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공공의 ESG, ‘오용’ 아닌 ‘확장’입니다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한국은 ESG를 잘못 사용하고 있습니다(Misuse).”

2021년 말, 한 영국 대학교수가 한국의 ESG 경영을 연구하러 왔을 때의 이야기다. 2주간 주요 기업과 공공기관, 학계 인사를 인터뷰한 그는 마지막 일정으로 필자를 만났다. 장소는 당시 필자가 근무하던 대학 앞. 그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대기업이든 공공기관이든 ESG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실은 개념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ESG라는 단어를 남용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는 2시간가량 이어졌고, 특히 공공조직의 ESG 경영이 주요 화두였다. 당시만 해도 ESG 공시는 투자자와 기업을 위한 기준이 대부분이었고, 한국의 공공조직은 이를 그대로 끌어다 쓰려다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껴입은 모양새였다. 그 교수의 지적이 전혀 틀렸다고 반박할 수 없는 이유였다.

그로부터 2년. 필자는 경기도사회적경제원에서 본부장으로 일하며 공공영역의 ESG 경영을 가까이서 들여다볼 기회를 얻었다. 2023년에는 ‘경기도 ESG 기본계획 연구’를 발주했고, 도 내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ESG 경영 컨설팅 사업도 추진했다. 또 대학과 연계해 ‘ESG 선도대학’ 과정을 운영했으며, 올해는 주민참여예산 사업으로 ‘사회복지기관 및 사회적경제조직을 위한 ESG 경영 지원’을 준비 중이다.

해외도 변화를 맞고 있다. ESRS(유럽 지속가능성 보고기준)를 만든 유럽재무보고자문그룹(EFRAG)은 지난해 중소기업용 지속가능성 보고표준(VSME Standard)을 발표했고, 국제표준화기구(ISO)는 ‘지속가능한 도시와 지역사회를 위한 ESG 항목’을 제시했다. 이제는 ESG가 수출기업이나 대기업뿐 아니라, 지방정부·10인 미만의 소기업·협동조합 등 다양한 조직에게도 구체적인 경영 전략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은 범위를 조금 좁혀 공공의 ESG 경영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공공조직은 왜 ESG 경영을 해야 할까? 어떤 ESG 항목을 관리해야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 수 있을까? 연구논문 검색사이트인 구글 스칼라에서 ‘공공, 도시, 지방정부, ESG’ 등의 키워드로 검색해 보면 이미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지방정부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주도해야 하는 핵심 주체로서, 행정이 ESG 원칙을 기반으로 운영될 경우 지역사회 및 민간 기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인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먼저 공공영역은 ESG 경영을 해야 하는 이유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공공조직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된다. ESG 항목의 건전성을 확보하려면 필연적으로 자원이 들어가고, 이 자원이 헛되이 쓰이지 않도록 명확한 목표와 장기적 계획이 선행돼야 한다. 또한 주주가 아닌 국민을 위한 조직인 만큼, 민간보다 더 높은 사회적 책임이 요구된다.

ESG 항목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공공부문은 민간조직이 추진하는 ESG 경영의 목적과는 다르므로, 공공성이 높은 항목을 더욱 중점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컨대 환경 분야에선 탄소 감축을 위한 구체적 계획, 재생에너지 확대, 지속가능한 자원 조달과 도시 설계, 생물다양성 보호 등이 포함된다. 사회적인 측면으로는 포용적 행정, 취약계층 지원, 도시재생, 노동환경 개선,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강화, 시민참여 확대가 필요하다. 거버넌스에선 윤리경영, 내부 감시체계, 디지털 행정, 공공정책 수립, ESG 금융 활용 등이 핵심이다.

방법론은 ESG 경영을 추진하는 기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ESG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할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하고, 시민·기업·NGO 등 이해관계자와 소통과 협업을 강화하며, 조직에 적합한 ESG 지표를 도입하고, 성과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공공은 친환경·사회적 공공조달 확대, 순환경제 도입, 내부 역량 강화, 공공행정 혁신, ESG 금융 전략 마련, 공공투자 프로젝트에 ESG 기준 적용 등 공공만이 할 수 있는 ESG 실천 전략을 더해야 한다.

이제 공공조직도 ESG 경영을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ESG는 기존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맞닿아 있지만, 보다 구체적인 목표와 측정 가능한 성과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최근 들어 ESG 경영이 공공영역과 접목되면서, 기후변화 대응, 지역사회 기여, 공공조달 혁신, 반부패 정책 강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공공의 책임과 역할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궁극적으로 ESG는 지자체와 공공기관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시민의 신뢰를 이끄는 핵심 운영 원칙이 될 수 있다. 언젠가 다시 그 영국 교수를 만나게 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SG는 한국에서 오용(misuse)된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모두가 확장(expansion)해 온 언어였습니다.”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필자 소개

공공기관인 경기도사회적경제원의 사업본부장으로, 사회적경제 방식을 통해 사회혁신을 추구하는 사업을 총괄하며 지속가능한 사회와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는 환경공학과 경영학, 국제학을 공부하고 삼성전자와 LG전자에서 공급망관리와 지속가능경영 부서에서 근무했습니다. 이후에는 한양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등에서 ESG, 지속가능경영, CSR, 창업과 같은 과목을 가르쳤고, 지속가능연구소 소장을 역임하며 민간기업 및 공공기관의 자문, 교육, 컨설팅과 국제표준 심사 등의 업무를 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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