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생물계절 변화와 식량의 미래

11월에 맞는 여름 날씨에 다들 화들짝 놀랐다. 살아온 인생이 길든 짧든 낯선 경험일 수밖에 없었다. 극한기상이 주는 당황스러움은 일회성이 아니라 앞으로 자주 겪게 될 기후 변덕의 일부에 불과하다. 4월 초에 갑자기 찾아온 무더위를 지날 때만 해도 약간의 희망을 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제는 공포영화처럼 어디서 기후 괴물이 뛰쳐나와도 이상하지 않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마음을 놓지는 말자. 이제 겨우 도입부가 시작되었을 뿐이다. 너무 이른 더위와 너무 늦은 더위는 선진국 시민들에게 냉방기 덮개를 다시 벗겨야 하는 번거로움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대부분 생물에게 이런 변화가 날벼락에 가깝다. 예민한 생물시계를 가진 과수와 부지런한 꿀벌은 계절 변동 범위를 벗어난 무더위와 연이은 냉해의 습격을 고스란히 받았다. 생물계절의 이상은 농업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과일의 생산량을 많게는 40%까지 떨어뜨렸고 쌀 생산량마저 줄어들 전망이다. 육상 식물종의 약 40%는 희귀종으로 분류되는데, 기후변화는 이 분류군의 식물종을 멸종 위기로 내몰고 있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적합한 기후대로 서식지를 옮겨야만 하는데, 식물종은 10년마다 고도는 11.0m, 북으로는 16.9km를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작물은 더 빠르게 이동한다. 생존 한계보다 품질하락과 생산성 감소로 인한 경제성 한계에 먼저 도달하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 산지가 점점 더 고지대로 옮겨가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제주에서 재배되던 아열대 작물이 남해안을 지나 남부지방으로 북상하고 있다. 기후변화와 극한 기상이 농산물 수확량을 크게 줄이기는 하겠지만 버틸 수는 있다. 하지만 과학기술 투자로 인해 증가한 농업 생산성은 기후변화로 상쇄되어 투입비용 증가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은 정체될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식량은 미래 성장산업이 될 수 있을까?

지난해는 좋은 소식보다는 나쁜 소식이 더 많았다. 동유럽 곡창지대에서 시작된 전쟁으로 식량 가격이 폭등하면서 전 세계 서민들은 치솟는 물가로 고통받았다. 중국에서는 사상 최악의 가뭄으로 양쯔강이 말랐고, 파키스탄에서는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겼다. 올해는 슈퍼엘니뇨가 시작되면서 세계는 또다시 폭염과 가뭄, 연이은 산불로 시름이 깊어 간다. 서민들은 벌써 내년 식품 물가를 걱정한다. 하지만 모두가 다 나빴던 건 아니다. 식량 생산이 원활하지 못하면 더 호황인 업종도 있다. ABCD라는 별칭 또는 곡물 메이저로 불리는 ADM, 벙기(Bunge), 카길(Cargill), LDC가 그 주인공이다. ABCD 중 맏형 격인 카길은 지난해 매출액 1770억 달러로 최고를 갱신했다. 전년보다 120억 달러가 더 증가한 수치였다. 나머지 세 기업의 매출액도 전년 대비 평균 110억 달러 더 늘었다. 기후가 불규칙해져 농산물 생산에 차질이 커질수록 곡물 거래기업의 수익은 증가한다. 기상학자들은 내년을 더 걱정한다. 올해 폭염을 몰고 온 슈퍼엘니뇨가 내년에는 더 극성을 부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내년 이후의 식량 사정 역시 호전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는 이유다. 그 이후는 더 나아질까? 그럴지도 모른다. 한두 해 좋아질 수도 있겠지만 커지는 기후변화의 영향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80% 이상의 곡물을 해외시장에서 구매하고 있다. 국제 곡물 시장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외교·안보 분야 최정상급 싱크탱크인 채텀하우스는 “일본과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가장 위험에 노출된 국가 중 하나”라며 식량공급망의 취약성을 경고한다. 이것은 단순히 공급망의 문제에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껌값과 쌀값, 오해와 편견을 넘어

