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식량안보, 시장 안정될 때 준비 시작해야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러우전쟁)으로 촉발된 세계 식량위기는 올들어 잦아들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서 발표한 올해 2월 식량가격지수는 129.8포인트로 11개월 연속 하락했고, 2022년 최고점 대비 18.7% 감소했다. 이번 식량위기가 시작되기 이전인 2020년 대비 32% 더 높지만 우리나라에서 식량위기는 이미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듯하다. 요즘은 식량위기를 대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가 머쓱해진다. 양치기 소년처럼 보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식량위기는 대체로 10년 주기로 발생했다. 1974년 전 세계를 강타한 식량위기가 있었고, 1980년에는 우리나라 쌀 생산량이 30% 이상 줄어드는 대흉작이 있었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은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최악의 식량난을 겪었다. 한동안 국지적인 식량위기만 발생하다 2016년 유럽의 가뭄에서 시작돼 2008년 세계금융위기와 함께 다시 글로벌 규모의 식량위기로 번졌다. 특히 이때의 식량위기는 3~4년 동안 지속되면서 ‘재스민 혁명’을 촉발했고 중동의 여러 국가들이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했다. 그리고 다시 10년이 지난 2021년부터 미국 중서부에 몰아닥친 사상 최악의 가뭄은 러우전쟁을 만나면서 다시 글로벌 규모의 식량위기로 발전했다.

물론 이런 종류의 식량위기만 있는 건 아니다. 2020년에는 비가 너무 오랫동안 내리면서 많은 국가에서 토마토 가격이 폭등했고, 올해는 남유럽의 한파와 전반적인 에너지 가격 상승의 영향이 겹치면서 유럽의 토마토 가격이 폭등했다. 여기에 비료 공급량 감소까지 더해졌다. 우리는 식량위기가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기후변화와 러우전쟁으로 촉발된 식량위기는 한동안 위세를 떨칠 수밖에 없다.

어쨌든 2022년의 식량위기는 지나갈 것이다. 그렇지만 다음 식량위기 역시 찾아오기 마련이다. 채소가격 폭등에서부터 글로벌 식량 공급망의 붕괴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이번에는 우리 식량공급망에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유럽이 주 무대라 식품물가 폭등 정도에 그쳤지만, 다음 식량위기는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까?

IMF 구제금융이 시작되기 전 경제관료들이 가장 흔히 하던 말 중 하나는 “우리 경제의 펀더멘탈은 튼튼합니다”였다. 그 관료의 말처럼 우리나라 경제의 기초체력은 나쁘지 않았고, 그 덕분에 IMF 시기를 조기 졸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외환 유동성 위기관리 실패의 대가는 혹독했다. 수많은 기업과 은행은 가혹한 구조조정을 해야만 했고,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을 해체했다.

전문가들은 식량위기에 대한 대비는 식량가격이 안정됐을 때 시작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식량위기가 이미 현실화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준비를 시작해도 다음에 올 파고를 대비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오랜 시간과 수많은 시행착오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IMF 시기 이전의 관료들처럼 펀더멘탈이 튼튼하다는 주장 역시 의미는 없다. 식량 위기관리 실패는 IMF보다 더 혹독한 후유증을 우리 사회에 남길 것이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자. 1974년 식량위기 여파로 미국이 대두 수출을 금지하자 일본은 대안을 찾기 위해 브라질의 세라도 지역 개발을 시작했고, 이는 브라질이 세계 최대 대두 수출국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됐다. 일본은 해외농장개발뿐 아니라 미국 곡물회사에 대한 인수 및 합작법인 설립을 통해 곡물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높였다. 중국 역시 2010년대부터 세계 식량 공급망에 접근하기 위해 글로벌 농산업체에 대한 인수합병을 대대적으로 실시하고 해외농업투자를 확대했다. 오히려 전 세계가 경계할 만큼 과감하게 움직였다. 일본과 중국이 추진한 식량안보 전략은 식량위기가 발생했을 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식량 공급량이 늘어나 곡물기업의 수익률이 떨어졌을 때 그나마 약간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해외 곡물시장 및 농자재 시장에 대한 이해이다. 이 역량을 단기간에 확보하기는 어렵다. 식량안보 전담연구소의 설립을 통해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가능한 일이다. 식량가격이 안정세로 접어드는 지금 다음에 올 파고를 준비할 때다.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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