어 브랜드인 ‘파타고니아’는 깜짝 놀랄만한 소식을 전했다. 이 회사의 창업주인 이본 쉬나드 회장과 아내, 두 자녀는 약 30억 달러, 우리 돈으로 4조원이 넘는 파타고니아의 소유권을 신탁 및 비영리단체에 양도한 것이다. 암벽등반 등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던 이본 쉬나드는 암벽 등반시 필요한 바위 틈새에 박는 강철 쇠못인 피톤(piton)을 생산해 상당한 이익을 얻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가 만든 피톤이 바위를 심하게 훼손한다는 것을 알게 되며 결국 사업을 중단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1973년 지금의 파타고니아를 설립하여 아웃도어 의류 중심의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이후 파타고니아는 이들의 비즈니스가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목도하며, ‘환경’을 우선시하는 기업의 ‘목적’을 분명히 하기 위해, 지난 2018년 ‘우리는 우리의 터전,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을 합니다’라는 사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일부 경제학자들과 자본가들은 기업의 목적은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1976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밀턴 프리드먼의 학설로 알려져 있는 ‘신자유주의’는 시장 실패시 정부의 개입이 중요하다는 케인즈의 경제이념과는 반대로, 정부의 개입을 반대하고 시장의 자유를 강조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는 1947년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주도로 스위스에서 결성된 몽펠르랭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몽펠르랭회는 신자유주의를 명시적으로 표방하며, 모든 형태의 국가 개입에 반대한다고 선포했으며,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를 확산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기업과 사회] 한국 기업에는 왜 우영우가 없을까?

한국 로펌에 우영우 변호사는 없다. 자폐성 장애뿐 아니라 다른 장애를 가진 변호사도 찾기 어렵다. 로스쿨 도입 이후 장애인 법률가는 대폭 늘었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135명의 장애인이 로스쿨에 입학했다. 그런데 대형 로펌에서 장애인 변호사를 채용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기업 일반으로 보면 어떠한가? 2020년 말 기준 한국 기업의 장애인 고용률은 1.48%다. 100인 이상 사업장에는 법률로 장애인 고용을 의무화하고 이를 위반하면 고용부담금을 부과하는 현실이다. 지난해 9039개 기업이 고용부담금을 냈다. 그 액수는 7893억원에 달한다. 대기업들은 대부분 ‘자회사’를 만들어 장애인을 ‘따로’ 고용한다. 법률이 자회사를 통한 고용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이다. 이 또한 장애인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의의는 있지만, ESG의 흐름이나 국제사회의 장애인 포용(Disability Inclusion)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게다가 고용된 장애인들은 주로 청소나 세탁 같은 단순 업무를 한다. ESG는 다양성과 형평성, 포용성(DE&I)을 중요한 문제로 보고 있다. DE&I는 기업이 다양한 구성원을 가지고 이들을 차별 없이 포용하는 것을 말한다. 기업 안에 장애인 등 다양한 사람이 함께해야 한다. GRI 등 국제적 공시기준은 ‘기업의 장애인 고용률’을 항목에 포함하고 있는데, 자회사에서 장애인을 고용하는 것은 인정될 수 없다. 영국 로얄메일의 다양성 보고에서는 장애인 비율이 13%라고 보고하고 있다. 놀라운 수치다. IBM은 장애인을 적극적으로 고용하는 회사로 유명한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IBM이 장애인을 고용하는 이유는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혁신, 사회 그리고 재능입니다. IBM은 다양한 고객을 위한 제품을 만들어낼 넓은 스펙트럼의 직원을 원합니다.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우리에게도 아리아드네의 실이 필요하다

