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공공의 ESG, ‘오용’ 아닌 ‘확장’입니다

“한국은 ESG를 잘못 사용하고 있습니다(Misuse).” 2021년 말, 한 영국 대학교수가 한국의 ESG 경영을 연구하러 왔을 때의 이야기다. 2주간 주요 기업과 공공기관, 학계 인사를 인터뷰한 그는 마지막 일정으로 필자를 만났다. 장소는 당시 필자가 근무하던 대학 앞. 그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대기업이든 공공기관이든 ESG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실은 개념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ESG라는 단어를 남용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는 2시간가량 이어졌고, 특히 공공조직의 ESG 경영이 주요 화두였다. 당시만 해도 ESG 공시는 투자자와 기업을 위한 기준이 대부분이었고, 한국의 공공조직은 이를 그대로 끌어다 쓰려다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껴입은 모양새였다. 그 교수의 지적이 전혀 틀렸다고 반박할 수 없는 이유였다. 그로부터 2년. 필자는 경기도사회적경제원에서 본부장으로 일하며 공공영역의 ESG 경영을 가까이서 들여다볼 기회를 얻었다. 2023년에는 ‘경기도 ESG 기본계획 연구’를 발주했고, 도 내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ESG 경영 컨설팅 사업도 추진했다. 또 대학과 연계해 ‘ESG 선도대학’ 과정을 운영했으며, 올해는 주민참여예산 사업으로 ‘사회복지기관 및 사회적경제조직을 위한 ESG 경영 지원’을 준비 중이다. 해외도 변화를 맞고 있다. ESRS(유럽 지속가능성 보고기준)를 만든 유럽재무보고자문그룹(EFRAG)은 지난해 중소기업용 지속가능성 보고표준(VSME Standard)을 발표했고, 국제표준화기구(ISO)는 ‘지속가능한 도시와 지역사회를 위한 ESG 항목’을 제시했다. 이제는 ESG가 수출기업이나 대기업뿐 아니라, 지방정부·10인 미만의 소기업·협동조합 등 다양한 조직에게도 구체적인 경영 전략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은 범위를 조금 좁혀 공공의 ESG 경영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공공조직은 왜 ESG 경영을 해야 할까? 어떤 ESG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소중한 것에 더 높은 가격을 매기자

많은 조회수를 올린 동영상이 하나 있다. 한 리포터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거액의 돈을 주겠다고 하면 받을지 여부를 묻는다. 모두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리포터는 다시 질문한다. 거액의 돈을 받는 조건으로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뜰 수 없다고 해도 수락할 것인가. 영상 속 모두가 돈을 받지 않겠다고 답했다. 돈과 생명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짧지만 선명하게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작년 5월 미국 경매업체인 줄리엔 옥션은 영국의 유명한 록밴드인 비틀즈의 멤버 존 레넌이 직접 연주했던 기타가 290만 달러(한화 약 42억원)에 팔렸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 외에 유명 화가나 조각가의 작품은 독창성과 희소성 때문에 비싼 가격에 거래되며, 고급 자동차나 명품 브랜드는 품질과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아 높은 가격이 매겨진다. 이처럼 우리는 귀하고 소중한 것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에 살고 있다. 환경, 이 하나를 제외하고는. 2015년 국제사회가 합의한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그리고 이보다 이전부터 논의되어 온 지속가능경영과 ESG 경영의 패러다임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많은 기업이 참고하고 있는 지속가능경영의 세 개의 축인 트리플바텀라인(TBL)은 1994년 존 엘킹턴(John Elkington)이 주장한 개념으로, 기업이 진정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사회적·환경적 성과가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 이후로 트리플바텀라인은 수많은 지속가능경영 개념의 뿌리가 되었을 뿐 아니라, ESG 경영을 추진할 때도 자주 언급되는 용어이기도 하다. 존 엘킹턴은 왜 기업이 지속가능경영을 하기 위해서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성과가 중요하다고 했을까? 그 이유는 지속가능한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흉내만 내는 ESG 보고서는 이제 그만