지난해 농업계는 쌀 가격 때문에 큰 혼란을 겪었다. 쌀이 너무 많이 생산된 게 문제였다. 곡물자급률이 20%도 채 안 되는 나라에서 쌀이 너무 많이 생산되어 문제라는 설명이 쉽게 받아들여지긴 어려웠다. 농민들은 밥 한 공기의 쌀값이 껌값보다 못해졌다고 한탄했다. 2022년 기준 국내 쌀 생산량은 376만t이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쌀이 생산된 1977년 600만t에 비하면 37% 줄어든 수치였다. 반면에 인구는 3600만명에서 5100만명으로 늘었다. 그러니 쌀이 많이 생산돼 문제라는 진단은 타당성이 떨어진다. 오히려 쌀 수요가 줄어서 생겨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1인당 쌀 소비량은 1979년 135.6kg으로 정점을 찍은 후 계속 줄어 지난해에는 56.7kg까지 떨어졌다. 쌀이 많이 생산된 게 문제라고 진단했으니 대책은 쌀 생산량을 줄이는 쪽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대안은 태생부터 한계에 부딪혔다. 우리나라는 벼농사에 적합한 기후대이고 농업 투자는 대부분 벼농사를 잘 짓는 데 집중됐다. 1995년 발효된 WTO 협정에서도 쌀 시장을 보호하는 데 집중했다. 이 모두가 쌀이 너무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식량안보를 고려하면 논 면적은 유지해야 하고, 콩과 밀 등 대체 작물은 쌀을 생산했을 때의 소득과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밀가루를 많이 먹으면서 쌀을 덜 먹게 됐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 역시 착각이다. 1인당 밀가루 소비량은 1980년 38.4kg였고, 40년이 지난 지금은 36kg으로 약간 줄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우리와는 다른 방향으로 식단이 바뀌었다. 건조한 사막기후에 맞게 이 나라는 유목과 밀이 주식 작물이다. 1970년대 석유파동을 거치면서 소득이 높아지자 쌀 소비량이 빠르게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식량안보 정글’을 헤쳐 나갈 내비게이션

지도를 보고 길을 찾아가는 걸 ‘독도법’이라 한다. 독도법에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자신의 위치를 찾는 것이다. 나침반으로 방향을 확인하고 지도의 등고선과 지형지물과 대조해 현재 위치를 특정한다. 그 이후는 쉽다. 지도를 따라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면 된다.  현실 세계에서도 독도법의 원리는 그대로 적용된다. 만약 농업의 미래가 궁금하면 먼저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어떤지 알 필요가 있다. 이때 사용되는 방법이 ‘벤치마크’다. 벤치마크는 기업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다른 회사나 업계의 우수사례를 참고하는 경영 기법을 일컫는다. 물론 기업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방법론이기도 하다. 농업 분야에서는 시범농장, 선진지 견학, 해외연수 등이 벤치마크 목적으로 활용된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벤치마크는 선진국의 사례를 국내에 재현하는 용도로 주로 사용된다. 농업 분야에서도 정책과 제도, 기술과 교육 등 다양한 영역에서 외국의 사례를 국내에 적용해 우수한 성과를 거뒀다. 학계에서는 이를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이라고 명명했다. 벤치마크를 활용한 빠른 추격자 전략은 우리가 따라 할 대상이 있는 한 유효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 앞에서 길을 만들어 주던 대상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우리만의 지도가 필요한 때가 도래했다. 해외 사례가 국내에 적용될 때는 필연적으로 부작용도 발생한다.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도외시한 정책과 제도가 다른 나라에서 같은 효과를 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처럼 외국의 성공 사례는 타국에 이식돼 후유증만 남길 수 있다. 벤치마크를 통해 독일에서 농민이 되기 위해서는 농업직업학교를 졸업한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식량안보, 시장 안정될 때 준비 시작해야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러우전쟁)으로 촉발된 세계 식량위기는 올들어 잦아들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서 발표한 올해 2월 식량가격지수는 129.8포인트로 11개월 연속 하락했고, 2022년 최고점 대비 18.7% 감소했다. 