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6일(목)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흉내만 내는 ESG 보고서는 이제 그만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온실가스를 줄이라는 압력을 받는 한 회사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전기자동차로 전환하여 탄소 발자국을 낮추고 이를 ESG 보고서에 주요 ESG 성과로 담았다. 한 기업은 직장내 사고 발생률이 높다는 비판을 받고 자동화와 외주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한 후 직장내 안전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였다고 ESG 보고서에 공시했다.

또 다른 기업은 조직의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가 중요해지면서 남성으로만 구성되어있던 이사회에 여성 사외이사(사내이사가 아닌)를 선임하고 다양성을 실천하는 기업이라고 홍보했다. 위와 같은 내용은 ESG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면 이들 기업은 제대로 ESG 경영을 하고, 제대로 공시하고 있는 것일까.

올해 ESG 분야에서 가장 화두가 된 주제 중 하나는 ‘ESG 공시’ 였다. 지난 3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기후 관련 공시 최종안을 발표했고, 앞서 유럽연합(EU)은 기업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을 확정하고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2026년 이후로 ESG 공시 의무화 일정을 연기했지만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 입장에서 ESG 공시는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ESG 경영 활동을 공시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지속가능경영보고서와 ESG 보고서가 활용된다. 지난 8월 더나은미래는 국내 주요 30대 기업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분석하고 주요 현황을 공개했는데, 기업별로 공시 데이터의 질이 들쑥날쑥 하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다른 매체 역시 어느 기업이 발간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가 오류투성이임을 밝히고,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보여줘야 하는 ESG 보고서가 회사의 치적을 알리는 사보와 홍보물로 전락하고 있음을 우려하기도 했다.

“기업이 만드는 ESG 보고서를 그리 신뢰하지는 않아요.” 투자기관에서 일하던 후배의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기업이 발간하는 ESG 보고서의 주 독자가 취업준비생과 ESG 컨설팅 업체라는 말이 공공연한 사실이 된지도 꽤 된듯하다.

ESG 보고서의 품질과 신뢰에 대한 우려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 듯 하다. 하버드대학 로버트 카플란 교수와 옥스포드대학 카르티크 라만나 교수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현재 ESG는 기업이 요구 받고 있는 이슈에 대한 해결책이라기보다는 유행어에 가깝습니다”. 두 교수는 E, S, G가 각각 단절되어있는 단일 개념이 아니라 상호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E, S, G는 서로 연결되어 있어 함께 통합(integration)해야 한다고 설명하지만, 실제로 ESG를 통합해서 경영에 적용하고, 통합해서 성과를 측정하고, 통합해서 공시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현재의 ESG 공시와 평가 기준이 E, S, G, 각 분야별로 지표가 만들어져 있고, 기업은 환경부서, 안전부서, 인사부서 등 담당부서별로 이들 지표의 성과를 관리하고 보고하고 있다 보니, 통합적인 ESG 경영이 어렵고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문제가 불거지는 풍선효과가 생기기도 한다.

다시 처음에 언급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온실가스를 줄이라는 압력을 받는 회사가 업무용 차량을 전기자동차로 전환하여 온실가스를 줄였더라도, 구입한 전기차에 아동을 동원하여 불법으로 채굴한 광물을 사용해서 만든 배터리가 탑재되어있다면 전기차 전환을 ESG 경영의 우수 사례로 설명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안전위험이 높은 공정을 자동화와 외주로 전환하여 산업재해율을 낮췄다고 하더라도, 근로자의 해고 및 지역사회와 공급업체의 경제적 침체, 나아가 협력업체에 안전위험요소를 전가한 것이 ESG 경영 측면에서 잘 한 것일까.

마지막으로 거버넌스 분야의 중요한 항목인 이사회 다양성 기준을 맞추기 위해 급히 사외이사로만 남녀비율을 맞추고 안주하는 것은 당초 ESG가 추구하고자 했던 목적을 잘 달성한 것일까. 이처럼 기업은 자신에게 유리한 비재무적인 지표를 선택하여 공시할 뿐, 협력업체 안전사고 발생율처럼 해결되지 않고 어디론가로 이전된 문제는 암묵적으로 이야기되지 않고 보고서에도 담기지 않고 있다.

또 한 사례를 살펴보자. “임직원은 우리 회사의 가장 소중한 자산입니다”. 이 문장은 기업의 CEO와 조직책임자가 종종 사용하는 표현이다. 그러고 보니 필자도 회사에서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는 것 같다. 만약 직원이 중요한 자산이라면, 이 회사 대차대조표의 자산 항목에는 직원이 포함되어 있을까? 포함되어 있다면 전체 자산 중 어느 정도를 차지하고 있을까? 카플란 교수와 라만나 교수는 기존의 ESG 공시기준에 포함되어있는 고용현황 및 교육비, 다양성 등과 같은 항목이, 실제로는 직원과 조직의 가치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이 없고 임의적이며 검증할 수 없기 때문에 ESG 공시가 실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말로는 직원에 대해 강조하지만 이를 확인할 수 있는 ESG 지표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ESG 보고서 내에 발생하는 모순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두 교수는 E, S, G 요소를 통합하는 공통 프레임워크가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화석연료 차량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전기차 등 전환을 통해 줄이는 것과 동시에 전기차 공급망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강제노동을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내용을 함께 언급하자는 것이다.

즉, 통합적인 관점으로 경영 활동을 점검하고 이미 사회적으로 합의가 존재하는 사안부터 초점을 맞추어 ESG 보고를 하는 방향으로 개선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방식을 통해 실제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관련 있고 신뢰할 수 있는 ESG 데이터를 생성하여 ESG 성과에 대한 더 나은 공시를 가능케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이미 많은 조직이 ESG 보고서 제작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담당자 입장에서는 어떤 내용을 담을지, 어떻게 성과를 표현할지 고민이 많은 시기이다. 한국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한지 20년이 지난 지금, 한 단계 진일보한 공시를 위해서는 보고서 관련 컨설팅 업체가 제안하는 공시 트렌드와 동종업계 동향 등을 참고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 조직의 ESG 활동이 서로 어떻게 통합되고 사회와 환경에 어떠한 복잡한 영향을 미치는지 고민을 할 시기가 되었다.

주요 참고 논문

– Kaplan, Robert S., and Karthik Ramanna. “How to fix ESG reporting.”Harvard Business School Accounting & Management Unit Working Paper 22-005 (2021).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필자 소개

공공기관인 경기도사회적경제원의 사업본부장으로, 사회적경제 방식을 통해 사회혁신을 추구하는 사업을 총괄하며 지속가능한 사회와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는 환경공학과 경영학, 국제학을 공부하고 삼성전자와 LG전자에서 공급망관리와 지속가능경영 부서에서 근무했습니다. 이후에는 한양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등에서 ESG, 지속가능경영, CSR, 창업과 같은 과목을 가르쳤고, 지속가능연구소 소장을 역임하며 민간기업 및 공공기관의 자문, 교육, 컨설팅과 국제표준 심사 등의 업무를 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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