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에서 30조원이 넘는 사회적채권이 발행됐다. 녹색채권은 전년보다 절반이나 줄었는데 사회적채권은 오히려 늘었다. 사회적채권은 사회문제 해결 또는 완화를 목적으로 발행하는 채권이다. 어떤 경우에 사회적채권에 해당할 수 있을까? 카드회사가 중소가맹점 지급주기 단축을 위해 채권을 발행한다면, 은행이 중소기업 대출을 위해 채권을 발행한다면, 통신회사가 통신품질 제고를 위해 채권을 발행한다면, 제약회사가 신약 개발을 위해 채권을 발행한다면, 사회적채권으로 볼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답을 찾는 것이 바로 ‘택소노미’다. 소셜 택소노미(Social Taxonomy)는 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을 분류하는 기준이다. 유럽연합(EU)은 그린 택소노미에 이어 2022년 2월 소셜 택소노미를 발표했다. 한국은 2021년 12월 녹색 분류체계를 만들었다. 이른바 ‘K-택소노미(Taxonomy)’다. 그러나 소셜 택소노미에 대해서는 아무런 논의도 없다.
사회적채권을 포함해 ‘지속가능금융’이 늘고 있으나 무엇이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인지는 모호하다. 논쟁적이기도 하다. 택소노미는 기업 입장에서 환경적으로 유용한 활동, 사회적으로 유익한 활동의 기준이 된다. 외형적으로는 환경적·사회적 지향을 가지는 경제활동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워싱(washing)을 방지하고 식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ESG 워싱은 세계적으로 정책당국뿐 아니라 소비자, 시민사회의 각별한 관심을 받고 있다.
소셜 택소노미는 환경에 집중돼 있는 분류체계를 인권을 포함한 사회적 영역으로 확장한 것이다. EU가 가장 앞서 있다. EU 소셜 택소노미는 아래와 같은 사회적 목표 및 판단기준을 제시한다.
택소노미에 포함되려면 우선 사회적 목표에 ‘실질적으로’ 기여해야 한다. 사회적 목표는 이해관계자에 따라 설정된다. 예를 들어 근로자와 관련해서는 ‘양질의 일자리’다. 그냥 일자리가 아니라 ‘좋은’ 일자리에 방점이 찍혀 있다. 소비자와 관련해서는 적절한 생활수준과 후생을 목표로 한다.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지역사회도 사회적 목표 중 하나다.
사회 목표에 ‘실질적으로’ 기여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첫째, 부정적 영향을 해소하고 방지하는 것이다. 평등한 고용기회를 제공하고 근로자의 인권을 향상시키는 활동을 예로 들 수 있다. 둘째, 경제활동에 내재된 긍정적 영향을 강화하는 것이다. 장애인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전자제품, 노인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통신서비스 등이 그 예다. 셋째, 지원활동이다. 환경적·사회적 목표를 개선하는 다른 활동에 기여하는 지원활동이다. 가치사슬 근로자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줄이기 위한 사회적 감사(social audit), 이해관계자와의 의미있는 대화 등이 예가 된다.
대부분의 경제활동은 환경적으로는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그린 택소노미는 부정적인 환경 영향을 줄이거나 탄소 포집 등을 통해 되돌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경제활동은 사회적으로 보면, 일자리 창출, 세금납부, 상품 및 서비스 제공 등과 같이 본질적으로 유익한 결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소셜 택소노미의 역할은 경제활동이 만들어내는 ‘고유의 이익’과 ‘추가적인 사회적 이익’을 구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약회사의 의약품 생산은 그 자체로 사회적 기여가 있지만, 소셜 택소노미에서는 이를 ‘실질적’ 기여라고 분류하지 않는다. 제약회사가 특정 계층의 특정 약물에 대한 접근성을 개선한다면 추가적인 사회적 편익으로 식별할 수 있다.
‘중대한 피해를 주지 않을 것’도 요건이다. 어느 사회목표에 기여해도 다른 사회목표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통신서비스가 취약한 지역으로 서비스를 확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 일울 하는 근로자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요구된다. 인권과 같은 사회적 안전장치가 그린 택소노미의 일부인 것처럼, 소셜 택소노미에도 환경적 안전장치는 준수돼야 한다. 사회 목표 달성을 위해 환경 침해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EU 소셜 택소노미에 대해 제기된 우려도 있다. EU 역내의 국가마다 사회문제와 관련된 법규와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 활동을 명확히 정의하는 것이 어렵다. 최종보고서는 소셜 택소노미가 개별 국가의 규제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국가의 법률을 최소한의 기준으로 삼고 이를 초과하는 활동을 실질적인 기여로 평가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시한다. 아울러 유엔규범과 같이 국제적으로 인정된 기준을 적용하면 해당 우려가 해소될 수 있다고 본다. 소셜 택소노미가 특정 기업에만 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는 우려, 정부의 보조금 정책 등 각종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택소노미가 EU의 공시법규와 연계돼 기업의 공시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으며, 특히 중소기업은 공시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불리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택소노미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EU 택소노미는 ‘지속가능금융 행동계획’을 기초로 하는 지속가능금융 프레임워크의 맥락 속에 있다. 택소노미와 공시는 하나의 체계를 이룬다. 택소노미로 활동을 분류하고 이를 외부에 공시하도록 한다. 기업 뿐 아니라 금융기관도 특별한 공시의무가 있다.
한국의 경우 소셜 택소노미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다. 택소노미가 기능을 발휘하고 작동하기 위해서는 공시규정도 정비돼야 한다. 택소노미는 정부가 뚝딱 만들어낼 수 없다. 그렇게 만들어지면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택소노미는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에 대한 질문이다. 기업과 근로자, 소비자들이 그에 관해 논의하고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다. 소셜 택소노미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자.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