이번 식량위기가 시작되기 이전인 2020년 대비 32% 더 높지만 우리나라에서 식량위기는 이미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듯하다. 요즘은 식량위기를 대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가 머쓱해진다. 양치기 소년처럼 보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식량위기는 대체로 10년 주기로 발생했다. 1974년 전 세계를 강타한 식량위기가 있었고, 1980년에는 우리나라 쌀 생산량이 30% 이상 줄어드는 대흉작이 있었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은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최악의 식량난을 겪었다. 한동안 국지적인 식량위기만 발생하다 2016년 유럽의 가뭄에서 시작돼 2008년 세계금융위기와 함께 다시 글로벌 규모의 식량위기로 번졌다. 특히 이때의 식량위기는 3~4년 동안 지속되면서 ‘재스민 혁명’을 촉발했고 중동의 여러 국가들이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했다. 그리고 다시 10년이 지난 2021년부터 미국 중서부에 몰아닥친 사상 최악의 가뭄은 러우전쟁을 만나면서 다시 글로벌 규모의 식량위기로 발전했다.  물론 이런 종류의 식량위기만 있는 건 아니다. 2020년에는 비가 너무 오랫동안 내리면서 많은 국가에서 토마토 가격이 폭등했고, 올해는 남유럽의 한파와 전반적인 에너지 가격 상승의 영향이 겹치면서 유럽의 토마토 가격이 폭등했다. 여기에 비료 공급량 감소까지 더해졌다. 우리는 식량위기가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기후변화와 러우전쟁으로 촉발된 식량위기는 한동안 위세를 떨칠 수밖에 없다.  어쨌든 2022년의 식량위기는 지나갈 것이다. 그렇지만 다음 식량위기 역시 찾아오기 마련이다. 채소가격 폭등에서부터 글로벌 식량 공급망의 붕괴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가 되려면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는 “농업에 투자하고 싶은데 우리나라 농업의 미래는 어떨까?”다. 나의 대답은 늘 똑같다. “우리 농업이 아주 부족해 보인다는 건 투자를 통해 개선할 수 있는 게 많고, 그만큼 성장 잠재력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라고. 그렇지만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불안감까지 떨칠 수는 없다. 우리 농업은 “정부의 지원 중심에서 시장 중심으로 무게추를 옮겨갈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다. 그때가 조만간 오긴 하겠지만 언제일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많은 소비자는 미국 농산물이 우리나라보다 더 많은 농약과 비료를 사용해 생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대규모 기업농이 재배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또한 라오스와 같은 개도국에서 생산된 농산물은 친환경적이고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물론 사실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헥타르(ha) 당 370kg의 비료를 사용했지만, 미국은 129kg에 불과하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단위면적 당 비료 사용량이 많은 국가 중 하나다. 개도국에서는 높은 독성을 이유로 선진국에서 금지된 농약을 다수 사용한다. 반면에 미국은 자연의 재생 역량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미생물제제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국가로 꼽힌다. 또 하나의 착각 중 하나는 규모화된 농업은 덜 도덕적이고 소농이 더 친환경적일 것이라는 점이다. 이 역시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지켜야 할 규칙을 생산자들이 얼마나 잘 준수하느냐의 문제이지 규모와는 상관없다. 이 경우는 오히려 생산 단위의 규모가 클수록 더 유리하다. 단위 면적당 관리 비용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농업에 대한 투자를 주저하게 만드는 불안감의 근원은 뭘까?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농산물 수입대국 영국의 스마트팜 굴기

