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8일(목)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만능 치트키’가 된 ESG

김민석 지속가능연구소장
김민석 지속가능연구소장

조직 경영에 환경적, 사회적, 거버넌스를 고려해야 한다는 ‘ESG 경영’은 최근 몇 년간 유행어처럼 소비됐다. 기업은 의사결정 프로세스에 ESG 요소를 포함했고, 투자자는 투자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재무적 성과 이외에 비재무적 성과를 의미하는 ESG 요소도 추가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방증하듯 올해 들어 환경 관련 ETF(Exchange Traded Fund)는 20% 이상 급등했고, 투자사들이 ESG펀드 설정액을 대폭 키웠다는 기사도 쏟아지고 있다. 최근 전경련이 발표한 매출액 500대 기업 중, 응답자의 93%가 올해 ESG 경영 규모를 작년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겠다고 답했다. 지난 12월에 조사된 ‘국내 500대 기업 48%는 2023년에 투자 계획이 없거나 미정이고, 투자계획을 수립한 기업도 투자를 축소하겠다’는 결과와 사뭇 다른 동향이다. 그러면 기업은 왜 전형적으로 해오던 비즈니스 투자도 축소하는 상황에서 ESG 경영에 대한 투자는 더 늘리겠다는 것일까? 기업이 근본적인 문제나 핵심적인 사안은 숨기고 이해관계자들에게 긍정적인 관심을 얻기 위해 ‘만능 치트키(cheat key)’로 ESG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치트키란 게임 중에 더 이상 진행이 어려운 경우 일종의 속임수로 사용하는 방법을 일컫는 말이다. 게임 유저의 레벨을 높이거나 특별한 힘을 얻는 방법 또는 장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최근 많은 기업과 조직이 ESG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기업의 ESG 경영에 대한 언급이 일종의 속임수, 즉 치트키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란 것이다.

기업이 ESG를 치트키로 사용하는지, 또는 속임수가 아닌 진짜 ESG 경영을 하고 있는지는 몇 가지 상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첫째, ESG 경영을 잘하는 조직은 ESG 분야 중 우선순위를 고려해 활동하고 있다. 기업이 ESG 경영을 한다고 하면서, 실제 그 기업이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큰 항목은 감추고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거나 표면적인 수준의 개선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재생에너지를 100% 사용하겠다는 이니셔티브인 RE100 가입과 이사회의 성별 다양성을 위해 특정 성(性)의 사외이사를 선임했다고 홍보하는 경우가 많은데, 해당 기업의 ESG 경영 우선순위에서 얼마나 상위 항목인지에 대한 언급은 없는 경우가 많다. 물론 RE100 가입과 이사회의 다양성이 중요하지만, 조직의 리스크 관리와 기회 창출 측면에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명확하게 분석하고 이를 알릴 필요가 있다.

둘째, ESG 관련 정보를 이해관계자들과 명확하게 소통해야 한다. 기업이 환경적 또는 사회적 영향에 대해 허위 또는 과장된 주장을 하는 것을 ‘워싱’이라고 부른다. 어떤 기업은 모호하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언어를 사용해 실제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거나 다른 영역에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무시하고 감추면서 긍정적인 영향만을 강조할 수 있다. 스스로 탄소중립이라고 주장하지만 의심스러운 관행을 적용하거나 탄소 크레딧에 대한 투자를 통해 배출량을 상쇄하고 있음을 공개하지 않는 경우도 않음으로써 오해를 사기도 한다.

셋째, 미흡한 ESG 항목에 대한 개선계획 수립과 실행 여부가 중요하다. ESG 경영은 기업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투자자 그룹이 주로 강조하다 보니, 기업 역시 이들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은 지속가능성이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진정한 약속이나 실행이 아닌 투자자에게 어필하기 위한 수단으로 ESG 항목을 한정할 위험이 있다. 이에 따라 장기적인 지속가능성보다, 다시금 단기이익에 초점을 맞출 수 있고 기업이 ESG 기준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다른 중요한 문제는 무시하게 될 수 있다. 따라서 기업은 지속가능성을 목표로 개선하는 노력을 계속할 필요가 있다.

조직이 ESG를 자신의 이미지 포장이나 진짜 문제를 감추려는 치트키로 이용하려는 함정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각 조직은 ESG 관리에 대해 표면적인 수준의 개선에만 집중하기보다는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요구하는 광범위한 요소를 고려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총체적인 접근방식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투자자뿐 아니라 소비자와 지역사회 등 기타 이해관계자 역시 기업의 ESG 주장을 면밀히 조사하고 투명성과 책임성을 요구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ESG 경영이 기업의 피상적인 마케팅 전략이 아닌 우리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를 위한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음을 기대할 수 있다.

유엔과 금융시장이 시작한 기업의 ESG 경영에 대한 강조는 힘있는 투자자로 인해 급부상했다. 하지만 ESG 경영의 성과는 투자자와 기업의 몫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 최근 우리 사회는 ESG에 대해 공공의 지원과 시민사회의 응원과 참여가 늘어나고 있다. 기업 역시 공공의 정책적 지원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공공자본과 사회자본이 총 집결돼 거둔 조직의 ESG 성과 또한 누구의 몫이 돼야 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더 이상 ESG가 기업의 만능 치트키가 되지 않도록 기업 스스로 다짐할 필요가 있다.

김민석 지속가능연구소장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