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기업과 사회] 기업의 미래? 아니 현재!

기업 없이 세상은 돌아가지 않는다. 우리는 기업에서 일하고 기업이 파는 상품과 서비스로 살아간다. 역사상 유례가 없던 코로나 시기도 기업의 비대면 서비스와 새로운 업무 방식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기업은 긍정적 역할을 하지만 우리는 기업을 곱게만 보지는 않는다. 지속가능성과 ESG가 화두가 된 시대에는 달라질 수 있을까? 새로운 기업 새로운 기업이 출현하고 있다. 지배주주의 단기적 이익보다 이해관계자의 행복을 추구하는 기업, 경제적 가치 못지 않게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 직원을 존중하고 소비자를 우선하며 공급망과 함께 하는 기업,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기업. 이런 기업이 과거에도 있었으니 새롭다는 말이 정확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ESG 시대를 맞아 이런 기업이 새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사실이다. 이런 기업이 주류가 될 수 있을까? 해외에서는 이런 기업을 ‘목적 지향 기업’(purpose-driven company)이라 부른다. 이익보다 목적을 앞세우는 기업이라는 것이다. 목적 지향의 브랜딩은 강력한 기업문화를 구축하고 소비자에게 어필하며 결국 재무성과도 향상시킨다고 한다. 포브스(Forbes) 기사 중에는 “모든 기업이 목적 지향 기업으로 변모하고 싶어한다”는 것이 있다. 그러나 목적 지향 기업은 아직 생소하다. 여전히 비주류이다.  새로운 법인격 기업의 목적 변화에 발맞춰 새로운 법인격이 등장했다. 베네핏 기업(Benefit Corporation)은 그 예이다. 베네핏 기업법(Benefit Corporation Law)은 2019년 미국 메릴랜드 주에서 시작해 미국 전체로 확산되었다. 이후 이탈리아, 콜롬비아, 에콰도르,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 주, 페루, 르완다, 우루과이 등으로 퍼져 나갔다. 베네핏 기업은 여러 면에서 기존 기업과 차이가 있다. 이윤(prof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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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사회] 한국 기업은 왜 문제 해결을 위해 연대하지 않을까?

한국 기업들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공동행동을 하는데 소극적이다. 각자 움직인다. 경쟁 관계이므로 공익을 위한 협력도 어려운 것일까? 문제 해결보다는 기업의 성과나 홍보가 중심이기 때문일까? 집합적 임팩트(Collective impact)라는 개념이 들어왔지만, 스타트업이나 지방자치단체와 협력을 모색하는 정도이다. 산업 내부의 협력이나 기업간 연대는 찾아보기 어렵다. 해외의 ESG 이니셔티브에는 가입하면서 정작 우리 문제를 해결하는 이니셔티브는 거의 없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플라스틱과 일회용품은 심각한 환경문제 중 하나다. 관련된 한국 기업들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유통업, 음료업, 식품업, 화학산업 등 업종별 공동행동은 보이지 않는다. 기업간 공동행동을 하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인데 말이다. 사회성과 인센티브(SPC) 사업은 SK그룹이 2015년부터 시작했다. 사회적 기업 또는 소셜벤처가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화폐가치로 측정한 뒤 보상한다. 사회성과를 ‘측정’하고 그에 기반해 ‘보상’하므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사회적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데 큰 힘이 된다. SK그룹은 다른 기업들의 참여를 요청하고 있지만 별다른 호응이 없다. 한국의 많은 대기업들은 보호종료아동을 지원하는 일을 한다.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자동차, LG전자, 국민은행, 신한은행 등 수많은 기업들이 참여한다. 그런데 보호종료아동 문제 해결을 위해, 근본적으로 분리된 위기아동의 문제를 풀기 위해 기업들이 머리를 맞대고 협력하거나 공동행동을 하는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유니레버는 2008년 오랑우탄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유니레버가 사용하는 팜유 생산과정에서 열대우림과 오랑우탄 서식지가 파괴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팜유는 비누와 샴푸, 초콜릿과 빵 등에 널리 사용되는 기름이다. 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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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사회] 연간 5조원 기업 기부가 사회를 바꾸지 못하는 이유