온실가스를 줄이라는 압력을 받는 한 회사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전기자동차로 전환하여 탄소 발자국을 낮추고 이를 ESG 보고서에 주요 ESG 성과로 담았다. 한 기업은 직장내 사고 발생률이 높다는 비판을 받고 자동화와 외주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한 후 직장내 안전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였다고 ESG 보고서에 공시했다. 또 다른 기업은 조직의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가 중요해지면서 남성으로만 구성되어있던 이사회에 여성 사외이사(사내이사가 아닌)를 선임하고 다양성을 실천하는 기업이라고 홍보했다. 위와 같은 내용은 ESG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면 이들 기업은 제대로 ESG 경영을 하고, 제대로 공시하고 있는 것일까. 올해 ESG 분야에서 가장 화두가 된 주제 중 하나는 ‘ESG 공시’ 였다. 지난 3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기후 관련 공시 최종안을 발표했고, 앞서 유럽연합(EU)은 기업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을 확정하고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2026년 이후로 ESG 공시 의무화 일정을 연기했지만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 입장에서 ESG 공시는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ESG 경영 활동을 공시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지속가능경영보고서와 ESG 보고서가 활용된다. 지난 8월 더나은미래는 국내 주요 30대 기업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분석하고 주요 현황을 공개했는데, 기업별로 공시 데이터의 질이 들쑥날쑥 하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다른 매체 역시 어느 기업이 발간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가 오류투성이임을 밝히고,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보여줘야 하는 ESG 보고서가 회사의 치적을 알리는 사보와 홍보물로 전락하고 있음을 우려하기도 했다. “기업이 만드는 ESG 보고서를 그리 신뢰하지는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우리는 ESG의 목적과 의도를 근본적으로 오해하고 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ESG(환경적, 사회적, 거버넌스적) 성과에 대한 각종 평가결과가 공개되고, 해당 분야의 시상식도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수년간 ESG 경영이 경제계뿐 아니라 공공과 비영리에서도 주요 키워드로 자리 잡으면서, ESG는 더 이상 새롭거나 낯설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지나친 관심으로 약간의 부작용도 있었던 듯하다. 예를 들면 ESG 경영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ESG 경영을 도입하면서 혼란을 겪는 조직도 있었고, 환경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ESG’를 접두어처럼 붙여 사용하며 ESG에 대한 본질을 흐리고 대중에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경우도 종종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유엔글로벌콤팩트와 함께 ESG를 개념화하고 실제화했던 금융기관들은 현재 ESG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ESG에 대한 이들의 생각을 확인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블랙록과 뱅가드 등 주요 자산운용사는 환경과 사회 이슈, 즉 ESG와 같은 주주제안에 대한 지지를 수년째 줄이고 있다. 실제로 블랙록은 작년 하반기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환경과 사회 관련 제안 중 4%에 해당하는 20건만 지지했고, 뱅가드는 단 한 건도 지지하지 않았다. 그러면 투자자의 ESG에 대한 관심은 왜 식었을까? 아니, 실제로 식지는 않았지만 마치 식은 것처럼 보일까? 그 이유는 하버드대학교에서 발간하는 ‘하버드 비즈니스 로 리뷰(Harvard Business Law Review)에 게재된 펜실베니아대학교 로스쿨 총장이자 교수인 리사 페어팩스가 쓴 ESG 관련 논문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리사 페어팩스 교수는 우리 사회가 ‘ESG의 목적과 의도를 근본적으로 오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잘못된 ESG가 아무런 여과 없이 전파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간절함이 있는가

얼마 전 어느 단체가 주관하는 ESG 포럼의 발제자로 참여해달라고 요청 받았다. 공공기관에 재직하다 보니 일정이 자유롭지 못한 부분도 있고, 행정감사와 내년 예산심의도 앞두고 있어 정중히 양해를 구하고 거절했다. 연말이면 조직마다 한 해 사업을 정리하고, 성과를 대중에게 공유하는 자리를 갖는다. 하루가 멀다하고 다양한 주제로 세미나와 포럼, 컨퍼런스가 줄을 잇는다. 이러한 행사의 단골 주제 중 하나로 여전히 ESG가 주목받는다. 환경과 에너지, 다양성과 포용성 등도 인기가 있다. 수년 전 우리 사회에 광풍을 일으킨 ESG 이슈만 보더라도 이 정도의 관심과 지지, 교육과 지원이 있었으면 지금쯤 가시적인 성과가 몇 개씩은 나올 법도 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은 친숙한 단어인 ‘콜렉티브 임팩트(Collective Impact)’가 스탠포드사회혁신리뷰(SSIR)에 소개된 건 2011년이다. 마크 크레이머(Mark Kramer)와 존 카니아(John Kania)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서 다양한 분야의 조직이 참여해야 사회적가치의 파급력이 강해진다며 콜렉티브 임팩트를 제안했다. 이를 위한 다섯 가지 협력 방법은 ▲공통의 주제 ▲측정체계 공유 ▲상호강화 활동 ▲지속적인 의사소통 ▲핵심운영조직 등이다. 그러면 전 세계가 관심을 갖고 있는 유엔지속가능발전목표(UN SDGs)나 기업의 ESG 이슈 또한 콜렉티브 임팩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민간기업뿐 아니라 공공과 시민단체까지도 구호처럼 외치는 ESG 이슈도 콜렉티브 임팩트 방식을 적용한다면 더 큰 사회적가치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많은 사람이 콜렉티브 임팩트의 다섯 가지 방식을 이야기하지만, 더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바로 선행조건(Pre-conditions)이다. 진정한 협력을 통해 사회적가치를 확대하기 위해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행동주의 기업과 표면적 행동주의 기업