그리스의 영웅 테세우스는 다이달로스가 만든 미궁을 지나 반인반수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리아드네 공주가 전해 준 실타래 덕분이었다. 최근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보면서 현대는 정보전이라는 것을 더욱 실감한다. 무차별 폭탄을 쏟아붓던 과거의 전쟁은 드론을 통해 정밀하게 관측하고 정확도 높은 유도무기를 사용하여 표적을 무력화시키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한 국가의 군사력은 가지고 있는 무력의 양이 아니라 정보의 질에 달려있다는 게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식량위기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다는 게 느껴진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에너지와 식량의 무기화에 대한 우려가 커졌고, 세계 각지에서 기상재해가 빈발하면서 식량위기를 먼 미래라기보다 눈앞에 닥친 현실로 인식하는 듯하다. 강의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식량은 안전하냐’고 묻는다. 때로는 대안까지 제시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렇지만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는 있어도 대안까지 제시하기는 어렵다. 문제를 분석하는 것은 현상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대안은 실증을 통한 검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가능성도 발견한다. 최근 농수축산물 무역 거래 플랫폼 스타트업인 ‘트릿지(Tridge)’가 농업계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국내 농식품 분야 최초의 ‘유니콘’에 등극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아직 낯설게 느껴진 이유는 초기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서비스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국내 농업계와 접점이 거의 없어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트릿지의 핵심 서비스는 농수축산물이 필요한 구매자에게 세계 여러 농업 현장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연결해주는 ‘풀필먼트 솔루션’이다. 세계 각국의 농업과 무역에 대한 폭넓은 정보망과 전문인력이 뒷받침해줘야 가능한 사업모델이다. 트릿지는 수년에 걸쳐 국제

[진실의 방] ESG에도 설민석이 필요한가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네. 실소와 개탄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ESG 열풍을 틈타 ‘애매한 전문가’들이 등장한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최근 들어 정도가 더 심해졌다는 것이다. ESG와 관련된 분야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기존 발표 자료에 ‘라벨 갈이’만 해서 강의를 하고 다닌다는 이야기까진 그래도 괜찮았다. 다 밥그릇 싸움이지, 싶었다. 요즘은 전혀 다른 분야에 있던 사람들까지도 전문가 행세를 한다. 근본을 알 수 없는 민간 ESG 자격증도 양산되고 있다. ESG의 ‘찐 전문가’들을 만나보면 확실히 인사이트가 넘친다. ESG가 등장하기까지의 역사적 맥락, 자본시장의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않고서 환경, 사회공헌, 지속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ESG가 아니라고 말한다. 공부가 부족한 사람들이 얕은 지식으로 여기저기 강의를 하고 다니니 ESG에 대한 오해가 쌓이고 혼란이 가중되며 발전이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 연극영화과 출신 한국사 강사 설민석이 한창 방송계를 주름잡을 때 역사 전문가들이 했던 지적과 비슷하다. 애매한 전문가, 가짜 전문가들이 늘어나는 건 싫지만 ESG 분야에 ‘스피커’가 필요한 건 사실이다. 길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ESG를 아십니까’라고 물으면 열에 일고여덟은 ‘잘 모르겠다’고 하지 않을까. 관계자들끼리는 내가 맞고 네가 틀렸다고 하지만 그런 논쟁은 대중의 관심사가 아니다. 전문가들도 대중의 무관심에 대해 크게 아쉬워하지 않는다. 그냥 서로 관심이 없다. 가짜들 입장에서는 참 날뛰기 좋은 환경이다. 설민석은 역사 왜곡과 논문 표절로 물의를 일으킨 뒤 방송가에서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그가 한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낸 것만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특유의