한국의 기업 기부금은 2018년에 5조원을 돌파했다. 지난 10년의 총액은 48조 이상이다. 삼성전자는 10년 동안 3조원에 이르는 돈을 기부했다. 2022년 100억원 이상을 기부한 기업은 37개나 된다. 이렇게 많은 기부금은 어떤 임팩트를 주고 있을까?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있을까? 자선적 기부 vs. 임팩트 기부 어느 기업이 10억원으로 결식아동에게 도시락을 나눠 주었다. 많은 아이가 수혜를 받았다. 하지만 한계가 뚜렷하다. 지원이 끊어지면 아이는 다시 굶게 된다. 허기를 채울 수는 있지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다른 기업은 같은 금액으로 취약 아동의 문제를 다루는 비영리단체와 소셜벤처를 지원했다. 부모가 감옥에 가게 된 수용자 자녀 단체, 이주배경 아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주 부모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조직 등이다. 한국 기업은 주로 자선적 기부를 한다. 생색도 나고 홍보하기도 좋다. 그런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아닐까?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거나 어장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임팩트기부’가 필요하다. “기부자들은 노숙자 쉼터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노숙자 문제를 끝내기를 원한다.” 지난 2017년 9월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실린 글 중 일부다. 글로벌 기업과 재단들은 진짜로 사회를 바꿀 기부를 시도하고 있다. 2016년 ‘구글 임팩트 챌린지 코리아’는 한국의 소셜 섹터를 들썩거리게 했다. 세상을 바꿀 혁신적 아이디어를 공모받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챌린지는 기존의 기부와는 달랐다. ‘사회문제 해결’을 정면으로 내세웠다. 수혜자 지원이 아니라 ‘비영리단체의 성장’을 목적으로 했다. 기부 시장에서 소외된 ‘작은 단체’들이 선정됐다. ‘성과 측정’은 까다롭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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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사회] 대기업은 왜 사회문제 해결하는 비즈니스를 하지 않을까?

전국 24만대 넘는 택시 중 전동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택시는 단 2대뿐이다. 대신 승합차를 개조해 리프트를 단 장애인 콜택시를 타야 한다.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특별교통수단이다. 휠체어 이용자인 친구와 저녁을 먹고 택시를 부르면 일반 택시는 금방 오지만, 장애인 콜택시는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사회적 기업인 코액터스는 영국의 블랙캡(Black cab) 택시를 2대 수입했다. 블랙 캡은 휠체어를 탄 채 옆문으로 들어갈 수 있게 설계돼 있다. 외관도 예쁘지만 이러한 유니버설 디자인 덕분에 런던의 명물이 됐다. 코액터스는 청각장애인이 운전하는 ‘고요한M’이라는 모빌리티 서비스를 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코액터스의 이러한 도전은 장애인 콜택시를 늘리는 방향으로만 달려온 한국에 “아예 택시의 모델 자체를 바꾸면 되지 않을까”라는 메시지를 던져줬다. 왜 현대자동차 등은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택시 모델을 개발하지 않는 것일까? 세계적으로 보면 고령화로 인해 휠체어 이용자가 늘고 있는데 말이다. GM은 접근성센터(Accessibility Centre of Excellence)를 설치한 뒤 장애물 제로(zero barriers)를 위한 차량 개발을 하고 있다. 의수나 의족,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 청력이나 시력이 제한된 사람을 위한 자동차를 개발한다. GM은 자동차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자고 한다. 포용적인 비즈니스 모델이기도 하지만 미래의 먹거리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일본의 토요타도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이른바 ‘Japan Taxi’를 상용화했다. 청각 또는 시각장애인도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자막과 화면해설을 제공하라는 소송에서는 일본 엡손(Epson)이 개발한 스마트 안경으로 시연했다. 이 안경을 쓰면 한국어뿐 아니라 다양한 언어 자막과 수어 영상을 선택해 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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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사회] 사회공헌을 넘어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