8년 전 이맘때쯤, 글로벌 자동차기업 폭스바겐의 디젤차량에서 기준치 40배가 넘는 오염물질이 배출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임의로 조작된 프로그램에 의해 주행시험 중에만 오염 저감장치를 작동시켜 환경 기준을 충족하도록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처음에는 폭스바겐사 제품에서만 배기가스 조작이 일어난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국 같은 그룹 산하의 고급 자동차 브랜드인 아우디에서도 동일한 방식의 조작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큰 파장이 일었다. 배신감을 느끼게 했던 것은, 당시 폭스바겐은 자사의 ‘클린 디젤’ 차량이 가솔린 자동차보다 ‘더 깨끗하고 친환경적’이라며 거액을 들여 슈퍼볼 광고, 온라인 소셜 미디어 캠페인, 지면 광고 등을 포함한 세간의 이목을 끄는 대대적인 마케팅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다국적 석유·가스 회사인 BP도 유사한 문제로 홍역을 치러야 했다. BP는 ‘Beyond Petroleum(석유를 넘어)’라는 슬로건을 사용하며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강조했지만, 여전히 석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투자가 압도적으로 많아, 워싱하는 기업으로 비난을 받아야 했다. 이뿐 아니라, 페이스북, 아마존 등도 여러 친환경 약속을 내놓았지만 이와는 상반된 행동을 보이며, 에너지 소비와 데이터 센터의 환경적 영향을 축소하지 않고 물류 및 창고 작업자들의 근로 조건과 환경 영향에 대한 개선을 하지 않아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최근 지속가능경영과 ESG 경영이 화두가 되면서, 워싱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졌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명품의 경우 가품, 일명 짝퉁이 더 많아지는 것처럼 ESG 경영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며 가짜 ESG 경영이 더 많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 겉으로는 착한 척, 친환경적인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ESG, 산산조각이 나다

“더 이상 ESG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투자자 중 하나인 블랙록의 CEO 래리 핑크는 지난달 25일 아스펜 아이디어스 페스티벌 행사에서 ‘ESG’라는 용어가 정치적으로 상대 진영을 공격하기 위한 무기로 쓰이는 등 오용되는 것에 대해 “부끄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는 ESG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핑크가 보여준 행보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어서 많은 화제가 됐다. 실제 핑크는 2018년 블랙록의 연차보고서에서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시장에서 장기적으로 지속적인 성과를 내며 환경과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중요하다’며 공개적으로 ESG를 지지한 이후, 계속해서 기업에 ESG 이슈를 고려한 경영을 강조해 왔다. 나아가 2021년에는 기업들에 비즈니스 모델이 넷제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계획을 공개하도록 요청했다. 덕분에 작년 기준으로 미국 대기업의 82%가 탄소 배출량 감축 목표를 설정하는 등 많은 기업이 RE100과 같은 이니셔티브에 가입하며 탄소중립과 온실가스 감축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핑크의 이번 발언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ESG를 반대하는 미국 공화당의 어느 의원은 최근 몇 년간 자산운용사가 좌파의 압력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주장하며, ESG 추세를 멈추려는 노력의 승리라고 했다. 또한 보수 성향의 주주들은 올 1월부터 5월 말까지 ESG를 반대하는 내용의 결의가 최근 3년간 400% 이상 증가하는 실적을 거뒀다고 주장했다. 반면 여전히 ESG에 관심을 보이는 곳도 많다. 한국의 경우 ESG 성과를 내는 기업에 금리를 우대하는 정책이 운영되고 있고, ESG 역량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을 위한 공공과 대기업의 지원 프로그램이 제공되고 있다.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의외로 잘 모르는 지속가능성에 대해