유지민(거꾸로캠퍼스 재학생)
[Z의 휠체어] 자퇴해도 안녕하게 해 주세요

고등학교를 자퇴한 지도 벌써 반년이 지났다. 그동안 대안학교를 다니며 학업을 이어가고, 차근차근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진로에 대한 고민 없는 10대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온전히 스스로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학교 밖 청소년’이 되니 그 고민이 이전보다 훨씬 늘어났다. 그중 가장 큰 고민은 자기증명에 대한 막막함이다. 자퇴 후 깨달은 학교의 가장 큰 장점은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발판을 전부 마련해주는 것이다. 시험이나 수행평가 같이 주어진 일을 해내기만 하면 결과가 남고, 그 결과를 모두가 인정해준다. 그뿐만 아니라 선생님들과 꾸준한 상담을 통해 다양한 진로 및 진학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자퇴 후 내 미래의 A부터 Z는 모두 내 손에 달려있다. 더 이상 미래의 길잡이가 되어줄 사람이 주변에 없다는 걸 떠올릴 때마다 불안감을 느낀다. 이런 경험은 비단 나만 하는 것도, 소수의 일도 아니다. 국가교육통계센터 학업중단 현황에 따르면 2016년 4만7070명이던 학업중단 청소년은 2020년 5만2261명으로 늘었다. 또한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전체 청소년 중 학교 밖 청소년 비율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에 대한 지원은 실질적으로 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학교 밖 청소년을 관리하고 지원하는 주무부처는 교육부가 아닌 여성가족부다. 여성가족부가 기본 계획을 세우면 이 계획을 지자체의 지원 센터가 실천하는 형식인데, 지자체별로 운영 방침이 제각각이다. 이 때문에 학교 밖 청소년들은 큰 혼란을 겪고 있고, 이 혼란은 코로나19로 인한 등교 중지 상황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지구 생존에 인간은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지속가능한 삶을 살고 있을까? 최근 ‘ESG 경영’이 강조되면서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도 자주 들을 수 있다.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완성하는 비재무적 요소를 ESG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일까?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를 강타하는 기상이변 뉴스가 심상치 않다. 100년만의 기록적 폭우를 쏟아낸 한국, 유럽과 러시아는 최고기온을 갱신했고 영국과 독일, 중국의 일부 지역은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다. 지난달에는 이상고온으로 빙하가 녹아서 알프스산맥의 인기 탐방로인 몽블랑과 마터호른의 일부가 통제됐다. 이러한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2030년, 즉 8년 후면 지구가 멸망한다는 내용이 소셜미디어에 등장하기도 했다. 즉 우리의 삶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속가능성이라는 개념은 가장 오래된 서사시로 알려져 있는 지금으로부터 약 4000년 전에 쓰여진 ‘길가메시 서사시(Gilgamesh Epoth)’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기원전 2750년경에 실재했던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도시국가 중 하나인 우루크의 왕인 길가메시를 주인공으로 한 문학 작품이다. 이 서사시는 환경과 자연을 훼손해 문명이 멸망했다는 단서를 남겼다. 길가메시가 신들에게 반항하며 광대한 삼나무 숲을 벌채한 탓에 이 땅에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자라지 못해 살 던 곳을 떠나 바빌론과 아시리아로 피난해야 했다는 것이다. 마야(Maya) 문명으로 잘 알려져 있는 고대 마야는 ‘보존의 우주론(A Cosmology of Conservation)’으로 불리는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 당시 마야인은 의식, 농사, 사냥, 삼림 관리, 사교 활동 등 일상 생활에서 지속가능한 관행을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전통적인 마야 세계관은 인간이 그들이 공유하는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상호 책임을 지는 많은 부분, 즉 동물, 새, 나무,