시스코는 지난 25년 동안 180여 나라에서 1만개 넘는 IT교육 아카데미를 운영했다. 무려 17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무료로 교육받았다. 특히 저개발국가에 폭넓은 IT 기술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얻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었다. 궁극적으로 이 활동은 시스코가 진출하는 지역의 전문인력을 키워 회사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기여했다. 영국의 유통업체 테스코는 미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의외의 선택을 했다. 빈민가에 신선한 야채와 음식을 파는 매장을 연 것이다. 그동안 빈민가에는 패스트푸드 매장은 많지만 신선식품을 파는 마트는 없었다. ‘음식사막의 오아시스’라고 불린 이 매장들을 통해 테스코는 빈민 지역의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하면서 비즈니스의 기회도 만들었다. 신선한 과일로 빈곤과 폭력을 몰아낸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리는 기업의 사회공헌을 이야기하지만 외국에서는 지역사회 참여(Community Engagement)를 이야기한다. 번역하면 기업과 지역사회의 ‘관계 맺기’다. 지역사회는 기업과 어떤 관계일까? 기업이 지역사회에 유익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기업이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기업은 지역사회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까? ‘사회공헌론’은 전통적이고 오래된 개념이다. 기업도 사회 안에 있으니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는 자선적이며 윤리적인 접근법이다. 솔직하게는 사회적 영향보다는 사업적 이익이 우선이다. 홍보나 마케팅의 목적이 크다. 기부금을 전달하거나 연탄을 나른 뒤 찍는 사진이 더 중요하다. 당연히 사회나 경제가 어려워지면 사회공헌은 축소된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사회공헌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 ‘기업시민’(Corporate citizen)이다. 기업도 시민으로의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의무’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사회공헌보다 한 걸음 나아간 것이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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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사회] 소비자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20여 년 전 회사 동료가 비건 선언을 했다. 그때는 같이 갈 식당이 없었다. 식당에 가면 그는 밥과 야채 반찬만 먹어야 했다. 이제는 비건이 유행이다. 비건 식당뿐 아니라 비건 빵집, 비건 아이스크림 가게도 등장했다. 일반 식당도 비건 메뉴를 내놓고 있다. 우유와 버터가 없는 빵과 아이스크림. 그런데 맛도 좋다. 몇 년 전 국가인권위원회에 어느 군인이 진정을 제기했다. 군 식당에서 비건을 고려하지 않아 차별받고 있다는 취지였다. 흥미로운 이 사건은 국방부가 비건 메뉴를 개발하겠다고 답해 종결됐다. 우리나라 채식 인구는 약 250만명으로 전체의 3~4%로 추산된다. 관련 사업은 크게 성장하고 있다. 한 사람이 일주일에 한 번 채식을 하면 1년에 15그루의 나무를 심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만큼 축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채식을 하면 2050년까지 매년 약 80억t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무려 22%다. 소비가 환경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난 비건이 될 자신은 없다. 그래도 일주일에 하루는 고기를 먹지 않는 ‘간헐적 비건’이 될 용의는 있다. 소비자는 기업의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다. 소비자가 없으면 기업은 존립할 수 없다. 기업의 이익은 모두 소비자에게서 나온다. 그럼 소비자가 기업을 바꾸고, 나아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나쁜 기업에 혼쭐을 내고 착한 기업에 돈쭐을 내서 기업을 바꿀 수 있을까? ‘개념있는 소비’를 통해 환경을 살리고 기업이 인권을 존중할 수 있도록 추동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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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사회] 누군가를 차별하는 비즈니스는 온당한가?

