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기업과 사회] 누군가를 차별하는 비즈니스는 온당한가?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노인을 위한 금융은 없다. 어느 기사 제목이다. 은행 점포는 매년 300개씩 사라지는데 노인에게 인터넷 뱅킹이나 앱은 어렵다. 키오스크나 온라인으로 음식을 주문하고 쇼핑하는 시대가 노인에겐 버겁다. 장애인은 소비자에서 소외된 지 오래다. 자필 서명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시각장애인의 대출이 거부된 일, 성인임에도 부모 동반을 요구하면서 발달장애인의 통신 가입을 거절한 사건이 여전히 뉴스에 오른다. 유아차를 끌고 버스를 타거나 편의점에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상버스라도 유아차를 위해 램프를 내려주지 않고, 편의점에는 경사로가 없다.

세계로 눈을 돌리면 더 심각하다. 2020년 기준 7억3300만명은 전기 없이 살고 있다. 20억명에 달하는 인구가 대소변으로 오염된 물을 식수로 사용한다. 기후변화로 물 부족은 심각해져 2050년에는 50억명이 물 부족을 겪을 것이라 한다(UN 세계 물 개발 보고서 2023). 약 2억5800만명의 아동이 학교에 다니지 못한다(유네스코 2020 세계 교육현황 보고서). 의료도 마찬가지다. 2020년 미국의 코로나19 사망률 차이를 분석한 연구를 보면,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히스패닉 남성그룹의 경우 백인 여성그룹에 비해 27.4배나 높은 수치의 사망률을 보였다.

기업은 상품과 서비스를 판다. 우린 이를 구매해 삶을 영위한다. 그런데 누군가는 소비에서 소외되고 있다. ESG는 소비자의 접근성(Accessibility)을 중요한 문제로 다루고 있다. 물과 전기, 가스, 통신과 같은 영역은 물론이고, 기업이 일반적으로 제공하는 상품과 서비스에 누구든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이, 장애, 성, 국적과 인종,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 EU의 소셜 택소노미에서도 재화 및 서비스에의 접근권을 중요한 기준으로 다루고 있다. 양질의 의료·보건·식품·식수·주거·교육 접근성을 향상하는 활동은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으로 분류된다.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UN SDGs)도 평등과 접근권을 중시하고 있다.

기업은 누구라도 상품과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양한 소비자가 상품과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을 때 시장은 넓어지고 기업의 이익도 커진다. 소비자들은 이런 기업을 신뢰하고 선호한다. 물론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의 편익도 함께 커진다. 접근성은 AAAQ라는 프레임으로 발전되고 있다. AAAQ는 availability(가용성), accessibility(접근성), acceptability(수용성), quality(품질)의 앞 단어를 조합한 것이다. ‘가용성’은 특정 상품이 충분한 양으로 이용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접근성’은 상품 및 서비스가 경제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정보제공을 포함해서 어떤 차별도 없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용성’은 상품 및 서비스 제공이 윤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적절해야 함을 말한다. 특히 소수자와 취약계층을 존중하고 성별과 연령 요건에 민감해야 한다. 예를 들어 물 공급에서 일부 그룹은 강물이 아닌 수도꼭지에서 물을 마시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다른 그룹은 화학적으로 처리된 물을 마시거나 묘지 근처의 시추공에서 물을 마시는 것을 거부할 수 있다. ‘품질’은 상품 및 서비스가 안전하고 과학적으로 승인되고 국제적으로 인정된 품질 표준을 충족함을 뜻한다.

미국의 영화관 1위 사업자 리갈시네마(Regal Cinemas)는 2013년 청각 및 시각장애인이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스마트 안경을 개발했다. 소니와 함께 개발한 이 안경을 쓰면 자막과 화면해설이 제공된다. 보통은 장애인을 위한 사회공헌이라고 홍보할 텐데 리갈은 그러지 않았다. 극장 관객이 줄고 있어 새로운 고객을 개척하기 위해 해당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장애인도 엄연한 소비자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시·청각장애인들이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근거로 자막 또는 화면해설을 제공하라는 소송이었다. 이른바 ‘모두의 영화관 소송’이다. 영화관 사업자들은 “장애인을 배려하고 싶지만 영화시장이 어렵고 국가가 먼저 표준을 만들어 지원해야 한다”고 항변했다. 원고들은 “자막을 보여주는 기술을 도입하면 한글 자막뿐 아니라 영어, 중국어 등 자막 상영이 가능하므로 외국인 관람도 늘릴 수 있어 극장 수익에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장애인들이 1, 2심 모두 승소했으나 피고는 이에 불복해 다투고 있다.

스타벅스는 ‘모든 사람에게 소속감을 제공하는 공간’이라는 미션으로 다양한 접근성 정책을 펼치고 있다. 경사로는 기본이고, 장애인을 위한 점자메뉴, 청각장애인과의 수어 소통 등을 포함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2022년 3월에는 전 세계에 1000개의 ‘커뮤니티 스토어’를 열겠다고 밝혔다. 커뮤니티 스토어는 지역사회와 더 연결되고, 모든 사람의 웰빙을 향상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는 매장을 말한다. 매장의 포용적 디자인 표준을 강화해서 접근성을 보다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한국의 공중이용시설에는 경사로가 없는 경우가 많다. 휠체어와 유아차를 끌고는 들어갈 수가 없다. 얼마 전 법원은 편의점에 경사로를 설치하지 않은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위반한 것이라 판결했다. 카페도 소송의 피고였는데 스스로 개선을 약속한 후 조정으로 종결됐다. 장애인에게 1층의 공중이용시설이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회는 언제쯤 올 수 있을까? 단차를 없애거나 경사로만 설치하면 되는 쉬운 일이 이렇게 어려운 것은 무엇 때문일까?

LG전자는 접근성 자문위원회를 운영한다. 미국에서 먼저 시작했고 한국에도 도입했다. 장애인 단체, 접근성 전문기관이 참여해 지속적인 제품 접근성 개선을 위한 자문회의를 연다. 카카오는 모두에게 편리한 카카오를 만들기 위해 ‘디지털 접근성 책임자’를 선임했다. 접근성을 중시하는 기업들이 늘어야 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의 관점이 아니라, 누구나 차별 없이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고 그것이 시장을 넓힌다는 관점이 중요하다. 누구도 소비자에서 소외돼서는 안 된다.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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