영국 농업에 대해 들어본 적 있는가? 네덜란드는 ‘첨단 원예농업’, 스페인은 ‘유럽의 텃밭’, 프랑스와 독일은 ‘농업 대국’ 등으로 저마다 이름을 드높였지만 유독 영국만은 예외였다. 영국 음식에 대해 불평하는 게 세계인의 에티켓처럼 통용되고 있지만 영국 농업도 그 음식만큼이나 개성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상황이 변하고 있다. 요즘 혁신적인 농업 뉴스들은 종종 영국발이다. 그것도 스마트팜이다. 과채류의 대부분을 수입하는 영국에서 스마트팜이라니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영국 동부에 위치한 노리치(Norwich)와 베리 세인트 에드먼드(Bury St. Edmunds)에서는 1900억원의 자본이 투자된 28ha 규모의 스마트팜이 들어섰다. 영국에서 규모 있는 스마트팜이 들어섰다는 게 좀 어색하긴 하지만 우리나라도 이 정도에 놀랄 수준은 넘어섰다. 올해부터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간 경북 상주시의 스마트팜 혁신밸리는 1548억원이 투자됐다. 다만 노리치 스마트팜 프로젝트를 주도한 저탄소사업 컨설팅 전문기업인 로우카본파밍(Low Carbon Farming)은 향후 4조원을 더 투자해서 전국 각지에 새로운 스마트팜을 신축하겠다는 놀라운 계획을 밝혔다. 양배추나 당근 정도나 자국에서 생산하던 영국에서 스마트팜에 이렇게 과감하게 투자하는 배경이 궁금했다. 스페인의 온화한 기후와 네덜란드의 엄청난 원예작물 생산성과 경쟁하는 건 일면 무모해 보이기도 했다. 영국의 비밀병기는 에너지다. 시설 원예농업에서 에너지는 전체 생산비의 10~15%를 차지한다.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에너지 비용이 생산비의 60%에 달하기도 한다. 대부분은 난방에 사용되는 에너지다. 로우카본파밍은 버려지는 잔열에 주목했다. 하수처리장에서는 많은 열이 발생한다. 정화를 거친 방류수를 바로 하천으로 흘려보내면 하천 생태계에 영향을 준다. 우리나라에서도 주변 하천수보다 높은 온도의 방류수로 인한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10년 후에도 식량을 생산할 수 있으려면

맑은 가을하늘과 천연색 단풍이 무르익어가는 정선의 고랭지 밭에서는 수십 명의 일꾼이 일사불란하게 천궁(川芎)을 수확하고 있었다. 베트남에서 온 계절노동자들은 해발 900m에서 맞는 서늘한 기후가 익숙지 않은 듯 두꺼운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분주히 움직이던 일꾼들은 순식간에 수확 작업을 끝내고 다른 밭으로 옮겨갔다. 이제는 이런 풍경이 낯설지 않다. 마을 주민들끼리 품앗이하는 걸 보는 게 오히려 생경하다. 농가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절반에 가까워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웃나라 일본의 상황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65세 이상 농업인구는 70%에 이르고 39세 이하는 5% 정도에 불과하다. 2020년 농업경영체의 수는 개인과 단체를 합쳐 107만6000명이다. 2010년 167만9000명에 비해 36% 감소했다. 신규 취농자 수는 5만명대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중 76%는 자영농이다. 특이한 건 고용 취농자의 비율이 10년 만에 1.6배가 증가했고, 대부분 40대 이하라는 점이다. 농업법인의 규모가 커지면서 직장으로서 농업을 택하는 비율이 늘었다. 일본과 한국이 비슷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엄청난 차이가 난다. 일본의 농경지 면적은 434만ha로 우리나라 156만ha의 2.8배에 이른다. 그런데 취농인구는 거의 비슷한 130만명 수준이다. 일본은 고용 취농자가 늘어나자 농업경영자를 위한 안내서를 제작하고, 대학생과 사회인들을 대상으로 농업 적성판별이나 취업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귀농을 위한 정책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고령화 시대를 대비해 농업용 로봇 및 자율주행 농기계를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자동조향장치를 갖춘 농기계 판매 대수는 2013년 190대에서 2018년에는 1900대로 5년 만에 10배 늘어났다. 여기에 더해 2018년부터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헬로트랙터’가 바꾸는 아프리카의 농업