노인을 위한 금융은 없다. 어느 기사 제목이다. 은행 점포는 매년 300개씩 사라지는데 노인에게 인터넷 뱅킹이나 앱은 어렵다. 키오스크나 온라인으로 음식을 주문하고 쇼핑하는 시대가 노인에겐 버겁다. 장애인은 소비자에서 소외된 지 오래다. 자필 서명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시각장애인의 대출이 거부된 일, 성인임에도 부모 동반을 요구하면서 발달장애인의 통신 가입을 거절한 사건이 여전히 뉴스에 오른다. 유아차를 끌고 버스를 타거나 편의점에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상버스라도 유아차를 위해 램프를 내려주지 않고, 편의점에는 경사로가 없다. 세계로 눈을 돌리면 더 심각하다. 2020년 기준 7억3300만명은 전기 없이 살고 있다. 20억명에 달하는 인구가 대소변으로 오염된 물을 식수로 사용한다. 기후변화로 물 부족은 심각해져 2050년에는 50억명이 물 부족을 겪을 것이라 한다(UN 세계 물 개발 보고서 2023). 약 2억5800만명의 아동이 학교에 다니지 못한다(유네스코 2020 세계 교육현황 보고서). 의료도 마찬가지다. 2020년 미국의 코로나19 사망률 차이를 분석한 연구를 보면,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히스패닉 남성그룹의 경우 백인 여성그룹에 비해 27.4배나 높은 수치의 사망률을 보였다. 기업은 상품과 서비스를 판다. 우린 이를 구매해 삶을 영위한다. 그런데 누군가는 소비에서 소외되고 있다. ESG는 소비자의 접근성(Accessibility)을 중요한 문제로 다루고 있다. 물과 전기, 가스, 통신과 같은 영역은 물론이고, 기업이 일반적으로 제공하는 상품과 서비스에 누구든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이, 장애, 성, 국적과 인종,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 EU의 소셜 택소노미에서도 재화 및 서비스에의 접근권을 중요한 기준으로 다루고 있다. 양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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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사회] 공급망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RE100은 재생에너지로만 전력을 조달하겠다는 기업들의 글로벌 이니셔티브다. 자발적 운동이며 캠페인이다. 재생에너지로만 전력을 쓰도록 강제하는 법률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등이 가입했다. 재생에너지 비율이 낮고 가격이 비싼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왜 RE100에 가입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글로벌 공급망의 거센 요구 때문이다. 2020년 7월 애플은 ‘2030년까지 100%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놀라운 것은 자체 비즈니스뿐 아니라 공급망과 제품 생애주기 전반에서 탄소중립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협력업체에 RE100 달성을 강력히 요구했다. 애플의 CEO 팀 쿡은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 내는 연못 안의 물결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원료 채취부터 폐기까지 제품의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환경적인 영향을 따지는 세상이 됐다. 전 생애주기 평가(Life Cycle Assessments)와 제품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을 추적하는 것이다. RE100은 재생에너지의 수요를 만들어 에너지 시장과 산업을 바꾸고, 국가 정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급망을 통한 변화는 환경문제만이 아니다. 우리가 먹는 초콜릿에 아동의 눈물이 담겨 있다면? 2021년 미국 워싱턴DC 법원에는 코코아 농장의 아동노동 소송이 제기됐다. 원고는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 노동자들, 피고는 네슬레, 허쉬, 카길 등 식품회사들이었다. 원고들은 16세 이전부터 코코아 농장에 끌려가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일했는데, 피고들이 자신의 공급망이며 영향력이 지배적인 이들 농장에서 일어난 아동착취를 묵인하고 이득을 취했다고 주장했다. 2022년 6월 법원은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피고 회사와 그들이 일한 농장 사이에 ‘추적 가능한 연결’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네슬레는 소송이 진행되는 2022년 1월, 코코아 농장의 아동노동을 없애기 위한 획기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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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사회] 기업의 공급망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2010년 네슬레는 오랑우탄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그린피스가 네슬레 광고를 패러디한 영상을 공개하면서다. 