장서정 자란다 대표
[오늘도 자란다] 자라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기리에 종영했다. 이번 드라마의 성공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사회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균형감 있게 제공했다는 점일 것이다. 선역과 악역을 나누지 않고, 캐릭터들이 처한 사정과 논리를 세심하게 보여주는 데 집중한 것도 인기몰이에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극 중 개인적으로 유독 관심이 간 에피소드가 있다. 어린이들의 해방을 외치며 아이들을 학원 대신 동네 뒷산으로 데려가 함께 뛰어논 ‘방구뽕’이란 인물이 납치법으로 재판을 받게 된다. 방구뽕은 법정에서 말했다. 아이들은 ‘지금 당장’ 놀아야 하고, 건강해야 하고, 행복해야 한다고. 나중에는 늦는다고. 방영 시점에 ‘초등학교 5세 입학’이 이슈가 되면서 해당 방송은 사람들에게 ‘아이들을 위한 것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시의적절하게 이슈를 탄 이 에피소드에서 아쉬웠던 점은 아이들의 엄마를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극 중에서 그는 “대한민국 어린이의 적(敵)은 학교와 학원, 그리고 부모이며, 그들은 행복한 어린이, 건강한 어린이를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부모들은 아이의 행복이 성적과 좋은 대학에 있다고 믿는 사람들로 그려졌다. 마음이 불편했다. 아이를 늦게까지 학원에 보내는 부모는 아이의 행복보다 성적을 바라는 존재이고, 학원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는 아이들은 불행한 아이일까. 부모마다 아이에게 길을 열어 주는 방식이 다른 건 아닐까. 아이가 어려운 과업을 끈기 있게 해내면서 보다 빠른 성취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부모나, 아이가 자신의 페이스대로 자유롭게 하나씩 이뤄가며 성장하길 원하는 부모나 각자 최선을 다 하는 것이다. 모든 아이가 다르고, 모든 가정의 환경과 가치관이 다른 만큼 교육과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이사
[한수정의 커피 한 잔] 해방,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일

8월 23일은 ‘세계 노예무역 및 철폐 기억의 날’이다. 역사 속에서 인류가 부의 축적을 이루는 가운데 노예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많다. 로마 콜로세움을 열광의 도가니로 이끈 검투사들도 노예였으며, 일본의 도예 문화를 꽃피운 조선의 장인들도 노예였다. 남미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해 세계 곳곳에 공급한 것도 노예다. 이 중에서도 16세기부터 시작된 삼각무역에 동원된 흑인 노예들은 그 이전의 노예들과 매우 다르다. 검투사는 승리하면 자유를 얻을 수 있었고, 장인은 그 재주에 맞는 대우를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유럽이 고안한 노예무역은 ‘흑인은 인간이 아닌 존재’로 개념화했다. 그래야만 노예선에 높이 30cm로 다섯 단을 쌓아 사람을 짐짝처럼 차곡차곡 눕혀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이런 상태로 운반되는 노예가 질병이나 영양실조로 상품가치가 떨어진다면, 바다에 밀어 넣어 수장을 시키고 보험금을 받는 것이 합리적 판단이 된다. 영화 ‘벨(BELLE)’은 1781년 9월 자메이카를 떠난 노예선 ‘종(ZONG)’호에서 3일간 133명의 병든 노예를 바다에 수장시킨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보험금을 노린 사건이다. 종호는 영국에 도착해 보험금을 청구하나, 보험사는 거절했고 긴 재판이 이어졌다. 결과는 패소했고 이 일은 영국사회에 노예무역의 잔혹성이 알려지는 계기가 된다. 초기 노예무역 반대론자들의 캠페인은 어쩌면 요즘 공정무역 캠페이너들의 활동과 비슷하다. 영국의 지식인들은 식민지에서 생산한 설탕 불매운동(boycott)을 벌이면서 ‘노예의 피로 만든 달콤함을 거부한다’며 인도산 설탕을 대안(buycott)으로 소비하기도 했다.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주장이 담긴 신문이 돌고, 카페에서는 그에 대한 토론이 활발했다. 그 카페의 커피는 공정무역이 아니었을 테니

