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무덤이라 불리는 여덟 살 학부모의 세계로 진입했다. 예비 소집일에 돌봄교실 안내문을 받고 적잖이 당황했다. 과밀학급임에도 전 학년 기준 돌봄교실은 딱 두 반, 우선순위 대상을 읽으며 애초에 기대를 접었다. 돌봄교실과 병행할 수 있는 방과 후 수업의 평균 경쟁률은 5대1. 갑작스런 휴강이나 학교를 마치고 생기는 공백에 대한 변수는 불안으로 번졌다. 직접 돌보거나, 맡기거나. 아이의 이동 동선에 맞춰 안전을 책임질 학원 선생님을 연결하는 건 양육자 개인의 몫이었다.
새벽 기차를 타고 미팅에 나서는 경우를 대비해 촘촘하고 전략적인 방과 후 스케줄이 필요했다. 허리띠를 졸라 아이 사교육에 헌신한 부모가 노년에 빈곤을 겪는 현실을 목도하면서도 막상 당사자가 돼보니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초등은 100만원, 중등은 200만원, 고등은 300만원이라는 사교육비 지형도가 드라마 속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인근의 태권도, 미술, 피아노 학원은 학교를 대신해 돌봄을 담당해 온 오랜 성지였다. 점심시간을 반납하고 교문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는 워킹맘도 여럿. 엄마와 학원 선생님의 손을 잡고 학원으로 떠나는 아이들의 거대한 밀물과 썰물 사이로 교정에 고요가 찾아왔다.
다른 나라의 사정은 어떨까. 포포포 매거진 오픈채팅방에서 프랑스 통신원으로 활약하는 민영님을 줌으로 만났다. 프랑스의 돌봄교실은 누구나 저렴하게 필요할 때마다 신청할 수 있다. 아이들은 추워도 비가 와도 쉬는 시간이면 무조건 교실 밖으로 나가 뛰어논다.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썽트르 루아지르’라는 별도의 기관도 존재한다. 반면, 한국의 돌봄교실은 여전히 맞벌이 가정이나 저소득층을 위한 서비스로 기능한다. 안전상의 이유로 돌봄의 영역은 교실 안으로 제한돼 더욱 외부의 노출을 꺼리는 인상이 강하다.
며칠 뒤 민영님은 포.포포포 뉴스레터 연재 기사를 통해 한국의 낡은 직업관과 노동관을 조명했다. 프랑스와 달리 한국의 사교육 의존도가 기형적으로 높은 이유는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아도 모두 대학에 가야 하는 이유에서 비롯됐다는 사실도 함께 지적했다. 물론 프랑스에도 사교육은 존재한다. 아이들이 재능을 발견할 수 있도록 여러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대입을 최종 관문에 두고 교과목 위주의 학습 중심으로 편성된 한국의 사교육 시장과는 대조적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공부는 유일하게 계급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수단으로 군림해 왔다. 대학을 졸업해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믿음은 직업의 귀천을 더욱 공고하게 나눴다. 베스트셀러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는 중산층을 결정짓는 한국 특유의 사회적 가치관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그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이를 돌보는 양육자의 역할은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집에서 논다’로 폄하됐다. 그 과정을 지켜본 지금의 세대는 아이와 자신의 미래를 등가교환 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설령 아이를 원한다 해도 사회의 진입까지 높은 허들을 넘기 위해 결혼과 출산을 미루고 난자를 얼려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석박사와 유학이 더는 특별하지 않은 스펙이 됐다.
사교육 게임의 최종 골인 번듯한 직장에 취직한 다음엔 고민이 해결될까. 직장인 커뮤니티에는 이런 질문이 쏟아진다. “00년 차 회사원은 어느 정도 ‘급’의 차를 타야 하나요?” “이 회사 그만두는 게 맞을까요?” 타인의 시선에 점철되어 결정 장애를 앓는 사회에서 직장인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권리는 퇴사뿐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퇴사학교라는 새로운 과외 시장이 성행한다.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책임지는 문제 앞에서 소라게처럼 숨을 곳을 찾아 헤매는 사이,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에서 환생으로 바뀐 시대의 키워드는 웹 소설을 비롯한 콘텐츠 전반에 스며들었다. 꿈의 직장을 위한 스펙을 만들어 30대에 안착하기 무섭게 40대부터 정년퇴직을 고민해야 한다. 덕분에 프랜차이즈 창업 박람회는 문전성시를 이룬다.
프랑스에서는 초등 저학년부터 ‘도덕 및 시민 교육’을 받는다.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법은 무엇이고, 어떤 가치에 근거를 두고 함께 사는 법을 만들어야 하는가. 책임감을 느끼고 행동하는 것을 배운다. ‘세상에 대해 질문하기’라는 과목은 학생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에 대해 묘사하고 이해하는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하고, 고찰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시민 교육의 토대가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사회를 구성하는 한 시민으로 함께 고민하고 토론할 의무를 배운다. 한국은 어떠한가. 타인의 시선과 기준에 길들어 질문 앞에 고개를 숙인다. 목소리를 내는 법을 잃은 사회. 다음 세대를 돌보고 교육하기 위해 우리는 나의 주관을 가지고 세상에 질문하는 방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 이는 어쩌면 사라져 가는 ‘미래의 아이들’이 ‘현재의 우리’를 지키기 위해 보낸 마지막 경고일지 모른다.
정유미 포포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