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농업계는 쌀 가격 때문에 큰 혼란을 겪었다. 쌀이 너무 많이 생산된 게 문제였다. 곡물자급률이 20%도 채 안 되는 나라에서 쌀이 너무 많이 생산되어 문제라는 설명이 쉽게 받아들여지긴 어려웠다. 농민들은 밥 한 공기의 쌀값이 껌값보다 못해졌다고 한탄했다.
2022년 기준 국내 쌀 생산량은 376만t이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쌀이 생산된 1977년 600만t에 비하면 37% 줄어든 수치였다. 반면에 인구는 3600만명에서 5100만명으로 늘었다. 그러니 쌀이 많이 생산돼 문제라는 진단은 타당성이 떨어진다. 오히려 쌀 수요가 줄어서 생겨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1인당 쌀 소비량은 1979년 135.6kg으로 정점을 찍은 후 계속 줄어 지난해에는 56.7kg까지 떨어졌다.
쌀이 많이 생산된 게 문제라고 진단했으니 대책은 쌀 생산량을 줄이는 쪽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대안은 태생부터 한계에 부딪혔다. 우리나라는 벼농사에 적합한 기후대이고 농업 투자는 대부분 벼농사를 잘 짓는 데 집중됐다. 1995년 발효된 WTO 협정에서도 쌀 시장을 보호하는 데 집중했다. 이 모두가 쌀이 너무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식량안보를 고려하면 논 면적은 유지해야 하고, 콩과 밀 등 대체 작물은 쌀을 생산했을 때의 소득과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밀가루를 많이 먹으면서 쌀을 덜 먹게 됐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 역시 착각이다. 1인당 밀가루 소비량은 1980년 38.4kg였고, 40년이 지난 지금은 36kg으로 약간 줄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우리와는 다른 방향으로 식단이 바뀌었다. 건조한 사막기후에 맞게 이 나라는 유목과 밀이 주식 작물이다. 1970년대 석유파동을 거치면서 소득이 높아지자 쌀 소비량이 빠르게 늘었고, 이와 함께 쌀 요리도 다양하게 발달했다. 현재 1인당 쌀 소비량은 39.5kg으로 쌀이 주식인 우리나라의 70% 수준이다.
카브사와 살레그 등 사우디아라비아인들이 즐겨 먹는 쌀 요리는 찰기가 없는 인디카 품종으로 만든다. 이렇듯 인디카 쌀은 흰밥으로 먹기보다는 요리해서 먹는 게 일반적이다. 리소토와 파에야로 대표되는 유럽의 쌀 요리 역시 다양한 식재료를 곁들여 함께 조리한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찰기가 있는 자포니카 품종의 쌀을 흰밥으로 먹는다. 한식이 이 쌀에 맞게 발달했다. 그런데 여기까지였다. 우리나라에서 밀가루 음식은 전 세계의 다양성이 모두 구현됐지만, 쌀은 밥에서 멈췄다.
우리 식성과 습관의 문제라면 크게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없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다. 기후변화를 대비해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쌀 소비량을 늘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쌀값 파동은 평년보다 작황이 부진했음에도 15만5000t의 공급과잉으로 초래된 문제였다. 1인당 3kg의 쌀을 더 먹으면 해소되는 양이다. 우리나라도 쌀 요리를 늘리면 어떨까? 우리 한식이 훌륭하긴 하지만 소비자들은 더 많은 다양성을 원한다. 지금까지 이런 노력이 거의 없었다는 게 오히려 더 놀랍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도 요리에 적합한 인디카 품종을 육종하고 다양한 쌀 요리를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흰밥만으로 충족하지 못했던 쌀 요리의 다양성을 만들어 갈 것이다. 만약 이 시도가 성공한다면 우리가 직면한 쌀값 논쟁부터 식량자급률, 그리고 농촌의 붕괴까지 많은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직면한 쌀의 문제는 과잉생산이 원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과거에 매몰돼 변화하는 소비자의 기호를 따라가지 못해 벌어진 수요감소가 더 크게 작용했다. 문제를 제대로 진단할 수 있다면 해결책을 찾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러면 껌값은 정말 생각처럼 저렴했을까? 1967년 껌이 처음 출시될 때 껌 한 통은 2~5원이었다. 당시 짜장면 한 그릇이 20원 하던 때였으니 당시에도 껌은 아무나 먹을 수 있을 만큼 저렴하지 않았다. 1980년 쌀 한 가마니 가격은 4만7663원, 껌 한 통은 50원 수준이었다. 당시의 껌 한 통은 밥 한 공기(90g)의 쌀값(54원)과 비슷했다. 이제 밥 한 공기 쌀값은 껌값의 3분의1에 불과하다. 쌀이 껌값보다 못하게 된 건 사실이지만, 그 가치는 절대 껌값이 될 수는 없다.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