세계 최대 농기계 기업인 ‘존디어(John Deere)’에서 케냐의 스타트업 ‘헬로트랙터(Hello Tractor)’에 투자했다는 뉴스가 눈길을 끌었다. 미국의 거대 기업이 25명 근무하는 아프리카 스타트업에 투자했다는 게 생소했다. 어떤 배경에서 투자가 이루어졌는지 좀 더 깊이 들여다봤다.  아프리카의 농기계화율은 매우 낮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농경지 100㎢당 트랙터 수는 아프리카의 경우 28대에 불과하다. 대부분 개도국인 남아시아는 96대, 유럽은 815대, 한국과 일본은 각각 1620대, 4380대에 이른다. 아프리카에서 농기계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넓은 농경지가 있어도 경작할 수 있는 면적은 한 가구당 1~2h(헥타르) 내외에 불과하다. 농기계의 부족은 아프리카 농업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제한인자 중 하나다. 헬로트랙터는 농기계 임대 시장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2014년 창업했다. 소농들이 농기계를 구입하기에는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헬로트랙터는 농기계 소유자가 자신의 농기계가 어디 있는지, 운영은 잘 되고 있는지를 모니터링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사물인터넷(IoT) 기반 농기계 관리 서비스를 제공했다. 여기에는 농기계가 얼마나 많은 작업을 수행했는지, 얼마나 많은 연료를 소모했는지 추적하고, 농기계 운전자의 역량과 차량 유지관리에 필요한 사항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외에도 농작업 수요자를 그룹화하여 농작업 효율을 높이는 일부터 농기계 구매를 위한 대출 프로그램까지 시작했다. 시장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헬로트랙터 플랫폼에 등록한 농기계 소유자는 약 3000명에 이른다. 이들은 모바일 및 웹 프로그램을 통해 농민들에게 트랙터를 임대하고, 약 50만명의 농민들이 트랙터를 빌려 쓰고 있다. 이 중 87%의 농민은 농기계를 활용함으로써 소득이 증가했다고 한다. 현재 헬로트랙터의 서비스는 아프리카 5개국과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우리에게도 아리아드네의 실이 필요하다

그리스의 영웅 테세우스는 다이달로스가 만든 미궁을 지나 반인반수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리아드네 공주가 전해 준 실타래 덕분이었다. 최근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보면서 현대는 정보전이라는 것을 더욱 실감한다. 무차별 폭탄을 쏟아붓던 과거의 전쟁은 드론을 통해 정밀하게 관측하고 정확도 높은 유도무기를 사용하여 표적을 무력화시키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한 국가의 군사력은 가지고 있는 무력의 양이 아니라 정보의 질에 달려있다는 게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식량위기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다는 게 느껴진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에너지와 식량의 무기화에 대한 우려가 커졌고, 세계 각지에서 기상재해가 빈발하면서 식량위기를 먼 미래라기보다 눈앞에 닥친 현실로 인식하는 듯하다. 강의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식량은 안전하냐’고 묻는다. 때로는 대안까지 제시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렇지만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는 있어도 대안까지 제시하기는 어렵다. 문제를 분석하는 것은 현상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대안은 실증을 통한 검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가능성도 발견한다. 최근 농수축산물 무역 거래 플랫폼 스타트업인 ‘트릿지(Tridge)’가 농업계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국내 농식품 분야 최초의 ‘유니콘’에 등극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아직 낯설게 느껴진 이유는 초기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서비스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국내 농업계와 접점이 거의 없어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트릿지의 핵심 서비스는 농수축산물이 필요한 구매자에게 세계 여러 농업 현장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연결해주는 ‘풀필먼트 솔루션’이다. 세계 각국의 농업과 무역에 대한 폭넓은 정보망과 전문인력이 뒷받침해줘야 가능한 사업모델이다. 트릿지는 수년에 걸쳐 국제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수직농장은 미래 농업의 주연이 될 수 있을까?