김경신 파울러스 대표
[메타버스와 사회혁신] 아바타와 페르소나

중·고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함께 종종 컴퓨터 게임을 즐기곤 했었다. 내신 시험이나 모의고사가 끝나는 날이면, 부리나케 PC방으로 달려가 가상세계에서의 특별한 조우를 즐기곤 했었다. 그곳에서는 특수부대의 유능한 스나이퍼가 되기도 했고, 멋진 도끼를 휘두르는 바바리안이기도 했다. 어느 날은 대규모 우주함대를 지휘하는 외계종족의 사령관이 될 수도 있었다. 가상세계는 늘 환상적인 경험을 제공했지만, 온종일 시간을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학생의 주머니 사정도 그러했지만, 다시 학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모종의 압박감이 더 컸다. 그래서 매번 PC 사용 시간을 미리 결제하는 선불제를 끊고는 했다. 약속된 시간에 도달하면 컴퓨터 시스템은 1초의 오차 없이 차단됐다. 현실로 돌아올 시간. 정신을 추스르고, 등가방을 챙겨 그곳을 나설 때마다 나는 모종의 부적응을 잠시간 겪었던 것 같다. 다시 학원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는 현실도 그러했지만, 조금 더 나아가자면 아마도 그것은 우리는 모두 똑같은 디자인의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에 불과하단 정체성의 자각에서 비롯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여러 학생 중 한명 일뿐이라는 자각이, 오히려 나를 강력하게 가상세계에 매료되게끔 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곳에서는 사회적으로 부여된 ‘나’를 잊고, 내가 바라는 ‘누군가’로 살아 볼 수 있었다. 대학 진학 이후 게임에 대한 욕구는 크지 않았다. 현실 세계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이리도 다양하고 짜릿했기에 굳이 게임이 제공하는 새로운 경험이 필요치 않았던 것이다. 이때부터는 가상의 나 자신을 살게 하는 게임보다, 나의 실제 삶을 사람들과 공유하는 ‘소셜미디어(Social Media)’에 더 관심을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기업과 사회] 한국 기업은 다양한가, 평등하고 포용적인가?

전체 인력 중 여성 비율 19%. 관리직은 32%, 이사진 50%. 영국 물류회사인 ‘로열 메일(Royal Mail)’의 다양성 보고를 살펴보면, 직위가 높을수록 여성 인력 비율이 높다. 흑인과 아시안 등 소수인종의 비율은 14%. 장애인 비율은 놀랍게도 13%다. 성 소수자(LGBT+) 부문 통계를 보면 트랜스젠더 1%, 레즈비언, 게이 등은 5%다. 연령대로 따지면 50세 이상이 48%나 된다. 이밖에 부양책임을 가진 사람의 통계를 내는 것도 신선하다. 자녀를 양육하는 사람이 28%, 그 밖의 부양책임을 지는 사람은 9%다. 한국 기업의 현실은 어떠한가? 한국은 ‘다양성’ 관련하여 여성과 장애인, 연령 정도를 언급하고 있다. 인종 다양성이나 성 소수자 부분은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한국 기업이라고 성 소수자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감히 드러낼 수 없다. 성 소수자 통계를 내는 것조차 차별적이라 느낄 것이다. 구글코리아 같은 외국계 기업이 성 소수자 지지모임을 만들고 퀴어 행사를 공개 지지하는 것과 비교된다.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성 소수자 이슈를 접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겠어요. 모두가 행복하고 편안한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구글코리아 임원이 어느 언론과 한 인터뷰 내용이다. 인종 다양성은 단일민족이기 때문에 우리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일민족은 허구이며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순혈주의를, 외국인에 대한 배타성을 낳는다. 글로벌 기업이 된 대기업이라면 다양한 나라의 구성원이 존재하여야 한다. 그런데 외국인 직원 비율을 공개하는 기업은 없고, 실제 외국인 직원을 찾아보기 어렵다. 여성 비율은 알려졌듯이 최하위권이다. 최근 딜로이트 글로벌이 밝힌 조사결과에서 한국의 여성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수직농장은 미래 농업의 주연이 될 수 있을까?