“OO기업은 ESG 지향점을 기반으로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습니다.” “OO기업은 사업 분야의 글로벌 리더를 넘어 어떠한 위기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글로벌 톱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ESG 경영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위 두 문장은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는 어느 기업의 지속가능경영과 ESG(환경적, 사회적, 거버넌스) 경영의 방향성을 설명하고 있는 표현이다. 지속가능경영을 설명하는 문장에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라는 설명이, ESG 경영의 목표로는 ‘지속적으로 성장하는’이라는 문장이 포함돼 있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다는 것과 지속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인가? 최근 ESG가 유행하면서 이처럼 지속가능성, 지속가능경영이라는 단어도 자주 접할 수 있게 됐다. 기업들은 ESG 경영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추구한다는 홍보를 하고 있고, 시민사회에서도 지속가능한 생활을 위해 다양한 ESG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면 지속가능성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이야기하는 지속가능성은 도대체 무엇의 지속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는 매우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이지만 대부분 큰 고민 없이, 구분 없이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지금까지 기업의 산업활동 및 인간의 생활활동을 통해 발생시킨 물질은 대기, 물, 토양 등을 오염시켜 왔다. 공장 등 제조시설에서 배출되는 화학물질과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물질, 폐기물의 불법적인 처리 등은 환경을 심각하게 오염시켰고, 무분별한 인류의 소비 패턴은 물, 식량, 자연자원 등 여러 분야에서 지속가능한 자원이용에 대한 제한을 초래하고 있다. 특히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기후변화는 지구상의 자연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며, 인류의 생존까지도 위협하고 있다. 또한 양극화, 차별, 안전문제, 사회적 불평등은 공정한 경제와 정치적 시스템을 방해하고 지속가능한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ESG의 종말

수년 전 시작된 ‘ESG(환경적, 사회적, 거버넌스) 경영’의 열풍은 계속해서 정점을 갱신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여러 질문도 잇따른다. ‘ESG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ESG는 한때 유행이 아닐까?’ ‘ESG의 끝은 어디고, 다음은 무엇일까?’ 등이다. 이에 대해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의 알렉스 에드먼스(Alex Edmans) 교수는 ‘ESG의 종말(The end of ESG)’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글을 집필했다. 에드먼스 교수는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에서 투자 및 채권 관련 업무를 하고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를 역임하며 지속가능한 금융과 투자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지난해 말 공개한 그의 연구는 ‘ESG가 특별한 것이 아니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최근 ESG 경영은 기업 경영진, 투자자뿐 아니라 규제 기관과 공공기관, 비영리조직, 심지어 대중도 관심갖는 용어가 됐다. 주요 기업은 최고경영진을 의미하는 ‘C레벨’에 최고지속가능성책임자를 임명하고, ESG 영향을 기반으로 전략적 결정을 정당화한다. 경영진의 급여와 인센티브도 ESG 지표에 연결하고 있다. 기업과 투자자뿐 아니라 공공기관에서도 ESG 경영을 강조하고 있고, 대학에서도 ESG 과정을 도입하고 ESG 센터를 설립했으며, ESG와 관련된 다양한 프로젝트가 분주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2006년 ESG 6대 원칙준수를 강조하는 책임투자원칙(PRI)이 설립될 당시 동참한 투자자는 수십 곳에 불과했지만, 2023년 3월 현재 총 5435개로 급증했다. 이러한 ESG 열풍 속에서 에드먼스 교수는 ESG에 대한 일부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지만, ESG를 완전히 버릴 것을 제안하지는 않았다. 그는 ESG가 중요한 지표이며,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갖도록 장려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ESG를 ‘마케팅 도구’로 사용하는 기업들을 비판하며, ESG가 아닌 다른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만능 치트키’가 된 ESG

조직 경영에 환경적, 사회적, 거버넌스를 고려해야 한다는 ‘ESG 경영’은 최근 몇 년간 유행어처럼 소비됐다. 기업은 의사결정 프로세스에 ESG 요소를 포함했고, 투자자는 투자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재무적 성과 이외에 비재무적 성과를 의미하는 ESG 요소도 추가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방증하듯 올해 들어 환경 관련 ETF(Exchange Traded Fund)는 20% 이상 급등했고, 투자사들이 ESG펀드 설정액을 대폭 키웠다는 기사도 쏟아지고 있다. 최근 전경련이 발표한 매출액 500대 기업 중, 응답자의 93%가 올해 ESG 경영 규모를 작년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겠다고 답했다. 지난 12월에 조사된 ‘국내 500대 기업 48%는 2023년에 투자 계획이 없거나 미정이고, 투자계획을 수립한 기업도 투자를 축소하겠다’는 결과와 사뭇 다른 동향이다. 그러면 기업은 왜 전형적으로 해오던 비즈니스 투자도 축소하는 상황에서 ESG 경영에 대한 투자는 더 늘리겠다는 것일까? 기업이 근본적인 문제나 핵심적인 사안은 숨기고 이해관계자들에게 긍정적인 관심을 얻기 위해 ‘만능 치트키(cheat key)’로 ESG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치트키란 게임 중에 더 이상 진행이 어려운 경우 일종의 속임수로 사용하는 방법을 일컫는 말이다. 게임 유저의 레벨을 높이거나 특별한 힘을 얻는 방법 또는 장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최근 많은 기업과 조직이 ESG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기업의 ESG 경영에 대한 언급이 일종의 속임수, 즉 치트키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란 것이다. 기업이 ESG를 치트키로 사용하는지, 또는 속임수가 아닌 진짜 ESG 경영을 하고 있는지는 몇 가지 상황을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함부로 혁신을 말하지 말라