영상에는 어느 회사원이 네슬레 초콜릿을 꺼내 먹는데 다름 아닌 오랑우탄 손가락이었다. 그린피스는 네슬레의 초콜릿 원료인 팜유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오랑우탄 서식지인 열대우림이 파괴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네슬레는 억울했다. 네슬레와 팜유 공급계약을 체결한 회사도 아니고 공급망의 말단 농장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네슬레는 먼저 해당 동영상의 삭제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청구는 받아들여졌지만 영상은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을 사게 되고 여론은 더 나빠졌다. 기업은 공급망의 환경파괴나 인권침해에 대해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할까? 1차 협력사가 아닌 말단의 공급망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할까? 법률상으로 보면 네슬레는 아무런 책임이 없었다. 스스로 한 행위도 아니고, 아무런 계약관계도 없는 농장의 산림 벌채를 교사하거나 방조한 바 없었다. 직접 계약관계가 없는 말단 공급망의 불법행위에 대해 연대책임을 묻는 법률도 없었다. 그러나 네슬레에 대한 시민사회 및 소비자들의 비난은 거셌다. 결국 네슬레는 해당 업체와의 거래를 중단하고, 10년 안에 산림 벌채가 없는 공급망을 만들며, 2015년까지 100% 지속가능한 팜유를 사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지속가능한 팜유란 생산과정에서 환경 파괴와 인권 침해가 없는 팜유를 말한다. 네슬레는 ‘법적 책임’은 없지만 ‘사회적 책임’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공급망의 첫 단계부터 상품이 생산돼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전체 사슬에서 기업의 책임은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기업의 공급망 관리에 대한 사회의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사회적 책임은 시장과 사회가 책임을 묻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외면하고, 투자자들이 투자를 하려 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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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사회] 우리도 ‘소셜 택소노미’ 논의를 시작하자

지난해 한국에서 30조원이 넘는 사회적채권이 발행됐다. 녹색채권은 전년보다 절반이나 줄었는데 사회적채권은 오히려 늘었다. 사회적채권은 사회문제 해결 또는 완화를 목적으로 발행하는 채권이다. 어떤 경우에 사회적채권에 해당할 수 있을까? 카드회사가 중소가맹점 지급주기 단축을 위해 채권을 발행한다면, 은행이 중소기업 대출을 위해 채권을 발행한다면, 통신회사가 통신품질 제고를 위해 채권을 발행한다면, 제약회사가 신약 개발을 위해 채권을 발행한다면, 사회적채권으로 볼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답을 찾는 것이 바로 ‘택소노미’다. 소셜 택소노미(Social Taxonomy)는 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을 분류하는 기준이다. 유럽연합(EU)은 그린 택소노미에 이어 2022년 2월 소셜 택소노미를 발표했다. 한국은 2021년 12월 녹색 분류체계를 만들었다. 이른바 ‘K-택소노미(Taxonomy)’다. 그러나 소셜 택소노미에 대해서는 아무런 논의도 없다. 사회적채권을 포함해 ‘지속가능금융’이 늘고 있으나 무엇이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인지는 모호하다. 논쟁적이기도 하다. 택소노미는 기업 입장에서 환경적으로 유용한 활동, 사회적으로 유익한 활동의 기준이 된다. 외형적으로는 환경적·사회적 지향을 가지는 경제활동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워싱(washing)을 방지하고 식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ESG 워싱은 세계적으로 정책당국뿐 아니라 소비자, 시민사회의 각별한 관심을 받고 있다. 소셜 택소노미는 환경에 집중돼 있는 분류체계를 인권을 포함한 사회적 영역으로 확장한 것이다. EU가 가장 앞서 있다. EU 소셜 택소노미는 아래와 같은 사회적 목표 및 판단기준을 제시한다. 택소노미에 포함되려면 우선 사회적 목표에 ‘실질적으로’ 기여해야 한다. 사회적 목표는 이해관계자에 따라 설정된다. 예를 들어 근로자와 관련해서는 ‘양질의 일자리’다. 그냥 일자리가 아니라 ‘좋은’ 일자리에 방점이 찍혀 있다.  소비자와 관련해서는 적절한 생활수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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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사회] 금융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세상을 바꾸는 금융. 국내 어느 은행의 모토다. 