재생에너지 100%, 물 사용량 90% 절감, 무농약, 푸드마일 95% 감소, 그리고 식량자급률 향상. 만약 이런 기준을 충족하는 채소가 도시민의 식탁에 오른다면 농업의 혁신이라 부를 수 있을까? 대부분은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농장이 햇빛 대신 LED(발광다이오드) 빛으로 작물을 재배한다면 어떨까? 만약 일부라면 수긍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소비할 대부분의 채소가 LED 조명으로 재배된다면 생각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수직농장의 미래를 밝게 보지는 않았다. 초기 시설 투자비가 많이 들어 농산물 생산비 역시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샐러드박스처럼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을 구성하는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 것이라 예상했다. 실제도 그랬다. 해외 여러 스타트업들이 의욕적으로 뛰어들었지만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두드러졌다. 여전히 예측한 범위 내에 있는 듯했다. 영국 글로스터셔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수직농장이 최근 가동을 시작했다. 존스푸드컴퍼니(JFC)에서 두 번째로 신축한 4500평 규모의 수직농장에서는 연간 1000t 규모의 엽채류를 생산할 계획이다. 국내 시설하우스에서 재배하는 상추와 비교하면 단위 면적당 22배나 더 높은 생산성이다. 팜에이트의 평택 수직농장은 600평 규모에서 하루 6000포기의 엽채류를 생산한다. 일반 시설하우스 대비 40배나 높은 생산성이다. 한 시장분석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2020년 약 6조원이던 수직농장의 시장규모는 2030년에는 30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수직농장은 미래 농업의 주연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남아있었다. 농학을 전공한 나에게 농업이란 태양에너지를 먹을 수 있는 유기물로 전환하는 산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수직농장을 과연 농업의 한 범주에 넣을 수

최재호 현대차정몽구재단 사무총장
[최재호의 소셜 임팩트] 임윤찬 신드롬

“열여덟 살 청년에게서 나오는 이 믿을 수 없는 고귀함에 큰 감명을 받았다. 연주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을 황홀한 상태로 베이스퍼포먼스홀(텍사스 포트워스)을 걸어나온 기억이 난다.”(장-에프랑 바부제) “임윤찬은 18세 어린 나이에 세상이 주목하는 연주를 창조했고, 이 연주는 그와 함께 또한 세상 사람들과 함께 아주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앞으로 라흐마니노프는 임윤찬의 것이다.”(앤 마리 맥더모트) 지난달 미국 ‘반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에서 임윤찬이 최연소 우승을 차지한 뒤 나온 반응이다. 장-에프랑 바부제는 프랑스의 피아노 거장이며, 앤 마리 맥더모트는 미국의 피아니스트다. 콩쿠르 이후 인터뷰에서 임윤찬에 대한 감동과 놀라움을 표현한 두 사람은 이번 콩쿠르의 심사위원이었다. 두 사람의 인터뷰를 진행한 피아노 전문 평론가이자 유튜버인 벤 라우더는 “내 평생 콩쿠르에서 협주한 오케스트라가 솔리스트의 연주에 이렇게 열광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임윤찬의 연주 직후에 모든 오케스트라가 악기를 손에서 놓고 손뼉을 치며 환호하는 것은 진심으로 솔리스트에 대한 존경을 넘어 경외감을 표현하는 것이다. 임윤찬은 전투에 나선 장수와 같이 오케스트라를 전투에서 승리하도록 이끌었고, 전장을 호령했다”고 그의 유튜브 방송에서 말했다. 1962년 미국의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1934~2013)을 기념하기 위해 텍사스 주 포트워스에서 개최된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는 냉전 시대에 이념을 뛰어넘는 음악의 힘을 상징한다. 1958년대 미국과 구소련의 냉전이 극에 달하던 긴장 상황에서 구소련이 자국 문화의 우수성을 선전하기 위해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를 개최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24세인 미국의 피아니스트 클라이번이 제1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한다. 핵전쟁의 위협과 미국과 소련의 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