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기업과 사회] 기업의 공급망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2010년 네슬레는 오랑우탄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그린피스가 네슬레 광고를 패러디한 영상을 공개하면서다. 영상에는 어느 회사원이 네슬레 초콜릿을 꺼내 먹는데 다름 아닌 오랑우탄 손가락이었다. 그린피스는 네슬레의 초콜릿 원료인 팜유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오랑우탄 서식지인 열대우림이 파괴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네슬레는 억울했다. 네슬레와 팜유 공급계약을 체결한 회사도 아니고 공급망의 말단 농장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네슬레는 먼저 해당 동영상의 삭제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청구는 받아들여졌지만 영상은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을 사게 되고 여론은 더 나빠졌다.

기업은 공급망의 환경파괴나 인권침해에 대해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할까? 1차 협력사가 아닌 말단의 공급망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할까? 법률상으로 보면 네슬레는 아무런 책임이 없었다. 스스로 한 행위도 아니고, 아무런 계약관계도 없는 농장의 산림 벌채를 교사하거나 방조한 바 없었다. 직접 계약관계가 없는 말단 공급망의 불법행위에 대해 연대책임을 묻는 법률도 없었다.

그러나 네슬레에 대한 시민사회 및 소비자들의 비난은 거셌다. 결국 네슬레는 해당 업체와의 거래를 중단하고, 10년 안에 산림 벌채가 없는 공급망을 만들며, 2015년까지 100% 지속가능한 팜유를 사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지속가능한 팜유란 생산과정에서 환경 파괴와 인권 침해가 없는 팜유를 말한다. 네슬레는 ‘법적 책임’은 없지만 ‘사회적 책임’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공급망의 첫 단계부터 상품이 생산돼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전체 사슬에서 기업의 책임은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기업의 공급망 관리에 대한 사회의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사회적 책임은 시장과 사회가 책임을 묻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외면하고, 투자자들이 투자를 하려 들지 않고, 근로자들이 취업을 꺼리게 되는 것이다. 기업들은 공급업체와 관계할 때 수익 그 이상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 됐다. 환경, 인권, 반부패 등 비재무 요소는 공급망 선택과 관리에서 중요한 사항이 됐다. ESG 평가기관들도, 글로벌 투자자들도 공급망 관리를 중요한 지표로 삼고 있다. 지속가능성 보고기준도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책임있는 조달’ ‘책임있는 공급망’, 나아가 ‘지속가능한 공급망’을 목표로 삼는 기업의 흐름이 형성됐다. 일개 기업의 대응만으로는 어렵기 때문에 산업별 대응도 나타났다. 전자산업의 RBA(Responsible Business Alliance), 의류산업의 SAC(Sustainable Apparel Coalition) 등 산업별 공급망 관리 이니셔티브가 만들어졌다. 팜유 관련해서도 지속가능한 팜유 라운드테이블이 만들어졌다.

공급망 관련 법적 책임도 강화되고 있다. 기존 법리로는 제3자의 행위를 ‘교사’하거나 ‘방조’한 경우가 아니면,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으면 공동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 그러나 UN 규범인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UNGP)에서는 이른바 ‘연루’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연루는 기존의 교사·방조의 개념보다 넓다. 예를 들어 제3자의 인권침해로 인해 이익을 얻는 것, 알고도 침묵하는 것을 포함한다. 네슬레가 농장의 환경침해로 이익을 얻고 있다면 네슬레에 책임이 있다. 나이키가 협력회사의 아동노동을 인지하고도 침묵으로 일관했다면 나이키는 연루책임을 부담한다. 나아가 기업은 사업관계에서 운영, 생산, 서비스와 ‘직접 연결’된 인권 리스크를 막고 예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책임을 지는 방식도 넓어졌다. 기존에는 시정의무를 부담하거나 손해배상책임, 나아가 형사처벌을 받았다면, 이제는 ‘인권침해를 예방할 노력의무’, ‘거래관계를 조정할 책무’ 같은 것이 요구된다. 가볍지만 실효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공급망 책임을 강화하는 새로운 법률도 등장하고 있다. 공급망의 환경 및 인권 위험을 식별하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유럽의 지속가능성 실사법률이 대표적이다. 직접 협력사뿐 아니라 계약관계가 없는 간접 협력사에 대해서도 일정한 경우 실사를 법률로 의무화하는 법률이 만들어지고 있다. 실사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정부가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고 경우에 따라 행정벌 또는 형사책임까지 부과한다.   

미국은 2010년 분쟁광물 법안을 채택했다. 분쟁광물은 인권침해나 환경파괴의 우려가 있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광물을 말한다. 미국의 법안은 금, 주석 등 광물을 사용할 경우 콩고 등 9개 나라에서 생산되는 광물인지를 확인하고 이를 보고할 의무를 부과했다. 이 법은 콩고 등에서 해당 광물을 수입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지는 않는다. 정보공개를 통해서 사실상 분쟁광물을 조달하지 못하도록 간접적으로 강제한다. 유럽연합(EU)도 유사한 내용의 분쟁광물 법규를 제정했다. 2022년 미국에서는 신장·위구르 강제노동금지법이 시행됐다. 해당 지역에서 생산된 제품은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으로 추정하고 미국으로의 수입이 금지된다. 앞선 분쟁광물 법안보다 강력하다.   

공급망 책임은 이렇게 강화되고 있다. 그러나 책임의 관점이 아니라 경쟁력의 관점에서 공급망 문제를 봐야 한다. 공급망을 통해 값싼 물건을 조달받거나, 공급망을 쥐어짜서 최대의 수익을 올리는 시대는 지났다. 책임있는 공급망 관리는 기업의 위험을 줄여줄 뿐 아니라 경쟁력을 키운다. 거센 환경 및 인권규제에 대응하게 하고 이해관계자의 요구에도 부합한다. 무엇보다 안정적이며 품질이 좋은 공급망을 확보하게 한다. 결국 기업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다.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책임있는 공급망이 필요하다. 말 그대로 지속가능한 공급망이 돼야 한다.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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