냉정하게 수익을 좇는 금융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을까? 금융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지구를 바꾸는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유럽연합(EU)은 2018년 ‘지속가능금융 행동계획’을 발표했다.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달성하기 위한 열쇠를 금융에서 찾았다. 환경과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경제활동이 활성화되고 이 분야에 돈이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2020년에 발행된 사회적채권(Social Bond)은 팬데믹 이전보다 10배 늘었다고 한다. 사회적채권은 사회문제 해결이나 완화를 목적으로 발행하는 채권을 말한다. 신한카드는 2019년 1000억원 규모의 사회적채권을 발행했다. 조달된 돈을 중소가맹점 지급 주기 단축 등 사회적 가치를 높일 목적으로 활용했다. 장애인 등 취약계층 지원이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서도 사회적채권이 발행된다.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녹색채권(Green Bond)이 인기를 끈 것은 오래전 일이다. 녹색채권과 사회적채권 등 두 가지 성격을 모두 가지는 지속가능채권(Sustainability Bond)도 등장했다. 우리나라도 2021년까지 세 채권(ESG채권)의 누적 발행규모가 모두 172조원에 달한다(사회적채권 139조원, 지속가능채권 18조원, 녹색채권 15조5000억원). 지속가능연계채권(Sustainability-Linked Bond)도 있다. 지속가능채권이 좋은 목적(지속가능성)을 위해 사용되는 채권이라면, 지속가능연계채권은 ESG 경영목표 달성 여부에 따라 금리 등이 조정되는 채권이다. 2023년 SK하이닉스는 10억 달러 규모의 지속가능연계채권 발행에 성공했다. 반도체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거둔 성과였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6년까지 57%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면 이자율이 낮아지고, 달성하지 못하면 이자율이 높아지게 설계된 채권이다. 2022년에는 국내 최초로 지속가능연계대출(Sustainability-linked loan)이 등장했다. 지속가능연계대출은 대출 및 금리에 지속가능성을 연계하는 금융상품이다. IBK기업은행이 발행한 상품을 보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고, 대출을 신청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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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사회] 인권실사에 대한 네 가지 오해

첫 번째 오해 : 조사 또는 감사?인권실사는 ‘Human Rights Due Diligence’를 번역한 말이다. 나는 ‘실사’라는 번역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인권실사를 조사(investigation)나 감사(audit)로 오해하게 한다. ‘Due Diligence’는 직역하면 ‘적절한 성실성’이다. 미국 법률 사전에서는 ‘특정 상황에서 합리적이고 신중한 보통의 사람에게 적절하게 기대되고 일반적으로 행사되는 신중함, 행동 또는 성실성의 척도’라고 풀이한다. 일반적인 사람(선량한 관리자)이라면 기울일 주의를 말한다. 한국에서는 이를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선관주의)라고 한다. 인권실사는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UN Human Rights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 이하 UNGPs)에서 나온 말이다. UNGPs는 기업이 인권존중책임을 다하기 위해 ▲인권정책을 수립하고 서약하며 ▲인권실사를 하고 ▲구제 절차 제공을 요구한다. 이 중 인권실사는 기업 활동이 인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식별, 방지, 완화하고 인권에 대한 영향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설명하는 일련의 절차다. 인권존중을 위해 이 정도의 주의의무는 기울여야 한다는 ‘프로세스’를 말한다. 두 번째 오해 : 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UNGPs가 만들어지기 전 국제사회는 ‘기업과 인권’에 대하여 많은 논의를 했다. 다국적 기업의 인권침해가 크게 문제됐기 때문이다. 처음 나온 것은 ‘유엔 기업인권규범 초안’이었다. 이 규범은 다국적기업에 국제법적 인권의무를 부과하고, 여러 집행장치를 마련했다. 40여 개에 달하는 국제인권법규를 기업이 준수하도록 했다. 인권규범 이행 상황을 정기적으로 공시하도록 하고, 독립적인 외부 모니터링과 검증을 받도록 하며, 다른 경제주체와 계약을 체결할 때 인권규범을 포함하도록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국제 인권조약 중 기업에 직접 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당사국에 의무를 부과할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