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미국 캘리포니아의 작은 도시 벤추라에 본사를 둔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Patagonia)를 찾았다. 전현직 CEO와 CFO, 철학 담당 임원 등 주요 경영진을 직접 만나 대화할 기회였다. 2018년 파타고니아 코리아의 도움으로 첫 방문한 인연이 이어져, 한국에서 파타고니아의 경영철학과 행동주의 기업으로서의 운영 방식을 전파하는 활동을 했다. 작년에는 ‘파타고니아 비즈니스 스쿨’을 열고 선후배들과 함께 공부하며 다시 이곳을 찾게 됐다.
‘우리는 우리의 터전,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을 한다.’
1973년, 등반가였던 이본 쉬나드가 창립한 파타고니아는 이 신념을 지켜왔다. 유엔환경계획(UNEP)으로부터 ‘지구환경대상(Champions of the Earth)’을 수상했고, 세계 여러 지속가능성 지표에서도 늘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잉거 안데르센 UNEP 사무총장은 “파타고니아는 민간기업이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훼손, 지구 위협에 맞서 싸우는 데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모범”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에 도착한 다음 날, 오랫동안 파타고니아의 지속가능성을 책임져온 ‘거북이 할아버지, 릭 리지웨이’와의 미팅으로 일정이 시작됐다. 이후 초대 CEO이자 환경운동가인 크리스 톰킨스, 현 CEO 라이언 갤러트, CFO, 철학 담당 임원, HR 총책임자, 제품 총괄 사장 등 다양한 리더십과 일주일 동안 대화를 나눴다. 짧지만 강렬했던 시간이었다. 특히 기억에 남은 세 가지 질문을 공유하고자 한다.
◇ “우리가 만드는 제품은 지구에 도움이 되나요?”
얼마 전 창립 50주년을 맞은 파타고니아는 다음 50년을 준비하며 가장 중요한 과제로 무엇을 삼았을까. 파타고니아 철학 담당 임원이자 비즈니스 스쿨 교장인 빈센트 스탠리는 주저 없이 ‘제품 품질’을 꼽았다. 의류 제조업체로서 품질을 강조하는 답변이 뻔하게 들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빈센트 스탠리는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말하는 품질은 다릅니다. 제품 수명을 길게 하고, 수선해서 다시 입을 수 있어야 하며, 중고 시장에서도 거래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제품 성능을 유지하면서도 100% 재활용한 폴리에스터와 나일론 등 재활용 소재를 최대한 사용해야 합니다.”
파타고니아는 제품이 지구에 어떤 해를 끼치는지 직시하고, 이 해로움을 최소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기후위기 시대, 기업은 그 자체로 ‘환경을 훼손하는 행위자’임을 인식해야 한다는 철학이 빈센트 스탠리의 답변 속에 담겨 있었다.
◇ “옳은 일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묻고 있나요?”
파타고니아의 재무를 총괄하는 이본 베스폴드 CFO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파타고니아의 CFO를 만나면 가장 궁금했던 질문이 있었다. 사회적 가치나 환경 보호도 중요하지만, 재무를 책임지는 입장에서는 결국 모든 것이 ‘비용’일 텐데, 경영 철학과 숫자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는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이본 베스폴드 CFO의 답변은 단순하고 명확했다. “우리는 수익도 중요하지만, 그 수익을 어떻게 얻고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파타고니아는 단기 수익에 집착하지 않고, 재무 결정 역시 지속가능성과 가치 중심 경영에 기반을 둔다. 그는 비용 효율성보다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에 초점을 맞추고, 주요 이해관계자와 신뢰를 쌓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수조 원 규모의 재무를 총괄하는 CFO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단호하고 일관된 대답이었다.
◇ “결단을 내리고 당장 그 선택을 실행하세요”
파타고니아 초대 CEO이자 현 이사회 멤버인 크리스 톰킨스는 한 시간 동안 단호하고 명확하게 말을 이어갔다.
“아직도 여러분의 회사가 수익과 주주 가치를 중심에 두고 있다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아이를 키우든, 활동가로 살든, 돈을 벌든, 균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균형은 환상일 뿐, 결국 우리는 결단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무언가 바꾸고 싶다면 당장 현장으로 나가세요.” “3개월 후, 무엇을 결단하고 선택했는지 스스로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조용히 내뱉는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거장만이 지닌 압도적인 에너지가 담겨 있었다. 그녀는 리더십은 말이 아니라 태도와 선택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회사의 가치와 자신의 삶이 일치했기에, 그녀의 말은 더 큰 울림과 설득력을 지녔다.
최근 한국뿐 아니라 미국 역시 변화와 혼란의 한가운데 있다. 새로운 정부의 정책에 맞추려는 듯, 많은 기업들이 지속가능경영에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현 정부와 정치 상황이 사업하기에 어렵지 않습니까?” 돌아온 답은 단호했다. “그래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습니다.”
‘환경을 위한 실험기업’으로 불리는 파타고니아는 존재 방식부터 달랐다. 단순히 제품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비즈니스를 통해 자신의 ‘존재 이유’를 끊임없이 묻고 답하려 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던진 질문은 명확했다. “당신의 비즈니스는 무엇을 위해 존재합니까?” 우리 기업들도 이 질문 앞에 잠시 멈춰 서야 하지 않을까.
김민석 지속가능연구소 소장
필자 소개 지속가능연구소의 소장으로 재직하며 지속가능경영과 지속가능경제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위해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에 연구, 자문, 컨설팅, 국제표준 심사 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는 환경공학과 경영학, 국제학을 공부하고 삼성전자와 LG전자에서 공급망관리와 CSR, 지속가능경영 관련 부서에서 근무했습니다. 이후에는 한양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등에서 ESG, 지속가능경영, CSR, 창업과 같은 과목을 가르쳤고, 공공기관인 경기도사회적경제원의 초대 사업본부장으로 재직시에는 사회혁신을 추구하는 사업을 총괄하며 지속가능한 사회와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