재생에너지 100%, 물 사용량 90% 절감, 무농약, 푸드마일 95% 감소, 그리고 식량자급률 향상. 만약 이런 기준을 충족하는 채소가 도시민의 식탁에 오른다면 농업의 혁신이라 부를 수 있을까? 대부분은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농장이 햇빛 대신 LED(발광다이오드) 빛으로 작물을 재배한다면 어떨까? 만약 일부라면 수긍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소비할 대부분의 채소가 LED 조명으로 재배된다면 생각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수직농장의 미래를 밝게 보지는 않았다. 초기 시설 투자비가 많이 들어 농산물 생산비 역시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샐러드박스처럼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을 구성하는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 것이라 예상했다. 실제도 그랬다. 해외 여러 스타트업들이 의욕적으로 뛰어들었지만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두드러졌다. 여전히 예측한 범위 내에 있는 듯했다. 영국 글로스터셔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수직농장이 최근 가동을 시작했다. 존스푸드컴퍼니(JFC)에서 두 번째로 신축한 4500평 규모의 수직농장에서는 연간 1000t 규모의 엽채류를 생산할 계획이다. 국내 시설하우스에서 재배하는 상추와 비교하면 단위 면적당 22배나 더 높은 생산성이다. 팜에이트의 평택 수직농장은 600평 규모에서 하루 6000포기의 엽채류를 생산한다. 일반 시설하우스 대비 40배나 높은 생산성이다. 한 시장분석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2020년 약 6조원이던 수직농장의 시장규모는 2030년에는 30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수직농장은 미래 농업의 주연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남아있었다. 농학을 전공한 나에게 농업이란 태양에너지를 먹을 수 있는 유기물로 전환하는 산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수직농장을 과연 농업의 한 범주에 넣을 수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해조류는 ‘소 산업’을 구할 수 있을까?

세계에는 약 15억 마리의 소가 사육되고 있다. 이 소들은 연간 70억t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우리나라가 연간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10배에 해당하는 양이다. 소 사육으로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40%는 메탄으로 주로 소가 되새김질할 때 위 속에서 밖으로 배출된다. 메탄은 이산화탄소에 비해 온실효과가 28배나 더 강하다. 따라서 탄소중립 요구가 거세질수록 소 산업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탄소중립은 소 산업의 가장 큰 위협으로 등장했다. 호주의 한 농민은 방목하던 소의 무리 중 유난히 건강하게 잘 자라는 소들을 발견하고 그 이유를 찾아봤다. 그런데 건강한 소들 사이의 공통점은 바닷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해조류를 먹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 사실은 연구자들에게 알려졌고 해조류 효과에 대한 연구가 시작됐다. 연구자들은 해조류에 들어있는 물질이 소의 위에서 메탄을 생성하는 효소의 작용을 억제해 최대 90%까지 메탄 발생을 감소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반면에 소의 사료전환 효율을 20%까지 개선하면서 소의 성장을 촉진한다는 것도 알아냈다. 호주 태즈메이니아에서 1300마리 규모의 젖소 농장을 운영하는 한 농부는 아스파라고프시스라는 해조류와 카놀라유로 조제한 첨가제를 소에게 먹이고 있다. 이 농부는 해조류가 세계 축산업의 미래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아스프라고프시스는 전 세계 학계와 언론계로부터 큰 주목을 받게 된다. 그렇지만 해결하기 힘든 과제도 남았다. 그중 가장 큰 제약은 생리활성물질을 함유한 해조류를 상업적으로 대량 생산하는 것이다. 이 뉴스를 봤을 때 새로운 가능성이 떠올랐다. 우리나라는 이미 해조류의 최대 생산국 중 하나다. 미역은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생산국이고, 김은 독보적인 1위다.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