2022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시작하면서 개인과 기업은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다짐한다. 이때 종종 등장하는 단어가 ‘혁신’이다. 필자가 근무했던 한 기업은 한때 전 사원과 일부 협력업체의 직원이 `혁신학교` 과정을 이수해야 했다. 혁신을 바탕으로 강인한 정신력을 함양하기 위해 4박5일 간 의무적으로 입소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몇 년간 지속하다가 없어졌지만 그때의 기억은 생생하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주어진 미션을 수행해야 했고, 평소에 하던 업무를 다른 시각으로 보는 훈련도 계속됐다. 각자가 갖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는 도전 과제도 주어졌다. 즉 완전히 새롭게 ‘혁신’한 ‘내’가 됨으로써 몸담은 조직 또한 혁신 조직으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정부 차원에서도 혁신은 한창이다. 서울, 경기 등 전국 19개 지역에 소재한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지역 내 창업허브로서 창업 활성화와 기업가정신 함양, 창업가 역량향상 등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센터의 명칭에도 혁신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다. 현재 몸담고 있는 대학의 내부 조직 명칭도 ‘사회혁신센터’다. 이처럼 혁신은 일상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단어지만, 혁신의 뜻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쉽게 사용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면 혁신이란 무슨 뜻일까? 혁신(革新·innovation)은 묵은 제도나 방식을 고쳐서 새롭게 한다는 뜻으로 한문과 영어의 어원을 살펴보면 그 의미를 자세히 이해할 수 있다. 먼저 한자로 혁신(革新)을 살펴보자. 이는 ‘정신혁고(鼎新革故)’에서 온 단어로 새것을 취하고 옛것을 버린다는 뜻이다. 이미 있던 왕조를 뒤집고 새 왕조를 세움을 이르는 말로 사용되곤 했다. 왕조를 뒤집는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성공하면 역사가 되지만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생태계에도 분해자가 필요하다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환경과 생태계에 대한 내용을 떠올려보자. 환경이란 생물과 생물이 살아가는데 영향을 주는 모든 것을 뜻하며, 생태계는 생물이 다른 생물이나 비생물적 환경요인과 상호작용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생물은 양분을 얻는 방법에 따라 생산자, 소비자, 분해자로 구분할 수 있다. 생산자는 풀과 나무처럼 필요한 양분을 스스로 만드는 생물이고, 소비자는 스스로 양분을 만들지 못해 다른 생물을 먹이로 살아가는 동물을 뜻한다. 마지막으로 곰팡이나 세균처럼 다른 생물의 사체나 배설물을 분해하여 살아가는 생물을 분해자라고 부른다. 지구라는 거대한 자연 생태계는 생산자와 소비자, 그리고 분해자가 각각의 역할을 하며 생태계 시스템을 유지시키고 있다. 그런데 2021년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의 오스카 벤터 교수가 참여한 연구팀이 등재한 연구논문 결과에 따르면, 지구상 완벽한 생태계가 남아 있는 지역은 전체 육지 면적의 2.8~2.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97.1% 지역에서는 생물다양성 파괴가 이미 시작되었고, 이 중 68%는 인간에 의해 생태계가 크게 훼손된 것으로 나타났다. 손상되지 않은 약 2.9%는 기원후 1500년 당시 살았던 모든 생명체가 그대로 살고 있는 지역을 의미하는데, 2.9%중 약 11%정도만 자연보호구역에 속해있어, 앞으로 생태계 파괴가 지속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생태계가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앞서 언급한 생산자, 소비자, 분해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인간의 개발행위와 환경오염, 기후변화 등이 생태계의 복잡하고 긴밀한 역학관계 사슬을 끊기 시작했다. 생태계는 자연계에만 존재할까? 그렇지 않다. 인간의 경제 생태계에도 생산자, 소비자, 분해자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경제 생태계는 생산자와 소비자에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